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자신감에선지 모르지만 어릴때부터 글쓰기는 늘 자신있었다. 중학교때는 교내 백일장에서 상도 받았다. 고등학교때는 교지에 글이 실렸고, 대학에서는 학보에 몇 번인가 기고글을 썼다.

 

 환경운동단체 활동가로 일할때는 성명서나 보고서 등을 쓰느라 밤을 지새웠고, 가끔 원고 청탁을 하는 대학 학보에 글을 보내곤 했다. 웹진에 글을 써보기도 했고, 예전에 몸 담았던 잡지에 글을 싣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렇게 많은 기회들이 주어졌다기 보다는 그저 글의 성격에 맞는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혹은 운이 좋았기 때문에) 과분하게도 많은 기회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암튼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참 많고, 나는 아무래도 재주도 없고, 노력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운이 좋았다고 해야할까? 리더스가이드라는 독자 집단(커뮤니티)에서 처음으로 낸 단행본에 공동저자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앞서 말했듯이 잡지나, 웹진에 글이 실린 적은 있지만, 단행본에 참여한 건 처음이다!

 

막상 책이 나오고 나니,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함량 미달의 원고를 받아 책으로 엮어준 출판사에 고마운 마음이다. 책을 읽을 때, 저자의 말을 보면 종종 '나무에게 미안하다!'는 표현을 찾을 수 있는데, 지금 내 심정이 딱 그렇다. 다른 우수한 여러 글들에 비해 내 글은 웬지 모자라 보이고, 그래서 굳이 몇 페이지 더 늘리는 바람에 나무가 더 희생당했단 생각이 든다.

 

 부끄러운 건 뭐 이제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어쨌든 첫 단행본 출간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키보드를 두드려 보기로 했다.

 

 이 책은 제목만 보면 짐작 할 수 있듯이, 책에 대한 책이다. 이미 책에 대한 책들은 여럿 나와있다. 그 대부분이 유명한 분들이 쓴 책들이다.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서평꾼이란 단어를 쓰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에게 적용시키기에는 조금 민망한 단어다!)이 풀어놓은 책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단순히 서평을 모아놓은 책은 아니다.

 

이 책의 부제인 '책세이와 책수다로 만난 439권의 책'이란 문장을 보면 낯선 단어인 '책세이'가 눈에 띈다. 쉽게 짐작 할 수 있겠지만, 이 단어는 책 과 에세이를 합친 신조어다. 책에 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기존의 서평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 안에 책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들어가 있다는 개념이다.(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개념은 그렇다!)

 

유명한 소설가나 평론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읽고 쓴 책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의 모음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용감하고 새로운 시도가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묘한 마음으로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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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오늘 오전에 정말 오랫만에 힘을 좀 썼다. 덕분에 어깨와 팔 근육이 긴장해서, 거울을 들여다보면 예전의 꽤 괜찮았던 몸매로 조금은 돌아간 듯 보였다. 최근에 계속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들어서 한동안 달고 살았던 뱃살을 좀 빼고 예전 몸매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해보고 있다.

 

운동도 시간이 있어야 아니 돈이 있어야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기분이 나면 옛날처럼 운동을 좀 해보려고 하는데, 조금 하다보면 뭔가 해야할 일이 생겨서 곧 그만 두어야 한다. 예전에 한창 운동할 때는 대여섯 시간씩 해도 시간이 모자랐다. 지금은 한 시간은 커녕 30분도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육아와 가사노동에 신경을 쓰다보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돈이 많아서 그런 일들(육아와 가사노동 등)에 시간을 뺏기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것도 다양한 운동기구가 많은 헬스클럽 같은데서 말이다.

 

하지만 뭐 언제까지 그런 변명만 늘어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일상에서 틈틈히 운동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요즘 효과를 보고 있는 방법은 걷기와 계단 오르기이다.

 

우선 급한 일은 뱃살 빼기였다. 평소에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유산소 운동을 할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심하고 있던 사이에 어느새 배에 붙은 살이 점점 늘어나서, 아내의 구박이 심해졌다. "몸매 보고 결혼했는데, 결혼하고 보니 그 멋지던 몸매가 다 망가졌다. 속았다!"는 아내의 구박은 요즘 한층 더해졌다. 나도 망가진 몸매가 좋아서 이러고 있는게 아니라고,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받아치지만, 별로 소용이 없다.

 

근육운동은 하고나면 곧 효과가 나타나는데, 뱃살을 빼기 위해 아무리 윗몸 일으키기 등의 복근운동을 열심히 해도, 이미 나온 배가 쉽게 들어가지는 않는다. 어쨌든 유산소 운동이 필요한데, 거기에 투자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다.

 

그래도 최근에 걷는 시간을 좀 늘려보았더니 조금씩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마을버스를 안타고 걸어다니기 시작했고, 버스에서 내릴 때도 일부러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었다. 워낙 언덕이 가파른 동네(달동네라고 부르는 게 더 쉽겠지)에 살아서 더 효과를 보게 된 것 같다.

 

예전에 등산을 무척 좋아하시던 형님 한 분이 제 부실한 다리를 보고(상체에 비하면 하체는 좀 부실한 편이었다.) 가장 좋은 운동은 계단 오르기라는 말씀을 몇 차례나 강조해서 하신 적이 있는데, 요즘 그 말에 절대 공감하고 있다.

 

우리집은 3층(1층이 반지하라서 실제로는 2.5층), 사무실은 4층으로 계단이 많다. 자주 오가는 처가댁도 4층이다. 지하철역을 이용할 때도 무조건 계단으로만 다닌다. 특히 지하 깊은 곳으로 다니는 5호선이나 6호선이 짱이다! 요즘 6호선을 타고 출퇴근 하면서 다리가 점점 더 튼튼해지고 있다. 더불어 뱃살도 조금씩 들어가고 있는 걸 느낀다.

 

퇴근 할 때 지하철 문이 열리면 계단을 열심히 오르기 시작하는데,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면서 걷는 사람들보다 항상 내가 더 빨리 개찰구를 빠져나온다.

 

집에서는 설겆이랑 아기 빨래 등 집안일을 끝내놓고, 아이들을 재워놓고 밤 늦게 시간을 내서 팔굽혀펴기나 아령을 이용해 간단한 근육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결혼 전 몸매로 돌아가려면 멀었지만 이제 시작했으니 한 두어달만 꾸준히 하면 조금은 돌아갈 수 있을것 같다.(두어달이라도 꾸준히 하는게 가장 중요한 문제겠지만!)

 

내가 근육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중학교 때부터였다. 그 시절 내 우상은 이소룡이었다. 이소룡처럼 날렵하면서도 탄탄한 몸매가 되고 싶었다. 이소룡은 잔근육이 많다. 그런 몸매를 만들려면 많은 동작 익히고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요즘 말로 흔히 '몸짱'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보디빌더' 같은 체형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가장 눈에 띄는 근육들을 열심히 단련해서 부피만 키우면 대충 비슷한 몸매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체형은 왠지 둔해보이고, 그닥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소룡과 같은 몸매를 만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술을 익히는 것인데, 중,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무술 같은 걸 배울 돈과 시간이 없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절권도' 책을 빌려서 집에서 열심히 따라해봤지만, 별로 진전이 없었다. 킥복싱을 배우는 친구를 따라 도장에 한번 갔다가, 맘에 들어서 배워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며칠동안 구경가서 열심히 눈으로 동작들을 익혀두었다가, 집에와서 따라하곤 했다.

 

요즘처럼 게임 같은게 없었던 그 당시에 나와 친구들이 가장 열심히 했던 건 축구였지만, 그 다음으로 열심히 했던 건 팔씨름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팔굽혀펴기로 상완을 단련했다. 매일 교실에선 토너먼트 방식으로 팔씨름 경기를 치뤘다. 팔힘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분은 정말 짜릿하다!

 

주말이면 약수터에서 돌과 철봉으로 만든 역기를 들었고, 학교 운동장에선 열심히 턱걸이를 했다. 집에서는 끙끙 소리가 나올 때까지 팔굽혀펴기를 했다. 덕분에 친구들과의 팔씨름에서 거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보디빌딩 선수를 준비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따라 헬스클럽에 갔다가 관장님이 내게 관심을 가진 일이 있었다. 나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웃통을 벗어보라고 했다. 친구에 비하면 내 몸매는 왜소해보일 정도 였기 때문에 쑥쓰러워서 머뭇거렸는데, 괜찮다고, 그냥 한번만 보자고 해서 결국 벗었다. 내 주위를 한바퀴를 돌면서 보시더니 장래성이 있다고, 보디빌딩 선수가 될 의향이 없냐고 물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선수로 키울 아이들을 찾기가 워낙 힘들어서 아무나 보고 다 그런 말을 한 건 아닐까 의심이 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난 그런 체형이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에 딱 잘라 거절했다. 그 헬스클럽엔 가끔 놀러가서 운동하는 법만 익혀두었다. 집에서는 아령도 없고 아무런 기구가 없으니 맨손으로 동작을 따라하곤 했었다.

 

가장 몸매가 좋았던 건 역시 군대를 막 제대했을 무렵이었다. 병장때부터 시간이 남을 때마다 아령과 역기를 들었는데, 두어달만에 제법 효과가 나타났다. 게다가 내가 기관총 사수였기 때문에 평소에도 남들보다 체력훈련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아마도 내가 이상형으로 삼은 이소룡의 몸매에 가장 가까웠을 때가 그때였을 것이다.

 

그 뒤로는 시간이 갈 수록 점점 이상형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래도 결혼하기 전에는 여름이 다가올 즈음 바짝 운동을 해서, 노출의 계절에 어울리는 몸매를 만들어 놓곤 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그 마저도 안하게 되니 점점 몸매가 망가지고, 결국 뱃살이 나온 아저씨 체형이 되고야 말았다!

 

다시 예전 몸매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어쨌든 시작을 했으니 노력해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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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오늘 오전에 책이 들어온다는 걸 알고 오늘은 힘 좀 써야겠구나 생각했다. 지난 주 냉방병으로 시작된 여름 감기가 주말동안 기관지염으로 악화되었다가, 어제부터 조금 나아졌는데, 그래도 몸 상태가 완전히 정상이 아니라서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다. 그래도 내가 책 노가다 경력이 얼만데, 뭐 그리 걱정할 게 있나 하고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편집장님은 오늘 오전에 손님이 와서 면담 일정이 잡혀있다고 했고, 편집부 기자들은 어제 일정이 예상치 못한 일로 새벽까지 늦어져서 오늘 오후에 나오거나, 어쩌면 못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메일 확인을 하고, 주문확인을 하는 등등 오전 일을 보고 있는데, 곧 편집장님의 손님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 후 책이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1층으로 내려가 보니 생각보다 책이 더 두꺼웠고, 그래서 박스 숫자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았다. 게다가 박스 하나를 옮기려고 들어보니, 헉!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다! 배달 기사님도 책이 너무 무겁고 부피가 크니 옮기려면 고생 좀 하겠다고 한 말씀 하셨다. 일단 책들을 차에서 내려서 1층 건물 현관에 쌓아놓는 것만으로 벌써 지쳐버렸다!

 

편집장님은 면담 때문에 본인이 못 도와주시고, 나 혼자 저 많은 책을 나를 수 없으니, 근처 이삿짐센터 등을 알아봐서 짐 옮겨줄 사람을 구해서 얼마인지 알아보자고 하신다. 나는 가까운 곳에 이삿짐센터 등이 있는지도 알 수 없고, 미리 예약을 한 것도 아니고 당장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혼자서 하려고 하진 않을 테고, 적어도 2명을 써야 할 텐데, 그러면 한 사람당 5만원씩, 최소 10만원은 내야 할 텐데, 책 올리는데 그렇게 돈을 들일 수는 없다고 말씀드렸다.

 

결국 나 혼자서 1층에서 4층까지 무거운 책을 옮겨야 했다. 박스 2개를 한 번에 옮겨 보려고 시도하다가 허리를 다칠 뻔 하고, 결국 1개씩 천천히 쉬엄쉬엄 옮기기로 결정했다. 처음 1개 옮겼을 때는 가뿐했다. 2개째는 조금 지쳤고, 3개를 옮기고 나서는 완전히 기진맥진 했다.

 

이 건물에 이렇게 계단이 많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계단에 앉아서 땀을 식혔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데 벌써 땀이 온 몸을 흠뻑 적셔서 셔츠는 물에 담갔다가 입은 듯하다. 젠장, 옷이라도 좀 편하게 입고 왔으면 더 좋았을 것을. 오전에 책이 들어오면, 오후에는 거래처에 들어가려고 평소에 안 입던 긴 바지와 단추와 옷깃이 달린 셔츠를 입고 왔건만, 몸을 쓰는데 상당히 거슬린다. 평소처럼 반바지에 편한 셔츠 입고 왔으면 두 배는 더 빨리 움직일 것 같은데 말야.

 

한 3분의 1쯤 옮기고 나서 사무실로 돌아와 찬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혼자서 다 옮기겠다고 말한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사람을 쓰자고 할까? 아니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럴 순 없다. 잠시 쉬다가 다시 몸을 움직였다.

 

만약 내가 마케터가 아닌 편집부 기자였다면, 돈이 얼마가 더 들어도 그냥 편집장님 결정에 따랐을 텐데, 마케터라는 역할 때문에 제작단가에 유통비용과 유지관리비용을 더하고 어쩌고 저쩌고를 따지다보니, 그냥 혼자 해보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아닌가. 계단을 오르내리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본다.

 

책이 도착한 것이 10시 조금 전이었고, 11시가 조금 넘었는데, 아직 반 도 다 옮기지 못했다. 젠장! 점심 먹기 전에 다 끝낼 수 있을까? 팔, 다리가 후덜거려서 잠시 자리에 앉았다. 물을 마시며 잠시 쉬고, 힘내서 다 해치워버려야지.

 

11시 반쯤 3분의 2를 옮겨놓고 나니, 이제야 자신감이 생긴다. 12시까지는 끝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박스 수를 세면서 시간 계산을 해본다.

 

11시 40분 조금 지나서 편집장님과 면담하던 손님이 일어나셨다. 남은 박스는 7개. 편집장님은 땀에 젖은 내 몰골을 보시면서 이제 본인이 움직일 테니, 나보고는 좀 쉬라고 한다. 몇 개 안 남았으니, 둘이 하면 금방 끝낼 수 있다고 하고 잠시 물만 좀 마시고 시작하자고 말씀 드렸다. 편집장님께서는 1층에서 3층까지 올려놓고, 나는 3층에서 4층까지 올리면서 다시 작업재개! 마지막 남은 박스 2개를 둘이서 1층에서 4층까지 다 옮기고 작업을 끝냈다. 12시가 되기 직전이었다. 혼자 책을 옮기기 시작한지 2시간이 조금 넘었다.

 

그야말로 땀으로 목욕을 했다. 편집장님은 잠깐 움직였는데도 너무 힘들다고, 나보고 너무 고생했다고 하신다. 그래서 내가 땀을 많이 흘렸으니, 점심은 보신할 수 있는 걸로 사달라고 했다.

 

젖은 옷을 선풍기 앞에서 좀 말려보려고 했지만 계속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소용이 없다. 한참을 쉬다가 밥 먹으러 나갔다.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던 샤브샤브 집에서 쇠고기 추가하고 맥주도 한잔 하면서 거하게(!) 점심을 먹었다.

 

원래 오늘 나온 책을 갖고 거래처 방문을 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옷도 신경 쓴 건데, 옷이 다 젖어버려서 도저히 거래처를 찾아갈 몰골이 아니다! 나는 집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고 갈까 생각했는데, 편집장님은 그냥 오늘 오후엔 사무실에 있고, 내일로 방문일정을 연기하라고 하신다. 오후에 편집장님은 외부 일정 때문에 나가시고, 기자들은 오늘 출근 안할 예정이니, 사무실을 좀 지키라는 것이다.

 

조금 전에 편집장님이 나가시고, 혼자 남았다. 젖어서 찝찝한 셔츠를 아예 벗어버리고, 상체는 맨 몸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맘 같아선 바지도 벗어버리고 싶지만, 차마 그러진 못하겠고~) 아주 오랜만에 힘든 육체노동을 하고 땀을 흠뻑 흘렸다. 땀 흘린 뒤에 마신 맥주 한 잔이 참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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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의 끄적임

그냥 2010.07.27 01:36

블로그를 개설한 이유는 뭔가를 배설(?)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하루종일 일상에 지친 몸을 잠자리에 누이기 전에, 잠시 앉아서 그냥 그때 쓰고 싶은 뭔가를 끄적이고 잠들고 싶었다. 그런 끄적임을 일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냥 아무생각없이 끄적이거나 지껄이고 싶은 것이다. 일기라는 이름조차 과분한, 아무런 틀도 형식도 없이 말 그대로 그냥 끄적이는 것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블로그에 글을 쓸때는 자꾸만 잘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냥 쓰면 안될것 같고 뭔가 그럴듯한 말들을 쏟아내야 할것만 같다. 그러니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글을 쓰는 시간도 오래걸려서 왠만큼 여유가 없으면 시작할 엄두조차 내기 어려워졌다.

 

일상이 바쁘고 피곤해질수록 나는 블로그와 멀어졌다. 한동안 들어와보지도 않고 방치했다. 그러다 잊을만하면 한번씩 들어와봤는데, 여전히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계속 놔두었다.

 

그동안 신상에 변화가 많이 생겼다. 새로운 일터에 나가게 되었고, 나를 꼭 빼닮은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는 지난 5년동안 혼자서 독차지했던 엄마와 아빠를 어느날 갑자기 둘째에게 빼앗겼다. 첫째가 무척 힘들어했다. 아내와 나는 갓난아이를 돌보면서, 갑자기 퇴행현상이 일어나 다시 아기가 되어버린 첫째까지 돌보느라 많이 힘들었다. 서로가 피곤하고 힘들다보니 작은 일에도 말다툼을 벌이게 되었고, 서로 감정을 상하는 일이 많아졌다.

 

요즘 주변에 아직 결혼 못한(혹은 안한) 사람들에게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내는 일이 많아졌다. 그들은 나를 부럽다고 말하는데(실제로 부러운건지, 그냥 말로만 부럽다고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나는 오히려 그들이 부럽다.

 

아마 재작년이었던가, 어느 소설가 선배님이 술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다. 가끔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처가에 가는 일이 있는데, 그 날이 가장 행복한 날이다. 아내가 가고나면 곧바로 발가벗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맘껏 어지럽히고 지낸다고 한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고 그렇게 하고싶은 대로 지내다가 다시 아내가 돌아올 시간이 되면 옷을 입고 열심히 집안을 치워놓는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아내가 아이들과 집을 비우는 날만을 고대하며 열심히 일상을 살아간다고 한다.

 

만약 지금 누가 나에게 결혼생활에 대해 묻는다면 그 선배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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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쌓인 숲길

그냥 2010.02.11 12:15

어제 새벽까지 마신 술 덕분에 지끈 아픈 머리를 흔들며 일어났다. 아이는 오늘도 늦잠을 자느라 깨워도 안 일어난다. 달래도 보고 협박도 해보고 강제로 일으켜도 봤는데, 울고 짜증만 내더니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 아내는 몸이 무거워 아이 데려다주기 힘들다며 나보고 데려가 달라는데, 나는 지금 나서도 출근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은 상황. 몇차례 더 아이랑 실랑이를 벌이다가 포기하고 먼저 집을 나선다. 아내는 삐져서 인사도 안 받아준다. 신발을 신고 계단을 내려서는데, 머리가 또 아프다! 아무래도 어제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 나라고 술이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닌데, 이놈의 일이라는게 술이 없으면 진행이 안되는데, 아내는 내가 술을 좋아해서 마신다고 생각한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눈이 쏟아진다. 아차! 등산화를 안신고 나섰다! 집도 사무실도 산동네에 있어서 눈이 오면 움직이기 힘들다. 마침 신고 나온 신발이 또 엄청 미끄러운 신발이다. 올해는 첫 출근길부터 시작해서 1월에만 서너차례나 눈길에 넘어지는 바람에 발과 허리를 다쳤다. 눈 오는 날이면 완전 목숨을 걸고 출퇴근 해야한다.

신발도 걱정이고, 몸 무거운 아내가 아이를 데려갈 일도 걱정이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지를 잠시 고민했다. 시간을 보니 지금 가면 아슬아슬하게 출근시간 안에 도착할 듯 한데, 다시 집에 들어갔다가는 무조건 지각이다. 눈이 쏟아지는 비탈길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동안 고민을 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르고, 다리는 본능적으로 움직여 비탈길을 내려갔다. 아직 눈이 쌓이지는 않아서 걸을만 했다. 이정도면 굳이 내가 되돌아가야만 하는 정도(신발도, 아이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일단 출근하기로 했다. 아내에게 눈이 오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문자를 보내고 발을 재촉했다.

출근길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산길을 20여분 걸어서 가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반대편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이다. 시간상으로는 산길을 걸어가는 쪽이 가장 빠르지만 이렇게 눈이 오는 날이면 좀 고민이 된다. 출근 시간에 맞추려면 아무래도 산길을 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등산화를 신고 왔어야 했는데, 또 한번 후회를 하며 입술을 깨문다.

버스에서 내려서 산길을 접어드는데, 온통 새하얀 세상으로 막 발을 내디뎠다. 쏟아지는 눈. 나무가지 위에도, 길 위에도 온통 새하얀 눈이 쌓여있다. 눈 쌓인 숲길에는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있다. 길 가운데로만 이어진 발자국. 나는 일부러 가장자리 쪽으로 걸으며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으며 걸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지각을 하게 될 상황이었는데, 그 새하얀 세상 속을 천천히 걸었다. 마치 취한 듯 정신이 아찔하다. 어제 마신 술이 아직 덜 깨었나. 온통 하얀 눈 속에서 나는 무슨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한 기분이 자꾸만 든다. 머리속에는 어서 출근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지금 여기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다른 세상이니 출근 따위는 잊으라는 유혹의 목소리가 서로 논쟁중이다.

무심코 시간을 본 순간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지금 뛰지 않으면 지각이다! 발이 저절로 뛴다. 눈이 튄다. 몇번씩 미끄러지다가 다시 뛴다. 숲길을 벗어나는 순간 잠시 발을 멈추고 뒤돌아본다. 새하얀 세상에서 막 벗어났다. 다시 뛰어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고 다시 발을 움직인다. 머리가 흔들린다. 어지럽다. 숨이 턱에 차도록 뛰었지만, 결국 3분 지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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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성향 테스트

그냥 2010.02.08 17:49

그린비 출판사 블로그에 갔다가 철학성향 테스트란 걸 해봤다. 철학에 관심은 많이 있지만, 정작 잘 알지는 못하는 터라 각 질문마다 나타나는 얼굴들이 누구인지 잘 모르고 그냥 순간순간 질문에 충실하게 답했다.

 

 

 

 

테스트는 동양과 서양 두 가지로 나뉜다. 그럼 그 결과는?

 

 

동양편

펼쳐두기..


 

 

서양편

펼쳐두기..

 

뭐 그냥 제목만 보면 내 성향과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문제는 저기 나와있는 사람들 중에 반쯤은 잘 모른다는 것. 실제 내 성향과 얼마나 비슷할지 한번 찾아보고 싶긴 한데,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니 그것 또한 문제로다!

 

아, 그런데 맑스랑 같은 성향에 속한다는 걸 아내가 본다면, '빨갱이'를 잘 알아봤다고 좋아할 게 분명하다. 그런데 불교 성향이 깊은 아내가 싯다르타와 같은 성향이란 걸 본다면 다시 이 결과는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외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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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스트레스

그냥 2010.01.29 13:33

우리나라에서는 일 년에 두 번,'민족 대이동'이 일어난다. 설과 추석. 두 차례의 명절 때마다 온 국민이 고향을(혹은 부모님을) 찾아 움직인다. 부모와 같은 곳에 살지 않는 한, 명절 때마다 고향으로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교통수단이 있어야 한다. 차를 갖고 있다면 차를 타고 가면 되겠지만, 늘 뉴스에서 보듯이 주차장이 되어버린 도로에 아주 오랫동안 꼼짝도 못하고 서 있고 싶지 않다면 차를 갖고 가는 건 위험하다. 그럼 남은 건 비행기, 철도, 고속버스 등일텐데, 비행기는 일단 비싸고, 둘째 공항에서 집까지 거리가 멀기 때문에(아마 비싸다는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일반적으로 고려사항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는 건 철도와 고속버스. 고속버스는 앞서 말했듯이 명절때만 되면 주차장으로 변신하는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특성 때문에 도착시간을 예측하기 힘들다. 평소의 2배, 3배, 4배 등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이 걸려도 아무도 탓할 수 없다. 게다가 도로에 꼼짝도 못하고 갇혀있는 동안 좁은 좌석에서 인내심을 길러야 하며, 배고픔과 화장실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가장 유용한 교통수단은 철도이다. 이동 거리가 멀면 멀수록 이 철도가 가장 좋은 선택이 된다. 그런데 몇 년전 고속철도 라는 것을 만든 철도공사는 기존의 무궁화, 새마을 등을 다 빼버리고 고속철도로 열차 시간표를 도배해놓았다. 선로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굳이 기존 열차들을 줄일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고속철도는 가격이 엄청 비싸지만, 조금 빨리 간다는 장점도 있다.

 

어쨌든 명절 기간에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결론이 났는데, 문제는 이 기차표를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란 말이다. 철도공단에서 일방적으로 명절 표 예약 시간을 정해놓고 공지하곤 하는데, 이 시간을 일반일들이 쉽게 알 수가 없으며,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새벽 일찍 짧은 시간에 끝나버리기 때문에 예약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명절 표는 할인헤택도 받기 어렵다.

 

언젠가부터 명절이 늘 짧았던 것 같다. 연휴가 짧을수록 표를 구하기는 더욱 어렵다. 짧은 기간에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직장인이 맘대로 연휴를 늘릴수도 없는 것이다. 어떻게든 그 기간 안에 고향을 다녀와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표는 없다. 젠장 대체 어쩌란 말인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던 해 설날이었다. 그땐 아직 혼자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표를 구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쁜 일에 쫓기다보니 결국 기차표를 구하지 못했고, 연휴 첫날 임시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을 향했다. 좌석이 좁아서 불편한 일반고속버스였고, 내 옆 자리에는 젊은 여성분이 타고 있었다. 그날 14시간이 걸렸던가, 15시간이 걸렸던가.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암튼 점심무렵에 버스를 탔는데, 새벽 늦게 도착했다. 잠을 자고 또 자도 버스는 계속 멈춰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도중에 눈이 왔다. 배도 고프고 화장실도 가고 싶었고, 자세가 불편해서 미칠 것 만 같았다. 게다가 옆자리의 낯선 여성이 신경쓰였다. 그 지옥같았던 14시간(혹은 15시간)을 버틴 후에 내가 내린 결론은 다시는 고속버스를 선택하지 않겠다였다.

 

시간이 흘러 해마다 두 번씩, 명절은 돌아오고,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내는 서울사람이고, 장인어른의 고향은 이북이라, 명절에 어디 가본 경험이 없었다. 먼 부산까지 동행해야 할 아내를 편하게 모시기 위해 나는 어떻게든 열차표를 구해야 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표를 구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예약 대기를 걸어놓았던 표가 생기거나, 밤늦게 출발해서 새벽에 도착하는 표를 구하는 등 그 이야기를 다 하려면 끝도 없다!) 정말 어떻게 해도 표를 구하지 못한 경우, 고속버스를 타고 간 적도 있고, 직접 차를 몰고 간 적도 있다. 당연히 고생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아내는 늘 명절이 다가오면 빨리 표를 구하라고 나를 닥달한다.

 

나라고 일찍 표를 구하기 싫어서 가만 있는 건 아니다. 일단 일터에서 명절 연휴에 대한 계획이 나와야 한다. 앞에 하루를 더 쉬게 해줄지, 혹은 뒤에 하루를 더 쉬게 해줄지 아니면 아예 앞, 뒤로 하루씩을 붙인다던가, 아예 더 쉬는 건 없이 딱 연휴만 쉰다던가 그런 방침이 정해져야 표를 구할 것이 아닌가.

 

이번에도 일터의 방침을 기다리다가 결국 표를 구하는 시기를 놓쳤다. 뒤늦게 부랴부랴 찾아보지만 '매진'이라는 글씨만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을 뿐,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말 명절때마다 이 짓 해먹기 짜증난다! 명절 당일이 되면 또 왔다갔다 하느라 힘들고, 가서 이런저런 집안 일 때문에 힘들고 온갖 스트레스를 다 받게 될텐데, 명절이 되기 한참 전부터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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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돌아왔다. 제다이가 돌아온 것도 아니고, 왕이 돌아온 것도 아니지만, 거창하게 제목을 써본다. 지난번에도 끄적거렸듯이(엄마 없는 하늘 아래) 지금까지 해마다 한번씩 다녀왔던 아내의 해외출장 중에서 올해가 가장 힘들었다. 지금 나는 입안에 두 군데 잇몸이 헐고, 오른쪽 위 사랑니 있는 자리가 부어서 아프다! 그리고 피로를 이기지 못한 몸에 찬 바람이 불어닥쳐 결국 감기에도 걸려버렸다. 아이는 아이대로 코를 훌쩍이고 있다.

 

아내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긴 비행시간의 피로와 시차적응 때문에 일찍 잠들어 버려서 더 자세한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몇 가지 선물을 사왔는데, 아이에게는 약속했던(아빠 말 잘 듣고 지내면 사준다고) 쵸코렛을, 나에게는 '얼그레이' 홍차를 사왔다.

 

아이는 아내와 함께 있는 것 만으로 좋아서 어쩔줄을 모른다. 계속 생글생글 웃는 녀석. 작년에는 엄마가 없어도 엄마를 많이 찾지 않았는데, 나중에 엄마가 돌아온 뒤에는 아빠를 무시하고 엄마만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올해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변함없이 아빠에게도 애교를 보여준다.

 

아, 그리고 지난 주에 경황이 없어서 미처 끄적이지 못했던 중대한 사건! 제브라 다니오 3마리가 2~3일 간격을 두고 차례대로 죽어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물고기 한마리도 없는 텅빈 수조만 책상위에 올려져 있다. 아내도 돌아와서 이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애초에 4마리였던 제브라 다니오 중에 한 마리가 추석즈음에 죽었다. 그리고 새로 어항을 사고, 여과기와 산소기를 샀다. 그때 새 어항속에 넣고 보니 남은 3마리가 모두 아가미가 빨갛게 되어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검색해봤더니 병에 걸린 제브라 다니오는 아가미가 빨갛게 된다는 글을 읽었다. 그래도 그때는 설마 싶었다. 처음에 죽은 녀석은 너무 좋지 않은 환경에 방치해두어서 그랬던 거라고, 이제 다른 녀석들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동안 아무일도 없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외국으로 떠나고 곧바로 한 녀석이 죽었다. 그리고 2~3일 간격으로 남은 두 녀석도 다 죽어버렸다. 무척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죽은 목숨은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다.

 

어제 아이가 빈 어항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가 '아빠, 제브라 다니오가 다 죽어서 너무 슬퍼요!'라고 말했다. 나는 달리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 가만히 안아주었다. 오늘은 아내가 빈 어항을 보다가 너무 허전하다고, 다시 뭔가를 사다 넣자고 한다. 글쎄, 좀 생각해보자고 답했다. 일단 이 분야에 너무 문외한이라서 또 새 생명을 죽이게 될까봐 그게 두렵다.

 

주인 잘못 만난 죄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제브라 다니오 4마리에게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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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새 식구가 된 네 마리의 물고기 얘길 했었다. 그땐 워낙 경황이 없던 때라 그냥 임시로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넣어두고 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알아본 바로는 제대로 된 수조에 여과기와 산소기를 달아줘야 한다고 하던데, 다음에 해줘야지 하고 잠시 미뤄놓고는 계속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 생각지도 않게 키우게 된 탓에 별로 관심도 없었고, 괜히 잘 모르는 상황에서 돈을 쓰기도 아까웠다.

그래도 이 놈들을 죽일수는 없으니 때맞춰 먹이를 주고, 잊을만하면 한번씩 물도 갈아주고 했다. 여과기와 산소기가 없어서 그런지 물은 금방 더러워졌고, 이러다가 떼죽음 당하는 거 아닌가 겁이 나기도 했지만, 곧 여유가 생기면 모두 다 장만해주마 라고 말만하고 또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그 사이 우리집은 이사를 했고, 더 좁아진 공간에 적응하고, 짐을 정리하느라 또 정신이 없었다. 달이 바뀌어 10월이 되어버렸고, 추석이라 집을 비우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집에서 나가기 직전에 이 녀석들이 혹시 굶어 죽을까봐 먹이를 좀 많이 뿌려주고 나서긴 했지만, 설마 무슨 일이 생기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일요일 밤에 집에 돌아와보니, 한 마리가 죽어서 배를 드러낸 채 수면위에 둥둥 떠있었다. 물도 엄청 더러웠다. 시체를 치우고 물을 갈아주고 먹이를 주고나서 빨리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다 곧 다 죽어버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떤 녀석이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그새 이 놈들이 조금 커졌고, 또 물이 금방 더러워져서 알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오늘 드디어 어항과 여과기와 산소기를 장만했다. 집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조금 규모가 있는 가게였는데,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불친절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처지라 이것저것 물어보고 천천히 생각을 좀 해봐야했는데, 다짜고짜 '플라스틱'이냐 '유리'냐를 고르라고 하고, 가격대를 대충 얘기해 달라고 재촉했다. 내가 잠시 생각하는 동안 이 사람은 갑자기 안쪽으로 가 버리더니 딴 일에 열중했다. 안쪽에 있던 여성분에게 다시 용건을 말했다. 이 사람도 마찬가지 태도였다. 뭐 깊이 생각해봐야 별로 아는 것도 없으니 대충 급하게 골라야 했다. 그래서 모든 기준은 가장 싼 놈으로 해서 꼭 필요한 세 가지를 샀다.

집에와서 설치를 해보니 이제서야 물고기를 기른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 전에 통에 들어있을 때에는 옆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아서 늘 위에서 내려다 보았다. 그래서 녀석의 앞모습이나 옆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아! 인터넷으로 사진을 몇 장 보았기에 대충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는 있었다!)  제대로 된 어항에 넣어주니 녀석들이 너무 깨끗하게 잘 보였다.

드디어 죽은 놈이 어떤 녀석인지 알아냈다. 바로 '무니'였다. 이것도 우연인지,  종의 이름을 따서 지은 '제브라', '다니', '오'는 살았는데, 무늬가 예뻐서 지은 이름의 '무니'만 죽었다. 어쨌든 무니의 장렬한 전사로 인해 남은 세 마리는 쾌적한 환경을 얻게 되었다.

가만히 녀석들을 들여다보다보면, 사람들이 왜 비싼 열대어를 사서 키우는지 알 수 있을것 같다. 특히 좋은 어항을 갖고 있으면 예쁜 물고기를 갖고 싶어지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제일 싸구려 어항인데도 여기에 좀 더 예쁜 다른 물고기를 사고 싶어지는 내 마음을 깨닫고 깜짝 놀라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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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다시 서울로 들어와서 특별한(!) 시민이 되긴 했지만 그 전까지 대략 3년 조금 넘는 시간동안 나는 경기도민이었다. 그렇지만 일터는 늘 경기도가 아닌 서울에 있었기에, 서울로 출퇴근을 해야 했다. 긴 시간을 지하철 속에 있다보니 뭔가 집중할 만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원 지하철 속에서 사람들 틈에 꽉 끼어 있다보면 시선을 둘 곳도 마땅치 않고, 이런 저런 소음이 신경을 거슬리게 하기도 한다. 시계나 노선표를 보다보면 왜이리 시간은 더디게만 가는지. 왜이렇게 전동차는 느리게만 움직이는지 따위의 불평만 하게 되고, 눈을 유혹하는 온갖 광고판들은 시선을 두기에는 너무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생각한 것이 책이다. 내 출퇴근 시간은 책을 읽어도 될만큼 충분히 길기 때문에 시간 보내기에 딱이었다. 하지만 아예 사람이 많으면 책을 펼쳐 들고 있을 여유 따위 있을 리가 없다. 그런 날에는 어쩔수 없긴 하다.

다시 책 얘기로 넘어와서, 지하철에서 읽을 책은 뭐든 별로 상관이 없지만, 너무 재밌는 책이나 웃기는 책은 자제 하는 게 좋다! 예전에 이시백선생님의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를 읽다가 갑자기 터져나온 웃음을 참지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 XX놈 취급 당한 기억이 있다.

내 생각에 지하철에서 읽기 가장 좋은 책은 잡지다. 크기와 두께 그리고 각 글의 호흡이 짧아서 언제든 꺼내 읽기에 좋다! 일단 내가 읽는 잡지들을 기준으로 보면, <작은책>이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는 딱 좋다! 크기도 작고, 무게도 가볍다! 다만 달마다 읽을거리의 편차가 조금 큰 편이라는게 흠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잡지 <녹색평론>도 지하철에서 주로 읽고 있다. 늘 읽을만한 내용들이 잔뜩 들어있어서 <녹색평론>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서는 날에는 발걸음마저 가벼워 진 느낌이다. <삶이 보이는 창> 역시 지하철에서 읽기에 딱 좋다! 글의 느낌이나 길이를 고려해봤을 때, 지하철에서 읽기에 이만한 잡지가 없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줄여서 <작아>)는 예전에 비해 크기가 커져서 갖고 다니기 조금 불편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주간지보다는 작기 때문에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오래전부터 작은 크기의 <작아>를 봐왔기 때문에 커진 판형의 <작아>가 무척이나 낯설었다. 그래서 유난히 크기에 민감한 느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작아>도 내 출퇴근길을 즐겁게 해주는 멋진 잡지임에 틀림없다! <창작과 비평>은 예전에는 열심히 들고 다니며 읽었는데, 최근에는 조금 시들해졌다. 일단 갖고 다니기 조금 무겁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읽기에는 글이 조금 어렵기도 하다. 그래서 점점 시간이 갈수록 <창비>는 내가 읽는 잡지 중에 가장 손이 안가는 잡지가 되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며칠 전에 내 손에 들어온 <g블로그>도 갖고 다니면서 읽기에 딱 좋다. 무려 인문 스트리트 매거진이란 부제가 붙었다. 멋진 블로그와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어서 자주 방문하는 그린비 출판사에서 만들었다. 그리고 무료다! 블로그나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보내준다고 한다. 전부터 알고 있던 것이었지만, 그린비 식구들 생각보다 센스 짱이다! 게다가 다들 왜이렇게 글을 재밌게 잘 쓰는 것인지! 마구 샘솟는 질투심을 억누르느라 혼났다!

이제 출근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지하철 안에서 잡지 읽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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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어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모 박물관에 행사가 있어서 갔다. 아직 아이의 새 어린이집을 정하지 못해서 이번주는 아내와 내가 번갈아 데리고 다니는 중인데, 어제는 내가 데리고 갔다. 그 이틀전인 화요일에는 아이와 함께 사무실에 출근했다. 출근길에 충무로에 들러서 인쇄물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아이와 함께 충무로로 아침나들이를 하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아이는 대체로 얌전히 잘 놀았다. 이면지에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고 그림책을 읽고 지냈다. 점심 먹은 후에는 낮잠도 1시간 반정도 잤다. 아직 아이가 어릴 때는 사무실에 데리고 나오면 나는 일을 거의 못하곤 했었는데, 이젠 많이 자라서 혼자서도 알아서 잘 놀아주니 참 다행이다.

 

어제는 하루종일 행사장에 있을 예정이라서 구경거리도 많고 아이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고 해서 안심하고 데려갔다. 행사장은 예상대로 사람이 별로 없고 썰렁했다. 대충 설치를 마치고 한바퀴 돌아보았다.

 

간간히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면서 아이랑 놀아주다보니 금방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 박물관에는 식당이 총 3곳이 있었는데, 하나는 제법 비싸보이는 한식당이었고, 또 하나는 푸드코트였는데, 역시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카페 겸 식당으로 비교적 간단한 식사를 팔고 있었다. 먼저 식사를 한 활동가가 거기서 김밥을 팔더라는 얘길 하는 바람에 아이가 김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럼 아이는 김밥을 먹이고 나도 간단하게 먹자는 생각에 가장 멀리 있는 카페 겸 식당에 갔다. 2천원짜리 김밥과 5천원짜리 새우볶음밥을 시켰다. 간단한 걸 먹으려 했는데, 아이가 무척 좋아하는 새우볶음밥을 보니 먹여주고 싶어서 조금 비쌌지만 개의치 않았다. 곧이어 음식이 나오는데 그릇에 달랑 김밥만 그리고 볶음밥만 담겨 있었다. 다른 밑반찬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살펴보니 숟가락, 젓가락과 단무지와 김치를 직접 담아가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비싼 밥값을 받고도 고작 단무지와 김치 몇조각만 주고, 그것도 직접 담아가라는 행태에 조금 화가 났지만 참았다.

 

그리고 물을 떠가려고 정수기를 보았더니 주위에 컵이 없었다. 계산대에 가서 컵은 어디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매니져급으로 보이는 아줌마(옷을 차려입은)와 매장 정리 등의 일을 하는 아줌마(앞치마를 입은) 두 사람이 동시에 컵은 원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럼 물을 어떻게 마시라는 말이냐고 물었더니 정수기 위에 보면 종이 컵이 있단다. 컵모양으로 된 종이컵이 아니라 작고 납짝한 종이봉투를 손으로 벌려서 물을 겨우 한모금 담을 수 있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바로 그 종이컵(이걸 컵이라고 불러야 하나?)이 있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일단 참았다. 그냥 물을 마시려는 게 아니라 밥 먹으면서 물을 먹어야 하니 컵을 달라고 했다. 이 여자들 말을 못알아 듣는건지, 상대하기 귀찮다는 것인지 막무가내로 우린 원래 컵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다 저걸로 알아서 먹는다. 그냥 알아서 처 먹어라 이런 뉘앙스의 말만 반복한다. 그래서 나는 상식적으로 식당에 밥먹으러 왔는데, 컵을 안 주는게 말이 되느냐? 장난하지 말고 빨리 컵을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신종플루 때문에 컵을 놓을 수 없다!'는 말이다. 참 말 안통하는 사람들이다! 아니 그럼 신종플루 무서워서 다른 식당들은 어떻게 컵을 주나? 아니 아예 숟가락도, 젓가락도, 밥그릇도 아무것도 주지 말고 다 일회용으로 바꾸지 왜 컵만 안주나?

 

조금 흥분을 하기 시작한 내가 약간 언성을 높여서 따지니 묻는 말에 대답은 않고 무조건 우린 원래 컵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더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 인종들이다! 이런 인간들은 상대하면 할수록 나만 더 피곤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를 내기 보다는 그냥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컵이 없으면 물을 담아 마실 그릇이라도 달라고 했다. 아이랑 밥을 먹어야 하는데, 저 얇은 종이 컵에 겨우 물 한모금 담아소 조심스로 손에 받치고 밥을 먹으란 말이냐? 대체 밥은 어느 손으로 먹으란 말이냐고 했더니 그제서야 일하는 아줌마가 저쪽에 앉은 아이를 한번 보고는 주방으로 향한다. 그 와중에도 옷을 말끔하게 입은 아줌마는 다른 아이들도 다 저걸로 물 마셨다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내가 한번 째려보니 다시 입을 다문다. 진짜 짜증나는 인간들이다! 국그릇으로 쓰는 작은 그릇을 받아서 물을 담아왔다.

 

그런데 밥을 먹고 있자니 또 화가 난다. 김밥을 말은 밥이 냉장고에 있던 밥이었던 모양인지 차가워서 맛이 하나도 없다. 재료도 몇 개 되지도 않고 밥도 차가운 김밥 한 줄을 2천원씩이나 받아 처먹다니! 게다가 5천원씩이나 받아먹은 새우볶은밥은 또 어떤가? 새우를 눈씻고 찾아봐도 없어서 밥 다먹을 때까지 세봤다! 겨우 2조각 나왔다! 내가 2마리가 아닌 2조각이란 단어를 쓴 이유는 손톱만한 냉동새우가 온전한 2마리가 아닌 반이 잘려진 2조각이 나왔기 때문이다. 맛이 없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한번 더 따져야하나 생각하다가, 이번에 따지면 곱게 못 넘어가고 싸움이 될 것 같은데, 아이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망설여져서 참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싸웠어야 적어도 그 인간들이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기라도 했을텐데 싶어서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막상 그 순간에는 좀 귀찮았다! 말이 안통하는 상대를 붙들고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봐야 나만 미친놈 취급 받는게 아닌 가 싶기도 했다. 상식이 없는 인간들에게는 오히려 상식을 가춘 인간이 몰상식한 인간으로 비쳐지는게 당연하다.

 

그 인간들이 왜 상식을 갖추지 못했는지는 내 알바 아니다. 지들이 상식이 있던 없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상관이 없다. 그런데 그 몰상식한 인간들이 나에게 피해를 입혔기 때문에 나는 몹시 불쾌하고 짜증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냥 재수없었다고 넘겨버리기에는 그 순간의 화가 무척 컸고, 심지어 신종플루까지 들먹여주시는 센스가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렇게 자판을 두드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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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서울 재입성

그냥 2009.09.21 14:53

경기도민이 된 지 대략 3년만에 다시 서울시민이 되었다. 그 사이 전세값은 엄청나게 올라서 거의 2배가량 오른 것 같다. 신문에서 '전세대란'이라고 떠드는 말들을 그냥 흘려들었는데, 막상 내 일이 되고 나니 참 황당하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부터 집을 알아보는데, 돈을 훨씬 더 올려봐도 그전에 살던 수준은 어림도 없다. 결국 계속 변두리로 물러나다가 한참 북쪽으로 와서 겨우 집을 구했다. 집은 더 좁아졌고, 교통은 더 불편해졌지만, 그래도 서울로 들어왔으니 출퇴근기 거리 자체는 줄어들 것이다.

 

짐을 넣으면서 보니, 그냥 비어있는 집을 볼때보다 집이 훨씬 더 좁았다. 큰 가구들은 어떻게 끼워맞춰 넣었는데, 당장 자주 쓰지 않는 물건들은 옥상 올라가는 복도 한 켠에 쌓아놓아야 했다. 거기도 자리가 없어서 비를 맞아도 되는 것들은 아예 옥상으로 올려버렸다. 일단 대충 짐들이 다 들어오긴 했는데, 이사를 끝내고 이 작은 집에서 살아갈 생각을 하니 참 답답했다.

 

뭐 어쩌겠는가! 비정상적으로 집 값이 비싼 서울에서 특별한(!) 시민으로 살아가려면 돈 없는 처지에 작은 집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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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야근

그냥 2009.09.17 22:05

새 일터에서는 아직 야근을 많이 하지 않았다. 집이 멀어서이기도 하고, 이젠 좀 야근 안하고 지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있다. 그리고 예전 일터에 비해 업무량 자체가 많이 줄었다.

 

오늘은 아주 오랫만에 야근을 했는데, 낮에 집중이 안되어서 딴짓을 좀 하기도 했고, 더 미루기 전에 처리할 일이 있기도 했다. 근데, 한 7시쯤 되어서 슬슬 배가 고파졌고, 마침 옆자리의 동료가 감자를 삶았다고 해서 함께 먹었다. 그리고 자원활동을 해주시는 분이 한 분 오셔서, 그 분은 라면을 끓여 드셨다.

 

자원활동가는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오래 전부터 여기서 자원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퇴근 후 서너시간씩 여러가지 일들을 해주신다. 서로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만나게 된 건 처음이라 인사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헉! 한참 얘기하다가 문든 나이 얘기를 하시면서 58년 개띠라고 하신다. 그 정도로는 안 보였는데, 동안이시다. 문득 서정홍 시인의 <58년 개띠>라는 시가 생각나서 그 얘기를 잠깐했다.

 

그렇게 먹으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윽! 일하려고 남았는데, 밥(아니 감자)먹느라 한 시간을 허비하다니! 열심히(아니 딴짓도 가끔 하다가) 남은 시간을 보내고 이젠 집으로 가야겠다! 집에 가면 12시가 다 되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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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대 탈출

그냥 2009.09.14 22:48

새 식구가 된 네 마리의 물고기들을 위해 자갈을 씻어서 넣어주고, 물을 갈아주다가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잠시 녀석들을 담아둔 대야에서 한 놈이 펄쩍 뛰어오른 것이다. 화장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열심히 자갈을 씻고 있다가 아내가 뒤에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한 놈(너무 놀라서 어느 놈인지 미처 자세히 보지도 못했다!)이 갑자기 물에서 펄쩍 뛰어 올랐다. 첫 시도에서 녀석은 다시 대야로 떨어졌는데, 자신감을 얻었는지 곧바로 다시 뛰어 올랐다. 이번에는 탈출에 성공했다. 욕실 바닥 타일 위로 내려온 녀석은 파닥파닥 거리며 몇 번을 더 뛰어 올랐다. 아내는 뒤에서 어서 잡으라고 소리를 질렀고, 나는 얼떨결에 손을 뻗어 보았으나, 녀석은 유유히 내 손길을 피해 도망다녔다. 몇 번이나 헛 손질을 하고, 이 놈이 물이 말라서 혹은 숨을 쉬지 못해서 죽는 건 아닐까 불안해질 때쯤, 내 앞에서 펄쩍 뛰어올라 다시 대야 속으로 들어갔다.

 

안도의 한숨을 잠시 내쉬며 황당하고 허탈한 기분으로 멍하게 있는데, 곧이어 또 다른 한 놈이 물 밖으로 뛰어 나왔다. 요 조그만 놈들이 어쩜 그렇게 힘이 좋은지 엄청 높이 뛰고, 엄청 빨랐다. 이번에는 나도 좀 요령이 생겨서 너댓번 헛손지을 한 후에 녀석을 잡아서 다시 대야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뛰쳐 나오지 못하도록 큰 대야로 덮어 버렸다.

 

다시 자갈을 씻으며 문득 '니모' 생각이 났다. 화장실 변기에 놓아준 니모가 무사히 바다로 돌아가는 장면을 본 아이들이 따라 하느라 수많은 물고기들이 죽었다는 괴담같은 소식을 들은 기억이 있다.

 

아이에게 니모를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다음에 보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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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새 식구

그냥 2009.09.14 01:01

우리집에 새 식구가 생겼다! 그것도 넷이나. 지난 주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플라스틱 컵에 물고기를 한마리 담아갖고 왔다. 아마도 과학시간에 작은 어항 꾸미기를 하고 물고기를 받은 모양이다. 컵 바닥에는 여러가지 색깔의 아주 조그만 자갈들이 깔려있고, 플라스틱 수초도 글루건으로 붙여놓았다. 물속에는 정말 조그만 물고기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아이는 아무생각이 없이 선생님이 주는 걸 받아왔겠지만, 아내와 나는 당황스러웠다. 우린 물고기를 키워본 적도 없었고, 키울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물고기 한마리. 제대로 된 어항도 없고, 그저 플라스틱 컵에 든 물고기 뿐이라서 키우고 싶은 맘도 생기지 않았다. 아내는 근처 공원에 있는 작은 호수(연못?)에 놓아주자고 했다. 붕어 밥이라도 되도록. 나는 귀찮아서 그러라고 했는데, 아이가 안된다고 울면서 고집을 부렸다.

 

며칠이 지나도록 우린 그 녀석을 방치하고 있었다. 밥도 안주고 놔뒀는데, 죽지도 않았다. 아내는 그 녀석이 혹시 죽으면 어쩌냐고 걱정을 하다가 결국 물고기 밥을 사왔다. 그리고 그 녀석의 이름을 알아냈다. '제브라 다니오'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몸에 얼룩무늬가 보이는데, 그래서 이름에 '제브라'가 들어가나보다.

 

암튼 이 녀석 먹이까지 사왔으니 이제 버리기는 아까운 상황이 되었고, 며칠동안 보다보니 조금 익숙해져버려서 그냥 길러보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런데 아무래도 조그만 플라스틱 컵이 너무 작고, 한마리만 두기도 좀 마음에 걸렸다.

 

지난 토요일 다른 물건들을 사러 마트에 갔다가 애완동물 코너에서 '제브라 다니오'들을 발견했다. 3마리 2천원. 물고기 가격 같은 건 잘 모르니 비싼 건지 싼건지 알수가 없지만, 일단 혼자인 녀석을 위해 친구들을 데려가기로 했다. 그리고 어항이나 수조를 하나 살까 하고 둘러봤는데, 너무 비쌌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그냥 나왔다.

 

집에 큰 플라스틱 통이 있는데, 그 걸 비우고 깨끗이 씻은 다음, '제브라'들을 풀어놓았다. 갑자기 4마리가 되어버리니까 처음부터 있던 녀석이 어느 놈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한 마리만 있을 때는 비교적 얌전한 듯 하더니(워낙 컵이 작아서 움직일 공간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4마리가 되고 나니 엄청 활발하게 돌아다녔다.

 

이 녀석들 엄청 빠르다! 마치 순간이동(텔레포트) 하듯이 옮겨다니는데, 먹이를 살짝 뿌려주면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면서 먹이를 먹어댄다. 일요일에는 통에 넣어줄 자갈을 사왔다. 바닥에 다 깔리지도 않을 작은 자갈 몇 개로는 도무지 이상해서 자갈 1킬로그램을 사왔다. 자갈을 바닥에 깔아주고 나니 그나마 좀 봐줄만 했다.

 

처음 사왔을 때는 전혀 구분할 수 없었는데, 계속 자세히 들여다보니 몸집과 지느러미의 크기와 얼룩의 색깔이 서로 미묘하게 달랐다. 하루가 지나서야 4마리 모두를 각각 구별할 수 있었다.

 

아내와 아이는 이름까지 다 지어줬다. 제일 큰 놈이 '제브라', 그 다음 큰 놈이 '다니', 작은 놈들 중에 약간 회색 빛 얼룩을 가진 놈이 '오', 밝은 색 얼룩을 가진 놈이 '무니'라고 한다. 종의 이름을 갖고 각 3마리의 이름을 붙여주고 마지막 하나는 무늬가 예쁘다고 '무니'란 이름을 붙였다.

 

처음엔 몰랐는데, 4마리가 서로 싸우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것도 은근히 재밌다. 몇 번이나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한참동안 들여다보고 있다가 깜짝 놀라곤 했다. 4마리가 지내기에는 조금 좁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럴싸한 어항이나 수조를 사주지 못해 조금 미안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그럭저럭 지낼만 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잘 자라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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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그냥 2009.09.10 16:36

어제는 아침에 무척 좋은 소식을 들었다.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좋았다. 하루의 시작이 좋아서 뭐든 다 잘될 것 같았다. 출근길에 지하철과 버스가 평소보다 늦게 도착해서 10분쯤 늦었지만, 그정도는 흔히 있는 일이므로 개의치 않았다.

 

오후에 국회에 일이 있어서 달려갔는데, 검문을 하는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정당한 사유를 말하고 들어가려 했지만, '만차'라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안에 들여보내주기만 하면 주차공간은 알아서 찾겠다고 했지만 들여보낼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럼 의원회관에서 짐을 싣고 와야 하는데, 안들여보내주면 어떻게 하냐고 따졌는데, 나를 막아선 경찰은 그저 본인 소관이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쩔수없이 차를 돌려서 그 일과 관련된 분과 통화를 했다. 지금 꼭 짐을 실어야 한다고 다시 말해보라는 말만 할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주변을 한바퀴 돌아서 다시 국회 정문으로 진입했다. 아까 나를 막았던 경찰 말고 그 옆쪽으로 접근했다. 이번 경찰도 역시 처음에는 '만차'라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짐을 실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더니 조금 망설이다가 그럼 들어가라고 말해줬다. 마침내 들어오긴 했지만 참 기분이 나빴다. 그렇게 허비한 시간이 30분 가까이 되었다.

 

저녁쯤에는 또 다른 곳에서 짐을 싣고 사무실에 들어가야 했다. 퇴근시간이라 차가 막혔다. 약속한 시간보다 좀 늦게 도착했는데, 내가 실어야 할 짐들이 다른 곳에 있다고 했다. 한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안내를 했다. 그런데 짐이 있는 장소가 일방통행로 중간쯤이었고, 오토바이는 그냥 먼저 진입해버렸다. 나는 좀 망설이다가 일단 따라들어갔는데, 곧 반대편에서 나오는 차들 때문에 후진으로 차를 빼줘야 했다. 일방통행로의 반대편에서 진입하려면 엄청나게 먼 길을 돌아야 한다는데, 오토바이가 알아보고 오겠다고 먼저 가고, 나는 길 옆에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7시 반이 넘어서고 아직 저녁도 먹지 못한 데다, 계속 짐을 옮기느라 몸이 엄청 피곤했다.

 

게다가 사무실에서는 급한 일로 이 차를 써야 한다고 빨리 들어오라는데, 길을 알아보겠다고 간 오토바이는 몇 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어쨌든 짐을 싣고 가야하는데, 사무실에서는 급한 일이니 짐은 다음에 옮기고 그냥 먼저 오라는 것이다. 이 짐을 가지러 오느라 차도 막히고 엄청 고생을 했는데, 여기서 그냥 오라니..... 참 난감했다. 일단 알겠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고, 오토바이가 계속 안나타나서 애초에 짐을 가지러 갔던 곳으로 전화해서 오토바이 탄 분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 분은 다른 길은 너무 돌아야하니까 그냥 일방통행로를 역주행해서 들어오라는 것이다. 차가 별로 없을때 그 분이 차를 막아주겠다고 확인을 받고 들어갔다. 마침내 짐을 실었는데, 이 짐이 또 엄청나게 많고 무거웠다.

 

우리 사무실은 꽤 경사가 급한 언덕에 위치한 건물 3층이다. 차는 골목 입구까지 밖에 들어올 수가 없다. 입구에 차를 대놓고 짐 나를 사람들을 불렀다. 남자 3명이서 짐을 옮겼는데, 처음 서너번은 좀 힘들어도 쉬지 않고 움직였는데, 나중에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허리가 아파왔다.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무거운 짐을 옮겨야 하는 지금 입장이 막노동을 하던 옛날을 떠올리게 했다. 마침내 짐을 다 옮기고, 비를 맞은 것 처럼 땀에 젖은 머리칼과 셔츠를 바람에 말리며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오늘 참 계속해서 일이 꼬이기만 하는 듯 했다. 오늘따라 길을 찾아 다니다가 신호위반을 하거나 접촉사고가 날 뻔한 일도 유난히 많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국회에서 중요한 것을 잊고 그냥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신분증이다.

 

의원회관 건물에 들어가려면 무조건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받아야 한다. 짐을 싣고 시간에 쫓겨 출발하느라 신분증 교환을 깜박 잊은 것이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지 스스로가 참 한심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어쩌랴!

 

마치 현진건 선생의 소설 '운수 좋은 날' 같은 기분이 들었다.(물론 소설 내용과 비교할 바는 못되지만) 짐을 다 옮기고 사무실을 나선 시간은 거의 9시가 다 되어 있었다. 배가 무척 고팠다가 한바탕 몸을 움직이고 나서 다시 긴장이 풀리고 나니 오히려 배고픔이 사라져 버렸다. 집에 가려면 다시 2시간 가까이 걸리니 근처에서 일단 배를 채워야 했다. 입맛은 없지만 배는 음식을 바라고 있는 느낌이 참 묘했다. 배를 채우고 피곤한 몸을 전철에 실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많았다. 눈만 감았다 뜨면 집이기를 바라면서 선채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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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옮긴 일터에서 내 자리에 놓인 컴퓨터는 메모리 용량이 무척 작아서 인터넷 익스플로러 창 하나 띄우는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 클릭하면 곧바로 화면이 뜨는 시스템에 익숙하던 나는 조금 답답했다. 그래봐야 일이분 남짓 걸릴텐데, 그거 못 기다리고 조급해하는 나 자신이 조금 웃기다 생각하며 인내심을 먼저 길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인터넷 창 하나, 한글문서 파일 두어개, 엑셀파일 두어개, 윈도우 탐색창 하나 띄워놓고 일하다보면 점점 더 느려져서 나중에는 컴퓨터가 아예 멈춰버리는 것이다. 고장난 건 아니고 씨피유가 내가 내린 명령들을 열심히 처리하고 있는데, 그 처리속도가 너무 느려서 일시적으로 화면은 멈춰있는 것이다.

한창 열심히 일하다가 갑자기 멈추면 참 난감하고 뻘쭘하다. 그런데 한두번도 아니고 좀 쓰다보면 자주 그러니 보통 인내심으로는 될 일이 아니다.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해달라고 요청했다. 대략 3일 정도 사용한 다음의 일이다.

컴퓨터 본체를 하나 새로 구입하기로 했는데, 아직 알아보는 중이고 아마 다음주 즈음에나 새 컴퓨터를 받을 수 있을 듯하다. 그때까지는 어쨋든 인내심을 기르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그런데 마침 새 일터로 첫 출근하기 전날 집에서 사용하던 컴퓨터가 고장나버렸다. 직접 고쳐보려고 한 이틀동안 만져봤지만,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어서 잘 아는 분께 수리를 의뢰했다.(물론 공짜로) 집 컴퓨터는 지금 고치는 중인데 그 분이 바쁘셔서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공짜니까 불평하기 힘들다!) 그래서 마침 컴퓨터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일터 밖에 없다. 이 느려터진 컴퓨터로 일도 하고 가끔 시간내서 딴짓(주로 웹서핑)도 해야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급한 일을 하나 마쳐놓고, 비 듣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웹서핑을 하다가 '아프리카 버스'라는 글을 읽었다. 내가 아주 아주 좋아하는 소설가 이시백 선생님의 글이었다.(소설 <누가 말을 죽였을까>,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를 쓰신 분) 하루에 세 번밖에 안다니는 시골 마을 버스를 타고 읍내에 나가려는데, 버스 기사가 갑자기 어느 집 앞에 차를 세우고 그 집으로 들어가더니 삼십분이 지나서야 돌아와서 다시 운전하더라는 것이다. 알고보니 그 기사는 자기 집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고 나온 것이었다고 한다. 기사가 식사를 하는 삼십여분동안 버스 안에 타고 있던 마을사람들은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다리더라고 한다. 정작 선생님 본인은 답답해서 견딜수가 없었는데, 어떻게 그럴수가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글이다.

이시백 선생님의 그 글을 읽으면서 가만히 나를 되돌아 보니 나도 조급증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조급증과 상관없이 천천히 생활하기는 힘들 것 같다. 생활 리듬이란 것이 주위에 함께 지내는 사람들과 어느정도 맞춰져야 하지 않는가.

글을 다 읽고 밑에 달린 댓글들을 보다가 갑자기 웃음이 터져서, 웃음을 참느라고 정말 죽는 줄 알았다.(참고로 여긴 일터!) 언제 다시 한번 이시백 선생님과 함께 술한 잘 나누고픈 생각이 간절하다!

이시백 선생님의 '아프리카 버스' 읽으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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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월 말은 양쪽 가족(아이의 친가와 외가) 행사를 치르느라 다 지나갔다. 어른들과 아이들을 모시고 무언가를 하는 건 참 힘들다. 긴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니 집 컴퓨터가 고장나버렸다. 힘들고 피곤했기에 일요일 내내 잠을 자고 월요일부터는 새 일터에 출근했다. 먼 길이라 주위에서 다들 걱정이 많다. 어떻게 출퇴근 할꺼냐구. 이렇게 되고보니 이전 일터가 너무 가까운 것 처럼 느껴진다. 그땐 거기도 멀었는데......

 

2. 오늘은 출근 이틀째. 아직 적응기간이라 새 일터의 분위기를 익히고 있다. 일단 컴퓨터가 무지 느려서 우선적으로 인내심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로 만난 동료들과의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게 무척 조심스럽다. 특히 20대에서 30대 초반 여성분들(특히 미혼)을 대하기가 어렵다.(물론 사람에따라 다르지만) 새로 얼굴과 이름을 익혀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대략 사십여명) 예전에는 사람 얼굴과 이름 익히기가 무척 어려웠는데, 사회생활 경험이 꽤 쌓이고보니 이젠 그래도 남들만큼은 해내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된다. 뭐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되겠지.

 

3.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라 역시 사무실에 에어컨이 아예 없다. 그리고 이 사무실은무척 덥다!(햇빛이 그대로 들어온다!) 그리고 어제 오늘은 무지 덥다! 어제 오늘은 첫 출근이라서 일부러 긴바지를 입고 나왔는데, 내일부턴 그냥 반바지만 입고 다녀야겠다! 땀을 비오듯 흘리며 앉아 있으려니 참 힘들다.

 

4. 창 밖으로 맑고 푸른 하늘이 보여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전 일터는 빌딩 속에 둘러쌓여 있어서 하늘을 봐도 기분만 나빠질 뿐이었는데, 여기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다 가끔 고개만 틀어도 하늘이 보인다. 한 폭의 그림같은 멋진 하늘이. 게다가 북악산이 보인다.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촌놈이라서 몰랐는데, 어제 누가 알려줬다. 저게 북악산이라고.

 

5. 어려서부터 산 중턱에 위치한 변두리 마을에 살아서 그런지 산이라면 무조건 좋다. 등산을 취미로 즐길만한 여유를 아직 갖지 못했지만 산타기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좋아하고 또 자신있다.

 

나를 쏙 빼놓고 다들 회의하러 들어가버려서 그냥 잠시 끄적여 봤다. 빨리 컴퓨터를 고쳐야 집에서 여유있게 글을 좀 써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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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다

그냥 2009.07.25 02:24

비를 흠뻑 맞고 돌아왔다. 그야말로 비에 젖은 생쥐꼴이었다. 이렇게 비를 맞고 걸어본게 얼마만일까? 왜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장면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흠뻑 젖도록 비를 맞아본 적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오전에 집을 나설때 아무생각없이 그냥 나왔는데, 오후에 살짝 비가 뿌리는 걸 보고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내리는 모양새가 별로 많이 올 것 같지 않아서 안심했었다. 서너군데 들러 볼일을 보고나서 저녁에는 어느 모임에 참석하여 맥주를 한잔 했다.

 

오랫만에 여러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한잔 하니 기분이 좋았다. 내일 아침일찍 준비해서 긴 여행을 떠나야하니까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짐도 꾸리고 이래저래 할일이 많았는데, 왠지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었다. 속으로는 슬슬 일어나야 할텐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계속 맥주잔을 비워내고 있었다.

 

적당히 기분좋을만큼 마신 다음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옮겨 더 마시러 갈 때, 나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지하철 막차(혹은 막차 바로 앞차)를 타고 돌아올때까지도 비가 그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다. 그저 적당한 알코올에 의해 몽롱한 듯 좋은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시간이 늦어질수록 아내의 잔소리가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뭐 괜찮겠지 싶었다.

 

열차에서 내려서 역을 나서면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조금 놀랐다. 어쩔까 망설이다가 금방 그칠 비가 아닌 듯해서 일단 뛰어보기로 했다. 집까지는 걸어서 20여분. 빨리 뛰면 12분 이내에 들어갈 수 있다. 빨리 뛰면 그리 많이 젖지 않고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5분도 못가서 온 몸이 흠뻑 젖어버렸다. 그래도 가방만은 보호하기 위해 애썼다. 받은지 이틀밖에 안된 책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신발까지 다 젖은 걸 깨닫고 뛰는 걸 포기했다. 그냥 느긋하게 걸었다. 온 몸은 다 젖어버렸지만 왠지 비를 맞으며 걷는 것도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게 비 속을 여유있게 걸어본 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쏟아지는 빗물에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고민과 부질없는 미련들이 다 씼겨가버리길 바랬다. 어느새 나는 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레인 드랍 킵 폴링 온 마이 헤드~~'

 

그렇게 비에 젖은 생쥐 꼴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다 지나갔다. 이 비가 산성비가 아니라면 훨씬 기분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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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말 나이가 들었다는 실감을 하게 되는게(아직도 젊으면서 이런 표현을 다 쓰다니......), 요즘은 옛날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좀 더 어렸을때는 과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앞만 생각하고 달려왔을뿐. 하루종일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만 생각했지, 예전에 무슨일이 있었던가를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앞으로 일에 대한 생각보다는 예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된다.

 

얼마전 아직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유일한 학교 동기를 만났다. 나는 어릴 때 참 서툴렀다. 사람 대하는 게 말이다. 꾸준하게 관계를 이어나가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친구가 별로 없다. 이게 좀 웃긴데, 나와 조금 친한 친구들이(서로 몰랐던) 나를 통해 만난 후, 서로 더 친해져서 나중에는 나를 빼고 그 녀석들끼리 더 잘 놀았다. 이런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학교를 졸업하고 남아있는 친구가 별로 없다. 한심하다!

 

내가 만난 동기녀석은 학교 다닐때는 나와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 졸업하고 나서 좀 더 편한 관계가 되었다.(그래도 지금도 그닥 친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객지 생활을 한 덕분이다. 녀석은 나보다 한 해 먼저 서울에 와 있었고, 내가 아무것도 없이 서울에 올라와서 객지생활을 시작할 때, 가끔 얼굴만 봐도 무척 반가운 그런 존재였다.

 

이 녀석과 있다보니 자꾸만 학교 다닐 때 얘길 하게 되었다. 지금은 잘 기억도 안나는 그 시절 나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보는 건 무척 낯설었다. 이 녀석이 한명씩 한명씩 동기들의 이름을 꺼낼때마다 속으로 '아! 그런 녀석이 있었지. 맞아!' 혹은 '어? 그건 누구지? 이름은 왠지 익숙한듯 한데 얼굴은 떠오르질 않네!' 하는 생각들을 했다. 물론 겉으로는 살짝 웃음띈 표정을 유지하면서 속내를 들키지 않았다.

 

그 녀석이 한명 두명 옛 기억속의 이름들을 끄집어 낼때마다 하나씩 둘씩 흐릿한 흑백 필름처럼 영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대부분 뭔가 부끄럽고, 기분이 썩 좋지않은 느낌들만 남겨졌다. 그렇게 몇 시간 수다를 떨고 나서 느낀 점은 나란 놈이 옛날에는 참 형편없는 놈이었구나!(지금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겠지만~) 겉으로는 늘 그럴듯한 직함들을 달고 다니면서 뭔가 있어보이는 척 하고 살았지만, 실제로는 참 잘못을 많이 저지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그 녀석을 만나는 동안 나는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 처럼 과거속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내가 만났던 여러 친구들, 나를 스쳐간 여러 여성들(내가 좋아한 수많은 여성들과, 나를 좋아한 몇 안되는 여성들), 선배들, 후배들, 그리고 이런저런 인연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 후로 계속 옛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이미 돌이킬 수 없기에 더이상 생각하지 않는게 가장 좋겠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몇몇 기억들이 나를 괴롭힌다.

 

한동안 마음을 닫아걸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받는 자신이 싫어서 아예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더이상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몇 안되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덕분에 더이상 괴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더이상 약하지 않고, 더이상 예민하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다시 기억해 버렸다. 나는 원래 무척 예민하고 약한 녀석이었다는 걸. 그 약하고 예민한 내가 너무 싫어서 견딜수가 없다.

 

1달간의 백수 생활이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시간은 참 왜이렇게 빨리 가는 것인지. 뭐 한것도 없는데 어느새 이렇게 되어버렸다. 이번 주말부터는 또 정신없이 바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 괜찮다. 바쁘게 살다보면 나는 다시 무뎌질 것이다. 강해지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냥 버텨나갈만큼의 굳은살이 생길것이다. 그 얇은 굳은살의 힘으로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때까지 한없이 우울한 감상속에 빠져있어보자~ 그저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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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일터에서 일하다 알게된 어느 시인의 결혼식에 초대받아서 전북 고창에 다녀왔다. 사실 아내와 아이와 함께 가족여행으로 가길 바랬으나, 아내의 일정상 힘들어서 그냥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아주 친한 사이도 아니라서 그럼 그냥 가지말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옛 동료들이 함께 내려가자고 해서 상근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함께 하루밤 놀아보자 싶은 마음에 다녀왔다.

오랫만에 장거리 운전이라 미리 꼼꼼하게 차를 살펴보고 출발할 생각이었으나, 아이를 장모님께 맡기고 가야해서 이것저것 챙기다보니 결국 대충 살펴볼 수 밖에 없었다. 늘 그렇듯 시간에 쫓기며 출발. 명색이 결혼식에 가야하는데, 제대로 된 옷을 챙겨야하나 말아야 하나 좀 고민을 했지만, 나는 그냥 여행에 의미를 두고 반바지에 간편한 티셔츠 차림으로 나섰다. 여벌옷도 작은 가방에 든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가 전부. 아니나다를까 장모님께서 결혼식가면서 옷은 왜 그러냐고? 차에 있냐고 물었다. 그냥 그렇다고 얼버무리고 아이랑 인사하고 다시 출발.

며칠만에 다시 찾은 사무실. 한때 매일 출근했던 곳에 이제는 손님 자격으로 들어가게 되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서 원래 내가 맡았던 업무들을 두 사람에게 쪼개서 인수인계하고 그만 뒀는데, 모르던 일을 맡게 된 두 사람이 수시로 전화나 문자로 질문을 해았다. 이번에도 사무실 들어서자마자 질문공세가 쏟아지는데......

이젠 고창으로 출발. 아무래도 차가 막힐 것 같아서 여유있게 일찍 나섰던 것인데, 그런 보람도 없이 도로는 벌써 주차장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오랫만의 여행이라 입가에 웃음을 띈 채 며칠간의 일들에 대해 수다도 떨어댔다.

다행히 중간부터는 도로가 한가해졌으나, 낡은 우리 차로는 맘껏 달릴수가 없었다. 운전 세시간째, 고창이 멀긴 멀구나. 그래도 평균 시속 110 쯤으로 계속 달렸는데도, 아직 멀었다니. 군산을 지나면서 피곤이 밀려왔다. 평소에도 운전을 별로 안하던 편이고, 장거리 운전 경험은 많지 않아서 그런지 겨우 세시간 운전했는데도 무지 피곤했다.

네시간째 겨우 고창에 들어섰다. 읍내에서 예비신랑과 그 아버지를 만나뵙고, 식당으로 향했다. 아버지께선 고창에서 유명한 장어집에 우리를 들여보내고 계산까지 마치고 가셨다. 이 장어는 우리(손님들)를 위한 게 아니라 예비신랑을 위한 것이겠지.

게다가 예비신랑의 작은 아버지가 복분자 농장을 하시고 복분자주를 판매하기도 하는데, 우리에게 무려 1.8리터짜리 복분자주 두 병을 안겨주었다. 그 유명한 풍천장어에 고창 복분자주라. 이거 완전 횡재했다는 기분으로 먹었다.

다시 차를 운전해야하니까 술은 (아주) 조금만 먹고, 장어를 배불리 먹고 나왔다. 이후엔 선운사 앞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아침에 선운사를 한번 둘러본 다음에 낮에 결혼식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에비신랑은 읍내에서 차례로 도착하는 다른 손님들을 맞느라 터미널로 향하고 우린 길을 대충 익힌 후에 선운사로 출발했다. 가는 도중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낯선 곳이라 길을 잃지 않기 위해 표지판을 유심히 살피며 천천히 나아갔다. 어느 순간 다시 비가 그쳤다. 차도 사람도 아무것도 없는 길이 이어졌다. 가로등도 하나없이 깜깜한 도로위를 천천히 달렸다. 그때 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짙은 물안개가 끊임없이 덤벼들었다. 도로가 보이지 않아서 좀 당황스러웠다.

옆 자리에 있던 K형은 안개가 꼭 유령같다며 유령에 홀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다. 뒷 자리에 있던 Y씨는 갑자기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물안개'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짙은 안개가 낀 밤에 운전하는 건 처음이라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노래 소리에 긴장이 풀렸다. 이 밤을, 이 안개를, 이 길을 즐기는 기분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예비신랑이 숙소로 잡아놓은 호텔에 도착했다. 겉은 번지르르했는데, 방에 들어가보니 경악스러웠다. 웬만한 여관방보다도 더 못했다. 이게 무슨 호텔이냐고 다들 한마디씩 했다. 게다가 모기가 엄청나게 달려들었다. 산모기들이라 한 번 물렸을 뿐인데 퉁퉁 부어올랐다. 방에 실망한 우리는 복분자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호텔 앞엔 분위기 있는 파라솔이 달린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있었다. 거기 자리를 잡고 간단한 안주를 사와서 먹고 마셨다. 그런데 모기향을 여러개를 피워놓아도 모기들이 쉴 새 없이 달려들어서 한 시간 남짓 먹는 동안 온 다리가 성한 곳이 없었다. 결국 밖에서 먹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수다를 떠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우린 먹고 마셨다. 결국 댓병짜리 두 병을 다 비우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세 시쯤이었다.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신 건 정말 오랫만이었는데, 결국 취해서 몽롱한 정신을 버티다 못해 잠들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머리가 아팠다. 역시 지난 밤에 너무 많이 마신 탓이었다. 선운사를 돌아보고 (호텔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해수탕에 몸도 한번 담그고 고창 읍내에 있는 예식장으로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선운사로 가는 길은 한적하고 좋았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자라서 울창한 숲들을 보는 것이 기분 좋았다. 선운사를 돌아보고 도솔암을 향했다.

재밌었던 건, 차를 위한 길과 사람을 위한 길이 따로 있었는데, 사람을 위한 길은 약간 외진 느낌. 말그대로 등산로였고, 차를 위한 길은 평탄하고 쭉 뻗은 길이었다. 우린 사람을 위한 등산로로 걸었는데, 길이 꼬불꼬불하고 바닥이 울퉁불퉁, 질척질척했다. 등산화를 신지 않아서 조금 힘들었다. 우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차를 위한 길로 올랐다. 도중에 차가 오르내릴 때마다 길 옆으로 비켜서야 하는 게 좀 귀찮겠지만 길 자체는 이쪽 길이 훨씬 편해보였다. 졸졸 소리를 내고 흐르는 계곡 물을 사이에 두고 꼬불꼬불 등산로와 쭉 뻗은 도로가 나란히 산을 향해 있었다.

도솔암에 오르니 등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도솔암 마애불을 보면서 완전히 압도된 느낌을 받으며 잠시 명상에 잠겼다. 여행을 하다보면 가끔 이렇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문화유산을 만나게 된다. 경주 석굴암 십일면 관음보살상이 그렇고, 화순 운주사 와불이 그렇고, 마이산 탑사가 또한 그렇다. 여행을 많이 다닌 건 아니지만 그동안 내가 돌아본 경험중에 이렇게 훌륭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받은 적이 또 언제였던가 하고 오랫동안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오래도록 마애불을 바라보며 그 모습을 오롯이 눈에 담아두고 싶었으나 시간이 부족하여 어쩔수 없이 산을 내려왔다. 아무도 없는 해수탕에 잠시 몸을 담갔다가 서둘러 고창읍내로 차를 몰았다.

작은 규모의 예식장에는 하객이 절반도 들어가지 못했다. 안에 자리잡고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 친척들이거나 고향동네 어른들이었다. 서울이나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신랑, 신부의 친구, 동료들은 대부분 밖에 서서 시간을 때웠다. 독특한 결혼이었다. 주례도 없고, 사회도 신랑의 여성 친구가 맡았다. 도중에 노래공연과 춤 공연이 있고, 주레를 대신한 축사낭독 등등의 이런저런 행사들이 계속 되었다. 우린 기다리다 못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뷔페식이었는데, 음식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종류가 너무 적었다. 그래도 배가 고팠으니 맛있게 먹었다.

일행들은 이대로 돌아가기가 섭섭했는지 어디 다른 곳에 들렀다 가길 원했으나, 결혼식에 참석했던 작가들의 술자리에 잠시 껴서 앉아 있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다. 서두르지 않으면 차가 많이 막힐 듯 하여 곧바로 서울을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의외로 도로상황이 괜찮았다. 나는 내려올때와는 달리 차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악셀을 마구 밟았다. 결국 세시간만에 서울 입성.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고창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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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블로그 이사

그냥 2009.07.07 14:51
지누님의 충고대로 티스토리 블로그를 그대로 텍큐닷컴으로 이사했습니다. 티스토리를 1년이상 썼지만 워낙 블로그 활동이 많지 않아서 이사에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다만 몇몇 민중가요와 독립뮤지션들의 음악과 추억을 소개한 포스트들에서 MP3 파일은 옮겨올 수가 없더군요. 음악 파일을 새로 올려보려고 했으나 방법을 찾지못해 해당 카테고리는 일단 삭제했습니다.

그외에는 큰 이상없이 잘 옮겨진 것 같네요. 일단은 이정도로 만족하고 천천히 더 깔끔하고 예쁜 블로그가 되도록 배워가려합니다.

예전 블로그는 여기로 옮겨오지 못한 '노래와 추억' 카네고리만 놔두고 닫을 생각입니다. 그럼 새로운 환경에서 재밌는 블로그 활동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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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

그냥 2009.06.30 23:57
한동안 다니던 일터를 오늘부로 정리했습니다!

마지막날까지 일이 많아서 저녁먹고 9시쯤 겨우 일을 마쳤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술 한병 사갖고 들어와서 컴터 켜놓고 지금 홀짝 홀짝 마시는 중입니다.

참 재밌는 일이었고, 굉장히 의욕적으로 열심히 했던 곳이었는데,

작은 의견차이가 점점 더 커져서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네요.

조금 아쉽긴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새로운 일터 때문에 조금 머리가 아프지만, 오늘은 그냥 잊어버리렵니다!

고민은 내일 다시 하도록 하고,

오늘은 그동안 힘들게 버텨온 저 자신을 위해 지내렵니다!

늘 바쁘더가 갑자기 여유가 생기면 뭘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 여유를 다 허비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뭘 하며 재밌게 보낼까 고민입니다!

그동안 쌓아놓고 못 읽었던 책도 좀 읽고, 틈틈히 운동도 좀 해서 체력도 보강해야겠지요.

일 그만두고 한달 쉰다고 하니까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놀 수 있을때 맘껏 놀아야겠습니다.

그럼 편안한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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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생존 VS 실존

그냥 2009.06.26 00:40
여러가지 고민으로 한동안 다니던 일터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사실 꽤나 애정을 갖고 일하던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오래있지 못하고 정리하게 되어서 여러모로 후회와 반성이 많았지만, 이 상태로는 저에게도 그리고 일터에도 별로 좋지 않을 듯 하여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생각을 바꿀수 없냐고 하시는데, 그러면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시더라구요. 대안없이 현 상황을 계속 해봤자 서로에게 더 힘들기만 하다는 게 제 생각이었고, 그 점에서는 지금도 옳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일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 전보다 더 바빠져서 무척 힘들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일터도 알아보아야 할텐데, 생각만 있을 뿐, 직접 여기저기 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물론 제 소식을 들은 주위 분들이 여기저기 알아봐주시고 그 와중에 두어군데 면접을 빙자한 가벼운 만남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현재 몸 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한동안 쉬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는데요. 살도 많이 빠지고(문제는 살이 빠진게 아니라 근육이 줄었다는 게 문제!) 체력이 너무 떨어졌어요. 그래도 아무대책없이 오래 쉴수는 없는 상황이라서 일단은 여기저기 새로운 일터를 알아보긴 했습니다.

다행히 며칠 전에 새로운 일터가 구해졌는데요. 일단 7월은 쉬고 8월부터 일하기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지금 일터는 6월까지 일하기로 했으니 딱 한달간 휴식기간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일터가 생겼는데도 스스로도 썩 기쁘지가 않고(그렇다고 전혀 기쁘지 않은건 아닌데......), 아내도 반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유는 여기도 단체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유는 돈 때문입니다. 단체 활동비라는 게 최저 생계비를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지금 한창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또 단체로 들어간다는 것을 환영할 수 없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잠깐씩 학원 강사를 해본 경험 외에는 대부분 단체에서 활동해왔기 때문에 일터를 구할 때 돈을 얼마나 주는가 하는 점을 그다지 따지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본 적도 없고, 또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해왔거든요. 저는 돈을 거의 안쓰는 편이라서 결혼전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활동비를 받고도 별 불만없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부모님들이 점점 나이가 드실수록 이 돈이란 녀석이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더라구요. 결혼 직전에 활동을 시작한 단체에서는 그나마 어느정도의 활동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그래봐야 정말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이었는데......)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여건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현실을 생각하면 오히려 제가 너무 많이 받는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아내는 사실 제가 말도 안되는 수준의 활동비를 받을 시절에 만났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 길을 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돈에 대한 기대를 저에게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일터는 단체로 출발했지만 형식상으로는 단체는 아닙니다. 그래도 내부 구성원들은 모두 단체라고 생각하고 활동합니다. 실제 업무는 좀 다르지만 운동의 틀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운동단체라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여기도 활동비가 일반 직장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편이지만 그래도 단체에 비하면 좀 더 좋은 편이지요. 게다가 돈과 상관없는 단체활동만 하다가 돈과 직접 관련이 있는 업무를 배워서 익히는 과정이 있어서 여러모로 색다른 느낌이었지요.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아내의 불만은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런 고민을 안한게 아니고, 지금도 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이 직종에 종사하는 제 또래의 친구들을 보면 제가 상상도 못할 만큼의 연봉을 받더라구요. 다들 경력이 제법 되니까요. 그런데 저도 이 일터에서 나름 팀장급으로 구르다보니까 그 친구들만큼을 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구요.

그럼 내가 이 일터를 떠나서 같은 직종에 있는 일반 직장을 구하면 경제적인 여건은 많이 좋아지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물론 무조건 그렇게 잘 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어디든 들어갈 수는 있을 것 같고, 그렇다면 단체를 선택하는 것 보다는 경제적으로 안정된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이게 생존을 위한 제 선택이 되겠군요.

그런데 저는 처음부터 운동판에서 굴러 먹던 놈이라 계속 제 신념을 따라 제가 원하는 일을 하고픈 욕심도 있습니다. 지금 일터도 어쨌던 여기가 단체였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지. 일반 직장이었다면 아마 선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새로 들어가게 될 일터에서는 제가 하고 싶은 영역의 일들을 맘껏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단체들과는 또 성격이 다릅니다. 재미있을 것 같고, 큰 틀에서 운동가로서의 제 전망을 생각해본다면 꽤 괜찮은 조건인 것 같습니다. 이게 실존을 위한 제 선택입니다.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이 심각한 수준만 아니라면 저는 무조건 실존을 선택하겠지만, 현재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서 저 하나만 생각할 수도 없는 것 같아서 고민입니다. 게다가 일단 8월부터 시작하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는 상황인데, 정말 꼭 생존을 선택해야할 상황이라면 이걸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도 고민입니다.

당장 며칠 남지않은 6월의 마지막날까지 끝내놓아야 할 일도 잔뜩 남아 있는데, 이래선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네요!

※ 답답한 마음에 자판을 두드리긴 했는데, 다 쓰고 보니 블로그에 이렇게 개인적인 고민을 남겨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글쎄요! 이왕 쓴 글이니 일단 저장은 하고 보겠습니다! 비공개로 돌려야 할지 어떨지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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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나쁜 상술

그냥 2009.06.19 13:10
이틀 전 사무실로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받았더니 예쁜 목소리의 여성분이 모 대기업 카드사라고 하면서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게 아닌가. 순간 휴대전화번호도 아닌 사무실번호로 이런 전화가 왔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내가 여기 카드사에 직장 번호를 입력해뒀던가 하고 기억을 더듬어보았으나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딴 생각을 하는 동안 이 분은 빠른 말투로 나도 잊고 있던 결혼기념일을 상기시켜주었다.(바로 오늘이다!)

사실 지난 주에 아내가 달력을 보며 눈치를 줬는데, 내가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원망을 좀 들었다. 그래놓고 일주일도 채 지나지않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다시 알려준 셈이다.

결혼기념일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집으로 꽃다발과 와인을 보내주겠다는 게 아닌가.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카드사 회원에게 일일이 이런 선물을 보내준다는 얘긴 들어 본적이 없었다. 그런 건 어디 라디오 사연에 당첨되었을때에야 받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좀 미심쩍었지만 이 분이 하는 말을 계속 듣고 있었다. 계속 사모님께서 수고하셨는데 어쩌구 저쩌구 그러더니 결국 진주목걸이를 보낸다는 얘길 꺼냈다. 그럼 그렇지! 결혼기념일 어쩌구 할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축하 선물은 미끼일 뿐이고, 이건 그냥 물건 팔아먹겠다는 얘기 아닌가!

진주목걸이를 받아보고나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돌려보내면 된다고 배송료 부담없이 편안하게 받아볼수 있다는 말을 하는 이 분에게 나는 정중히 관심없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딱 전화를 끊고 나니 굉장히 기분이 나빠졌다.

남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갖고 고가의 보석류를 팔어먹어 보겠다는 아주 지저분하고 기분나쁜 상술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창 바쁜 일을 하던 중이라 따지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어서, 그리고 그 사람도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닐테니 굳이 전화에 대고 따질일이 아닐 것 같아서 그냥 정중히 거절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사실 나는 무척 기분이 나빴다. 일을 하다말고 이걸 어디다 따지고 항의를 해야하나 싶은 생각이 불쑥 불쑥 올라왔지만, 꾹 참고 넘겼다.

이틀이 지나 기념일 당일이 되니 화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기분 나쁜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이라도 항의를 해야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가 그냥 관두기로 했다. 귀찮기도 하고 괜히 일을 크게 벌리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계속 생각하면 정신건강에 안좋을테니 그냥 빨리 잊어버리는게 나을 것 같다!

-그나저나 어제 밤 늦게까지 술 자리에 참석하는 바람에 새벽에야 들어갔는데, 아침에도 정신없이 나오느라 아내가 기분이 좀 상했을 것 같다. 선물은 못해줄 망정 오히려 화를 돋구어 놓았으니 이 일을 어찌 해야하나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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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몇 주전, 저녁에 일이 있어서 급하게 이동하던 중이었다. 배가 무척 고팠지만 시간이 없어서 저녁을 먹을 수가 없었다. 뭔가 간단하게 먹을 게 없을까 싶어서 머리를 굴려봤지만 생각나는 게 없었다. 길을 걷다 처음 만나는 편의점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단 것을 싫어해서 쵸코파이나 쵸코바 같은 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바퀴를 돌았다. 군대 다녀와서 편의점 알바 뛰던 시절엔 삼각김밥 같은 것도 가끔 먹었는데, 그 이후로는 왠지 손이 가지 않는다. 우유를 마시자니 좀 허전하고, 간단하게 먹을게 뭐 없을까 고민하다가 급한 마음에 시계를 쳐다봤다. 문득 에O스 크래커가 눈에 들어와서 집어들고 계산을 했다. 무려 천원! 과자 안 사먹은 지 꽤 오래 되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꽃피는 봄이 되었건만 바람은 차갑기만 하고, 꽁꽁 언 손으로 과자를 하나씩 꺼내 입으로 넣으면서 부지런히 발을 옮겼다. 한 십여분 걷는 동안 과자를 다 먹어치우고 나니 약간의 허기는 면한 듯 했다. 비닐포장지를 구겨 접어서 잠바 주머니에 넣고, 손을 털고, 입을 쓱 닦으며 문득 옛날 생각을 떠올렸다.

 아직 뺨과 이마에 여드름이 가득했던 고등학교 시절이다. 내 고교시절은 어느 한 사건을 계기로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첫번째 시기는 완전 모범생(요새말로 범생이!)이었던 시절이고, 두번째 시기는 완전 문제아(다른 말로 양아치!)였던 시절이다. 문제아 시절의 나는 완전 이중인격자였는데, 모범생 시절의 이미지가 아직 그래도 남아 있어서 학교에서 몇몇 선생님과 아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내 실체를 알지 못했다. 사실 문제아로 낙인 찍히면 생활하면서 좋을게 별로 없기 때문에 계속 이미지 관리를 해야 했다.

 그 문제아 시절, 야간자율학습(줄여서 야자) 시간이면 어김없이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니고, 침 좀 뱉고 다니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산 아래(우리 학교는 산 중턱에 있었음) 동네 커피숍에 죽치고 앉아서 놀았다. 물론 남자들끼리만 놀면 재미 없으니까 근처 모 여자상업고등학교에 다니시는 아리따운 여학생들을 모시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놀았다. 그리고 가끔은 학교 뒷 산에 올라 담배를 꼬나물고 근처 모 공업고등학교 남학생들을 모시고 주먹과 눈 중에서 누가 더 센가를 겨뤄보기도 하고 발과 배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연구해 보기도 했다. 개중에는 각목과 머리 중에 어느 쪽의 내구성이 더 좋은가를 시험해보는 위험한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데 매일같이 야자를 빠졌더니 학교에서 열심히 쌓아놓은 모범생 이미지가 막 무너질 위험에 처하고 말았다. 그때쯤 나는 슬슬 동네 커피숍에서 이루어지는 진진한 대화모임이나 학교 뒷산에서 이루어지는 위험한 연구모임에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번 야자를 빠지기 시작했더니 다시 하기가 무지 싫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꾀를 냈다. 시내 모 단과학원에서 취약한 과목을 한 과목만 수강을 해서 정식으로 야자를 안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낸 것이다. 물론 당시 단과학원의 한과목 수강료만해도 제법 비쌌다. 가난했던 우리집 형편에는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얼마되지 않는 학교 월사금도 장학금으로 보조받아 다니던 때였으니까.

 그러나 그 때는 막나가던 문제아 시절이었다. 철없던 사춘기였던 것이다. 대학 핑계를 대고 취약과목을 공략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억지를 부렸다. 첫 달엔 그렇게 집에서 돈을 타서 수강료를 냈다. 처음엔 비싼 수강료가 아까워서 열심히 학원을 다녔다. 한동안 어울려다니던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니던 친구들과도 조금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런데 문제아는 어쩔 수 없이 문제아들 끼리만 어울리게 되는 것인지. 시내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는 패거리들과 또 어울리게 되었다. 녀석들은 시내 구석구석의 오락실이나 만화방에서 자잘한 것들을 훔쳐내거나, 힘없는 아이들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냈다. 그 돈으로 당구장으로 술집으로 몰려다니며 놀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남의 것을 훔치거나 강탈하는 것 자체에 혐오감을 갖고 있었기에 그 녀석들과는 어울리지 않으려 했지만, 중학교 때 잠깐 친하게 지내던 녀석이 그 패거리에 속해 있어서 자연스럽게 몇 번을 어울린 후에는 발을 빼기 어려워졌다. 물론 당연히 나와 그들의 만남은 당구장이나 술집에서만 이루어졌다. 오락실이나 만화방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돈 끌어모으는 작업은 나와 전혀 관계가 없었다. 나는 머리속으로 그들이 하는 짓거리와 내가 그들과 잠깐 만나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둘째 달에 더이상 집에 손을 벌릴 수 없어서 고민하던 차에, 그 패거리의 한 명이 누군가에게서 훔쳐온 단과학원 수강증을 건네줬다. 거절하고 야자를 받을 것인가, 나는 훔친 게 아니라 받은 것이니까 괜찮다는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을 내 머리속에 세뇌시키며 건네받을 것인가를 놓고 잠깐 고민했다.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새 내 손은 그 수강증을 쥐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동안 노는 무대를 학교 근처에서 시내로 옮겨놓고 살았다. 

 그러나 물과 기름처럼 그들과 나의 관계는 쉽게 어울릴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 날, 당구장에서 작은 시비 끝에 그들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말았다. 몇 달을 단과학원을 다니면서 나는 도강(도둑수강의 준말일까?)이라는 수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훔친 수강증을 받아서 쓰는 것과는 달리 도강은 별로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강사는 한 시간 수업을 하는 것일 뿐이고 학생도 많은데 그냥 좀 끼어 들으면 어때서하 마음이 들었다. 학교에는 지난 몇 달동안 수강증을 꾸준히 보여줬기 때문에 적당히 둘러대도 넘어 갈 수 있었다.

 (아! 여기까진 쓸데없는 얘기였고, 여기서부터가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학원 수업은 딱 저녁 먹을 시간에 잡혀 있었다. 나는 도시락을 두 개 갖고 다녔지만, 하나는 2교시가 끝나기 전에 비우고, 다른 하나는 점심시간에 비우기 때문에 저녁이 되면 먹을 게 없었다. 가끔 친구들에게 라면을 얻어 먹거나 빵을 얻어 먹기도 하지만 매일같이 얻어 먹을 수는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학원을 나서면 무척 배가 고팠다. 그때 내가 주로 먹던 것이 바로 당시 삼백원이었던 에O스 크래커였다. 걸어다니면서도 먹을 수 있고, 버스에서도 먹을 수 있고 게다가 당시에는 지금 천원짜리보다 양도 훨씬 더 많았다.

 오늘 다시 저녁을 못 먹고 바쁘게 일정을 쫓아 다녔다. 근처에 보이는 구멍가게에서 에O스 크래커를 사서 걸으면서 먹었다. 과자를 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예전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마치 과거의 내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스쳐지나갔다. 그땐 정말 돈이 없어서 과자 밖에 먹을 게 없었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아직도 과자로 배를 채우려는 나를 보게 될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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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지난 주말 찜질방에 다녀왔다. 아내는 벌써 몇 주전부터 온천을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온천은 못가도 근처 찜질방이라도 다녀오자 싶어서 함께 갔다.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가서 씻기는 것을 힘들어해서 아이는 내가 데려갔다. 아빠랑 함께 목욕탕에 들어가는 건 아마 두번째나 세번째쯤 되는 것 같다.

아이를 씻기는 건 별로 힘들지 않은데, 아이를 향하는 시선들은 좀 신경쓰인다. 남탕에 여자 아이를 데려오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번에는 딱 한 사람이 딸아이를 데려왔는데, 우리 아이보다는 한참 어려보였다. 찜질방과 함께 있는 큰 목욕탕이라서 다양한 이름의 탕이 있었다. '원두커피탕', '사과탕', '금탕(?)', '이벤트 탕' 등이 있었는데, 대부분 온도가 40도 이상으로 뜨거운 탕이었다. 아이의 피부가 좋지 않아서 가끔 아토피가 올라오기도 하는데, 그래서 일부러 다양한 탕에 데리고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는 이미 지난 번에 당해본 터라 아빠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온도가 높은 탕은 가까이 가기도 전에 귀신같이 알아채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다 씻고 찜질방에 가서 엄마를 만나서 계란도 까먹고 한참 놀다가  밤 늦게서야 몸을 헹구러 남탕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몸을 씻고 나와서 몸무게를 재보고 아이 옷을 입히려고 탈의실 옷장을 찾아가는데, 문득 기분이 나빠져서 벽쪽을 보았더니 글쎄 감시 카메라가 나를 향해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기분이 확 나빠졌다. 알몸이 아니라 하더라도 감시카메라가 나를 찍고 있다면 기분이 나빠지는 게 당연한데, 지금은 아이도 나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가 아닌가. 카메라 너무에서 누군가 우릴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얼굴이 확 굳어져버렸다. 최대한 빨리 아이 옷을 입히고 나도 옷을 입었다.

그제서야 예전에 뉴스에서 찜질방, 목욕탕 탈의실에 설치된 감시카메라가 논란이 되고 있단 소식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당시 나는 찜질방이나 대형 목욕탕에 잘 안가는 편이어서 별로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제 내가 직접 당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 기억에 당시 뉴스에서는 여탕에 설치된 카메라에 대해 이용객인 여성들이 항의했는데, 안전규정상 카메라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업체 측에서 밝혔다는 얘길 전했던 것 같다. 혹시 있을 지 모를 도난이나 각종 범죄 등의 예방과 적발을 위해 필요하다는 규정이 있다는 얘기였던 것 같다.

안전상의 이유로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탈의실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목욕탕 탈의실에는 면도기, 때수건, 속옷, 양말, 우유를 비롯한 음료수를 팔고 있고, 이를 관리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남탕에는 이발소가 있는 경우가 많고 구두를 수선하거나 닦아주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청소와 전반적인 관리를 담당하는 사람도 반드시 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꼭 탈의실에 카메라까지 설치 해야하나?

카메라로 인해 귀중품 분실을 예방할 수 있다고 쳐도, 카메라에 담긴 내용이 어둠의 경로를 통해 유출되어 각종 음란 사이트나 자료실 등에서 유통된다면 어떡할 것인가? 이런 피해가 더 치명적이고 심각하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테고, 이렇게 더 위험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은 뭐가 있는가? 안전과 관련한 규정을 내세우기 전에 먼저 여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설득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범죄예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면 어느 한쪽 공간에는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고 원하는 사람은 그곳으로 보내주되 귀중품 도난등 일체 범죄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내면 되지 않을까? 나는 지갑이나 시계따위 잃어버리는 것 보다 내 알몸이 담긴 영상이 나도 모르게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반드시 한명은 있지 않을까?

집으로 향하면서 아내에게 카메라 얘길 했더니 아내도 화들짝 놀랐다. 신경쓰지 않아서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탈의실이란 공간이 원래 고개를 돌리면 쑥쓰러운 곳이기 때문에 어릴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재빨리 옷을 벗어서 옷장에 넣는 동작만 하게 되어 있는 곳이다. 일부러 고개를 돌려가며 카메라를 찾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통씩 쏟아지는 스팸 메일중에 그런 제목을 본 적 있는 것 같다. 서울시내 모 찜질방 탈의실 동영상이 제공된다고 광고하는 제목 말이다. 내 돈주고 들어가서 목욕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찍은 영상이 그런 곳에 떠돌아 다니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카메라가 없는 찜질방이나 대형 목욕탕이 혹시 있을까? 아마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이제 찜질방이나 대형 목욕탕은 가지 말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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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틀째 밤샘 작업중이다. 월요일엔 사무실에서 새벽 1시 반까지 일하다가 심야버스를 타고 돌아와서 다시 집에서 5시까지 일했다. 그냥 사무실에서 밤을 샐까 고민도 했지만 아침에 아이 준비시켜서 어린이집에 데려다 줘야하니 심야버스를 타고라도 돌아왔다. 그리고 화요일엔 비교적 일찍 사무실을 나서서 아이를 데리고 와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아내가 아이를 씻기고 재우는 동안 일하기 시작해서 딴 짓안하고 지금 새벽 4시가 다 되도록 일했다.

나는 원래 일을 몰아서 하는 편인데, 이런 습관을 갖게 된 지 꽤 오래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손자 병법 중에서 특히 '배수의 진' 전법을 좋아했는데, 그 비장함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도 늘 일이 마지막에 몰릴때까지 미뤄뒀다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때 한번에 해결하는 방법을 즐겨쓰게 되었다. 이른바 내 방식의 '배수의 진'인 것이다. 시험공부는 항상 시험 시작하기 일주일전부터 매일 밤을 새워가며 하루에 두세과목씩 마치도록 계획을 세웠다. 중고등학교 6년간 계속 이렇게 시험공부를 했지만 실제로 성적은 늘 상위권에 들어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시험 결과가 발표되고 늘 그렇듯이 아주 잘나온 성적도 아니고 못나온 성적도 아닌, 그럭저럭 상위권에 포함되는, 적당히 시간만 보내면 4년제 대학 정도는 무난히 갈 수 있는 성적이 나왔다. 그럼 난 속으로 '배수의 진' 전법이 이번에도 효과를 거두었다고 좋아하곤 했다. 만약 평소에도 좀 더 열심히 공부하면 더 좋은 성적으로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했지만, 더 좋은 성적을 받고 싶지도 않았고,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싶지도 않았다. 난 그저 시간낭비일 뿐인 의미없는 학교생활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대학에 가서도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는데, 이젠 심지어 시험 기간에도 공부를 안하게 되었다. 시험 기간이 되면 왜 이렇게 밤새 술 먹을 일이 생기는 것일까 고민하며 아침까지 술을 마시다가 곧바로 시험장에 들어가서 교수님, 조교선배 눈총을 받아가며 대충 있는 얘기 없는 얘기 갈겨 쓰고 나오곤 했다. 당연히 학점은 안 좋았다.

이렇듯 오래된 습관이 바로 '배수의 진'이란 전략에서 나왔다. 아주 어릴 때 읽은 단 하나의 구절이 내 인생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암튼 나는 평소에 일을 미뤄뒀다가 한꺼번에 처리하는 습관을 갖고 있는데, 그러면 평소에는 좀 여유있게 게으름을 피우고 지낸단 말이 될 것이다. 원래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여유있는 생활이 필수적이다. 빡빡한 생활 속에서는 도저히 창의적인 발상이 나올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평소에는 좀 느긋하게 생활하려고 하는 편인데, 일의 성격상 이게 도저히 안 될때가 많다.

그래도 요 앞전의 일터에 있을때까지만해도 아주 바쁠때와 조금 한가할 때가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고, 그런 일정에 맞춰 내 업무 페이스를 조절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일터에서는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 내게 주어진 일 자체가 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양인 것이다. 바쁠때와 안 바쁠때를 구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는 매일매일 무조건 바쁜 날들만 계속된다. 내가 일을 몰아서 하는 편이기에 일부러 평소에 느긋하게 지내다가 한번에 일을 끝내는 것이 아니고 평소에는 다른 여러 일을 진행하느라 도저히 시간이 안나고 막상 중요한 일정이 코 앞에 닥쳤을때에야 정해진 시간안에 반드시 끝내야 할 일이니까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끝장을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일부러 선택한 전장이 등 뒤에 강을 두고 진을 친 곳이라면, 지금은 어찌어찌 전황이 흘러가다보니 어느새 내가 수세에 몰려서 등 뒤에 강을 두고 어쩔줄 몰라하며, 에라 물에 빠져 죽을 바에야 싸우다가 죽겠다고 악으로 깡으로 버텨보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여유없이 바쁘게 생활하다보니 좀 많이 지친다. 그냥 아무생각이 없어진다고 할까. 일단 아주 중요한 일들을 대충 마무리 지어놓고 이렇게 블로그에 자판을 두드리면서 드는 생각은 '잠을 못 자면 근육의 피로가 풀리지 않는구나!'였다. 아무생각없이 쓰러져서 한 일주일동안 잠만 잤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해보지만 당장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즁요한 일정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꼼짝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헛된 공상에서 벗어나고자 이렇게 횡성수설 자판을 두드려본다. 아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린지 안되는 소린지는 몰겠지만 일단 쓴 글이니까 저장하고 도망가야겠다. 무거워진 눈꺼풀을 가볍게 만드는 방법이 뭐 없을까 잠시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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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작년 연말부터 지금까지 대략 세달 가량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바쁜 기간이었던 것 같다. 아니 단순히 바쁘게 지낸 것으로 따지자면 언제는 안 바쁘게 살았던가. 이 기간은 내가 가장 정신없이 살았던 기간이라 부르는 게 더 맞겠다.

작년 연말인 12월 연말에 정리해야 할 일들부터 시작해서 잡지 마감과 새해 준비 등으로 분주한 날들이 시작되었는데, 해가 바뀔 즈음이 되니 일터에서 더 많은 역할과 더 높은 성과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게다가 아내는 마감을 벌써 지나버린 일을 붙들고 있느라고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일이 고스란히 내 몫으로 맡겨졌다. 일의 특성상 저녁에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자연스레 술자리도 자주 갖게 되는데, 집안 일과 일터의 일을 잘 조율해야 했다.

그런데 이 정신없이 바쁜 시기에 몸은 자꾸만 말썽을 부렸다. 피로가 쌓여서 늘 몸이 무거웠고,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져만 갔다. 매사에 의욕을 잃고 그냥 해야하는 일이니까 마지못해 해나가고 있었다.

저녁에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도 예전같으면 책도 읽어주고 함께 소꼽놀이도 해주고 했던 것을, 최근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 틀어주고 나는 일하기에 바빴다. 아이에게 점점 소홀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집안 일도 점점 지겨워져서 미루고 미루다 마지못해 해치우는 일이 잦고, 저녁마다 아이에게 뭘 해먹이나 걱정하느라 퇴근 길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냥 근처 분식집 가서 간단하게 때울까 싶다가, 제대로 해 먹이고 싶은 욕심을 내기도 했다가 결국은 그냥 있는 반찬에 간단하게 한 두가지 더 뚝딱 만들어서 먹이곤 했다.

평소보다 짧은 2월이라 더 정신없이 잡지 마감을 넘기고 이제 겨우 한숨을 돌려본다. 어제 저녁에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함께 걸어오다가 아이가 '달이다!' 라고 소리를 쳐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참 오랫만에 보는 하늘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하늘을 안보고 살았던 것은 아닐텐데, 하늘을 본다는 이 단순한 행동이 왜 이리 낯설게 느껴졌을까?

요새말로 백만년만에 하늘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 멍하니 서서 지난 몇 달간의 나를 돌아보았다. 너무 여유없이 살았던 것 같았다.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려서 그렇게 정신을 잃어버리고 지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3월이 되고, 학생들이 개학을 해서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듯이, 이 봄을 맞아 나도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당장 아이를 대하는 내 태도가 바뀌고, 일터 동료를 대하는 내 태도가 바뀌는 것을 느끼며 사람 일이란 마음먹이에 따라 달렸다는 이 한마다가 새삼스레 느껴진다.

비록 잿빛 도시의 우중충한 하늘일지라도 앞으론 자주 올려다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Posted by 감은빛
TAG 일상

비, 슬럼프, 피곤

그냥 2009.02.24 13:16
아침에 알람을 듣고 깼다가 나도 모르게 다시 잠들었다. 아이를 깨우려고 손만 뻗어서 다리를 흔들었는데, 그 자세 그대로 다시 잠들어버린 것이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잠을 많이 자는데도 피곤하다. 덕분에 조금 늦게 집에서 나왔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아이가 '아빠, 비와요!'라고 소리를 질러서 창 밖을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다시 올라가서 아이 우산이랑 내 우산을 집어들고 나왔다.

비가 아주 많이 오지 않아서 아이에게 스스로 우산을 쓰고 걷게 해보았다. 예전 같으면 안아달라고 졸랐을텐데, 그리고 잠시 걷더라도 얼마 못가고 팔이 아파서 우산을 못 들겠다고 했을텐데, 오늘은 그래도 혼자서 우산을 쓰고 걸었다. 문제는 한손으로 우산을 잡으면 우산이 자꾸만 기울어지니까 두 손으로 우산 손잡이를 꼭 쥐고 걷는데, 그러니까 걸음도 늦고 뒤뚱뒤뚱 넘어질 듯 말듯 균형을 잘 못잡았다. 한 손으로 우산을 잡게하고 우산을 어깨에 살짝 기대주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쥐고 함께 걸었다.

아이랑 잠시 나란히 걷는 동안 어느새 이 녀석이 이만큼 자랐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아침 출근길부터 비가 온다고 괜히 기분 나빠했을텐데, 오늘은 일단 기분이 괜찮았다. 서두르지 않으면 지각인데도 불구하고 느긋하게 아이랑 골목길을 걸었다. 늘 겪은 일이지만 골목길 양쪽으로 무질서하게 주차된 차들이 갈 길을 방해하고 있고, 자주 지나가는 차들 때문에 멈춰서서 주차된 차들 사이로 비켜서야 하는데, 이런 일들이 비가 오는 날이면 정말 짜증이 나게 마련이다. 오늘은 골목길을 걷는 동안 차가 서너대 지나가긴 했으나 속도를 줄이고 비교적 매너있게 지나가주었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서둘러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고 출근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요즘 아무래도 슬럼프에 빠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작년에는 자주 야근을 하고, 밤샘을 하면서 일을 했어도 이렇게 피곤하진 않았다. 주말마다 일이 있어서 쉬지 못해도 이정도로 몸이 힘들지는 않았다. 요즘은 어린이집 마치는 시간에 맞춰 돌아와서 집에서 아이랑 지내고 집안일을 조금 하고 비교적 일찍 잠드는 편인데 몸은 너무 피곤하도 주말에 행사나 일이 생기는 경우도 별로 없어서 밀린 잠을 자느라 늦게 일어나기도 하는데, 그래도 피로가 풀리지를 않는 것 같다. 이런 걸 만성피로라고 불러야 한나?

피곤해서 입 안이 헐었다가 조금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코 밑에 뭐가 올라왔는데, 이것도 피로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딱지가 앉았는데, 되게 거슬리고 보기 싫다. 며칠 지났는데, 잘 낫지도 않는다.

피곤하니까 모든 일에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한마디로 살아가는 재미를 잃어버린 것 같다. 막 바쁘게 정신없이 살고 있는데, 막상 뭘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때가 가끔 있다. 일의 능률이 떨어져서 성과가 잘 보이질 않으니까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기분을 바꿔보려고 지난 주에 파마를 했다. 난생처음으로 파마라는 걸 했는데,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와서 오히려 기분이 상했다. 제법 길었던 머리를 자르지 말고 파마를 해달라고 했는데, 조금 손만 대겠다고 해놓구선 머리를 많이 잘라버렸다. 그래놓고는 이 머리 스타일은 길면 지저분해 보인다고 잘랐다는 것이다. 거울을 보면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인 것 처럼 느껴진다.

사람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실제로 그 말에 공감할만한 일들도 많이 겪었다. 그래서 되도록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데, 요즘처럼 오랫동안 기분이 처져 있을때는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다. 좀 여유를 갖고 살고 싶은데, 상황이 그렇게 되질 않는다. 글쎄 답이 보이지를 않으니 그냥 부딪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오래간만에 블로그에 글을 남기면서 이렇게 우울한 내용을 두드리고 있자니, 좀 한심한 생각이 든다. 이런 글 쓰는 것 자체가 더 기분을 다운 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