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에 책이 들어온다는 걸 알고 오늘은 힘 좀 써야겠구나 생각했다. 지난 주 냉방병으로 시작된 여름 감기가 주말동안 기관지염으로 악화되었다가, 어제부터 조금 나아졌는데, 그래도 몸 상태가 완전히 정상이 아니라서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다. 그래도 내가 책 노가다 경력이 얼만데, 뭐 그리 걱정할 게 있나 하고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편집장님은 오늘 오전에 손님이 와서 면담 일정이 잡혀있다고 했고, 편집부 기자들은 어제 일정이 예상치 못한 일로 새벽까지 늦어져서 오늘 오후에 나오거나, 어쩌면 못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메일 확인을 하고, 주문확인을 하는 등등 오전 일을 보고 있는데, 곧 편집장님의 손님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 후 책이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1층으로 내려가 보니 생각보다 책이 더 두꺼웠고, 그래서 박스 숫자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았다. 게다가 박스 하나를 옮기려고 들어보니, 헉!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다! 배달 기사님도 책이 너무 무겁고 부피가 크니 옮기려면 고생 좀 하겠다고 한 말씀 하셨다. 일단 책들을 차에서 내려서 1층 건물 현관에 쌓아놓는 것만으로 벌써 지쳐버렸다!

 

편집장님은 면담 때문에 본인이 못 도와주시고, 나 혼자 저 많은 책을 나를 수 없으니, 근처 이삿짐센터 등을 알아봐서 짐 옮겨줄 사람을 구해서 얼마인지 알아보자고 하신다. 나는 가까운 곳에 이삿짐센터 등이 있는지도 알 수 없고, 미리 예약을 한 것도 아니고 당장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혼자서 하려고 하진 않을 테고, 적어도 2명을 써야 할 텐데, 그러면 한 사람당 5만원씩, 최소 10만원은 내야 할 텐데, 책 올리는데 그렇게 돈을 들일 수는 없다고 말씀드렸다.

 

결국 나 혼자서 1층에서 4층까지 무거운 책을 옮겨야 했다. 박스 2개를 한 번에 옮겨 보려고 시도하다가 허리를 다칠 뻔 하고, 결국 1개씩 천천히 쉬엄쉬엄 옮기기로 결정했다. 처음 1개 옮겼을 때는 가뿐했다. 2개째는 조금 지쳤고, 3개를 옮기고 나서는 완전히 기진맥진 했다.

 

이 건물에 이렇게 계단이 많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계단에 앉아서 땀을 식혔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데 벌써 땀이 온 몸을 흠뻑 적셔서 셔츠는 물에 담갔다가 입은 듯하다. 젠장, 옷이라도 좀 편하게 입고 왔으면 더 좋았을 것을. 오전에 책이 들어오면, 오후에는 거래처에 들어가려고 평소에 안 입던 긴 바지와 단추와 옷깃이 달린 셔츠를 입고 왔건만, 몸을 쓰는데 상당히 거슬린다. 평소처럼 반바지에 편한 셔츠 입고 왔으면 두 배는 더 빨리 움직일 것 같은데 말야.

 

한 3분의 1쯤 옮기고 나서 사무실로 돌아와 찬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혼자서 다 옮기겠다고 말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사람을 쓰자고 할까? 아니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럴 순 없다. 잠시 쉬다가 다시 몸을 움직였다.

 

만약 내가 마케터가 아닌 편집부 기자였다면, 돈이 얼마가 더 들어도 그냥 편집장님 결정에 따랐을 텐데, 마케터라는 역할 때문에 제작단가에 유통비용과 유지관리비용을 더하고 어쩌고 저쩌고를 따지다보니, 그냥 혼자 해보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아닌가. 계단을 오르내리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본다.

 

책이 도착한 것이 10시 조금 전이었고, 11시가 조금 넘었는데, 아직 반 도 다 옮기지 못했다. 젠장! 점심 먹기 전에 다 끝낼 수 있을까? 팔, 다리가 후덜거려서 잠시 자리에 앉았다. 물을 마시며 잠시 쉬고, 힘내서 다 해치워버려야지.

 

11시 반쯤 3분의 2를 옮겨놓고 나니, 이제야 자신감이 생긴다. 12시까지는 끝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박스 수를 세면서 시간 계산을 해본다.

 

11시 40분 조금 지나서 편집장님과 면담하던 손님이 일어나셨다. 남은 박스는 7개. 편집장님은 땀에 젖은 내 몰골을 보시면서 이제 본인이 움직일 테니, 나보고는 좀 쉬라고 한다. 몇 개 안 남았으니, 둘이 하면 금방 끝낼 수 있다고 하고 잠시 물만 좀 마시고 시작하자고 말씀 드렸다. 편집장님께서는 1층에서 3층까지 올려놓고, 나는 3층에서 4층까지 올리면서 다시 작업재개! 마지막 남은 박스 2개를 둘이서 1층에서 4층까지 다 옮기고 작업을 끝냈다. 12시가 되기 직전이었다. 혼자 책을 옮기기 시작한지 2시간이 조금 넘었다.

 

그야말로 땀으로 목욕을 했다. 편집장님은 잠깐 움직였는데도 너무 힘들다고, 나보고 너무 고생했다고 하신다. 그래서 내가 땀을 많이 흘렸으니, 점심은 보신할 수 있는 걸로 사달라고 했다.

 

젖은 옷을 선풍기 앞에서 좀 말려보려고 했지만 계속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소용이 없다. 한참을 쉬다가 밥 먹으러 나갔다.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던 샤브샤브 집에서 쇠고기 추가하고 맥주도 한잔 하면서 거하게(!) 점심을 먹었다.

 

원래 오늘 나온 책을 갖고 거래처 방문을 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옷도 신경 쓴 건데, 옷이 다 젖어버려서 도저히 거래처를 찾아갈 몰골이 아니다! 나는 집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고 갈까 생각했는데, 편집장님은 그냥 오늘 오후엔 사무실에 있고, 내일로 방문일정을 연기하라고 하신다. 오후에 편집장님은 외부 일정 때문에 나가시고, 기자들은 오늘 출근 안할 예정이니, 사무실을 좀 지키라는 것이다.

 

조금 전에 편집장님이 나가시고, 혼자 남았다. 젖어서 찝찝한 셔츠를 아예 벗어버리고, 상체는 맨 몸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맘 같아선 바지도 벗어버리고 싶지만, 차마 그러진 못하겠고~) 아주 오랜만에 힘든 육체노동을 하고 땀을 흠뻑 흘렸다. 땀 흘린 뒤에 마신 맥주 한 잔이 참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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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