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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1 눈 쌓인 숲길 (2)
  2. 2010.02.08 철학성향 테스트 (8)

눈 쌓인 숲길

그냥 2010.02.11 12:15

어제 새벽까지 마신 술 덕분에 지끈 아픈 머리를 흔들며 일어났다. 아이는 오늘도 늦잠을 자느라 깨워도 안 일어난다. 달래도 보고 협박도 해보고 강제로 일으켜도 봤는데, 울고 짜증만 내더니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 아내는 몸이 무거워 아이 데려다주기 힘들다며 나보고 데려가 달라는데, 나는 지금 나서도 출근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은 상황. 몇차례 더 아이랑 실랑이를 벌이다가 포기하고 먼저 집을 나선다. 아내는 삐져서 인사도 안 받아준다. 신발을 신고 계단을 내려서는데, 머리가 또 아프다! 아무래도 어제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 나라고 술이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닌데, 이놈의 일이라는게 술이 없으면 진행이 안되는데, 아내는 내가 술을 좋아해서 마신다고 생각한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눈이 쏟아진다. 아차! 등산화를 안신고 나섰다! 집도 사무실도 산동네에 있어서 눈이 오면 움직이기 힘들다. 마침 신고 나온 신발이 또 엄청 미끄러운 신발이다. 올해는 첫 출근길부터 시작해서 1월에만 서너차례나 눈길에 넘어지는 바람에 발과 허리를 다쳤다. 눈 오는 날이면 완전 목숨을 걸고 출퇴근 해야한다.

신발도 걱정이고, 몸 무거운 아내가 아이를 데려갈 일도 걱정이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지를 잠시 고민했다. 시간을 보니 지금 가면 아슬아슬하게 출근시간 안에 도착할 듯 한데, 다시 집에 들어갔다가는 무조건 지각이다. 눈이 쏟아지는 비탈길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동안 고민을 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르고, 다리는 본능적으로 움직여 비탈길을 내려갔다. 아직 눈이 쌓이지는 않아서 걸을만 했다. 이정도면 굳이 내가 되돌아가야만 하는 정도(신발도, 아이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일단 출근하기로 했다. 아내에게 눈이 오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문자를 보내고 발을 재촉했다.

출근길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산길을 20여분 걸어서 가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반대편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이다. 시간상으로는 산길을 걸어가는 쪽이 가장 빠르지만 이렇게 눈이 오는 날이면 좀 고민이 된다. 출근 시간에 맞추려면 아무래도 산길을 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등산화를 신고 왔어야 했는데, 또 한번 후회를 하며 입술을 깨문다.

버스에서 내려서 산길을 접어드는데, 온통 새하얀 세상으로 막 발을 내디뎠다. 쏟아지는 눈. 나무가지 위에도, 길 위에도 온통 새하얀 눈이 쌓여있다. 눈 쌓인 숲길에는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있다. 길 가운데로만 이어진 발자국. 나는 일부러 가장자리 쪽으로 걸으며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으며 걸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지각을 하게 될 상황이었는데, 그 새하얀 세상 속을 천천히 걸었다. 마치 취한 듯 정신이 아찔하다. 어제 마신 술이 아직 덜 깨었나. 온통 하얀 눈 속에서 나는 무슨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한 기분이 자꾸만 든다. 머리속에는 어서 출근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지금 여기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다른 세상이니 출근 따위는 잊으라는 유혹의 목소리가 서로 논쟁중이다.

무심코 시간을 본 순간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지금 뛰지 않으면 지각이다! 발이 저절로 뛴다. 눈이 튄다. 몇번씩 미끄러지다가 다시 뛴다. 숲길을 벗어나는 순간 잠시 발을 멈추고 뒤돌아본다. 새하얀 세상에서 막 벗어났다. 다시 뛰어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고 다시 발을 움직인다. 머리가 흔들린다. 어지럽다. 숨이 턱에 차도록 뛰었지만, 결국 3분 지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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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철학성향 테스트

그냥 2010.02.08 17:49

그린비 출판사 블로그에 갔다가 철학성향 테스트란 걸 해봤다. 철학에 관심은 많이 있지만, 정작 잘 알지는 못하는 터라 각 질문마다 나타나는 얼굴들이 누구인지 잘 모르고 그냥 순간순간 질문에 충실하게 답했다.

 

 

 

 

테스트는 동양과 서양 두 가지로 나뉜다. 그럼 그 결과는?

 

 

동양편


 

 

서양편

 

뭐 그냥 제목만 보면 내 성향과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문제는 저기 나와있는 사람들 중에 반쯤은 잘 모른다는 것. 실제 내 성향과 얼마나 비슷할지 한번 찾아보고 싶긴 한데,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니 그것 또한 문제로다!

 

아, 그런데 맑스랑 같은 성향에 속한다는 걸 아내가 본다면, '빨갱이'를 잘 알아봤다고 좋아할 게 분명하다. 그런데 불교 성향이 깊은 아내가 싯다르타와 같은 성향이란 걸 본다면 다시 이 결과는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외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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