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새 식구가 된 네 마리의 물고기 얘길 했었다. 그땐 워낙 경황이 없던 때라 그냥 임시로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넣어두고 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알아본 바로는 제대로 된 수조에 여과기와 산소기를 달아줘야 한다고 하던데, 다음에 해줘야지 하고 잠시 미뤄놓고는 계속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 생각지도 않게 키우게 된 탓에 별로 관심도 없었고, 괜히 잘 모르는 상황에서 돈을 쓰기도 아까웠다.

그래도 이 놈들을 죽일수는 없으니 때맞춰 먹이를 주고, 잊을만하면 한번씩 물도 갈아주고 했다. 여과기와 산소기가 없어서 그런지 물은 금방 더러워졌고, 이러다가 떼죽음 당하는 거 아닌가 겁이 나기도 했지만, 곧 여유가 생기면 모두 다 장만해주마 라고 말만하고 또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그 사이 우리집은 이사를 했고, 더 좁아진 공간에 적응하고, 짐을 정리하느라 또 정신이 없었다. 달이 바뀌어 10월이 되어버렸고, 추석이라 집을 비우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집에서 나가기 직전에 이 녀석들이 혹시 굶어 죽을까봐 먹이를 좀 많이 뿌려주고 나서긴 했지만, 설마 무슨 일이 생기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일요일 밤에 집에 돌아와보니, 한 마리가 죽어서 배를 드러낸 채 수면위에 둥둥 떠있었다. 물도 엄청 더러웠다. 시체를 치우고 물을 갈아주고 먹이를 주고나서 빨리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다 곧 다 죽어버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떤 녀석이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그새 이 놈들이 조금 커졌고, 또 물이 금방 더러워져서 알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오늘 드디어 어항과 여과기와 산소기를 장만했다. 집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조금 규모가 있는 가게였는데, 일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불친절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처지라 이것저것 물어보고 천천히 생각을 좀 해봐야했는데, 다짜고짜 '플라스틱'이냐 '유리'냐를 고르라고 하고, 가격대를 대충 얘기해 달라고 재촉했다. 내가 잠시 생각하는 동안 이 사람은 갑자기 안쪽으로 가 버리더니 딴 일에 열중했다. 안쪽에 있던 여성분에게 다시 용건을 말했다. 이 사람도 마찬가지 태도였다. 뭐 깊이 생각해봐야 별로 아는 것도 없으니 대충 급하게 골라야 했다. 그래서 모든 기준은 가장 싼 놈으로 해서 꼭 필요한 세 가지를 샀다.

집에와서 설치를 해보니 이제서야 물고기를 기른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 전에 통에 들어있을 때에는 옆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아서 늘 위에서 내려다 보았다. 그래서 녀석의 앞모습이나 옆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아! 인터넷으로 사진을 몇 장 보았기에 대충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는 있었다!)  제대로 된 어항에 넣어주니 녀석들이 너무 깨끗하게 잘 보였다.

드디어 죽은 놈이 어떤 녀석인지 알아냈다. 바로 '무니'였다. 이것도 우연인지,  종의 이름을 따서 지은 '제브라', '다니', '오'는 살았는데, 무늬가 예뻐서 지은 이름의 '무니'만 죽었다. 어쨌든 무니의 장렬한 전사로 인해 남은 세 마리는 쾌적한 환경을 얻게 되었다.

가만히 녀석들을 들여다보다보면, 사람들이 왜 비싼 열대어를 사서 키우는지 알 수 있을것 같다. 특히 좋은 어항을 갖고 있으면 예쁜 물고기를 갖고 싶어지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제일 싸구려 어항인데도 여기에 좀 더 예쁜 다른 물고기를 사고 싶어지는 내 마음을 깨닫고 깜짝 놀라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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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