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못한 길/길잃은 순례자'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10.08.03 학교 없는 사회를 바란다! (2)
  2. 2010.08.03 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저항하라! (1)
  3. 2010.01.07 독자를 유혹하는 방법 (2)
  4. 2009.12.22 경제성장과 생태계 파괴 사이의 진실 (4)
  5. 2009.09.02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교실
  6. 2009.07.14 참된 가치를 존중하는 새로운 여행
  7. 2009.07.13 철학책? 소설책? (2)
  8. 2008.12.23 책읽기를 좋아한다면 꼭 한번쯤 읽어야 할 책 (8)
  9. 2008.12.21 교육이 바뀌어야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 (2)
  10. 2008.12.17 식민지 조선시대, 사진에 얽힌 이야기들
  11. 2008.11.26 한달에 한 번, 바람과 별의 집을 짓자! (4)
  12. 2008.11.02 이제 간세다리가 되자!
  13. 2008.09.30 마침내 제대로 된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었다!
  14. 2008.09.18 새로운 사회적 움직임에 대한 자세한 분석
  15. 2008.08.14 3·1 만세운동을 이해하기 위한 책
  16. 2008.08.09 소문난 책, 빈약한 내용 (2)
  17. 2008.05.04 최고의 독설가와 함께 세상 바로보기
  18. 2008.05.04 따뜻한 남쪽 섬에 가고싶다!
  19. 2008.05.04 당신의 요정을 만나보세요
  20. 2008.05.02 가장 완벽한 밀실살인 사건
  21. 2008.05.02 흥미롭게 빠른 전개, 그러나 무언가 부족한
  22. 2008.05.02 엉뚱하면서 진지한 일상의 얘기들
  23. 2008.04.29 친숙한 작가의 낯선 작품집
  24. 2008.04.29 더욱 예리해진 필치로 현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25. 2008.04.29 적절한 거리두기와 세밀하고 사실적인 묘사
  26. 2008.04.29 누구나 한 권쯤 만들어야할 나만의 백과사전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

학벌없는 사회 지음 / 메이데이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 선생님이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학교를 교육의 장애물이라고 했다. 근대 교육제도로서 학교가 생기기 이전에는 누구나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갔다. 그러나 학교가 생기면서부터 지배계급이 주입시키고자 하는 것들만 학교에서 강제로 배우게 되었다. 게다가 의무교육 제도는 지배계급의 권력을 세습하는 가장 뛰어난 도구였다. 대다수는 학교를 나오고도 경쟁에서 뒤쳐져 낙오되고, 극소수의 선택받은 학생들만 살아남아 인정받는다. 일리치의 표현에 의하면 ’극소수가 따지만, 대다수는 잃게 되어 있는 복권을 강제로 구입하는 것‘이 바로 학교를 통한 의무교육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끔찍이도 학교를 싫어했다. ‘모든 과목을 다 잘해야만 한다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로봇이지’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나는 수학과 과학을 참 못했는데, 성적이 나쁘다고 때리거나, 친구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남아서 마저 외우게 시키는 선생님들이 정말 싫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수학과 과학을 싫어하게 되었고, 중학교 1학년때 이미 그 두 과목을 다 포기해버렸다.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그 두과목을 진지하게 공부해 본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나를 그렇게 괴롭혔던 그 많은 선생님들의 주장과는 달리, 나는 두 과목을 다 포기하고도 무사히 대학에 진학했다.(수학과 과학은 늘 꼴찌이거나, 꼴찌에 가까운 성적이었다.)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였지만)나 중학교도 싫었지만, 가장 싫었던 건 고등학교였다. 선생님들의 일상적인 폭력도 싫었고,(지금 기준으로는 정말 놀랍게도 매일 성폭력 휘두르는 선생님들도 많았다!) 하루종일 갇혀있어야 하는 신세도 싫었지만, 가장 짜증나는 건,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태도였다. 학생들은 늘 등수로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어떤 식으로든 괴롭힘을 당했고, 성적이 좋으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부당한 방식을 견딜 수 없었다. 하루빨리 간수(선생님들)들이 지키는 감옥(학교)를 벗어나는 것이 꿈이었다. 가끔 탈옥(땡땡이)을 시도했다. 그래도 나는 별로 꾸지람을 듣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학 진학 가능’ 이라는 딱지가 나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제대하고 나서 다시 군대에 돌아가게 되는 꿈을 가끔 꾼다고 한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악몽이다. 나에게 그보다 더한 악몽은 고등학교에 돌아가는 꿈이다. 그만큼 나는 학교를 싫어했다.

 

오늘 한 권의 책을 읽었다. ‘학벌없는사회’가 지은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라는 책이다. ‘학벌없는사회’에서 일하는 여덞명의 필자가 교육문제에 대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바로 ‘교육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들이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학교에 다니게 되다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아이들이 바로 몇 년만 지나면 학교에 다녀야만 하는 현실이 싫다! 그래서 대안학교를 알아보라고 주변에서 충고를 많이 하는데, 나는 솔직히 대안학교가 현실에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거기에 우리 아이들을 보낼만한 경제력이 우리 부부에게는 없다. 보낼 수 없는데 어떻게 대안이 된단 말인가!

 

학교는 변해야 한다. 아니 없어져야 한다. 당장 학교를 없앨 수 없다면, 가장 큰 문제 - 경쟁을 부추기는 ‘학벌’을 없애야 한다. ‘학벌’이 결코 그냥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학벌’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책들을 부지런히 읽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찾아 시작해야 한다.

 

Posted by 감은빛

<나는 왜 저항하는가>

세스 토보크먼 글과 그림 / 김한청 옮김 / 다른

 

 

오랜만에 멋진 만화책을 읽었다. 세스 토보크먼이라는 미국의 급진적인 예술가의 작품이다. <나는 왜 저항하는가>라는 제목에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표지는 강렬한 로우킥(자세를 보면 태권도의 옆차기와 비슷하기도 한데....)으로 건물을 부수는 여성의 뒷모습이 그려져있다. 느낌이 강한 표지다. 이런 표지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덕분에 어떤 만화인지 표지만 보면 딱 알 수 있다.

 

재밌는 것은 표지에 ‘뉴욕타임스 전격 연재 중단’이라고 눈에 띄는 표시가 되어 있다. 아마도 책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일 텐데, 보통 이런 건 ‘무슨 슨 상 수상’ 이라거나, ‘누구누구가 선택한 책’이라거나 그런 말이 붙어 있는데, 여긴 ‘전격 연재 중단’이라니. 그만큼 ‘쎈’ 만화라는 뜻일 게다. 아니나 다를까 뒤표지를 보면 제렐 크라우스 <뉴욕타임스> 전 아트 디렉터의 말이 실려 있다. ‘더 많이 실으려 했지만, 그의 작품은 너무나 급진적이었다.’ 라는 설명이다. 그의 직함에 ‘전’ 이라는 수식어가 왠지 맘이 쓰인다. 혹시 세스 토보크먼의 만화를 더 싣기 위해 애쓰다가 ‘짤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쯤 되면 어떤 내용의 만화인지는 얘기 안 해도 뻔하다. 국가(정치인들)가 싫어하고, 자본(기업인들)이 싫어하는 만화가 분명하다! 그리고 국가와 자본이 싫어하는 만화이므로, 분명히 진실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국가와 자본이 실은 얼마나 나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만화일 것이다!

 

그림은 아주 멋지다! 판화 느낌이 난다. 선이 굵으면서도 특징들을 잘 잡아낸 그림들이 아주 강렬한 느낌을 준다. 강우근 선생님 그림이 떠오르고, 이윤엽 선생님 판화도 떠오른다. 물론 그림체가 닯았다거나, 비슷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느낌이 닮았다는 뜻이다.

 

만화를 읽는 내내, 우리나라에도 이런 만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사만화나 풍자만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대놓고 사실을 들춰내는 만화는 그닥 보지 못한 듯하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읽지 못했지만,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 선생님의 이야기를 그린 <나는 공산주의자다!> 라는 만화가 좀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내 바람은 이렇게 진실을 파헤치는 만화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국가와 자본의 어이없는 미친 짓들이 참 많았다. 광우병 수입으로 인해 대대적인 국민 저항을 보여준 촛불집회와 언론장악 저지를 위한 촛불집회가 있었고, 기륭전자, 동희오토, 콜트 콜텍 등등 여기저기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은 무자비한 국가 폭력에 진압되었다. 용산참사가 있었고(5분의 철거민이 돌아가셨다!), 최근에는 천안함 사태가 있었다.(46명의 장병이 돌아오지 못했다!) 삼성 X파일 사태와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이 이어지고 있다.(황유미, 박지연씨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게다가 지금 전국을 삽질 으로 파헤쳐놓은 4대강사업이 벌어지고 있다.(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금만 시계를 더 돌려보면 한미FTA저지 투쟁이 대대적으로 벌어졌고(허세욱 열사의 분신이 있었다!), 이라크 파병반대의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김선일씨가 볼모로 희생되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치열한 투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농민들이 생존권을 외치는 것을 폭력으로 저지했고(전용철, 홍덕표 두 분의 농민이 방패와 곤봉에 맞아 돌아가셨다!), 포항에서는 건설노동자들의 파업을 또다시 짓밟았다.(하중근 열사가 곤봉에 맞아 돌아가셨다!) 이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다.

 

이렇게 가만히 되돌아보니 참 우울해진다. 김규항에 의하면 참여정부라고 부르는 노무현 정권하에서 희생된 노동자와 농민 열사만도 23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한분 한분의 고귀한 희생이 이제는 다 잊혀진 듯하다. 우울하다고 해서 잊어도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아니 우리는 그 장면 하나 하나를 다 기억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만화가 필요하다.

 

 

Posted by 감은빛

유혹하는 에디터 / 고경태 / 한겨레출판 


 

깔끔한 하얀 표지에 ‘유혹하는’ 분홍색 글씨가 눈에 띈다. 글씨들 사이로 칸막이처럼 좁은 사진이 들어가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겨레21이 잔뜩 꽂혀 있다. 앞날개에는 저자의 사진과 소개가 들어있는데, 생각보다 긴 소개글의 맨 첫 부분이 ‘심심한 인간. 잘 뜯어보면 심심하지 않은 인간.’ 이라고 되어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저자의 이런 사고방식이 이 책 곳곳에 깔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고경태 기자가 <한국농어민신문> 기자로 시작하여, <한겨레21> 기자 및 편집장, <한겨레> esc 팀장, <씨네21> 편집장이 되기까지 그동안 자신의 잡지 편집경력을 통해 깨달은 자신만의 원칙(혹은 비법)을 알려주고 있다. 편집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흔히 생각하는 편집, 예를 들어 교정교열 같은 실무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편집이란 전체를 조율하고 디자인하는 영역이다. 하긴 저자는 잡지 편집기자다. 일반 단행본 편집자와는 다르고 잡지 취재기자와도 또 다르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약간 오해가 생길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저자가 강조하는 ‘편집 노하우’가 전적으로 어느 편집 영역에나 다 맞지는 않다는 말이다.
 

고경태 기자는 자신이 뽑았던 제목이나 표지 그리고 광고 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동안 나왔던 한겨레21의 제목, 표지, 광고를 저자 나름의 몇 가지 기준으로 베스트10, 워스트 10 뭐 이런 것들을 뽑아놓았는데, 읽다보면 그 시기의 정치, 사회 상황이 떠오르기도 하고, 개인적인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잠시 몸담았던 나는 당연히 <한겨레>만 읽었다. 조중동을 비롯한 다른 신문은 별로 신뢰하지 않았고,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런데 신문이란 게 매일 읽다보면 별로 재미가 없다. 매일 쏟아지는 기사들이 다 똑같아 보인다. 그런데 <한겨레21>은 달랐다. 주간지라서 그런 것인지 표지부터 눈길을 확 잡아끄는데다, 기사 하나 하나가 다 재밌었다. 그 시절 <한겨레21> 표지들을 보면서, ‘참 선정적이다!’ 라는 평을 여러 차례 입에 올리곤 했었는데, 그 표지들을 만든 사람이 고경태 기자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가 뽑은 인상 깊은 표지들 중에 몇 개는 나도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들이었다. 저자는 그런 표지들을 뽑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사실은 선정적이지 않다 라던가, 스스로 생각해도 낯 뜨겁다 라던가 등의 지금의 느낌을 털어놓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저자의 변명(?)들이 별로 와 닿지는 않는다.

뒤쪽으로 가면 글쓰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활자만 보면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교정하는 직업병(?)을 갖고 있는데, 막상 스스로 글을 쓰면 그런 실수들이 여전히 눈에 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에 대한 노하우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편집기자 다운 내용들이다. 사소한 실수들을 제거하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아주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중간에 에세이들이 하나씩 끼어있다. 저자가 어떻게 편집기자로서 잡지판에 발을 들여놓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를 들려준다. 이것만 찾아 읽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이 책은 편집 일을 하지 않더라도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앞쪽에서 저자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편집자’라고 말한 것처럼 일상에서도 이 책에서 말하는 ‘편집’의 영역에 속하는 일을 해야 할 경우가 많다. 그리고 출판과 관계된 일을 한다면 편집 분야가 아니더라도 읽어야할 책이다. 특히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은 마케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최근의 출판계 상황을 고려한다면 필독서라고 할 수도 있겠다.

Posted by 감은빛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더글러스 러미스 / 녹색평론사 

 

 

경제성장과 생태계 파괴 사이의 진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책 제목 치고는 좀 길다. 그리고 질문이 좀 어렵다. 아니 질문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니라 말이 좀 복잡하고 어색하다. 정확하게 뭘 묻고 싶은 건지 금방 알기 어렵다. 그런데 더 쉬운 말로 바꿔보려 해도 잘 안 된다. 결국 이게 최선의 제목인 것일까? 책의 서문에서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도 제목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처음 원하던 제목과 지금 제목 사이에서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제목이 아주 매끄럽지는 않은 것처럼 본문도 읽다보면 번역투의 문장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조금은 옛날 책을 읽는 듯 한 기분이 든다. 표지도 판형도 조금 그런 느낌.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이 책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을 펼쳐드는 순간부터 나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이다.


김종철 선생님의 강의를 처음 들었던 날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지독한 의욕상실과 무력감에 빠져있었다. 나는 대학시절 잠시 몸담았던 사막화방지운동을 계기로 환경운동을 시작했다. ‘새만금 개발 반대운동’, ‘금정산,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반대운동’ 등의 굵직한 개발반대 운동에 참여했고, ‘골프장 건설 저지’, ‘젤라틴 공업용 쇠가죽 원료사용 중단’, ‘재생가능 에너지 확산’ 등의 다양한 운동에 참여했지만, 단 한 차례도 원하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환경운동은 기본적으로 개발반대 싸움이다. 개발을 통해 자신의 배를 불리려는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겨, 자연생태계를 현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헤비급 챔피언과 라이트급 아마추어의 권투시합만큼 불공평한 싸움이다. 처음부터 힘이 다른 거대한 권력집단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여러 개발반대 싸움의 현장을 겪으면서 느꼈던 건 무력감이었다. 물막이 공사가 막 끝난 새만금 방조제 4공구 현장에서 밤새 삽과 곡괭이를 휘둘러, 아침 무렵 겨우 다시 바닷물을 만나게 했을 때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겨우 몇 시간 뒤 전경들과 용역깡패들이 폭력을 휘둘러 우리를 한쪽으로 몰아놓고, 포크레인으로 우리가 잠시 만나게 했던 바닷물을 다시 막아버렸을 때의 느낌도 잊을 수 없다. 그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가장 강하게 나를 사로잡은 기분은 바로 무력감이었다. ‘이 싸움은 절대로 이길 수가 없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법정공방까지 갔던 ‘새만금 사업’은 결국 개발을 원하는 측의 승리로 끝났다. 또한 지율스님께서 목숨을 걸고, 4차례에 걸쳐 총 241일 동안 단식농성을 벌였지만 결국 고속철도 공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뭇 생명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는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노력했던 몇 년 동안 나는 점점 더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뭘 해도 다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환경운동단체를 그만두고 문화운동단체로 옮겼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김종철 선생님을 만난 건 바로 그때였다. 선생님은 내가 갖고 있는 의문을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나는 환경운동가로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근본적으로 산업사회를 벗어나는 상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여기며 자본주의를 뒤엎을 상상은 자주 하고 있었지만, 그 사회주의조차 산업사회라는 틀에서 보면 자본주의와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경제성장은 산업사회를 끌고 가는 유일한 힘이다. 그리고 경제성장만을 추구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틀 속에 갇혀있으면서 생태계의 파괴를 막아 보겠다고 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을 이뤄보겠다고 나서는 것이나 똑같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비록 눈이 가려져 있어서 쉽게 깨닫지 못하고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매우 비인간적인 곳이다. 오직 돈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끌고 나가기 때문이다. 자신의 배를 불릴 생각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다른 생명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것이다. 돈과 권력에 눈이 멀었기에 시화호의 교훈도 잊어버리고 다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대규모 환경파괴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돈과 권력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오직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망루에 오른 사람들을 죽이고도, 오히려 그들을 테러집단이라고 매도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찾고 싶었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산업사회라는 틀 바깥을 상상할 수 없었던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김종철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비로소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후에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경제성장이라는 허황된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것만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며, 자연생태계를 지킬 수 있는 길인 것이다.


경제성장이 허황된 이데올로기라고? 경제성장을 해야만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야 가난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복지혜택을 줄 수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어떻게 해서 경제성장이란 거짓말에 우리가 속았는지 알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경제성장 포기하고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온 세상이 다 경제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한 사회 혹은 한 국가만 경제성장을 포기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부터 다시 찾아나가야 한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제야 현실을 바로 보는 눈이 뜨였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운동가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은 평화와 환경위기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서 잘못된 상식(사고방식)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깨닫게 해주고, 올바른 상식(사고방식)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지금 모든 사람들이 ‘경제’만을 외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오직 경제성장만이 최고의 가치이자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다. 왜 그럴까?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그것이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현실사회주의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돈에 미친 건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 산업사회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2년 만에 다시 들었던 강연에서 김종철 선생님은 잘 찾아보면 우리 주위에 의외로 우리와 비슷한 ‘또라이’들이 많다고 했다. 실제로 그 강연을 들으러 온 50여명은 대부분 그  ‘또라이’들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더 많은 ‘또라이’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함께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Posted by 감은빛
 노란 바탕에 유명한 인물들의 멋진 그림들이 확 눈에 띄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맑스와 체 게바라를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와! 이 그림 진짜 멋지다!’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촛불 세대를 위한 반자본주의 교실>(원제:Anticapitalismo)은 그렇게 나의 뇌리에 강한 자극을 남겼다.


아르헨티나의 반자본주의 운동가 에세키엘 아다모프스키가 지었고, ‘일러스트레이터 연합’ 이라는 아르헨티나의 예술가 단체가 그림을 그렸다. 일단 삽화가 죽인다! 어렵고 지루한 내용을 단 한 컷의 그림으로 어쩜 그렇게 명쾌하게 나타내고 있는지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책은 무조건 소장해서 두고두고 볼 책이다!


그림 때문에 쉽게 손이 가긴 했지만, 원래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무척 어렵고 무거운 것이다. 제목에 무려 ‘반자본주의’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은가. ‘반자본주의’라는 어렵고 생소한 단어가 제목에 들어가는 건, 이 책의 주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무척 잘 지은 제목이다. 이 제목을 짓느라 고심했을 출판사 관계자의 노고가 짐작된다. 너무 어렵고 고리타분한 제목은 책 분위기에 맞지 않고,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어렵다. 작년에 한창 타올랐던 ‘촛불’을 겨냥해서 가장 무난하면서 책의 내용을 그대로 드러내는 제목을 고른 듯 하다.


‘반자본주의’라는 어려운 주제를 다루지만, 이 책은 정말 쉽고 재밌다! 제목 그대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정말 쉽게 가르쳐주는 교실이다. 책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자본주의가 왜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지를 깨닫게 해주고, 자본주의를 벗어난 삶의 방식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함께 생각하게 해준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 대해서 알려준다. 특히 지금까지 자본주의와 반자본주의 운동가들의 흐름을 알기 쉽게 잘 짚어주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의 강화 이후에 속속 나타나고 있는 최근의 다양한 흐름과 경향들에 대해서도 아주 상세하게 잘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너무 쉽다는 것이다. 이미 반자본주의 활동가로서 열심히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입장에서 좀 더 깊은 내용과 상세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지만, 이 책의 존재가치를 따져본다면 그런 기대는 처음부터 안 맞는 것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에 길들여져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본주의의 실체가 어떠한지 그리고 ‘반자본주의’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쉽고 재밌게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그러니 더 깊고 자세한 내용은 애초에 기대하면 안되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재밌다는 것이다. 운동권 책들 중에서 이렇게 재밌는 책은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매 페이지마다 어떤 흥미진진한 삽화가 나올지 기대하며 책장을 넘기는 기분이 무척 좋다. 이런 책 참 오랜만에 읽은 것 같다.


이 책을 계기로 남미의 민중예술운동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봐야 할 것 같다.

Posted by 감은빛

희망을 여행하라 - 공정여행 가이드북

_ 이매진피스 이혜영, 임영신 / 소나무


‘공정무역’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꽤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약간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공정무역이 꽤나 익숙하게 사용될 즈음에 ‘공정여행’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또 듣게 되었다. 역시 어색하다. 뭔가 좀 더 그럴듯한 이름이 없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런 고민을 해봤다. 글쎄, 새로운 존재(혹은 개념)에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늘 어렵기만 하다. 고민 끝에 ‘윤리여행’은 어떨까 싶었는데, 글자로 써보니 이것도 어색하기만 하다. 윤리와 여행 사이에 ‘적’을 붙여봤다가, 일본식 한자어 표현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다시 지우고....... 그냥 이름 짓기는 포기해야 할까보다.



 이 책이 나오기 전부터 공정여행이라는 단어를 들을 일이 많았다. 처음 들을 때부터 따로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그게 무엇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사실 여행(특히 해외여행)은 나와는 정말 인연이 별로 없는 뭔가 사치스러운 느낌의 단어였다. 고등학생 때와 대학생 때, 돈 한푼없이 두꺼운 얼굴과 배짱하나만 갖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녔던 몇 차례의 ‘무전여행’을 제외한다면 나는 제대로 여행을 다녀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학생이었던 때와는 달리 사회에 나오니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특히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그들이 돈이 많아서 종종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아예 관심이 없었기에 나는 알지 못했지만, 의외로 생각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해외여행이란 걸 할 수 있었다. 바로 패키지 상품이란 놈들이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이란 자신을 돌아보는 행위이고, 삶과 자연과 사회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나에게 여행은 걷고, 사색하고, 쉬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 여행은 그렇지 않았다. 이동시간을 아끼기 위해 야간에 비행기나 차로 움직이고, 정신없이 유명한 장소들을 돌아다니는데, 제대로 돌아볼 시간이나 여유따위는 허락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여유가 허락되는 시간은 쇼핑시간이라고 했다. 그런 여행을 다녀오면 오히려 가지 않은 것보다 못할 것 같았다.




 공정여행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소비만을 위한 여행이 아닌, 단순히 눈도장을 찍으러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닌, 늘 관광객들로 붐비는 유명한 관광지만을 도는 여행이 아닌, 내가 생각했던 참된 여행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구체적으로 현재의 돈만 쫓는 여행의 행태로 인해 나타난 폐해들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라는 실천적인 제안들도 알게 되었다.




 나로서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티벳, 네팔, 태국, 인도, 팔레스타인 등 다양한 곳들을 소개하는 부분들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일반적인 여행책이 아니라 그 곳에서 의미있는 일들을 하고 계시는 훌륭한 분들을 많이 알게 되어서 또한 좋았다. 만약 내가 해외여행에 좀 더 관심이 많았다면 훨씬 더 재밌있었을지도 모른다.




 다 읽고 나서 아쉬운 점들이 좀 있었지만 대부분 소소한 부분들이고 크게 실망할만한 점은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굉장히 많은 내용을 담고 있고 다양한 주제와 사례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좀 산만하고 흐름이 끊기는 면이 있다. 사례와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들은 많지만, 큰 틀에서 얘기하는 내용은 간단하기 때문에 곳곳에서 같은 내용이 중복되는 경우도 발견된다. 아마 이 책의 컨셉을 ‘공정여행 가이드북’으로 잡았기 때문에 이렇게 복잡한 구성이 되어버린 것이겠지만, 그렇기에 작은 이야기들이 좀 더 자세하고 깊게 뻗어나가지 못하고 단순한 소개에 머물러 버려서 흐름을 끊고, 더 깊게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글쎄, 좀 더 단순하고 소박한 컨셉이었다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와도 더 잘맞지 않았을까 라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

Posted by 감은빛

드림위버
잭 보웬 지음, 하정임 옮김, 박이문 감수 / 다른


고등학교때 국민윤리를 가르쳤던 한 선생님 덕분에 철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딱히 그 선생님을 존경하거나 좋아한 건 아니었고, 그냥 과목과 어울리지 않는 자유분방한 태도라던가 입만 열면 뭔가 있어보이는 말들을 늘어놓는다던가 하는 점들이 특이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선생님은 가끔 철학과에 얼마나 괴짜들이 많이 모이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기도 했고, 철학이란 학문에 대해서도 수박 겉핥기로 설명해주기도 했다.


 

 대학을 철학과로 가볼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주변의 만류로 다른 학문을 선택하게 되었다. 뭐 철학을 향한 불타는 열정을 가진 것도 아니었으니 나도 쉽게 포기할 수 있었다. 대학에선 교양과목으로 철학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큰 강의실에 백여명이 넘는 학생들. 그리고 교양이기 때문에 정말 수박 겉핥기 밖에 안되는 성의없는 강의. 고등학교의 입시위주 교육을 벗어나서 드디어 학문의 전당 대학에서 진짜 학문을 맘껏 즐길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던 나는 어느 옛날 이야기 속에서 걸어나온 듯한 취급을 받았다.


 암기 위주의 교양철학으로 실망했던 나는 다른 과목들을 공부하면서 문득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내가 관심 갖고 있던 대부분의 과목들의 시작점은 모두 철학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철학을 공부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마음만 있었을 뿐 지금까지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었다.


 [소피의 세계]라는 책을 처음 만난 건, 아내의 책들과 내 책들이 한 방에 모이게 된 날이었다. 오랫동안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자취생활을 해온 덕에 내 책들은 많지 않았다. 잊어버린 책들도 많았고, 관리가 잘 안되니까 책을 잘 사지 않게 되었다. 그에 비해 아내의 책은 종류도 다양했고 많았다. 책장을 정리하면서 [소피의 세계]라는 책을 펼쳐보았다. <소설로 읽는 철학>이라는 부제가 흥미를 자극했다. 문득 저 먼지쌓인 교실에 앉아있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거리에서 생활한 대학생활까지 흑백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꼭 읽어야겠다. 이제라도 다시 철학에 관심을 가져봐야지 라고 했던 그 날의 다짐은 다시 물거품처럼 흩어졌다. 바쁜 일상은 나에게 학문으로의 도피를 허락하지 않았다.


 <소설로 읽는 유쾌한 철학 오디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드림위버]를 처음 만났던 날도 그랬다. 꼭 읽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번에는 계속 못 읽었던 [소피의 세계]까지 함께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소설책을 읽는 방법과 철학책을 읽는 방법은 다를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이 두 책을 놓고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지를 잠시 고민했다. 그냥 읽으면 될 것을 뭘 그리 쓸데없는 고민까지 하나 싶었지만, 학문을 대하는 내 태도가 좀 유별나서, 철학책을 읽는 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절대로 이 책들을 읽지 못할 것 같았다.


 [드림위버]를 먼저 읽기로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소설책을 대하듯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재미있었다. 그러나 얼마지나지않아 그냥 읽고 지나가기에는 어려운 부분들이 하나 둘 머릿속에 쌓여갔다. 꽤나 두꺼운 분량이라서 중간 정도 읽었을 때는 그렇게 남아있는 의문들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다시 처음부터 읽어가며 의문들을 풀어가며 읽어야 했다. <독자들을 위한 토론주제>는 그냥 건너뛰고 이안의 이야기만 따라가는데도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역시 그냥 소설책 읽듯 읽을 수는 없는 책이었다.


 [드림위버]는 무척 흥미로웠다. 나는 읽는 내내 청소년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았다. 나도 자라면서 이런저런 의문들이 많았을텐데, 그냥 어른들이 시키는 것 외에는 감히 시도해보거나 따져보지 못하고 자랐다. 만약 내가 이안 정도의 나이였을 때, 이안과 같은 모험을 해보았다면 지금 좀 더 생각의 폭이 넓고 깊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다 읽은 늦은 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우리 아이가 자라면 이 책을 함께 읽고 서로 느낀 점이나 생각들을 나누어봐야겠다는 계획을 세워본다.

Posted by 감은빛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 이권우 / 그린비


스스로를 도서평론가라고 부르는 이권우의 독서에 대한 책이다. 그린비출판사에서 꾸준히 내고 있는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흔히 '달인 시리즈'라고 부름)의 다섯번째 책이다. 표지는 마이산 '탑사'에서 본 '돌탑'들처럼 높이 쌓아올려진 '책탑'들이 여기저기서 높이 솟아 있고 그중 왼쪽 책탑 위에 어느 여성이 걸터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그림이다. 제목만 보아도 흥미로운 것 같은데, 표지그림이 시선을 확 잡아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한 아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피부가 까맣고 깡마른 아이. '깜디'라고 놀림을 당하거나, '네가 지나가면 온 동네 개들이 다 쫓아온다!'고 놀림당하기 일쑤였던 아이가 생각난다. 그 아이는 예전 학교에서는 골목을 주름잡았던 소문난 개구장이였으나. 새로 전학온 학교에서는 쉽게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마다 혼자 학급문고를 읽으며 시간을 보낸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산에서, 계곡에서, 들판에서 뛰어놀았다. 그러나 혼자 노는 일은 별로 재미가 없었고, 나중에는 학급문고를 빌려와서 집에서도 책을 읽게 되었다.

 

교실에서 혼자 학급문고를 읽는 일은 점점 이 아이의 습관처럼 되어갔고, 학년이 바뀌어 새로운 교실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된 뒤에도 이 습관은 계속 되었다. 나중에 중학교에 올라간 아이는 국어선생님에게 글솜씨가 있다고 칭찬을 받고, 백일장에서 작은 상도 받게 된다. 칭찬은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다. 아이는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저마다 하나쯤은 책에 빠지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계속 그렇게 책을 읽었다면 또 한 명의 이권우가 되었을지도 모를 저 아이는 고등학교 3년의 절반은 입시위주의 교육에 시달리면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학교와 사회에 반항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간신히 점수를 맞춰 들어간 대학에서는 데모하고 술마시느라 책을 읽지 못했다. 애초에 그 아이가 책을 접한 계기는 다른 흥미거리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 원하기만 한다면 훨씬 더 자유롭게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는 시기에 그 아이는 책에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저 술로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그 아이가 다시 책을 읽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다. 국가와 개인, 사회와 개인의 관계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자유란 무엇이며, 평등이란 무엇인가 답을 찾지 못해 좌절하던 중. 결국 답은 구호와 선언에 있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책을 들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저자만의 독특한 입담으로 주저리 주저리 풀어서 얘기해주고 있다. 2부에서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사실 1부는 좀 쓸데없이 길다고 볼 수 도 있다. 내용이 좀 독창적이긴 하지만 결론은 너무 뻔하다. 결국 책을 읽어야 한다는 걸 말하는 것인데, 이렇게까지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계속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과연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책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이 책을 찾아 읽고 열정적인 독서가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을 찾아 읽을 사람이라면 대부분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결론에는 동의하는 사람일터, 1부는 적당히 맛보기로 해서 흥미를 돋구어주고, 2부의 내용을 좀 더 알차고 재밌게 가져갔으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정말로 책읽기에 전혀 관심없는 사람이 우연히 이 책을 알게되어 읽고나서 책에 더 관심을 갖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고해도 2부의 내용을 위주로 하는 게 더 좋을 것이다. 앞부분을 읽고 책을 꾸준히 읽어야 겠다고 마음을 굳힌 사람이 계속 읽기에 1부의 내용이 너무 많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좀 잔소리처럼 느껴지는데, 이건 오히려 역효과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앞서 이 책에 대해 불평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특유의 입담으로 줄줄 풀어놓는 이권우의 필력은 무시할 수 없다. 역시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무슨 교훈을 얻기 위해 읽을 책은 아니다. 책을 꼭 읽어야만 하는 절대적인 이유를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책읽기의 달인이 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비법을 전수해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이런저런 일화들을 접하고,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 하게 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올해 사상최대의 불황을 맞고 있다는 출판계, 이 책이 나와서 전체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수 없지만 적어도 이 책만은 그럭저럭 팔리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이 책이 많이 팔려서 더 많은 사람들이 책 읽기에 관심을 갖고 그래서 출판계에도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 이 사회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나갔나? 한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책'은 그냥 형태로서의 책은 아니고 '좋은책'이다. 무엇이 '좋은책'인지는 묻지마라! 그건 스스로 찾아야 할 답이지 싶다!

Posted by 감은빛

민주화 이후의 공동체 교육 상세보기


이제 얼마남지 않은 2008년을 돌아보니, 이 일년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했던 단어는 바로 민주주의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늘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단어였다. 군부독재 시절에도 그랬고, 절차상의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계속 그랬다. 그러나 올해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갖는 무게감은 과거 10년(그들의 주장대로 잃어버린 10년이다!)동안과는 차원이 달랐을 것이다.

한동안 뉴스를 보거나 신문을 읽는 것이 너무 짜증나고 싫어서 외면하고 싶었다. 말도 안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는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외면하고 싶어도 매일매일 충격적인 소식들이 내 눈과 귀를 통해 전달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말도 안되는 짓들을 저지를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이론서들이 대개 그렇듯 두꺼운 책이다. 빛바랜 사진 같은 표지의 왼쪽에 마치 무늬처럼 글씨들이 쓰여 있다. 맨 위에 쓰인 문장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민주적 공동체 교육'  몇 년동안 나는 환경운동가로 그리고 문화운동가로서 신자유주의와 맞서 싸워왔다. 그런데 싸워왔다는 것은 그냥 내 생각일 뿐이고 애초에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던 것 같다.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괴물'(요즘 잘나가는 우석훈 선생의 표현을 빌려서)과 맞서 싸우기에 나와 동료들의 힘은 너무나도 약했다. 우리는 번번히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논쟁하기 좋아하는 이론가들은 늘 단어 하나하나를 두고 이런저런 해석을 덧붙이며 적절하다 적절하지 않다고 말들을 많이 하는데, 나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맞서 싸워온 두 괴물을 '신자유주의'와 '신개발주의'라고 부르겠다. 이 두 괴물과의 싸움은 앞서 얘기한 대로 늘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숱한 패배 속에서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지금과 같은 방식의 저항(운동)은 한계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그것은 구호나 선언이 아니라 일상 생활속에 뿌리내린 문화적인 것이어야 했다. 문화적으로 달라져야 저 엄청난 두 괴물에게 싸움을 걸어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문화적으로 달라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교육이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너무나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것은 교육 현장인 학교에 가보지 않아도 쉽게 느낄 수 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이 매일 우리의 눈과 귀로 들어오고 있다. 단순히 현상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점도 심각하다. 오직 대학만을 위해 이루어지는 학교 교육. 그리고 오직 취직만을 위해 목숨을 거는 대학 문화.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오면 대학 입시보다 더 치열한 취업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다. 이것이 우리사회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은 오랫동안 교육학을 연구해온 이론가가 외형적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실질적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를 진단하고 실질적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 가를 다루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나열하는 것은 지루한 일이 될 것이지만 짧게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1부에서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기조와 한계를 밝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민주적 공동체 교육에 대해서 주로 다루고 있다. 특히 민주적 공동체 학교의 철학과 가치를 생각해보고 학교와 학부모 그리고 공동체의 상호관계를 그려보는 과정이 흥미롭다.

2부에서는 구체적으로 민주시민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하는 가를 다루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안들이 다루어지는 만큼 1부 보다는 좀 더 흥미를 갖고 읽어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민주적 학교(학급)을 만들기 위해 이루어져야 할 부분들을 다루고 있다. 교사가 학생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태도를 버리고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민주적으로 학급을 운영해 나가야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 책은 교육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다 읽어내기 어려울만큼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게다가 연구자가 쓴 글이라서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 바로 지금 교육이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 이 사회가 점점 더 어두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교육의 문제를 단순히 학교만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사회 구성원 전체의 문제인 것이다. 지금 이 나라의 대통령과 그 측근들 그리고 자본의 힘에 사로잡힌 경영자들, 땅을 돈으로 보는 사람들 등은 모두 사람 자체가 나쁜게 아니라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문제들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똑같이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자라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기회가 없었던 이 사회의 구성원들 대다수는 아직 문제를 일으킬만한 힘을 갖지 못해서 그럴 뿐. 그들이 힘을 갖게 된다해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학교만 달라진다고 될 일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바뀌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새로운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선생님들이나 교육을 전공하는 연구자들만 이 책을 읽을 일이 아니라 보다 더 폭넓은 다양한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글쓴이가 좀 더 대중적인 글쓰기를 해야 할 필요는 있다!) 만약 이런 바람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라면 보다 더 많은 학교 선생님들과 교육학 연구자들이 이 책을 읽고 제발 학교만이라도 바뀌어서 나중에 이 아이들이 자란 후에는 '신자유주의'와 '신개발주의'라는 두 괴물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Posted by 감은빛

경성 사진에 박히다: 사진으로 읽는 한국 근대 문화사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이경민 (산책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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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성이 부드러운 웃음을 짓고 있는 표지 사진이 무척 인상적이다. 표지는 무척 공을 들여서 제작한 듯하다. 전체적으로는 오래된 종이 느낌이 나는 광택이 없는 재질으로 되어 있고, 사진 부분만 광택이 나는 반질반질한 재질이다. 즉 부분적으로 코팅이 되어 있다. 요즘은 책 표지에 신경을 많이 쓰고 돈을 많이 들이는 추세인 듯 한데, 이 책이 딱 그 전형을 보유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꼭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 책의 경우 사진의 느낌을 잘 살린 좋은 표지임이 틀림없으니까.

사실 실제로 읽기 전에는 좀 더 사진이 많을 줄 알았다. 그리고 '경성, 사진에 박히다'가 제목인 만큼 서울 구석구석의 옛 사진들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펼쳐보니 잘못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이 많다기 보다는 옛 신문기사가 많았다. 이 책은 사진을 통해 한국의 근대, 즉 식민지 조선의 몇몇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좀 무거운 느낌이 든다. 역사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달까. 작가가 굳이 이렇듯 무거운 느낌으로 글을 풀어간 이유가 궁금하다. 책의 내용은 무겁지 않으나, 문체는 무겁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 옛 신문기사의 인용도 처음에 몇 개를 읽을 때는 재밌지만 뒤로 갈수록 좀 지루해진다. 책의 내용을 고려했을 때,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쓰기를 했더라면 좋았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통제하는데 사진을 어떻게 이용했는가를 주로 알려주고 있다. 특히 안창남이라는 비행사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고, 1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한용운의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표가 인상적이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유관순의 수형기록표도 만날 수 있다. 2부에서는 사진관의 등장과 대중화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홍경이란 여성사진사와 남편 채상묵이 함께 운영한 사진관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 책의 표지사진으로 쓰인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도 이 부부가 운영하는 경성사진관에서 찍은 것이다. 3부에서는 사진과 관련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가장 흥미로울 수 있는 부분인데도 이상하게 가장 재미가 없었다. 작가의 글쓰기 방법이 달랐더라면 아마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되었을수도 있겠다. 4부에서는 사진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새로운 현상들을 이야기한다. 사진결혼이란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리고 에로사진에 대한 부분은 생각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이 책의 가장 큰 교훈은 사진은 그것을 찍는 사람의 시각에 의해 기록된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료로써 사진은 흔히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림이나 글과 달리 눈에 보이는 대로 당시의 상황을 담고 있는 사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으로 보는 옛 모습을 의심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찍는 사람에 의해 한번 연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현상과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때에도 누가 찍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사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 책의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네번째 특집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여기에는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젖가슴을 드러낸 여성의 사진이 나온다. 이 유명한 사진은 이전에도 이미 여러본 본 적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이것이 일본 사진사에 의해 연출된 사진임을 알 수 있었다. 근대 여성이 실제로 젖가슴을 드러내고 다녔다는 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 사진이 연출된 것임을 밝히는 것은 의미가 있다. 실제로 일부 학자들의 가설처럼 당시에 여성들이 아들을 낳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혹은 아이들에게 젖을 물리기 편하기 위해 혹은 짧은 저고리가 유행이어서 사진처럼 젖가슴을 드러내고 다녔다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일부러 이런 연출사진을 찍어서 널리 유통시켰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도가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과거의 모습을 자세히 알아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림과 사진이 있다면 좀 더 쉬울 것이다. 그리고 그림과 달리 사진은 훨씬 더 다양한 모습들을 더 자세히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사진에 얽힌 식민지 조선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다만 다음에는 좀 더 읽기 쉬운 글과 더 많은 사진들과 함께 하는 책으로 작가를 만났으면 좋겠다.

Posted by 감은빛






엄마와 아빠와 딸 둘, 이렇게 한 식구가 한 달에 한 번씩 절기마다 집을 떠나 자연속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온다. 우선 참 부러운 모습이고,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집 아이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선물을 매달 받은 것이 아닌가? 물론 지금 본인들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아,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부모들로서도 마찬가지이겠다. 요즘 세상에 다큰 자식들이 누가 그렇게 선뜻 따라나서겠는가? 이런 아이들을 둔 부모 입장에서도 매달 소중한 선물을 받아 온 것이다. 가만 나는 자라면서 식구들과 야영을 해 본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야영을 해 본건 아마 열 손가락 안에 꼽힐테고, 그 중에서 우리 식구끼리만 여행을 간 적은 한번도 없었다. 모두다 아버지와 관련된 사람들과 단체로 여름휴가를 가서 야영을 한 것이다. 경험이 없으니 당연하겠지만 야영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이런 경험의 차이가 나중에 아이에게 미칠 영향이 얼마나 될 지 상상할 수 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이 책에 나오는 부모와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제목인 [바람과 별의 집]이란 말이 참 좋다! 총 열 두 번의 야영기록을 읽으면서 매번 바람과 별과 함께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해봤다. 얼마나 멋진 밤이 될 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이 책의 표지는 그래서 참 매력적이다. 밤하늘 아래에 키 큰 나무가 여러 그루. 그리고 그 아래에 빨간 텐트와 자동차. 하늘에는 빨간 텐트가 보는 이를 유혹하고 있다. 표지에는 달도, 별도, 바람도 보이지 않지만 나는 볼 수 있었다. 이울어가는 초승달과 밝게 빛나는 오리온자리의 별들 그리고 구름을 몰고 가는 바람이 내 머릿속에 환히 그려졌다. 수없이 많은 별이 수놓아진 검은 밤이라는 이불을 덮고 잔다는 것은 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친 일상의 피로를 날려준다. 그렇게 상상하고 또 상상하며 책을 읽었다. 자연 속에서 보내는 황홀한 하룻밤을 그려보는 것만으로 위안 받으며 나는 지친 일상 속을 헤쳐 나갔다.

책 뒤표지에는 이 식구들의 조그만 사진과 함께 짤막한 소개문구가 들어있다. 생협운동을 하는 아빠는 빛나는 별. 높은산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큰 딸, 큰 바다란 뜻의 이름을 가진 작은 딸 그리고 산악잡지 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던 글쓴이는 강한 바람이라고 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읽어보니 다 공감이 가는데, 다만 아빠의 경우는 조금 어색하다. 말없이 묵묵히 모든 일을 척척 다 해결하는 아빠는 좀 다른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오랜 기자생활 덕분인지 글쓴이의 필력이 여간 아닌것 같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일단 산악잡지 기자 출신이라서 야외에서의 생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냥 읽기만 해도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야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 책을 천천히 두 번 읽으면서 많은 새로운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이 식구들의 삶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구석구석 가볼만한 곳들을 잘 알려주고 있다. 역시 고수는 이런 데에서도 다른가보다. 남들 다 잘아는 유명한 곳들 보다는 아주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주 좋은 곳들을 찾아다니는데, 그 장소들이 마침 절기랑 잘 맞아떨어져서 멋진 경험을 선사해주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로 내뱉게 된다.

하지만 책의 분량이 적지 않고 총 열두번이나 되는 여행을 담고 있는 데 비해 내용이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글쓴이가 아는게 워낙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에 이런 저런 내용들이 계속 들어가면서 글을 영양가 있게 만드는건 좋은데, 뭔가 하나의 주제에 좀 더 집중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면 좀 더 재미있고 흥미로울 수도 있었겠다고 잠시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또 달리 생각해보면 조금 산만해도 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조금은 시시콜콜한 내용들이 대부분 아이를 위하는 엄마와 아빠의 헤아릴 수 없이 넓고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부분들이어서 읽는 내내 가슴이 따뜻해질 수 있었다. 특히 교육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엄마의 마음을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었는데, 이 땅에서 자식을 키우면서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주제이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왠지 지루하게 읽힐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책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쓴 열두달 야영일기’라는 부제가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왠지 눈에 잘 안들어올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하니 굉장히 쉽게 잘 읽혔다. 지친 일상속에서 다만 하루밤만이라도 도시를 떠나 자연속에서  살 수 있는 이들의 용기와 결단력이 참 부럽다!

Posted by 감은빛





온라인 서점을 들락거리며 이 책의 광고를 여러 차례 보았다. 파란 하늘과 노란 들판의 표지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제주 여행 책이거니 싶었다. 자세히 보지 않은 탓에 ‘제주’와 ‘여행’ 사이에 끼어 있는 ‘걷기’라는 단어를 놓친 것이다. 나중에 어느 자리에서 여행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은 <제주 걷기 여행>이 잘 팔린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바로 광고로 자주 접했던 그 책이었다.
책을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두꺼워서 조금 놀랐다. 그리고 표지 위쪽에 투명한 걷는 발 모양의 그림이 있는데 도드라져 있어서, 만져보면 손끝으로 오돌도돌한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손이 그 그림에 닿으면 그 느낌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다시 표지를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책 뒤쪽에는 작은 책이 하나가 붙어 있었다. 책 속에 저자를 도와준 사람으로 나오는 무적전설이란 사람이 쓴 것이었다. 실제로 올레 길을 찾을 때, 가져가면 유용할 정보들이 들어있었다. 가위질 표시대로 잘라서, 손에 들고 다니면서 볼 수 있도록 작고 얇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당장 제주로 달려가고 싶은 유혹과 싸우는 것이었다. 읽는 내내 시원한 제주의 하늘과 바다가 머릿속에 그려지며 나를 유혹했다.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당장이라도 제주로 달려가고 싶은 기분을 참아 넘기느라 무척 힘들었다. 내년 봄에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꼭 가야겠다고 다짐하며 가까스로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여러 차례 제주를 다녀왔으면서도 참 제주를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자가 직접 책 속에서 말했듯이 차를 타고 몇몇 곳만 들렀다가 가는 여행은 정말 제대로 된 여행이라고 볼 수 없었다. 내 발로 직접 걸으면서 길 가의 작은 풀꽃까지 즐겨야 제대로 그 곳을 다녀갔다는 느낌을 품을 수 있으리라.




전체적으로 앞부분은 제주 올레 길을 한 코스 한 코스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겨있고, 그 뒤로는 저자가 오랜 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산티아고 순례 길을 다녀오는 과정이 담겨있다. 그리고 올레 길을 다녀간 사람들이 올레 길을 접하고 느낀 내용들이 소개되어 있고, 마지막에는 저자의 이웃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앞부분은 무척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었지만, 산티아고 길을 다녀온 다음 부분, 그러니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조금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뒷부분에서 책 읽는 시간이 길어져버렸다. 제주 올레 길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이 참 재미있었는데, 그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해주었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 앞부분이 책 전체의 분량으로 봤을 때 대략 삼분의 일 정도 되고, 중간에 산티아고 길을 다녀오는 부분이 또 삼분의 일 정도 되고 뒷부분이 나머지 삼분의 일 정도 되는 것 같다. 전체적인 비중 면에서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 듯한데, 두꺼운 책에 비해 내용이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뒷부분을 재미있게 읽을 독자들도 있겠지만 내 기준에서는 그랬다는 얘기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책 본문에서는 올레길 6코스까지 밖에 안 나오지만, 무적전설의 별책부록에는 7코스까지 나온다. 그러니까 본문이 편집 작업에 들어가 있는 동안 7코스가 개발되었고, 편집 막바지에 작업했을 별책부록에는 그 내용이 들어간 듯하다. 시작점인 1코스를 제외하고 2코스부터 6코스까지는 이어지는데, 1코스만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7코스는 1코스에서 이어져 있었다. 내년에 가족과 함께 찾았을 때, 1코스에서 이어지는 8, 9 코스들도 걸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아름다운 섬 제주를 걸어서 여행할 수 있는 길을 만든다니 참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차를 타고 하는 여행의 한계에 대해서는 나도 여러 차례 느꼈다. 비싼 비용을 들여 여행을 가기 때문에 그 지역의 유명한 관광지들을 다 돌아보기 위해서는 차가 필요하다. 만약 유명한 곳들을 다 돌아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내가 좋아하는 곳을 오래 천천히 돌아보려면 걷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올레 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 정도 절충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올레 길로 해안을 죽 이어갈 수 있다면, 저자의 바람처럼 올레길이 산티아고 길처럼 국제적으로 유명한 길이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제주를 갔을 때, 섭지코지의 불행을 목격했다. 대규모 관광단지를 짓는 듯 온통 공사 중이어서 차도 막히고 경관도 훼손되어 있었다. 거기에 무슨 드라마의 세트장인지가 경관을 훼손하면서 버젓이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영업을 하고 있어서 씁쓸했는데, 뭔가 더 어마어마한 게 지어지는 모양을 보니 다음부터 섭지코지는 절대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있어서 잘 모르지만 제주의 개발열풍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정말 제주를 위한다면 대규모 관광지의 개발보다는 여기 저자가 한 것처럼 의미 있는 일들이 훨씬 더 필요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제주말로 게으름뱅이라는 간세다리가 저자의 별명이란다. 저자는 올레 길에서는 간세다리가 될 것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 자신이 간세다리의 방식으로 산티아고 길을 다녀왔고, 올레 길도 개척했으므로 그런 것이리라. 일중독으로 정신없이 살아온 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걷기에 빠져들면서 삶에서도 간세다리가 되었다고 소개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요즘 일중독이 되어 정신없이 살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신경을 아이와 아내에게 쏟으려고 노력하지만 일에 지쳐 피곤하다보니 소홀히 대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나도 간세다리가 되어 삶을 천천히 즐기면서 제대로 살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한번 해본다!

Posted by 감은빛



 

아침이슬 출판사에서 셰익스피어 전집이 나왔다! 현제 일차분으로 다섯 권이 나왔고, 앞으로 오차에 걸쳐서 총 사삽 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일차분은 《햄릿》《오셀로》《리어 왕》《맥베스》 셰익스피어의 대표 비극 네 편과 만년작 《폭풍우》이렇게 다섯권이다. 내가 존경하는 김정환 시인이 번역했기에 꼭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단 번역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그 전에 읽었던 셰익스피어는 온통 잘못된 번역 투성이였다. 그렇게 읽으면 도무지 맛이 나지 않아 안 읽은게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책은 흔히 말하는 양장으로 표지는 두껍고 빳빳한 재질로 되어있고, 그 위에 빨간색 천을 씌웠다. 검은색으로 박혀있는 글씨는 멋있지만 중간에 스티커로 붙여놓은 듯한 그림과 제목 부분은 조금 불만족스럽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괜찮지만 만져보면 좀 조잡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책 값이 무려 일만원이다! 아무리 요즘 종이값도 많이 올랐고 김정환 선생님의 값진 노력에 의한 귀중한 결과물이라지만, 그래도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한 두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십 권이 나올텐데, 이 가격이라면 도저히 다 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좀 더 저렴한 가격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태풍과 폭풍우의 비교

 

사실 우리 집에는 이 템페스트(The Tempest)가 한 권 있다. 전예원 출판사에서 나온 신정옥씨가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 17권이 그것이다. 이번에 읽은 아침이슬 판은 셰익스피어 전집 5권이다. 같은 작품이지만 일단 제목부터가 다르다. 전예원 판은 제목이 <태풍>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은 <폭풍우>이다. 제목의 비교에서부터 김정환 시인의 아침이슬 판이 앞서나간다. 어감으로 보나 작품의 분위기로 보나 제목은 <폭풍우>가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일단 책을 한번 다 읽고 난 다음 일부러 전예원 판과 함께 놓고 비교를 해보았다. 읽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잘 읽혀서 번역이 정말 잘 되었다고 느꼈는데, 실제로 두 책을 놓고 주요 장면들을 비교해 보니 <태풍>은 정말 말도 안되는 번역이 많았다! 그냥 어색한 번역정도가 아니라 아예 틀린 내용으로 번역해 놓은 부분도 제법 있었다. 전체적으로 문체도 매끄럽지 못하고 전혀 희곡을 읽고 있단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고 어색한 문장들이었다.

 

반면 <폭풍우>는 마치 시를 읽듯이 매끄럽게 읽히는 맛이 느껴질 정도로 잘 다듬어져 있었다. 역시 김정환 시인이 번역이라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은 책 맨 앞에 일러두기를 통해 '운문과 산문 구분을 명확히 했고, 행갈이를 원문과 똑같이 맞추었다. 각 작품을 잘 쓰인 시집 한 권 대하듯 읽으면 적당할 것이다.'라고 밝혀두었다. 딱 그 말 그대로다. 그냥 시집 한 권 읽는다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읽으면 된다.

 

<태풍>의 번역이 얼마나 엉망이고, <폭풍우>의 번역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첫 장면에서 부터 잘 나타나고 있는데, 잠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태풍>

알론조   이봐 갑판장, 조심하게. 선장은 어디 있는가? 잘들 해주게, 부탁일세.

<폭풍우>

알론조   갑판장, 조심하게. 선장은 어딨나?

          (선원들에게) 사내답게 굴라!

 

굵은 글씨로 된 부분이 크게 차이나는 부분이다. 일단 <태풍>에서는 실제로 읽어보면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장을 찾다가 갑자기 왜 뭘 부탁한다는 말일까? 아, 물론 전반적인 상황을 보면 알론조가 갑판장에게 배가 좌초되지 않도록 잘 부탁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에 반해서 <폭풍우>에서는 앞의 선장을 찾는 말 부터가 무척 자연스럽고 간결하다. 게다가 김정환 선생이 직적 밝혔듯이 원문처럼 행갈이를 했고 괄호안에 지문을 넣어서 상황파악을 도왔으며 딱 상황에 무척 잘 어울리는 명령조의 대사가 뒤따라온다. 여기에서 <태풍>이 말도 안되는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데, 사실 아주 간단한 것이다. 세상의 어느 왕이 갑판장이나 선원들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할것인가?

 

이렇게 비교해보다보면 이런 부분들을 수없이 찾아낼 수 있다! 정말 옛 번역을 바로 옆에 놓고 보니 지금 번역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으로 다시 안 읽었다면 실제로 <폭풍우>의 참 맛을 모른채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희곡은 소리내어 읽어야 하는 법!

 

책을 읽기 위해 나는 동료들이 모두 퇴근 한 뒤, 밤에 홀로 사무실에 남았다. 무릇 희곡은 감정을 살려 소리내어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냥 눈으로 읽으면 정말 재미없다! 그건 죽은 희곡이다. 그냥 활자일 뿐이다. 소리내어 읽다보면 다시 한번 매끄러운 번역에 놀라게 된다. <태풍>의 경우는 소리내어 읽을 경우 문장이 매끄럽지 못해 자꾸 맥이 끊기게 된다.

이번에는 훌륭한 번역 덕분에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그대로 전해받으며 단숨에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었다.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생각보다 진도가 빨리 나갔다. 소리내어 읽어보면 김정환 선생께서 단어 하나하나의 선택에 얼마나 노력을 쏟았는지도 알 수 있다. 실제 생활속의 말처럼 살아있는 생생한 대화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다시 읽은 <폭풍우>는 정말 대만족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처음에 비싼 책값 때문에 조금 출판사를 원망했던 마음이 이내 다 사라지고 없었다. 책이 비싸다는 생각이 별로 안들었다. 이정도로 훌륭한 책이라면 이 정도 받아도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그래도 가격이 좀 더 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테니 더 좋을 것 같다!

 

아직 일차분의 다른 네 작품도 안 읽었지만 벌써 이차로 나올 다른 책들이 기다려진다! 훌륭한 책을 만들어준 김정환 시인과 아침이슬 출판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덕분에 한 동안 다시 셰익스피어를 읽으면서 제대로 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Posted by 감은빛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카테고리 사회/정치/법
지은이 클레이 서키 (갤리온,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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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집어들면 가장 먼저 앞 표지를 보고 그다음에 뒷 표지를 본다. 제목과 앞표지는 그저 그랬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라는 제목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제목이긴 하지만 책 전체 내용을 아주 집약적으로 나타내주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무난한 제목으로 갔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표지는 전반적으로 깔끔한 느낌이라 좋았지만 뒷 표지는 몰라도 앞 표지에 작은 글씨들이 깨알같이 너무 많이 박혀있어서 좀 산만한 느낌이다.

책 뒷 표지를 읽어보면 으례 과장된 평가들이 독자들을 잡아끌곤 하는데(소위 말하는 낚시), 이 책에 대한 평가들은 놀랍게도 대부분 사실이었다. 과장이 아예 없진 않았지만 애교로 봐줄만한 수준이었다. 다만 뒷 표지 맨 위에 나온 문구는 좀 거슬렸다.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할 사람들 명단에 왜 CEO가 맨 앞에 나와있는 것일까? 이것 역시 소위 말하는 낚시 행위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긴 했다.

책은 전체적으로 괜찮은 짜임새를 갖추고 있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도 명확하게 잘 드러나있고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하나하나의 사례들은 모두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서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었다. 특히 이 저자가 아주 타고난 작가라는 생각이 든건 가장 먼저 소개하는 사례가 아주 재미있는 것이어서 책을 펼치자마자 눈을 떼지 못하도록 만들고있다는 점 때문이다. 장사 하루이틀 해본 사람이 아닌 것이다.

처음 소개하는 사례는 뉴욕에서 있었던 휴대폰 분실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사건이 얼마나 흥미롭고 대단한 사건인지는 조금만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사이드킥'이란 고가의 휴대폰 분실을 다룬 이 사건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마이클무어의 '식코'를 보고나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대책을 세우기 시작하는 사례까지 자세하게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움직임이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도구의 발달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양한 예를 들어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있다. 구텐베르크의 활자인쇄술과 웹 2.0 시대 블로그를 통한 자유로운 출판을 비교하면서 도구의 발달로 인한 사회적 변화가 과거와 현재를 통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미래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측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조직에 대한 탁월한 분석들을 보여주고 있다. 도구의 발달로 인한 사회적 변화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분야는 바로 새로운 조직의 탄생이다. 과거 전통적인 조직이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할 수 없는 분야가 있었다면 지금 이 새로운 조직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움직이면서 전통적인 조직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예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좋은 점이 있다면 나쁜 점도 있을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재미있는 사례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어도 설명하는 듯한 분위기로 되어있는 이 책이 지루해질 수 밖에 없다. 지루함은 책에 대한 몰입도를 상당히 떨어 뜨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처음 몇개의 예들이 재미있었다면, 뒤이어 나오는 예들은 비슷한 패턴이거나 대충 짐작할 만한 이야기들이어서 다소 지루할해질 수 도 있겠다.

이 책은 올해 6월 말경에 나왔는데, 만약 훨씬 일찍 나오거나 훨씬 늦게 나왔다면 지금처럼 관심을 갖기 어려웠을거다. 그러나 우린 벌써 올해 5월부터 많은 움직임을 보였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참석했다. 그래서 이 책이 무얼 말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더 쉽게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교하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는 듯 하다. 역시 미국이란 나라는 확실히 다르다! 우리나라의 친미주의자들의 미국의 합리적인 부분들을 좀 더 배워와서 헛짓거리를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한 얘기를 조금 해야할 것 같다. 다 읽어본 결과 아주 잘한 번역은 아니었다. 그리고 곳곳에 거슬리는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특히 '사자생(寫字生)'이란 단어의 경우 다른 표현 방법이 전해 없었을까 싶다. 국어 사전에 '글씨를 베끼어 써 주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이란 뜻이 나오긴 하지만 이 단어는 낯설고 어감도 썩 좋지 않다.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로 '필사생'이란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가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전체적으로 번역투가 거슬리는 부분이 있고 단어선택이 조금 의아한 부분들도 있다. 그리고 한 두군데 정도 앞 뒤 문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번역이 끼어있기도 했다. 문단에서 전체적으로 뜻이 통하지 않는데 그렇게 마무리를 지어놓은 걸 보면 초벌 번역을 한 후에 다시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았다는 뜻인 듯 하다. 번역자가 이런 부분들에 좀 더 신경썼더라면 훨씬 더 좋은 책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Posted by 감은빛
만세전 - 10점
염상섭 지음/문학사상사


 최규진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나서 바로 이 책을 사서 읽었다. 일제시대 조선 민중들의 삶을 역사책보다 더 자세히 있는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바로 염상섭의 작품들이고 특히 <만세전>이라고 했다.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고등학교때 읽었고, <삼대> 역시 고등학교 때 읽었다. 그런데 이 <만세전>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원제는 <묘지> 였다고 한다. 1922년 《신생활》7월호와 8월호에 <묘지>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것을 나중에 <만세전>으로 제목을 바꿨다고 한다. 다 읽고 나니 <묘지>라는 제목이 오히려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세전>이란 제목은 3·1운동이 일어나기 전이란 뜻인데, 이 작품의 제일 첫 문장인 {조선에 '만세'가 일어나던 전해 겨울이다.}라는 한 문장을 다시 제목으로 바꾼듯하다.

 염상섭 선생은 보성중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공부를 했는데, 지금으로 치면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에 유학을 간 셈이다. 만세전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18년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기자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그 해 겨울 3·1운동에 대해 알게된다. 그리고 1919년 3월 6일 천왕사공원에서 독립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이 일로 7월부터 5개월간 감옥생활을 하게 된다. 다음해인 1920년 3월에 귀국하여 《동아일보》정치부 기자가 되었다. 그해 7월 동인지 《폐허》를 출간하고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후 선생은 오산학교 교사가 되었다가 사퇴하고 각종 주간지나 신문사에서 일하며 틈틈히 작품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그러니까 선생 스스로가 조직하고 참여했던 만세운동에 대한 작품이다. 물론 작품안에서 만세운동에 대한 내용은 저 첫 문장을 제외하고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지만, 이 글은 만세운동에 대한 내용이다. 왜 만세운동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가를 아주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선생께서 처음에 지은 <무덤>에서 나중에 <만세전>으로 제목을 바꾼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던 이인화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급전을 받고 귀국하게 된다. 그가 일본을 떠나 조선에 돌아오면서 느끼는 현실은 무덤이었다. 구더기가 들끓는 무덤이 바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이었다.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잊고 있던 현실을 깨닫게 되자 이인화는 그 현실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다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서 구차한 현실을 잊고 살던가, 그 구차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던가. 선생께선 아마도 두번째 길을 택했을 것이고 스스로 만세운동을 조직하였고, 그러한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 이 작품을 쓰셨을 것이다. 잊고 있던 현실을 깨닫고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것이 바로 만세운동의 정신이 아닌가.

 지금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3·1운동을 민족지도자들이 준비한 단지 하나의 사건으로만 배웠다. 잘못된 역사 교육은 그래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만약 학창시절부터 제대로 된 역사를 배웠다면 나는 아마도 좀 더 일찍 눈을 뜨고 사회를 바로보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위대한 만세운동이 아래로부터 조직된 대규모 항쟁이었다는 것을 알게된 건 아주 나중의 일이다. 우리가 민족지도자라고 말하는 이들은 실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 날 탑골공원에서 단순한 하나의 해프닝을 벌였을 뿐이다. 실제 운동을 준비하고 조직한것은 수많은 민중들이었다.

 우리는 유관순누나(언니가 아닌 누나다!)만 기억하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언니, 오빠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마치 지금 청소년들이 주도해서 촛불이 전국에서 불타올랐듯이, 당시에도 학생들(당시 학생들은 거의 유일한 지식인들이었다!)이 주도해서 수개월동안 만세의 물결이 전국을 휩쓸었다. 그러한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유명한 소설가인 이인화(본명 류쳘균)라는 이름이 이 <만세전>의 주인공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란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이 <만세전>이란 소설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잘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왜 그가 이 이름을 따와서 자신의 필명으로 삼았는지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는 <만세전> 외에도 <두 파산>, <표본실의 청개구리>, <임종>, <굴레>, <금반지>, <짖지 않은 개>, <의처증>, <어머니>, <전화> 이렇게 총 10편의 작품들이 실려있다. 염상섭 선생의 작품들인 만큼 하나같이 훌륭한 작품들이다.

 염상섭 선생의 <만세전>은 문학사상사 외에도 여러 출판사에서 낸 다양한 판본의 책이 있다. 다른 책들은 읽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문학사상사 책은 꽤나 괜찮은 것 같다!

Posted by 감은빛
헤르메스의 기둥 1헤르메스의 기둥 1 - 2점
송대방 지음/문학동네

 이 책은 예전부터 입소문으로 유명했다. 지은이 송대방은 움베르토 에코에 비교되기도 했고, 무척 지적인 소설이라고 평이 좋았다. 몇 년전 뒤늦게 이 책의 존재를 알게되어 알라딘에서 찾아보았으나 2권은 판매중이었지만, 1권이 절판되어서 책을 구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잊어버렸다.

 몇 년이 지나서 우연히 이 책을 다시 보게 되었다. 찾는 이가 많아서 다시 나왔다고 했다. 이번에는 아예 두꺼운 하드커버에 양장본으로 나왔다. 당연히 책값도 올랐다. 워낙 평이 좋았기에 꼭 읽고 싶다는 생각에 얼른 주문부터 했다.

 책을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읽어나가면서 한 두개씩 문장이 어색하거나 표현이 좀 이상한 곳이 있어도 그냥 넘어갔다. 지은이가 전문적으로 글쓰는 작가는 아니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줘야겠지 라고 생각했다. 뒤로 갈수록 점점 더 비문이 많아지고 어색한 표현이 많아졌으며,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면서 분량만 늘어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중간까지 읽은 후에는 글의 전체적인 구조도 썩 좋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는 좀 어이가 없었다.

 이건 전혀 완성된 작품의 수준이 안되어 있었다. 평이라는 건 완성된 하나의 작품을 두고 하는 것이다. 이건 어느모로 보나 미완성이라고 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구조도 문장도 엉망이다. 이런 책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마니아들이 헌책방을 순례했다니 참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책을 그저 소문만 듣고 비싼돈을 주고 양장본으로 샀다니 내 자신이 어이없게 느껴졌다.

 이 책의 유일한 장점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작품들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과 연금술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미술작품들은 지은이의 과시욕 때문에 너무 산만하게 많은 작품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리고, 연금술에 대한 과도하게 자세한 설명부분들은 지루하게 읽힌다.

 또한 지은이가 작품 전체에 결쳐 장황하게 설명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다양한 이야기들도 작품에 꼭 필요한 부분들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건 그저 난 이렇게 아는 게 많다라고 과시하는 수준 밖에 안된다. 더 어처구니 없는 건 이 작품 전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그리스의 신화에 대한 지은이의 이해의 수준이 무척 얕다는 것이다. 이건 그리스 신화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상식적인 수준의 얘기를 마치 새롭고 대단한 것인 듯 강조하고 있다. 특히 1권 마지막즈음에 나오는 레다의 이야기에서 틀린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을 읽었을 때는 더 할말이 없었다.

 이야기의 전개는 너무 늘어져서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느낄수 없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철수와 영희 같은 느낌이다. 생기라고는 없는 평면적이고 전형적인 인물들. 나름 반전을 생각하고 구조를 짠 듯 한데, 초반부터 결말의 내용을 대충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뻔한 스토리였다.

 책을 다 읽고 과연 이 글이 지은이의 퇴고를 거쳤을지 가장 궁금했다. 아니 이 책을 담당한 편집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다듬어지지 않은 작품을 양장본으로 낼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원래는 책을 읽는대로 서평을 쓸 생각이었으나, 너무 어이가 없어서 꽤 오랫동안 이 책이 눈에 띄는 것 조차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구석에 처박아 놓았는데, 책이 많아져서 정리를 하다보니 눈에 들어왔다. 빨리 서평을 쓰고 중고로라도 팔아버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어찌된 것인지 2권 바깥표지가 없어져버렸다. 아마도 아이가 벗겨서 놀다가 잃어버린 모양인데, 방을 뒤져봐도 찾을수가 없었다. 이렇게되면 팔아도 제값받기도 힘들게 생겼으니 이래저래 신경만 쓰이는 책이다.

 단 하나 칭찬을 하자면 파르미자니노의 그림을 보고 헤르메스의 기둥으로 연결시킨 이 작품의 가장 기본이 되는 아이디어 하나는 인정해줄만 하다. 이것 하나만은 독창적이고 기발한 생각이다. 하지만 이 작은 아이디어를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지은이는 좀 더 글쓰기의 기본에 대해 공부하고 다시 이 작품을 써보기를 권한다!
http://gameunbit.tistory.com2008-08-08T17:46:430.3210
Posted by 감은빛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이다. <장미의 이름>,<푸코의 진자>등 아무리 찬사를 바쳐도 모자랄 명작을 써낸 작가. 이 작품은 그가 이탈리아의 주간지 <에스프레소> 등에 발표한 짧은 글들을 모은 책이다.
 
언제였던가.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였는데, 90년대 말인지 2000년대 초인지 잘 기억이 안난다. 군대를 안다녀오기 때문에 남자들보다 먼저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해있던 한 여자동기가 추천해 준 책이다. 잘난척이 몸에 밴 녀석이었는데, 특유의 말투로 '어떻게 하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낼수 있을지 직접 읽어보고 한번 확인해봐!' 라고 말했다. 그래서 꼭 한번 읽어야지 벼르고 있다가 몇 년 전 마침 다니던 곳을 그만두고 쉬고 있을 때 읽었다.
 
책은 1,2,3,4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길고 짧은 글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 세계적인 언어의 마술사로 소문난 움베르토 에코의 글인 만큼 절대로 재미없을 수는 없겠지만(혹 재미없었다면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좀 어려울 수는 있겠다 싶어서 걱정했는데, 어려운 것도 어려운거지만 그보다 이탈리아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배경지식이 없어 조금 헤매어야 했다. 그리고 유럽인의 전반적인 정서라던가 생활문화라던가 그런 것들을 이해해야 재밌는 꼭지들도 제법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읽을 수 밖에 없는 입장에서 무척 아쉬웠다. 내 기준에서 1부와 2부는 재미있었지만, 3부는 좀 어려웠고, 4부는 그냥 읽을만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 과 같은 몇몇 꼭지들은 무척 흥미롭고 인상적이어서 대략의 내용을 외울만큼 읽었다가 가끔 주위 사람들에게 들려주곤 할 만큼 재밌다.
 
그리고 번역말인데, 책 마지막에 번역자 이세욱씨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듯이 이 책은 처음에 미국판을 번역한 책이 국내에 출간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책의 원본인 미국판 자체가 원판의 내용을 충실히 전해주는 데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했단다. 나중에 프랑스어판이 나왔는데, 이 쪽의 번역이 훨씬 나아서 지금 나온 이 번역은 이탈리아 원판과 프랑스어판을 원본으로 했다고 한다. 앞서 미국판을 번역한 책은 절판되었다고 하는데, 읽어보지 않아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책의 번역의 수준은 상당히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안그래도 어려운 책에 번역까지 엉망이라면 최악이 아닌가.(실제로 우리나라의 사회과학 번역서들은 대부분 딱 이모양새다!)
 
전체적으로 여러번 읽었고, 재밌는 꼭지들은 수십번도 넘게 읽었지만 아직도 이 책은 낯설고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어떻게하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낼수 있는지 모르겠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 거의 만나지 못한 그 동기녀석을 우연히라도 만나게된다면 꼭 다시 물어봐야 겠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거냐구?'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그래서 선뜻 손이가지 않는 책이지만 그래도 두고두고 한번씩 읽기에는 좋은 책인 듯하다. 너무 어렵거나 너무 학술적이지 않으면서 재밌고 적절한 유머들을 던져주는 책. 지적 유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글을 쓰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쩌면 깨달은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낼 수 있는 방법 말이다.
Posted by 감은빛
남쪽으로 튀어!
오쿠다 히데오
 
2004년 <공중그네>로 나오키 상을 받은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이다.
 
이 책은 나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 아내가 구입했다. 구입 이유는 '자기랑 똑같은 인물이 나온데~!'였다. 아내는 며칠동안 틈틈히 읽었다. 혼자 낄낄대다가 나를 불러 내가 평소 하는 말과 똑같은 말을 한다며 신기해하고 재밌어하며 그렇게 읽었다. 나는 사실 웬지 모를 거부감에 읽지 않으려했지만 아내가 계속 몇몇 장면들을 읽어주거나 보여주는 통에 그냥 처음부터 읽어버렸다.
 
최근에 라제폰을 보다가 '니라이카나이' 섬에 대해 궁금해서 찾아보던 중, 이 작품에 나왔던 그 전설의 섬은 이름이 뭐였던가 찾아보느라 다시 들춰보게 되었다. '파이파티로마' 였다. 그래 '니라이카나이'는 아니었지. 들춰본 김에 다시 한번 더 읽었다. 어째 두번째 보는거라 처음보다는 그닥 재미를 못 느꼈다. 덕분에 처음엔 흥미위주로 읽느라 놓쳤던 몇몇 단점들이 더 눈에 띄였다. 그래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가와 일본이라는 나라. 이런 작품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다니. 만약 우리나라의 어느 작가가 이런 글을 썼다면 과연 잘 팔렸을까? 나는 절대 아닐거라고 확신한다.
 
책은 우선 인상적인 표지 그림으로 독자를 유혹한다. 성질 더러울 것 같은 남자가 똥씹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 아저씨가 우에하라 이치로, 작품의 주인공인 지로의 괴짜 아버지이다. 키가 185센티미터에 거구로 과격한 운동권 출신이고, 경찰과 공무원을 싫어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안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 작품은 초등학교 6학년인 지로의 눈을 통해 아버지의 평범하지 않은 생활을 보여준다. 지로는 이 아버지 덕에 일찍부터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 지로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참 난감하다. 아주 세상에서 가장 골칫덩이리처럼 바라보고 있다. 글쎄 사춘기의 소년이라면 당연히 그럴수도 있지만 이 시선이 단지 지로만의 시선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입맛이 좀 씁쓸해진다.
 
처음 아내가 호들갑을 떨었던 것과는 달리 작품속의 이치로는 그닥 크게 흥미로울 것도 없는 인물이었다. 팬텀기에 불을 붙이려했다는 전력과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고 피델 카스트로와 사진도 찍었다는 내용은 좀 작위적이고, 초반에 나오는 공무원과의 말싸움도 그리 신선하지 못하다. 이치로는 잘못된 제도를 비판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언행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아직 남아있는 소위 좌파 운동권을 소재로 가져왔다는 것 뿐이다.
 
하긴 아내의 입장에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작품을 대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지로를 보면서 나중에 그만큼 자란 우리 딸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상상해보았을테니 재미있엇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도쿄에서 나중에는 오키나와의 남쪽 섬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나오키 상>을 수상했던 작가이니만큼 글은 나무랄 데없이 깔끔하고 훌륭하다. 특히 이국적인 풍경들이 펼쳐지는 후반부의 이야기들은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욕망을 무럭무럭 자라게 만들어준다.
 
이치로의 선조라고 믿어지는 아카하치의 이야기도 재밌고, 꿈의 섬이라는 파이파로티마에 대한 내용도 무척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그 남쪽 섬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은 참 정겹고 멋지게 느껴졌다. 나도 우에하라 가족처럼 함께 이 따뜻한 남쪽 섬에 갈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행복한 상상에 빠져보지만 정신이 들고나면 답답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이 작품은 성장소설이다. 지로가 가족들과 함께 여러 경험을 겪으면서 커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재밌고 흥미롭고 성공적이라고 평가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치로라는 인물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물론 그래서 더 재밌고 인기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게다가 운동이 실패한 일본이기에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치로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무척 거슬린다. 작가가 이치로라는 인물을 통해서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재미로 읽는다면 좋은 책이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것저것 걸리는 점이 참 많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나도 이치로의 가족들처럼 남쪽 섬에 가고 싶다!
Posted by 감은빛
앤의 요정
칼리나 스테파노바
 
칼리나 스테파노바의 작품이다. 작가는 불가리아 사람이며, 국제 연극비평 협회의 이사라고 한다. 미국에서 연극 비평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불가리아에서 국립 연극영화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작가는 연극과 비평에 관한 10권의 책을 썼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연극과 관련이 없는 작가의 첫번째 책이라고 한다.
 
앙증맞게 작은 크기와 분량이고, 분위기가 괜찮은 표지그림과 삽화들 덕에 처음 보는 순간 바로 집어들게 되는 그런 책이다. 물론 혹시 유치한 내용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분량이 작아서 금방 읽을 수 있기에 잠깐 한번 읽어보자라는 생각에 펼쳐들었는데, 의외로 굉장히 좋았던 작품이다.
 
뒷 표지 소개말들은 아마도 불가리아의 평론가들과 언론의 평가인 듯한 찬사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계속 <어린왕자>와 이 작품을 비교하고 있었다. 표지에 적힌 소개글들이 늘 그렇듯 이것도 엄청난 과장일 거라 여기고, <어린왕자>와 비교할 생각 따윈 저만치 치워버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두어 시간만 투자하면 쉽게 끝까지 읽을 수 있다. 흥미로우면서도 서두르지 않는 부드러운 전개는 편안하게 이끌어주고, 적절한 세부 묘사와 재밌는 말투의 대사들이 좋았고,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은은하고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 무척 좋았다.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다. 감히 <어린왕자>와 비교해 볼만한 작품이다.
 
작가가 직접 쓴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도 흥미로웠고, 마지막에 실린 불가리아 평론가의 평가도 읽을 만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삽화를 그린이의 이름은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적절하게 표현된 삽화들이 참 재밌고 좋았다. 게다가 생각할만한 꺼리들을 제법 던져준다.
 
다만 너무 작은 작품(소품)이라 조금 아쉽다. 이만한 소재라면 조금 더 키워서 좀 더 멋진 작품으로 탄생시킬 수는 없었을까라는 부질없는 아쉬움이 든다. 그리고 크게 거슬리지는 않지만 몇몇 장면에서 번역이 조금 아쉽다.
 
영어 제목은 <Ann's Dwarves>, 요정이 흔히 생각하는 엘프가 아니라 드워프다. 백설공주와 일곱 드워프가 아닌 앤과 일곱 드워프다. 하긴 어릴때 읽은 서양 이야기들에 나오는 요정들은 엘프나 드워프나 다 조그맣고 귀여운 요정들이었다. 키 크고 귀가 뾰족하고 멋진 자세로 활을 쏘는 엘프와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에 넓고 땅땅한 몸집 그리고 지나치게 짧은 다리로 자기 키만한 큰 도끼를 든 드워프는 모두 <반지의 제왕>과 일본 판타지의 영향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읽는 동안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앙증맞게 귀엽고,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요정들을 만나러 가보자!
Posted by 감은빛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아가사 크리스티
 
설명이 필요없는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유명한 작품이다. 원제는 <Ten little Indians>였으나, 나중에 미국에서 출판될 때 <And then there were none>로 나왔다고 한다. 확실히 <열 개의 인디언 인형> 보다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쪽이 훨씬 인상적인 제목인 것 같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밀실살인(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살인, 클로즈드 서클 Closed Circle)이다. 알려진대로 영화 <아이덴티티>에서 이 점을 차용해왔다. 그렇다고는 해도 영화 <아이덴티티> 랑 이 작품은 전혀 비교할 수 없을 듯 하다. 이 작품은 마지막 부분에서 우연히 발견된 편지로 인해 모든 살인이 설명이 되지만, 내 기억에 영화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 정말 그냥 모티브만 빌려왔을 뿐인것이다.
 
인디언 섬에 모여든 10명. 서로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8명의 손님과 하인부부. 이들은 섬에 갖힌채, '열 명의 인디언 소년'이라는 노래에 맞춰 한명씩 차례대로 살해당한다. 누구 범인인지 도저히 짐작도 할 수 없는 가운데, 이제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읽으면서 계속 누가 범인일지 추리해내느라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범인을 알 수 없었다. 이쯤되면 좀 화가 날 수 밖에...... 작가 나으리, 최소한의 단서는 주면서 글을 써야 읽는 사람도 재미를 느낄 거 아닙니까?
 
그런데 살인의 진실이 밝혀지고 보니, 힌트는 주어져 있었다. 다만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처음 손님들이 모여들 때의 장면은 고쳐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대로는 아무리해도 알아 낼 수 없지 않은가?
 
그래도 역시 아가사 크리스티의 명성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작품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끈하게 잘 빠진 스포츠카이다. 복잡한 묘사와 세세한 설정따윈 생략하고 그대로 앞으로 달려나간다. 그 흡인력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도저히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서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다 읽어 버렸다.
 
다 읽고 나서는 대단하다는 생각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대단하다! 아가사 크리스티!
Posted by 감은빛
사랑하기 때문에
기욤 뮈소
 
기욤 뮈소라는 작가의 작품이다. [구해줘],[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등의 작품들과 이 작품이 프랑스에서도 많이 팔렸고, 국내에도 출간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은 아내가 산 책이다. 우리가 자주 가는 서점에서 잠깐 읽었는데, 무척 재밌다고 했다. 아내가 다 읽고 나서 얼마나 재밌길래 하는 마음에 내가 뒤따라 읽었다. 읽고나서 이 작품에 대한 나의 솔직한 평가는 '조금 기발하고 재밌고 흐름을 놓치지않고 얘기를 풀어나가는 힘이 느껴진다.' 뭐 이정도였다.
 
첫 부분은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뭔가 이국적이고 또한 자극적인 요소들도 있고 그러면서도 글이 가볍지 않아서 좋았다. 이야기가 매끄럽게 흘러가서 작가가 어느정도 수준에 이르렀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너무 일찍 반전의 코드를 읽고 말았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극적인 반전의 묘미는 느끼지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수준에 오른 작품이었기에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아내는 마지막 반전에서 좀 놀라고, 그 반전에 의한 결말때문에 좀 어이없어했다. 나는 사실 초반에 반전의 징후를 너무 일찍 알아차렸기에 그닥 놀라지는 않았고, 그냥 그 정도의 결말일거라 예상했다.
 
이 작품은 치밀한 구성이 최대의 장점이다. 그리고 서사를 끌고 나가는 작가의 힘이 느껴진다. 그래서 재밌다. 중반이후까지 흥미로운 전개는 읽는 이를 강하게 빨아들인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이라는 것이다. 절정까지 잘 끌고 온 작품이 마지막 반전이후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뭔가 부족하다. 작가가 뭔가를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작가의 계획대로 흥미롭게 구현되었을 것이다. 다만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그것이 다였기 때문에 더 이상 나올 수 없었던 것이리라.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 니콜, 성공한 의사였으나 노숙자가 된 마크, 억만장자 상속녀 앨리슨, 밤거리를 헤메는 소녀 에비,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는 커너. 이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리고 또 벌어질 것인가?
 
재미있게 읽었지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책이기도 하다!
Posted by 감은빛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미우라 시온
 
미우라 시온의 제 135회 나오키 상 수상작이다.
 
우연히 별 기대없이 그냥 읽었는데, 의외로 괜찮은 작품이었다. 우습게도 책을 다 읽고 나서 그제서야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책 표지의 소개문구를 보게 되었다. 그래! 역시 평범한 작품이 아니었어! 미우라 시온이라는 작가는 알고보니 내 또래였다. 작중 주인공인 다다와 교텐도 정확한 나이는 안나오지만 동갑임이 틀림없다! 비록 나라는 다르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역시 공통으로 느낄 수 있는 어떤 정서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일단 책은 그다지 분량이 많지 않아서 집중해서 읽었더니 너댓시간만에 다 읽었다. 번역도 상당히 잘 되어 있는 듯해서 크게 거슬리는 부분 없이 매끄럽게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이 비교적 읽기 쉬운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이 상당히 쉽지 않은 얘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상당히 쉽게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 편하게 다다와 교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순간 문득 어떤 묵직한 감정이 느껴지는데, 바로 이런 점이 이 작품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류의 화법은 아무나 쉽게 구사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작가의 기량이 대단하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좋은 점만 있을 수는 없듯이, 좀 아니다 싶은 부분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우선 두 주인공 중에 더 중심인물인 다다에 대한 부분은 상당히 잘 그려놓고 있는데 반해, 교텐 쪽은 아무래도 뭔가 부족함이 느껴진다. 원래 교텐이란 인물이 워낙 그런 인물이라 어쩔 수 없다고 볼 수도 있겠고, 혹은 작가가 일부러 그 정도로만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웬지 작가가 아직은 이정도의 캐릭터를 원활하게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인생경험이 없다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런 의심은 작품을 두번째로 찬찬히 읽었을 때 더욱 뚜렸해진다.
 
교텐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하나같이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살아 숨쉬는 얘기가 아닌 죽은 얘기 같단 말이다. 그에 비해 다다에 대해서는 굉장히 생생하게 살아있는 얘기처럼 느껴진다. 다다의 표정 하나하나가, 말 한마디가, 몸짓 하나가 바로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그려지고 다다라는 인물을 잘 느끼게 해주지만, 교텐쪽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지 못하다. 뭔가 어색하고 뭔가 불편하다. 나라면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계속 든다.
 
이런 점은 작품을 깊게 읽으면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들에서 무수히 발견되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주요 사건들과 인물들의 관계에 대해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여러차례 받게된다. 하지만 이건 너무 엄밀하게 따지고 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다시 생각해보면 처음 읽었을 때는 대부분 그냥 넘어갈 수 있을정도였으니까.
 
그래 이 작품은 적당하게 쉽게 읽고 즐기면서 적당한 만큼의 감동을 만끽할만한 분량의 작품인 것 같다. 이 표현이 결코 이 작품이 하찮은 작품이란 뜻은 아니다. 오히려 분량에 비해 그리고 쉽게 즐기고 읽을 수 있다는 점에 비해 이 작품이 품고 있는 내용은 대단한 것이다. 나는 너무 가혹하게 매스를 갖다대어 평가한 것이리라.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삼십대, 조용한 변두리 역 주변, 왠지 묘하게 어울리지 않으면서 어울리는 관계들과 사건들, 엉뚱하고 참심한 일상의 얘기들 속에서 작가의 매력은 빛을 발한다!
Posted by 감은빛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하성란
 
96년 '풀' 을 처음 읽고 팬이 되어버린 이후 너무나도 좋아해왔던 하성란씨의 세번째 단편집이다. 반가운 마음에 읽어가던 나는 문득 왠지 모를 낯설음에 묘한 기분을 느낀다.
 
이전까지 작가의 출간된 작품 거의 모두를 읽어왔기에 작가의 문체, 분위기 등에 익숙해져 있던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고개를 갸웃하게 될 만큼 이 책은 낯설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작가가 이제는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에 얽매이지 않기위해 그것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가 바로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우리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사건들을 이야기 하면서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이전까지 작품들에서 평범한 현대인의 일상을 쫓아가며 현실을 이야기하던 것과 비교하여 분명하게 달라진 태도이다.
 
게다가 이야기꾼으로서 그녀의 문장력이나 상상력은 한층 더 성숙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전까지 묘사에 치중되어있던 무게중심이 이젠 서사에도 적절히 분배되어 작품이 전체적으로 안정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 작가를 설명하는 말이 세밀한 묘사 라던가, 영화적 표현 이라던가 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전반적으로 균형을 갖춘 작가가 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해본다.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는 프랑스의 설화인 '블루 비어드' 에서 착안하여 작가의 재치있는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작품이다. 절대로 열어서는 안되는 방을 열었던 푸름수염의 아내들은 차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 방에 전 아내들의 시체가 쌓여있기 때문이라는 설화에서 그렇다면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는 왜 죽었을까 라는 재미있는 질문에서 부터 이 작품은 시작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멋진 작품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하성란 작가의 뛰어난 수작들로 가득 채워진 이 책은 너무나도 좋다라는 평가외에는 할수가 없는 것 같다.

옮겨오면서 : 내가 하성란을 '졸업'하게 되는 단편집. 확실히 글들이 안정정이고 고르게 일정한 수준에 올라 있음을 느끼게 되지만, 그래서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그 후로 더이상 그의 작품들을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이후로도 좋은 작품들이 나왔는지 어떤지 모르겠다.

2008/04/29 - [가보지 못한 길/책장속에서 길을 잃다] - 더욱 예리해진 필치로 현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2008/04/29 - [가보지 못한 길/책장속에서 길을 잃다] - 적절한 거리두기와 세밀하고 사실적인 묘사


Posted by 감은빛
 
 
옆집여자
하성란
 
하성란씨의 두번째 단편집이다. 게다가 작가의 첫 주요 문학상 수상작인 '곰팡이꽃'이 실려있는 책이다. 막상 살때는 몰랐는데 읽으면서 보니 역시나 반이상의 작품들을 이미 여러곳에서 읽은 후였다. 게다가 내 기억에 표지에 단편집이란 소개가 없었던것 같은데 그래서 처음엔 내가 모르는 하성란씨의 장편이 있었나 라고 고개를 갸웃했던 것도 같다.
 
개인적으로 하성란씨의 책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품 하나하나 에서 이제는 완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버린 하성란씨 특유의 분위기와 세밀한 묘사가 잘 드러난다.
 
하성란씨의 작품은 무척 독특하다. 독특한 만큼 독자들의 평가도 제각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망설임없이 하성란씨를 말하지만 대개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에서 하성란씨의 작품을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현실을 바라보는 방법이다. 작가가 바라보는 현실은 차갑고 무겁고 어둡게 느껴진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밋밋하고 개성이 없어보인다. 그들은 별 특징없는 일상을 묵묵히 살아나갈 뿐이다.
 
하지만 작가가 바라보는 현실은 의외로 따뜻하다. 평범한 인물들이 다람쥐 챗바퀴 돌듯 묵묵히 일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어둡고 무거운 현실속에 작가는 현대인의 삶을 모습들을 그려낸다. 이러한 작가의 표현방법은 무척 뛰어나서 독자들에게 쉽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작가는 그러한 현실을 담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여지를 남겨둔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에서는 작가의 초기작 '풀', '두개의 다우징', '루빈의 술잔' 등에서 선보였던 섬세하고 세밀한 묘사가 한층 더 완성되어져 읽는 내내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었던 '곰팡이꽃' 뿐만 아니라 '옆집여자', '올콩' 등에 작품들 하나 하나가 모두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 했으며, 특히 '양파' 의 경우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랄 만큼 작품의 구성과 묘사가 완벽하다고 생각된다.
 
한번 손에 잡으면 읽고 또 읽게 되는 멋진 작품들이 수록되어있는 좋은 책이다.

옮겨오면서 : 첫 단편집에 비하면 확실히 많이 다듬어지고 성숙해진 작품들이 많다. 그래도 아직도 나는 하성란의 첫 단편집이 더 좋은 이유는 뭘까?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2008/04/29 - [가보지 못한 길/책장속에서 길을 잃다] - 친숙한 작가의 낯선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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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루빈의 술잔
하성란
 
하성란 씨의 첫 신춘문예 당선작 '풀' 을 읽으면서 정말 대단한 작가를 만났구나 하고 남몰래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하성란씨의 단편이 실린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하성란씨의 첫 단편집으로 내가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중 여러편을 이미 곳곳에서 한번쯤은 읽은 후에 사게 되었다.
 
내가 하성란씨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또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처음 읽었던 두 작품  '풀' 과 '두개의 다우징' 에서 잘 드러나는 현실에 거리두기와 세밀하고 사실적인 묘사 때문이다. 등장인물에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있기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등장인물의 심리상태와 감정에 빠져들게 되고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듯, 세세한 부분까지 정밀하게 묘사된 배경과 모습과 행동들은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이후 서점에서 우연히라도 하성란이란 이름이 보이면 아무리 바빠도 꼭 찾아서 읽게되고 만약 내가 아직 못읽은 작품이라면 아무런 주저없이 사게되었다.
 
이 소설집은 작가의 첫 단편집인 만큼 신선하고 풋풋한 느낌이 든다. 특히 내게는 작가가 지금까지 출간한 세 권의 단편집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책이었다.
 
특히 '루빈의 술잔'에 나타나는 작가의 묘사력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랄 만큼 대단했다. 당시까지 나는 그정도의 묘사를 해내는 작가를 본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선이 가는 방향으로 사소한 부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독자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시각적인 배경, 인물, 행동 묘사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성란씨의 소설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가는데, 요즘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가끔 예전 분위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더 소중하고 좋은 책인 듯하다.

옮겨오면서 : 내 대학생활의 어느 한 시기는 '하성란'이란 작가를 빼면 아무것도 없었다고 할 정도로 내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읽고 또 읽고도 모자라서 방학내내 혼자 자취방에 쳐박혀서 빈 공책에 배껴쓰곤 했다. 그 날의 모습들이 과연 나였던 가 싶다.

2008/04/29 - [가보지 못한 길/책장속에서 길을 잃다] - 친숙한 작가의 낯선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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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처음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글을 읽은 것은 고등학교때였다. 그때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던 '개미'를 통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수업시간에 수업을 듣지 않고 소설책을 읽은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개미'에 삽입되어 있었던 갖가지 다양한 퍼즐들과 기상천외한 지식들. 모두가 우리들의 사고의 전환을 유도하는 것들이었다.
 
당시 '개미'의 중간 중간에 삽입되었던 그러한 것들은 '에드몽 웰즈' 라는 가상인물이 지은것으로 되어있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출처로 적고 있었다. 처음엔 '에드몽 웰즈'라는 작가와 책이 실제로 존재하는 유명한 책인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건 소설속의 설정일 뿐이었고, 사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자신이 직접 어린시절부터 모아놓은 자신만의 백과사전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이제서야 직접 그의 이름으로 출간된 이 책을 읽게 되어서 무척 감회가 새롭다. 당시 십대 후반이었던 나는 지금 어느새 서른을 바라보는 이십대 후반이 되어있으니 그 당시와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바뀌어 있음을 느낀다.
 
읽는 내내 무척이나 즐거웠으며 다양한 지식들 (물론 특히 개미에 관한 지식이 많았지만)을 접하게 되어 유익했던것 같다.
 
책을 다 읽으면서 한가지 크게 느낀점이 있었다. 그것은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지니게 마련인것 같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자신만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쓸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린시절부터 쌓아온 지식, 자신이 특히 관심을 가지고 남들보다 더 많이 알고있는 지식들을 차곡차곡 준비해왔을때 가능하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세상에 단 한권밖에 없는 자신만의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만들기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이렇게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뭔가?)

옮겨오면서 : 2003년에 쓴 것 같은데, 이땐 참 여러모로 의욕이 많았던 것 같다. 결국 작심삼일이 되어버렸지만 실제로 뭔가 나만의 사전을 만들어보려는 시도도 했었는데, 그게 뭐였던가? 암튼 남아있지 않으니 알수없다.
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