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0.08.24 단행본 저자로 데뷔! (4)
  2. 2010.08.20 일상에서 틈틈히 운동 시작!
  3. 2010.08.19 오랫만의 육체노동 (2)
  4. 2010.08.13 아기의 함박웃음 (2)
  5. 2010.08.03 학교 없는 사회를 바란다! (2)
  6. 2010.08.03 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저항하라! (1)

 무슨 자신감에선지 모르지만 어릴때부터 글쓰기는 늘 자신있었다. 중학교때는 교내 백일장에서 상도 받았다. 고등학교때는 교지에 글이 실렸고, 대학에서는 학보에 몇 번인가 기고글을 썼다.

 

 환경운동단체 활동가로 일할때는 성명서나 보고서 등을 쓰느라 밤을 지새웠고, 가끔 원고 청탁을 하는 대학 학보에 글을 보내곤 했다. 웹진에 글을 써보기도 했고, 예전에 몸 담았던 잡지에 글을 싣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렇게 많은 기회들이 주어졌다기 보다는 그저 글의 성격에 맞는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혹은 운이 좋았기 때문에) 과분하게도 많은 기회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암튼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참 많고, 나는 아무래도 재주도 없고, 노력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까? 리더스가이드라는 독자 집단(커뮤니티)에서 처음으로 낸 단행본에 공동저자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앞서 말했듯이 잡지나, 웹진에 글이 실린 적은 있지만, 단행본에 참여한 건 처음이다!

 

막상 책이 나오고 나니,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함량 미달의 원고를 받아 책으로 엮어준 출판사에 고마운 마음이다. 책을 읽을 때, 저자의 말을 보면 종종 '나무에게 미안하다!'는 표현을 찾을 수 있는데, 지금 내 심정이 딱 그렇다. 다른 우수한 여러 글들에 비해 내 글은 웬지 모자라 보이고, 그래서 굳이 몇 페이지 더 늘리는 바람에 나무가 더 희생당했단 생각이 든다.

 

 부끄러운 건 뭐 이제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어쨌든 첫 단행본 출간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키보드를 두드려 보기로 했다.

 

 이 책은 제목만 보면 짐작 할 수 있듯이, 책에 대한 책이다. 이미 책에 대한 책들은 여럿 나와있다. 그 대부분이 유명한 분들이 쓴 책들이다.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서평꾼이란 단어를 쓰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에게 적용시키기에는 조금 민망한 단어다!)이 풀어놓은 책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단순히 서평을 모아놓은 책은 아니다.

 

이 책의 부제인 '책세이와 책수다로 만난 439권의 책'이란 문장을 보면 낯선 단어인 '책세이'가 눈에 띈다. 쉽게 짐작 할 수 있겠지만, 이 단어는 책 과 에세이를 합친 신조어다. 책에 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기존의 서평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 안에 책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들어가 있다는 개념이다.(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개념은 그렇다!)

 

유명한 소설가나 평론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읽고 쓴 책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의 모음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용감하고 새로운 시도가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묘한 마음으로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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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오늘 오전에 정말 오랫만에 힘을 좀 썼다. 덕분에 어깨와 팔 근육이 긴장해서, 거울을 들여다보면 예전의 꽤 괜찮았던 몸매로 조금은 돌아간 듯 보였다. 최근에 계속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들어서 한동안 달고 살았던 뱃살을 좀 빼고 예전 몸매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해보고 있다.

 

운동도 시간이 있어야 아니 돈이 있어야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기분이 나면 옛날처럼 운동을 좀 해보려고 하는데, 조금 하다보면 뭔가 해야할 일이 생겨서 곧 그만 두어야 한다. 예전에 한창 운동할 때는 대여섯 시간씩 해도 시간이 모자랐다. 지금은 한 시간은 커녕 30분도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육아와 가사노동에 신경을 쓰다보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돈이 많아서 그런 일들(육아와 가사노동 등)에 시간을 뺏기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것도 다양한 운동기구가 많은 헬스클럽 같은데서 말이다.

 

하지만 뭐 언제까지 그런 변명만 늘어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일상에서 틈틈히 운동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요즘 효과를 보고 있는 방법은 걷기와 계단 오르기이다.

 

우선 급한 일은 뱃살 빼기였다. 평소에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유산소 운동을 할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심하고 있던 사이에 어느새 배에 붙은 살이 점점 늘어나서, 아내의 구박이 심해졌다. "몸매 보고 결혼했는데, 결혼하고 보니 그 멋지던 몸매가 다 망가졌다. 속았다!"는 아내의 구박은 요즘 한층 더해졌다. 나도 망가진 몸매가 좋아서 이러고 있는게 아니라고,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받아치지만, 별로 소용이 없다.

 

근육운동은 하고나면 곧 효과가 나타나는데, 뱃살을 빼기 위해 아무리 윗몸 일으키기 등의 복근운동을 열심히 해도, 이미 나온 배가 쉽게 들어가지는 않는다. 어쨌든 유산소 운동이 필요한데, 거기에 투자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다.

 

그래도 최근에 걷는 시간을 좀 늘려보았더니 조금씩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마을버스를 안타고 걸어다니기 시작했고, 버스에서 내릴 때도 일부러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었다. 워낙 언덕이 가파른 동네(달동네라고 부르는 게 더 쉽겠지)에 살아서 더 효과를 보게 된 것 같다.

 

예전에 등산을 무척 좋아하시던 형님 한 분이 제 부실한 다리를 보고(상체에 비하면 하체는 좀 부실한 편이었다.) 가장 좋은 운동은 계단 오르기라는 말씀을 몇 차례나 강조해서 하신 적이 있는데, 요즘 그 말에 절대 공감하고 있다.

 

우리집은 3층(1층이 반지하라서 실제로는 2.5층), 사무실은 4층으로 계단이 많다. 자주 오가는 처가댁도 4층이다. 지하철역을 이용할 때도 무조건 계단으로만 다닌다. 특히 지하 깊은 곳으로 다니는 5호선이나 6호선이 짱이다! 요즘 6호선을 타고 출퇴근 하면서 다리가 점점 더 튼튼해지고 있다. 더불어 뱃살도 조금씩 들어가고 있는 걸 느낀다.

 

퇴근 할 때 지하철 문이 열리면 계단을 열심히 오르기 시작하는데,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면서 걷는 사람들보다 항상 내가 더 빨리 개찰구를 빠져나온다.

 

집에서는 설겆이랑 아기 빨래 등 집안일을 끝내놓고, 아이들을 재워놓고 밤 늦게 시간을 내서 팔굽혀펴기나 아령을 이용해 간단한 근육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결혼 전 몸매로 돌아가려면 멀었지만 이제 시작했으니 한 두어달만 꾸준히 하면 조금은 돌아갈 수 있을것 같다.(두어달이라도 꾸준히 하는게 가장 중요한 문제겠지만!)

 

내가 근육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중학교 때부터였다. 그 시절 내 우상은 이소룡이었다. 이소룡처럼 날렵하면서도 탄탄한 몸매가 되고 싶었다. 이소룡은 잔근육이 많다. 그런 몸매를 만들려면 많은 동작 익히고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요즘 말로 흔히 '몸짱'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보디빌더' 같은 체형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가장 눈에 띄는 근육들을 열심히 단련해서 부피만 키우면 대충 비슷한 몸매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체형은 왠지 둔해보이고, 그닥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소룡과 같은 몸매를 만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술을 익히는 것인데, 중,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무술 같은 걸 배울 돈과 시간이 없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절권도' 책을 빌려서 집에서 열심히 따라해봤지만, 별로 진전이 없었다. 킥복싱을 배우는 친구를 따라 도장에 한번 갔다가, 맘에 들어서 배워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며칠동안 구경가서 열심히 눈으로 동작들을 익혀두었다가, 집에와서 따라하곤 했다.

 

요즘처럼 게임 같은게 없었던 그 당시에 나와 친구들이 가장 열심히 했던 건 축구였지만, 그 다음으로 열심히 했던 건 팔씨름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팔굽혀펴기로 상완을 단련했다. 매일 교실에선 토너먼트 방식으로 팔씨름 경기를 치뤘다. 팔힘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분은 정말 짜릿하다!

 

주말이면 약수터에서 돌과 철봉으로 만든 역기를 들었고, 학교 운동장에선 열심히 턱걸이를 했다. 집에서는 끙끙 소리가 나올 때까지 팔굽혀펴기를 했다. 덕분에 친구들과의 팔씨름에서 거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보디빌딩 선수를 준비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따라 헬스클럽에 갔다가 관장님이 내게 관심을 가진 일이 있었다. 나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웃통을 벗어보라고 했다. 친구에 비하면 내 몸매는 왜소해보일 정도 였기 때문에 쑥쓰러워서 머뭇거렸는데, 괜찮다고, 그냥 한번만 보자고 해서 결국 벗었다. 내 주위를 한바퀴를 돌면서 보시더니 장래성이 있다고, 보디빌딩 선수가 될 의향이 없냐고 물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선수로 키울 아이들을 찾기가 워낙 힘들어서 아무나 보고 다 그런 말을 한 건 아닐까 의심이 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난 그런 체형이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에 딱 잘라 거절했다. 그 헬스클럽엔 가끔 놀러가서 운동하는 법만 익혀두었다. 집에서는 아령도 없고 아무런 기구가 없으니 맨손으로 동작을 따라하곤 했었다.

 

가장 몸매가 좋았던 건 역시 군대를 막 제대했을 무렵이었다. 병장때부터 시간이 남을 때마다 아령과 역기를 들었는데, 두어달만에 제법 효과가 나타났다. 게다가 내가 기관총 사수였기 때문에 평소에도 남들보다 체력훈련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아마도 내가 이상형으로 삼은 이소룡의 몸매에 가장 가까웠을 때가 그때였을 것이다.

 

그 뒤로는 시간이 갈 수록 점점 이상형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래도 결혼하기 전에는 여름이 다가올 즈음 바짝 운동을 해서, 노출의 계절에 어울리는 몸매를 만들어 놓곤 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그 마저도 안하게 되니 점점 몸매가 망가지고, 결국 뱃살이 나온 아저씨 체형이 되고야 말았다!

 

다시 예전 몸매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쨌든 시작을 했으니 노력해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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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오늘 오전에 책이 들어온다는 걸 알고 오늘은 힘 좀 써야겠구나 생각했다. 지난 주 냉방병으로 시작된 여름 감기가 주말동안 기관지염으로 악화되었다가, 어제부터 조금 나아졌는데, 그래도 몸 상태가 완전히 정상이 아니라서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다. 그래도 내가 책 노가다 경력이 얼만데, 뭐 그리 걱정할 게 있나 하고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편집장님은 오늘 오전에 손님이 와서 면담 일정이 잡혀있다고 했고, 편집부 기자들은 어제 일정이 예상치 못한 일로 새벽까지 늦어져서 오늘 오후에 나오거나, 어쩌면 못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메일 확인을 하고, 주문확인을 하는 등등 오전 일을 보고 있는데, 곧 편집장님의 손님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 후 책이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1층으로 내려가 보니 생각보다 책이 더 두꺼웠고, 그래서 박스 숫자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았다. 게다가 박스 하나를 옮기려고 들어보니, 헉!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다! 배달 기사님도 책이 너무 무겁고 부피가 크니 옮기려면 고생 좀 하겠다고 한 말씀 하셨다. 일단 책들을 차에서 내려서 1층 건물 현관에 쌓아놓는 것만으로 벌써 지쳐버렸다!

 

편집장님은 면담 때문에 본인이 못 도와주시고, 나 혼자 저 많은 책을 나를 수 없으니, 근처 이삿짐센터 등을 알아봐서 짐 옮겨줄 사람을 구해서 얼마인지 알아보자고 하신다. 나는 가까운 곳에 이삿짐센터 등이 있는지도 알 수 없고, 미리 예약을 한 것도 아니고 당장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혼자서 하려고 하진 않을 테고, 적어도 2명을 써야 할 텐데, 그러면 한 사람당 5만원씩, 최소 10만원은 내야 할 텐데, 책 올리는데 그렇게 돈을 들일 수는 없다고 말씀드렸다.

 

결국 나 혼자서 1층에서 4층까지 무거운 책을 옮겨야 했다. 박스 2개를 한 번에 옮겨 보려고 시도하다가 허리를 다칠 뻔 하고, 결국 1개씩 천천히 쉬엄쉬엄 옮기기로 결정했다. 처음 1개 옮겼을 때는 가뿐했다. 2개째는 조금 지쳤고, 3개를 옮기고 나서는 완전히 기진맥진 했다.

 

이 건물에 이렇게 계단이 많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계단에 앉아서 땀을 식혔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데 벌써 땀이 온 몸을 흠뻑 적셔서 셔츠는 물에 담갔다가 입은 듯하다. 젠장, 옷이라도 좀 편하게 입고 왔으면 더 좋았을 것을. 오전에 책이 들어오면, 오후에는 거래처에 들어가려고 평소에 안 입던 긴 바지와 단추와 옷깃이 달린 셔츠를 입고 왔건만, 몸을 쓰는데 상당히 거슬린다. 평소처럼 반바지에 편한 셔츠 입고 왔으면 두 배는 더 빨리 움직일 것 같은데 말야.

 

한 3분의 1쯤 옮기고 나서 사무실로 돌아와 찬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혼자서 다 옮기겠다고 말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사람을 쓰자고 할까? 아니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럴 순 없다. 잠시 쉬다가 다시 몸을 움직였다.

 

만약 내가 마케터가 아닌 편집부 기자였다면, 돈이 얼마가 더 들어도 그냥 편집장님 결정에 따랐을 텐데, 마케터라는 역할 때문에 제작단가에 유통비용과 유지관리비용을 더하고 어쩌고 저쩌고를 따지다보니, 그냥 혼자 해보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아닌가. 계단을 오르내리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본다.

 

책이 도착한 것이 10시 조금 전이었고, 11시가 조금 넘었는데, 아직 반 도 다 옮기지 못했다. 젠장! 점심 먹기 전에 다 끝낼 수 있을까? 팔, 다리가 후덜거려서 잠시 자리에 앉았다. 물을 마시며 잠시 쉬고, 힘내서 다 해치워버려야지.

 

11시 반쯤 3분의 2를 옮겨놓고 나니, 이제야 자신감이 생긴다. 12시까지는 끝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박스 수를 세면서 시간 계산을 해본다.

 

11시 40분 조금 지나서 편집장님과 면담하던 손님이 일어나셨다. 남은 박스는 7개. 편집장님은 땀에 젖은 내 몰골을 보시면서 이제 본인이 움직일 테니, 나보고는 좀 쉬라고 한다. 몇 개 안 남았으니, 둘이 하면 금방 끝낼 수 있다고 하고 잠시 물만 좀 마시고 시작하자고 말씀 드렸다. 편집장님께서는 1층에서 3층까지 올려놓고, 나는 3층에서 4층까지 올리면서 다시 작업재개! 마지막 남은 박스 2개를 둘이서 1층에서 4층까지 다 옮기고 작업을 끝냈다. 12시가 되기 직전이었다. 혼자 책을 옮기기 시작한지 2시간이 조금 넘었다.

 

그야말로 땀으로 목욕을 했다. 편집장님은 잠깐 움직였는데도 너무 힘들다고, 나보고 너무 고생했다고 하신다. 그래서 내가 땀을 많이 흘렸으니, 점심은 보신할 수 있는 걸로 사달라고 했다.

 

젖은 옷을 선풍기 앞에서 좀 말려보려고 했지만 계속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소용이 없다. 한참을 쉬다가 밥 먹으러 나갔다.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던 샤브샤브 집에서 쇠고기 추가하고 맥주도 한잔 하면서 거하게(!) 점심을 먹었다.

 

원래 오늘 나온 책을 갖고 거래처 방문을 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옷도 신경 쓴 건데, 옷이 다 젖어버려서 도저히 거래처를 찾아갈 몰골이 아니다! 나는 집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고 갈까 생각했는데, 편집장님은 그냥 오늘 오후엔 사무실에 있고, 내일로 방문일정을 연기하라고 하신다. 오후에 편집장님은 외부 일정 때문에 나가시고, 기자들은 오늘 출근 안할 예정이니, 사무실을 좀 지키라는 것이다.

 

조금 전에 편집장님이 나가시고, 혼자 남았다. 젖어서 찝찝한 셔츠를 아예 벗어버리고, 상체는 맨 몸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맘 같아선 바지도 벗어버리고 싶지만, 차마 그러진 못하겠고~) 아주 오랜만에 힘든 육체노동을 하고 땀을 흠뻑 흘렸다. 땀 흘린 뒤에 마신 맥주 한 잔이 참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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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긴박한 상황.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골목길을 헤집으며 도망치는 중. 숨은 턱에 차오르고, 발은 납덩이라도 달아놓은 것마냥 무겁다. 뒤에서 쫓아오는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개똥을 피하려고 발을 넓게 벌려 펄쩍 뛰는 순간, 다리가 더이상 말을 듣지 않아,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바로 등 뒤까지 다가온 발소리. 위기의 순간!

 

눈을 떴다. 꿈이었다. 요즘 계속 쫓기는 꿈을 꾼다. 최근에 찾아볼 이름이 있어서 들춰보다가 다시 읽게 된 책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 때문일까. 이번에 새로 읽으면서 새삼 느낀 게, 당시 운동가들의 정신력이 정말 대단했다는 점이다.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비밀정보를 불지 않았던 여러 선배 운동가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내가 만약 그 시대에 사회운동을 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고문은 시작도 하기 전에 다 불어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선배 운동가들에 비하면 겨우 용역깡패들이나, 전경들에게 조금 맞았다고 억울해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아직 모닝콜이 울리기 전이라 조금 더 누워서 뒤척이고 있는데, 큰 아이가 내 쪽으로 굴러와서 내 배에 머리를 박는다. 머리는 땀에 젖었는데, 손 발은 또 차다. 제 자리에 똑바로 눕혀주고 땀을 닦은 후, 이불을 배까지만 덮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눕는데, 잠시를 못 참고 발을 굴려 이불을 차내버린다. 다시한번 이불을 덮어주고나니, 이번엔 저쪽에서 둘째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조그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기는 벌써 잠이 깨서 혼자 놀고 있던 참이었던 것 같다. 손가락을 열심히 빨고(아니 정확히 말하자만 빨아보려고 애쓰고)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보며 '에', '앙' 등 글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짧은 소리를 주기적으로 내면서, 발을 열심히 동동 굴리고 있다. 잠시 내려다보니 녀석이 나를 알아본다. 눈동자가 나를 향하더니 동공이 열리는 듯, 그 맑고 투명한 눈동자 속에 내 얼굴이 어렴풋이 비쳐보인다.

 

녀석은 나를 알아보자마자 나를 향해 열렬히 손발을 움직여 버둥거린다. 안아달라는 표현일까.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니 곧바로 함박웃음을 짓는다. 요즘 느끼는 건데, 아기의 함박웃음만큼 대단한 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기분 나쁜일이 있어도 요 녀석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된다. 오늘따라 무슨 기분이 그리 좋은지 녀석은 평소에 잘 보여주지 않던 함박웃음을 두세번 연속으로 보여준다.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잠시 녀석을 얼르며 놀았다. 평소보다 더 기분이 좋은 게 틀림없다. 조그만 손짓 하나에도 녀석은 계속 웃음을 보이며 반응했다. 잠시 아기와 놀았으니, 이제 화장실에 가야겠다 싶어서 마지막으로 녀석의 뺨에 뽀뽀를 하려고 고개를 숙였다. 코가 녀석의 배 근처를 스치는 순간, 냄새가 확 올라왔다. 응가를 쌌던 것이다!

 

그제서야 녀석이 왜 유난히 반가워했는지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응가를 싸놓고 빨리 치워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발을 동동 구르고,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갑자기 응가를 치워줄 사람이 나타나자, 반가움에 함박웃음을 보였던 것이다. 그것도 평소에는 한번 보여줄까 말까 한 것을 두세번 연속이나 보여주었던 걸 보면, 응가를 싸놓고 어지간히 기다렸던 모양이다.

 

기저귀를 다 갈아주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음을 싹 거둬버린 아기. 또 응가를 싸고나서 그 웃음을 다시 보여줄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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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

학벌없는 사회 지음 / 메이데이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 선생님이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학교를 교육의 장애물이라고 했다. 근대 교육제도로서 학교가 생기기 이전에는 누구나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갔다. 그러나 학교가 생기면서부터 지배계급이 주입시키고자 하는 것들만 학교에서 강제로 배우게 되었다. 게다가 의무교육 제도는 지배계급의 권력을 세습하는 가장 뛰어난 도구였다. 대다수는 학교를 나오고도 경쟁에서 뒤쳐져 낙오되고, 극소수의 선택받은 학생들만 살아남아 인정받는다. 일리치의 표현에 의하면 ’극소수가 따지만, 대다수는 잃게 되어 있는 복권을 강제로 구입하는 것‘이 바로 학교를 통한 의무교육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끔찍이도 학교를 싫어했다.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만 한다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로봇이지’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는 수학과 과학을 참 못했는데, 성적이 나쁘다고 때리거나, 친구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남아서 마저 외우게 시키는 선생님들이 정말 싫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수학과 과학을 싫어하게 되었고, 중학교 1학년때 이미 그 두 과목을 다 포기해버렸다.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그 두과목을 진지하게 공부해 본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나를 그렇게 괴롭혔던 그 많은 선생님들의 주장과는 달리, 나는 두 과목을 다 포기하고도 무사히 대학에 진학했다.(수학과 과학은 늘 꼴찌이거나, 꼴찌에 가까운 성적이었다.)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였지만)나 중학교도 싫었지만, 가장 싫었던 건 고등학교였다. 선생님들의 일상적인 폭력도 싫었고,(지금 기준으로는 정말 놀랍게도 매일 성폭력 휘두르는 선생님들도 많았다!) 하루종일 갇혀있어야 하는 신세도 싫었지만, 가장 짜증나는 건,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태도였다. 학생들은 늘 등수로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어떤 식으로든 괴롭힘을 당했고, 성적이 좋으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부당한 방식을 견딜 수 없었다. 하루빨리 간수(선생님들)들이 지키는 감옥(학교)를 벗어나는 것이 꿈이었다. 가끔 탈옥(땡땡이)을 시도했다. 그래도 나는 별로 꾸지람을 듣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학 진학 가능’ 이라는 딱지가 나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제대하고 나서 다시 군대에 돌아가게 되는 꿈을 가끔 꾼다고 한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악몽이다. 나에게 그보다 더한 악몽은 고등학교에 돌아가는 꿈이다. 그만큼 나는 학교를 싫어했다.

 

오늘 한 권의 책을 읽었다. ‘학벌없는사회’가 지은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라는 책이다. ‘학벌없는사회’에서 일하는 여덞명의 필자가 교육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바로 ‘교육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들이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학교에 다니게 되다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아이들이 바로 몇 년만 지나면 학교에 다녀야만 하는 현실이 싫다! 그래서 대안학교를 알아보라고 주변에서 충고를 많이 하는데, 나는 솔직히 대안학교가 현실에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거기에 우리 아이들을 보낼만한 경제력이 우리 부부에게는 없다. 보낼 수 없는데 어떻게 대안이 된단 말인가!

 

학교는 변해야 한다. 아니 없어져야 한다. 당장 학교를 없앨 수 없다면, 가장 큰 문제 - 경쟁을 부추기는 ‘학벌’을 없애야 한다. ‘학벌’이 결코 그냥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학벌’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책들을 부지런히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찾아 시작해야 한다.

 

Posted by 감은빛

<나는 왜 저항하는가>

세스 토보크먼 글과 그림 / 김한청 옮김 / 다른

 

 

오랜만에 멋진 만화책을 읽었다. 세스 토보크먼이라는 미국의 급진적인 예술가의 작품이다. <나는 왜 저항하는가>라는 제목에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표지는 강렬한 로우킥(자세를 보면 태권도의 옆차기와 비슷하기도 한데....)으로 건물을 부수는 여성의 뒷모습이 그려져있다. 느낌이 강한 표지다. 이런 표지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덕분에 어떤 만화인지 표지만 보면 딱 알 수 있다.

 

재밌는 것은 표지에 ‘뉴욕타임스 전격 연재 중단’이라고 눈에 띄는 표시가 되어 있다. 아마도 책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일 텐데, 보통 이런 건 ‘무슨 슨 상 수상’ 이라거나, ‘누구누구가 선택한 책’이라거나 그런 말이 붙어 있는데, 여긴 ‘전격 연재 중단’이라니. 그만큼 ‘쎈’ 만화라는 뜻일 게다. 아니나 다를까 뒤표지를 보면 제렐 크라우스 <뉴욕타임스> 전 아트 디렉터의 말이 실려 있다. ‘더 많이 실으려 했지만, 그의 작품은 너무나 급진적이었다.’ 라는 설명이다. 그의 직함에 ‘전’ 이라는 수식어가 왠지 맘이 쓰인다. 혹시 세스 토보크먼의 만화를 더 싣기 위해 애쓰다가 ‘짤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쯤 되면 어떤 내용의 만화인지는 얘기 안 해도 뻔하다. 국가(정치인들)가 싫어하고, 자본(기업인들)이 싫어하는 만화가 분명하다! 그리고 국가와 자본이 싫어하는 만화이므로, 분명히 진실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국가와 자본이 실은 얼마나 나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만화일 것이다!

 

그림은 아주 멋지다! 판화 느낌이 난다. 선이 굵으면서도 특징들을 잘 잡아낸 그림들이 아주 강렬한 느낌을 준다. 강우근 선생님 그림이 떠오르고, 이윤엽 선생님 판화도 떠오른다. 물론 그림체가 닯았다거나, 비슷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느낌이 닮았다는 뜻이다.

 

만화를 읽는 내내, 우리나라에도 이런 만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사만화나 풍자만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대놓고 사실을 들춰내는 만화는 그닥 보지 못한 듯하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읽지 못했지만,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 선생님의 이야기를 그린 <나는 공산주의자다!> 라는 만화가 좀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내 바람은 이렇게 진실을 파헤치는 만화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국가와 자본의 어이없는 미친 짓들이 참 많았다. 광우병 수입으로 인해 대대적인 국민 저항을 보여준 촛불집회와 언론장악 저지를 위한 촛불집회가 있었고, 기륭전자, 동희오토, 콜트 콜텍 등등 여기저기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은 무자비한 국가 폭력에 진압되었다. 용산참사가 있었고(5분의 철거민이 돌아가셨다!), 최근에는 천안함 사태가 있었다.(46명의 장병이 돌아오지 못했다!) 삼성 X파일 사태와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이 이어지고 있다.(황유미, 박지연씨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게다가 지금 전국을 삽질 으로 파헤쳐놓은 4대강사업이 벌어지고 있다.(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금만 시계를 더 돌려보면 한미FTA저지 투쟁이 대대적으로 벌어졌고(허세욱 열사의 분신이 있었다!), 이라크 파병반대의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김선일씨가 볼모로 희생되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치열한 투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농민들이 생존권을 외치는 것을 폭력으로 저지했고(전용철, 홍덕표 두 분의 농민이 방패와 곤봉에 맞아 돌아가셨다!), 포항에서는 건설노동자들의 파업을 또다시 짓밟았다.(하중근 열사가 곤봉에 맞아 돌아가셨다!) 이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다.

 

이렇게 가만히 되돌아보니 참 우울해진다. 김규항에 의하면 참여정부라고 부르는 노무현 정권하에서 희생된 노동자와 농민 열사만도 23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한분 한분의 고귀한 희생이 이제는 다 잊혀진 듯하다. 우울하다고 해서 잊어도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아니 우리는 그 장면 하나 하나를 다 기억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만화가 필요하다.

 

 

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