몇 주전, 저녁에 일이 있어서 급하게 이동하던 중이었다. 배가 무척 고팠지만 시간이 없어서 저녁을 먹을 수가 없었다. 뭔가 간단하게 먹을 게 없을까 싶어서 머리를 굴려봤지만 생각나는 게 없었다. 길을 걷다 처음 만나는 편의점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단 것을 싫어해서 쵸코파이나 쵸코바 같은 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바퀴를 돌았다. 군대 다녀와서 편의점 알바 뛰던 시절엔 삼각김밥 같은 것도 가끔 먹었는데, 그 이후로는 왠지 손이 가지 않는다. 우유를 마시자니 좀 허전하고, 간단하게 먹을게 뭐 없을까 고민하다가 급한 마음에 시계를 쳐다봤다. 문득 에O스 크래커가 눈에 들어와서 집어들고 계산을 했다. 무려 천원! 과자 안 사먹은 지 꽤 오래 되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꽃피는 봄이 되었건만 바람은 차갑기만 하고, 꽁꽁 언 손으로 과자를 하나씩 꺼내 입으로 넣으면서 부지런히 발을 옮겼다. 한 십여분 걷는 동안 과자를 다 먹어치우고 나니 약간의 허기는 면한 듯 했다. 비닐포장지를 구겨 접어서 잠바 주머니에 넣고, 손을 털고, 입을 쓱 닦으며 문득 옛날 생각을 떠올렸다.

 아직 뺨과 이마에 여드름이 가득했던 고등학교 시절이다. 내 고교시절은 어느 한 사건을 계기로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첫번째 시기는 완전 모범생(요새말로 범생이!)이었던 시절이고, 두번째 시기는 완전 문제아(다른 말로 양아치!)였던 시절이다. 문제아 시절의 나는 완전 이중인격자였는데, 모범생 시절의 이미지가 아직 그래도 남아 있어서 학교에서 몇몇 선생님과 아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내 실체를 알지 못했다. 사실 문제아로 낙인 찍히면 생활하면서 좋을게 별로 없기 때문에 계속 이미지 관리를 해야 했다.

 그 문제아 시절, 야간자율학습(줄여서 야자) 시간이면 어김없이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니고, 침 좀 뱉고 다니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산 아래(우리 학교는 산 중턱에 있었음) 동네 커피숍에 죽치고 앉아서 놀았다. 물론 남자들끼리만 놀면 재미 없으니까 근처 모 여자상업고등학교에 다니시는 아리따운 여학생들을 모시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놀았다. 그리고 가끔은 학교 뒷 산에 올라 담배를 꼬나물고 근처 모 공업고등학교 남학생들을 모시고 주먹과 눈 중에서 누가 더 센가를 겨뤄보기도 하고 발과 배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연구해 보기도 했다. 개중에는 각목과 머리 중에 어느 쪽의 내구성이 더 좋은가를 시험해보는 위험한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데 매일같이 야자를 빠졌더니 학교에서 열심히 쌓아놓은 모범생 이미지가 막 무너질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그때쯤 나는 슬슬 동네 커피숍에서 이루어지는 진진한 대화모임이나 학교 뒷산에서 이루어지는 위험한 연구모임에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번 야자를 빠지기 시작했더니 다시 하기가 무지 싫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꾀를 냈다. 시내 모 단과학원에서 취약한 과목을 한 과목만 수강을 해서 정식으로 야자를 안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낸 것이다. 물론 당시 단과학원의 한과목 수강료만해도 제법 비쌌다. 가난했던 우리집 형편에는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얼마되지 않는 학교 월사금도 장학금으로 보조받아 다니던 때였으니까.

 그러나 그 때는 막나가던 문제아 시절이었다. 철없던 사춘기였던 것이다. 대학 핑계를 대고 취약과목을 공략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억지를 부렸다. 첫 달엔 그렇게 집에서 돈을 타서 수강료를 냈다. 처음엔 비싼 수강료가 아까워서 열심히 학원을 다녔다. 한동안 어울려다니던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니던 친구들과도 조금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런데 문제아는 어쩔 수 없이 문제아들 끼리만 어울리게 되는 것인지. 시내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는 패거리들과 또 어울리게 되었다. 녀석들은 시내 구석구석의 오락실이나 만화방에서 자잘한 것들을 훔쳐내거나, 힘없는 아이들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냈다. 그 돈으로 당구장으로 술집으로 몰려다니며 놀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남의 것을 훔치거나 강탈하는 것 자체에 혐오감을 갖고 있었기에 그 녀석들과는 어울리지 않으려 했지만, 중학교 때 잠깐 친하게 지내던 녀석이 그 패거리에 속해 있어서 자연스럽게 몇 번을 어울린 후에는 발을 빼기 어려워졌다. 물론 당연히 나와 그들의 만남은 당구장이나 술집에서만 이루어졌다. 오락실이나 만화방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돈 끌어모으는 작업은 나와 전혀 관계가 없었다. 나는 머리속으로 그들이 하는 짓거리와 내가 그들과 잠깐 만나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둘째 달에 더이상 집에 손을 벌릴 수 없어서 고민하던 차에, 그 패거리의 한 명이 누군가에게서 훔쳐온 단과학원 수강증을 건네줬다. 거절하고 야자를 받을 것인가, 나는 훔친 게 아니라 받은 것이니까 괜찮다는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을 내 머리속에 세뇌시키며 건네받을 것인가를 놓고 잠깐 고민했다.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새 내 손은 그 수강증을 쥐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동안 노는 무대를 학교 근처에서 시내로 옮겨놓고 살았다. 

 그러나 물과 기름처럼 그들과 나의 관계는 쉽게 어울릴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 날, 당구장에서 작은 시비 끝에 그들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말았다. 몇 달을 단과학원을 다니면서 나는 도강(도둑수강의 준말일까?)이라는 수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훔친 수강증을 받아서 쓰는 것과는 달리 도강은 별로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강사는 한 시간 수업을 하는 것일 뿐이고 학생도 많은데 그냥 좀 끼어 들으면 어때서하 마음이 들었다. 학교에는 지난 몇 달동안 수강증을 꾸준히 보여줬기 때문에 적당히 둘러대도 넘어 갈 수 있었다.

 (아! 여기까진 쓸데없는 얘기였고, 여기서부터가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학원 수업은 딱 저녁 먹을 시간에 잡혀 있었다. 나는 도시락을 두 개 갖고 다녔지만, 하나는 2교시가 끝나기 전에 비우고, 다른 하나는 점심시간에 비우기 때문에 저녁이 되면 먹을 게 없었다. 가끔 친구들에게 라면을 얻어 먹거나 빵을 얻어 먹기도 하지만 매일같이 얻어 먹을 수는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학원을 나서면 무척 배가 고팠다. 그때 내가 주로 먹던 것이 바로 당시 삼백원이었던 에O스 크래커였다. 걸어다니면서도 먹을 수 있고, 버스에서도 먹을 수 있고 게다가 당시에는 지금 천원짜리보다 양도 훨씬 더 많았다.

 오늘 다시 저녁을 못 먹고 바쁘게 일정을 쫓아 다녔다. 근처에 보이는 구멍가게에서 에O스 크래커를 사서 걸으면서 먹었다. 과자를 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예전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마치 과거의 내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스쳐지나갔다. 그땐 정말 돈이 없어서 과자 밖에 먹을 게 없었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아직도 과자로 배를 채우려는 나를 보게 될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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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