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과 토요일 이틀동안 아내와 아이와 함께 촛불 집회에 다녀왔다. 좀 많이 지쳤다. 평일에 혼자 나가면 밤을 새기는 체력적으로도 부담스럽고 게다가 밤새도록 혼자 할일도 마땅찮아서 적당히 있다 돌아와야 하는데, 집이 멀어서 늘 막차시간을 걱정해야 한다. 주말엔 좀 늦게까지 있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에 편하게 나가는데, 문제는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혼자 나와있으면 집에서 혼자 아이를 돌볼 아내에게 미안하고 그렇다고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 아이때문에 적당한 시간에 집에 돌아가야 한다.

암튼 아내와 미리 약속하고 금요일과 토요일 집회에 아이와 함께 참여했다. 금요일엔 아내가 약간 몸이 안좋았는데, 감기몸살 기운이 있었다. 아이도 콧물이 조금 나왔다. 김밥집에서 사온 김밥을 먹으며 집회에 앉아 있다가 행진을 따라갔다. 행진이 시작될 즈음에 아이와 함께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이미 행렬 후미까지도 서울역방향으로 한참 가 있는 상황이라서 뒤에서 느긋하게 따라갔다. 광장에서 잠깐 리얼리스트 100소속 작가들을 만났다. 자주 만난다고 인사말을 나누고 헤어졌다. 명동방향으로 열심히 따라가서 행진에 참여했다. 아이는 신나서 구호를 따라 외치고 손동작을 따라했다. 뒤따라오는 대학생들 중에서 한 여학생이 계속 아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아이의 자연스러운 손동작이 무척 신기했던 모양이다. 우리 아이도 FTA국면때부터 여러번 거리행진과 촛불집회등에 참여했으니 여느 운동권 활동가 못지않은 경력이다.

대책회의의 방송차가 선두에서 사람들을 이끌었는데, 큰길로 쭉 가면 될것을 자꾸 작은길로 돌아가는 바람에 조금 화가 났다. 광화문에 들어서자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버린 차벽이 우리를 맞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직업경찰들이 차벽에서 너댓걸음 앞쪽에 노란 플라스틱 차량막이(이걸 뭐라 불러야할지 몰라서)를 늘어놓고 서너줄로 늘어서 있었다. 제일 앞줄에는 여경들이 늘어서 있었다.

우린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 앉아있었다. 예전 사무실 동료도 잠깐 만났다. 한참 노래를 틀고 구호를 외치던 방송차가 갑자기 시청으로 가자며 사람들을 데리고 가버렸다. 금요일이라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순식간에 다 빠져나가버리고 소수만 그 자리에 남았다. 집회때 식코라는 영화를 시청광장에서 상영할거라고 광고하더니 거기로 사람들을 다 데려간 모양이었다. 소수가 남았으니 이제 곧 진압을 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갑자기 경찰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교보문고쪽 인도방향에서는 징그러운 검은 개미떼가 연상되는 전경들이 꿈틀꿈틀 기어나왔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면서 거리에 남은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었고, 경찰들은 눈에 띄게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있었기에 그리고 오랜 집회경험으로 예민해진 내 감각은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의료지원단으로 보이는 흰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한 여성이 우리에게 다가와 아이를 데리고 뒤쪽으로 가시라고 말했다. 나는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말라고 했다. 사실 남아있는 사람들의 숫자로 봐선 이 공간을 사수하긴 틀린 것 같아 보였다. 대충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일어날 생각이었다. 광장에서 영화를 볼 기분은 아니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아내랑 아이는 몸이 좋지 않았고, 나도 일주일치 피로가 밀려들어서 제법 피곤했다.

행진하면서 잠깐 잠들었다가 깼던 아이는 뒤늦게 활발하게 돌아다니며 놀았는데, 우리가 가려고 하니 많이 아쉬워했다. 여경들이 뒤로 빠졌다. 아마 전열을 가다듬은 후에 어느 한쪽으로 배치되고, 양쪽에는 전경들이 배치되어서 곧 밀고 들어올 분위기인 듯 했다. 우린 미련없이 뒤로 돌아 나왔다. 시청역을 향해 걸었다. 이미 도로에는 차들이 다니고 있었다. 세종로 사거리 이순신 장군 동상 앞의 그 좁은 공간만이 섬처럼 남아 있었다. 경찰들이 강제해산시키고 나면 곧 없어질 공간이었다.

시청역을 향해 지하로 내려가면서 광장을 슬쩍 보고 갈까 생각하다가 기분이 더 나빠질 것 같아서 그냥 지하철을 탔다. 잠든 아이를 안고 먼 길을 돌아오면서 아내와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내부의 적이 가장 무서운 거라고 촛불의 진정한 적은 아마도 대책회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한번 진지하게 해보았다.

토요일엔 늦게 일어나서 뒹굴거렸는데도 피로가 쉽게 가시지 않아서 밥먹고 한동안 아이랑 놀다가 또 잠들어버렸다. 인터넷 언론들의 기사를 읽으니 우리가 돌아온 다음 경찰들이 사람들을 인도로 내쫓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교보 앞쪽에 있던 전경들이 폭력적으로 사람들을 밀어냈고, 그 소식을 들은 시청광장에서 식코를 보던 사람들이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직업경찰들이 아닌 전경들이 전면에 선 강제해산 작전이 다시 벌어졌고 사람들은 인도로 밀렸다가 경찰들이 틈을 보이면 다시 거리로 내려섰다고 한다.

게다가 황당했던 건 대책회의쪽에서 명박산성에 맞서 국민토성 혹은 민주토성이라 불리는 것을 쌓아보려고 모래를 주문했던 모양인데, 새벽에 모래 트럭을 두 대나 경찰에 뺏겼다고 한다. 전 날 집회에서 모래주머니를 갖고 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런 발상을 한 심정은 이해했으나 조금 쓸데없는 짓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비싼 돈 주고 사왔을 모래를 그렇게 허망하게 경찰에 뺏겨버린 것이다.

만약 안 뺏기고 무사히 모래가 오고 사람들이 즐겁게 모래주머니를 만들어 광화문으로 가져가서 쌓는다. 그런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우리는 차벽을 넘어 청와대로 가던가 아니면 청와대만 지키는 경찰들을 비웃으며 서울시내 곳곳에 있는 다른 곳들을 다니면서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면 되는 것이다. 경찰이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매일 만들어 놓은 저 폭력을 넘어서 우리의 올바른 목소리를 전할 의지가 없다면 거기에 밤새도록 앉아 있어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거기다가 모래주머니를 쌓아봐야 뭘 어찌 할 것인가? 그깟 모래주머니 쌓은 후에 넘어가겠다고? 국민들이 기껏 모금해준 돈으로 쓸데없는 짓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그닥 편치 않은 마음으로 토요일 집회에도 참여했다. 역시 아내와 아이와 함께였다. 이번에는 지난번 6월 10일 등장했던 크레인에 매달린 대형 스피커가 보였다. 조금 오버가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일지 몰라도 저 정도 크기의 스피커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았다. 무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언론재단 앞쪽에 앉아 있었는데도 스피커 소리가 너무 커서 불편했다. 아이도 계속 소리가 너무 크다고 불평을 했다. 실제 사람들의 대열은 한참 앞에서 끝나 있었고 그 뒤로는 띄엄띄엄 앉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집회가 끝날때쯤 박원석 상황실장이 남성분들 천명만 무대뒤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모래를 실은 차가 서울역 근처에서 경찰에 막혀 있는데 사수하러 가자는 것이었다. 집회가 끝나고 사람들은 조금 걸어서 광화문으로 갔다.

걷는 중에 작가회의와 리얼리스트 100의 깃발을 보고 얼굴을 아는 몇몇 작가들과 인사를 했다. 잠시 걷던 행렬이 멈추고 두대나 되는 방송차의 음악과 구호를 따라 노래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치며 사람들은 서 있었다. 아이가 졸려했고 나는 횡단보도쯤에 자리잡고 앉아서 아이를 재웠다. 경찰방송차는 보이지 않았는데, 차벽 뒤에서 늘 듣던 여성의 목소리로 늘 듣던 똑같은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간혹 경찰 간부는 아닌듯한 조금 젊은 남성의 목소리로도 경고방송이 나왔다. 나중에 읽어보니 인터넷 언론들에서도 일제히 이날의 기사에는 방송을 통한 설전을 주 기사로 쓰고 있었는데, 이날은 정말 경찰쪽과 우리쪽이 지겹도록 마이크를 잡고 입씨름을 벌렸다.

여경(아마도 여경이 맞겠지)이 계속 폭력을 자제하라고 방송을 해대는데, 도로를 막고 사람들의 보행권과 이동권을 박탈한 너희들의 거대한 폭력부터 거둬들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 여자는 계속 시위대를 일반시민과 폭력을 부추기는 일부 세력으로 나눠서 말하곤 했다. 그리고 경찰은 절대로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니 안심하라는 식의 방송을 했다. 그래놓고 버스에 들어가 있던 경찰들이 소화기를 뿌리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략 한시간쯤 잤을까? 안고 있는 팔이 저려올 무렵 아이가 깼다. 화장실을 데려가기 위해 코리아나 호텔에 들어갔다가 나오니 비가 왔다. 우비를 챙기려 했으나 집에서 나서는 순간 서두르느라 잊고 나오는 바람에 우린 우산외에 비를 피할 수단이 없었다. 아이가 비를 맞고 감기에 걸릴까 무서워서 집에 가야하나 생각을 했다. 한동안 코리아나 호텔 입구에서 비를 피하고 서 있었는데, 철도노조인지 확실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그쪽 노조 이름이 찍힌 트럭이 나타나면서 상자 하나를 거리에 있던 사람에게 던져주고 앞으로 갔는데, 우비가 든 것 같았다. 역시 사람들이 상자를 열고 우비를 나눠줬다. 나도 얼른 가서 우비를 2개 챙겼다. 나와 아이가 우비를 입고 아이에게는 아내가 혹시 몰라 갖고 온 방수가 되는 검은 잠바를 입혔다. 그리고 거리로 나왔는데, 허무하게도 곧 비가 그쳤다.

땅이 젖어 앉지 못하고 잠시 서 있었다. 아내와 아이가 배고프다해서 옥수수랑 핫도그를 하나씩 샀는데, 오늘도 노점상연합회에서 순두부를 나눠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난 서둘러 아내에게 말해 한 그릇 받아오게 했다. 버스 정류소에 설치된 긴 의자에 앉아서 핫도그와 순두부와 옥수수를 나눠먹었다. 나도 순두부를 한그릇 받아와서 먹었다. 역시 맛있었다. 문득 일주일 전에 만났던 윤희상 시인이 생각났다. 그 분도 지금 여기 근처에서 순두부를 드시고 계실텐데 싶었다.

배를 채우고 다시 앞쪽으로 갔더니 차벽 중간 쯤에 모래주머니를 집중적으로 쌓아올려서 차벽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고 깃발을 든 사람들이 차벽위에 올라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오늘 차벽은 세 겹이었는데, 그중 제일 뒤쪽 차벽이 차 위에 방패막이가 된 차들이었고, 그 뒤에서 전경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며 채증을 했고 소화기를 뿌려대기도 했다.

이어서 밧줄을 든 남자들이 뛰어왔다. 오늘도 차를 끌어내려나보다 싶었다. 그래 저 모래 쌓아놓고 저기 올라가봐야 넘어가지도 못할 것을, 모래 트럭만 죄 뺏기느니 차라리 그런 쓸데없는 짓 말고 밧줄이나 대량으로 가져와서 차벽을 확실하게 해체하는 작전을 짜는 게 나았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앞쪽에서는 차에 밧줄을 묶는 사람들과 이를 저지하기 위해 소화기 분사를 비롯하여 각종 방법으로 막으려는 경찰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그 그 뒤쪽에는 응원하는 시민들이 열심히 노래와 구호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거리를 두고 뒤쪽에는 오마이뉴스가 자발적 시청료를 1억넘게 모아서 사들인 대형 스크린을 갖춘 방송차가 있었다. 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무슨 스포츠 중계보듯이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불과 일이백미터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그냥 앞쪽으로 와서 보면 다 보이는 것을, 사람들은 굳이 거기에 앉아 야구 보듯, 축구 보듯 시위를 관람중이었다.

앉을 자리를 찾으면서 앞쪽으로 향해 걷고 있는데, 한 아줌마가 뒤쪽에서 후다닥 뛰어오더니 나를 향해 두서없는 말들을 뱉어냈다. 아마도 오마이뉴스 방송차의 화면을 보고 놀라서 온 모양인데, 전경들이 지금 불을 지르고(아마도 소화기 분사 모습을 보고 불이 나서 연기가 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때리고 난리가 났는데, 남자들은 다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의 말이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군대 갖다온 남자들은 다 어디있나 뭐 이런 말을 뱉으면서 앞쪽으로 사라졌다.

아이를 안고 있지 않았어도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사람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앞쪽에 자리잡고 앉았다. 비가 왔고 또 시간이 늦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돌아갔고 또 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오늘은 끝까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와 함께 있다는 현실을 잠시 잊기로 마음 먹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으쌰 으쌰' 남자들이 밧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예전과 다르게 차는 쉽게 끌려나오지 않았다. 별써 예전부터 경찰은 차들끼리 와이어로 고정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밧줄이 더 필요하고 사람들이 더 많이 한번에 달라붙어야 할 듯 했다. 암튼 나도 밧줄을 한번 당겨보고 싶었다. 아이를 아내에게 넘기고 뒤쪽아 가서 앉아 있으라고 했다. 방송을 멈춤 방송차가 서있는 곳 부근에 아내는 자리를 깔고 아이와 함께 앉았다.

나는 한쪽 장갑을 얻어끼고 열심히 밧줄을 당겼다. 줄다리기는 원래 많은 사람들이 박자를 맞춰 함께 당겨야 하는 것인데 줄이 길고 줄 주위에 사람들이 시야를 방해하는 데다가 정확한 구령등이 없어서 제대로 힘을 쓰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리가 한참 당기고 있는데, 서대문 방향에서도 또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갑자기 밧줄을 당기던 사람들이 쓰러지고 몇몇이 다친 듯 했다. 나중에 구급차가 여러대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싣고 갔다. 방송차에서 사람들이 다치니 밧줄을 그만 치우자라는 말을 했다.

밧줄을 당기는 시간보다 밧줄을 제대로 고정하는데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는 듯 했다. 나는 뒷쪽에 있어서 앞쪽 상황을 알 수 없었는데, 밧줄은 자주 앞으로 가서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밧줄이 앞으로 가버리고 나면 나는 뒤로가서 아내와 아이가 어떤지 보고 오곤 했다. 그런데 한참 밧줄을 당기는데 전화가 왔다. 멈추라는 손짓과 요청이 오고 밧줄은 다시 앞으로 갔다. 전화를 받으니 아내가 돌아오란다. 가보니 사람들이 계속 귀찮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내가 펼쳐놓고 앉아 있던 은색 자리에 빈공간이 많으니까 중년 아줌마 두 사람이 함께 앉았는데, 계속 신경거슬리는 말들을 하더니 급기야 자리를 끌고 뒤도 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청계광장쪽으로 가자고 하면서 주인인 아내의 허락도 없이 자리를 끌고 가려고 해서 아내가 그만 집에갈 생각이니 나가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또 한 남성이 와서는 술냄새를 풍기면서 아이가 있으면 위험하니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알고 있다고 괜찮다고 했는데도 이 남자가 천원짜리를 꺼내 아이에게 건네면서 자꾸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돈을 거절하고 화가나서 내게 전화한 것이다.

이미 시간은 한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아내의 얘기를 듣고 이제 어찌할 것인가를 정해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택시를 타고 영등포로 가면 아직 심야 버스를 타야했다. 아마 아직은 있을 테지만 더 늦으면 그것 마저도 끊기리라. 아니면 5월 마지막 밤, 물대포를 쏘던 그 날밤에 아내와 아이가 하룻밤 신세를 졌던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는데, 그 후로 아마 번호를 바꿨을 확률이 높고 이 늦은 시간에 또 전화하기에는 미안해서 그 방법은 제외시켰다. 다른 방법은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장모님께 가는 것인데, 아내도 나도 조금은 망설여졌다.

나는 남고 싶은 마음과 돌아가서 쉬고 샆은 마음이 반반이었는데, 상황을 보아하니 그닥 좋아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돌아가기가 아쉬웠다. 그런데 아내와 아이만 택시태워보내려니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기위해 시청방향으로 걷는데, 오마이뉴스 방송차를 지나치는 순간 사람들이 환성을 질렀다. 화면을 보니 밧줄에 당겨져서 차 한대가 조금 끌려나왔다.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던 차였다. 드디어 끌어냈구나. 하지만 광화문 앞을 막고 있는 수십대의 차 중에서 겨우 한대 끌어냈을 뿐이다. 시간이 더 늦어지고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면 또 경찰은 소화기와 방패와 곤봉을 앞세워 폭력진압을 할 것이다.

남아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 들었지만 이미 한번 가자고 말해버린 후라 그냥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아까 12시가 되기 전이었던가 예전에 내가 활동했던 단체에서 집행위원으로 계신 분을 잠깐 만났다. 반가워하시면서 시청앞에서 활동가들이 공연하고 있으니 잠시 들러보라고 했었다. 그 분은 이제 집으로 가신다고 했다.

시청광장으로 다가가면서 그 말이 떠올랐다. 아마 거의 밤새도록 공연을 할 것이다. 그 친구들은 그런 기획을 자주 했으니까. 잠시 들러보면 반가운 얼굴들을 좀 만나겠지. 하지만 몸도 피곤했고 아이를 안은 팔은 점점 더 무거워져갔다. 거기서 시간을 조금 지체하면 자칫 영등표에서 차가 끊길지도 모를일이었다. 그냥 서울역방향으로 조금 더 가서 택시를 탔다.

영등포에서 탈 버스가 여의도에서 출발한다는 얘길 택시 안에서 아내가 꺼냈다. 그러고보니 여의도 환승센터에서 타면 될 것을 굳이 영등포까지 더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얼른 기사님께 말씀드렸다. 이제 막 마포대교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여의도 환승센터에서 십분여를 기다려 버스를 탔다. 집 근처에서 버스를 내려 다시 십오분정도를 걸었다. 아이를 안은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시계는 안봤지만 아마도 두시 반은 넘었으리라. 피곤했다. 우리는 뽑지도 않은 멍청한 대통령 하나 때문에 삶이 너무 피곤하다!
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