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4일) 시청광장앞 촛불집회에 다녀왔다. 그전날 밤 아내는 이 나라에서 사는 것 자체가 불안하다고, 뭐하나 마음편히 먹을 수 있는 게 없다고, 이런 사회에 산다는 게 화가 난다고,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이런저런 불평들을 토해냈다. 아이를 재워놓고 우리는 밤 늦게까지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참 오랫만이었다. 서로 바쁜 탓에 최근에는 서로 진지한 얘길 나눠본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인지 어제 낮에 아내는 촛불집회에 함께 가자고 문자를 보내왔다. 반가웠다. 사실 저번 촛불집회때 옆에 꼭 우리 아이만한 꼬마가 엄마 아빠 손잡고 와있었는 모습을 보고 나도 가족과 함께오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얼른 답을보내서 가기로 했다.

사회운동하는 사람과 결혼한 탓에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여러 사회문제들에 대해 비교적 잘 아는 편이지만, 아내는 평소에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냥 문제를 인식하고 비판하면서 지켜보는 사람이었다. 한두번 크고 작은 문화행사에 함께 참여한 적은 있었지만 정치적 혹은 사회적 문제를 갖고 집회에 함께 간 적은 없었다. 특히 내가 주로 참여했던 집회들은 대부분 아주 위험한 상황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에 맘놓고 함께 데려갈 수도 없었다. 불법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들 덕분에 집회는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와 한미FTA협상저지를 위한 촛불문화제를 매일 준비하기도 했었는데, 나는 주로 실무진행에 구체적인 임무를 받지는 않았고, 전체적으로 진행을 도와주는 정도로 자주 참석했었다. 암튼 그래도 행사주체로서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도맡아했었다. 그럴때에도 일로서 참여하는 촛불집회인지라 아내와 함께 참여할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이번 광우병에 대한 촛불집회에는 순수하게 시민으로서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런 입장에 서보는 것이 참 낯설고 신선한 느낌이었다. 암튼 그래서 아이와 아내와 함께 촛불집회에 가기로 했다. 아내가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와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오고, 나는 퇴근해서 중간에 합류하여 함께 시청역으로 가기로 했다.

아이와 아내는 소위 '급행'이라 부르는 지하철을 타고 오고 있었고, 나는 신도림역에서 기다렸다가 이 열차를 탔다. 아이는 평소같으면 집에서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인데, 제대로 먹일 것이 없어서 우유와 와플을 먹였다. 급행같지 않은 급행이 용산에 멈추자 우린 다시 열차를 갈아타고 시청으로 갔다. 시청 광장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행사는 이미 시작되어서 무대위에는 누군가가 열심히 자기 주장을 토해내고 있었다. 우린 뒤쪽에 자리잡고 앉았다. 무대가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을 헤치고 가까이 다가가기는 좀 어려워보여서 그냥 뒤에 앉았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어느새 깜깜해졌다. 여러사람들이 차례로 나와서 저마다 하고싶은 말들을 열심히 하고 내려갔다. 중간에 아이가 쉬가 마렵다고 해서 급하게 시청역 화장실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가 앉을 당시에 우린 제일 뒤에 자리잡았는데, 어느새 우리 뒤에 사람들이 많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우린 전체 대열의 중간쯤에 위치한 듯 보였다. 아이는 쉬를 오래 참지 못하므로 열심히 사람들을 헤치고 달렸다.

화장실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약간 초조해졌다. 혹 아이가 바지에 그냥 쉬를 해버릴까봐 계속 조금만 참으라고 얘기해주었다. 다행히 조금 후에 한 칸에서 사람이 나왔다. 나는 재빨리 들어가서 빠른 손놀림으로 아이의 옷을 벗기고 앉혔다.

어제 저녁엔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그럴거라고 미리 예상했기에 아내에게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말해두었고, 아내는 여벌옷이랑 아이를 덮을 작은 이불을 가져왔다. 아이는 그래도 추워보였다. 게다가 9시가 넘으면서 아이는 무척 졸려하고 피곤해했다. 집에 가려면 적어도 한시간은 지하철을 타야하고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야한다.

9시 반이 되기전에 우린 일어섰다. 끝까지 다 보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충분히 재밌었다고 생각하고 지하철에 올랐다. 역시 아이는 얼마 가지않아서 잠들었다. 지하철은 많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고, 아내가 노약자석에 앉아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아이가 잠들어버려서 혼자 안고있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옆에 앉아 함께 안았다.

잠든 아이를 안고서 집으로 돌아오니 시간은 어느새 11시가 다되어 있었다. 우린 모두 지쳐서 대충 씻고 이불을 깔고 누웠다. 힘든 하루였다! 하루종일 일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지친 상태에서 아이와 함께 먼길을 다녀왔으니 평소보다 서너배는 더 지친 날이었다.

촛불집회 중에 재수생 한명과 할아버지 한분이 동시에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재수생부터 먼저 발언을 하고 나중에 할아버지가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이 두사람은 모두 무척 조리있게 말을 잘해서 기억에 남았다. 촛불집회에 참여할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요즘 학생들은 참 말을 잘한다! 이 재수생도 정말 말을 잘했다. 그런데 뒤이은 할아버지는 더 멋지게 말씀을 잘 하셨다. 어제 발언자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 바로 이 할아버지였다. 이렇게 멋진 할아버지가 계시기에 지금처럼 멋진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8/05/16 - [삶의 흔적속으로/안야와 함께] - 촛불을 들다
2008/05/14 - [우리사회바로보기] - 노무현에 열광하는 사람들
2008/05/07 - [삶의 흔적속으로/감은빛 하늘아래] - 6일 촛불집회를 다녀오다

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