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 더글러스 러미스 / 녹색평론사 

 

 

경제성장과 생태계 파괴 사이의 진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책 제목 치고는 좀 길다. 그리고 질문이 좀 어렵다. 아니 질문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니라 말이 좀 복잡하고 어색하다. 정확하게 뭘 묻고 싶은 건지 금방 알기 어렵다. 그런데 더 쉬운 말로 바꿔보려 해도 잘 안 된다. 결국 이게 최선의 제목인 것일까? 책의 서문에서 저자 더글러스 러미스도 제목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처음 원하던 제목과 지금 제목 사이에서 고민이 있었다고 한다. 제목이 아주 매끄럽지는 않은 것처럼 본문도 읽다보면 번역투의 문장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조금은 옛날 책을 읽는 듯 한 기분이 든다. 표지도 판형도 조금 그런 느낌.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이 책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을 펼쳐드는 순간부터 나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님이다.


김종철 선생님의 강의를 처음 들었던 날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지독한 의욕상실과 무력감에 빠져있었다. 나는 대학시절 잠시 몸담았던 사막화방지운동을 계기로 환경운동을 시작했다. ‘새만금 개발 반대운동’, ‘금정산,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반대운동’ 등의 굵직한 개발반대 운동에 참여했고, ‘골프장 건설 저지’, ‘젤라틴 공업용 쇠가죽 원료사용 중단’, ‘재생가능 에너지 확산’ 등의 다양한 운동에 참여했지만, 단 한 차례도 원하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환경운동은 기본적으로 개발반대 싸움이다. 개발을 통해 자신의 배를 불리려는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겨, 자연생태계를 현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헤비급 챔피언과 라이트급 아마추어의 권투시합만큼 불공평한 싸움이다. 처음부터 힘이 다른 거대한 권력집단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여러 개발반대 싸움의 현장을 겪으면서 느꼈던 건 무력감이었다. 물막이 공사가 막 끝난 새만금 방조제 4공구 현장에서 밤새 삽과 곡괭이를 휘둘러, 아침 무렵 겨우 다시 바닷물을 만나게 했을 때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겨우 몇 시간 뒤 전경들과 용역깡패들이 폭력을 휘둘러 우리를 한쪽으로 몰아놓고, 포크레인으로 우리가 잠시 만나게 했던 바닷물을 다시 막아버렸을 때의 느낌도 잊을 수 없다. 그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가장 강하게 나를 사로잡은 기분은 바로 무력감이었다. ‘이 싸움은 절대로 이길 수가 없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법정공방까지 갔던 ‘새만금 사업’은 결국 개발을 원하는 측의 승리로 끝났다. 또한 지율스님께서 목숨을 걸고, 4차례에 걸쳐 총 241일 동안 단식농성을 벌였지만 결국 고속철도 공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뭇 생명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는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 노력했던 몇 년 동안 나는 점점 더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뭘 해도 다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환경운동단체를 그만두고 문화운동단체로 옮겼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파괴를 막기 위해서는 문화적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김종철 선생님을 만난 건 바로 그때였다. 선생님은 내가 갖고 있는 의문을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나는 환경운동가로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근본적으로 산업사회를 벗어나는 상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여기며 자본주의를 뒤엎을 상상은 자주 하고 있었지만, 그 사회주의조차 산업사회라는 틀에서 보면 자본주의와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경제성장은 산업사회를 끌고 가는 유일한 힘이다. 그리고 경제성장만을 추구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틀 속에 갇혀있으면서 생태계의 파괴를 막아 보겠다고 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을 이뤄보겠다고 나서는 것이나 똑같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비록 눈이 가려져 있어서 쉽게 깨닫지 못하고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매우 비인간적인 곳이다. 오직 돈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끌고 나가기 때문이다. 자신의 배를 불릴 생각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다른 생명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것이다. 돈과 권력에 눈이 멀었기에 시화호의 교훈도 잊어버리고 다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대규모 환경파괴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돈과 권력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오직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망루에 오른 사람들을 죽이고도, 오히려 그들을 테러집단이라고 매도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찾고 싶었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산업사회라는 틀 바깥을 상상할 수 없었던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김종철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비로소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후에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경제성장이라는 허황된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것만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며, 자연생태계를 지킬 수 있는 길인 것이다.


경제성장이 허황된 이데올로기라고? 경제성장을 해야만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야 가난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복지혜택을 줄 수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어떻게 해서 경제성장이란 거짓말에 우리가 속았는지 알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경제성장 포기하고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온 세상이 다 경제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한 사회 혹은 한 국가만 경제성장을 포기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부터 다시 찾아나가야 한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제야 현실을 바로 보는 눈이 뜨였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운동가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아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은 평화와 환경위기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서 잘못된 상식(사고방식)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깨닫게 해주고, 올바른 상식(사고방식)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지금 모든 사람들이 ‘경제’만을 외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오직 경제성장만이 최고의 가치이자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다. 왜 그럴까? 어째서 그렇게 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그것이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현실사회주의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돈에 미친 건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 산업사회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2년 만에 다시 들었던 강연에서 김종철 선생님은 잘 찾아보면 우리 주위에 의외로 우리와 비슷한 ‘또라이’들이 많다고 했다. 실제로 그 강연을 들으러 온 50여명은 대부분 그  ‘또라이’들일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더 많은 ‘또라이’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함께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