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모 박물관에 행사가 있어서 갔다. 아직 아이의 새 어린이집을 정하지 못해서 이번주는 아내와 내가 번갈아 데리고 다니는 중인데, 어제는 내가 데리고 갔다. 그 이틀전인 화요일에는 아이와 함께 사무실에 출근했다. 출근길에 충무로에 들러서 인쇄물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아이와 함께 충무로로 아침나들이를 하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아이는 대체로 얌전히 잘 놀았다. 이면지에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고 그림책을 읽고 지냈다. 점심 먹은 후에는 낮잠도 1시간 반정도 잤다. 아직 아이가 어릴 때는 사무실에 데리고 나오면 나는 일을 거의 못하곤 했었는데, 이젠 많이 자라서 혼자서도 알아서 잘 놀아주니 참 다행이다.

 

어제는 하루종일 행사장에 있을 예정이라서 구경거리도 많고 아이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고 해서 안심하고 데려갔다. 행사장은 예상대로 사람이 별로 없고 썰렁했다. 대충 설치를 마치고 한바퀴 돌아보았다.

 

간간히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면서 아이랑 놀아주다보니 금방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 박물관에는 식당이 총 3곳이 있었는데, 하나는 제법 비싸보이는 한식당이었고, 또 하나는 푸드코트였는데, 역시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카페 겸 식당으로 비교적 간단한 식사를 팔고 있었다. 먼저 식사를 한 활동가가 거기서 김밥을 팔더라는 얘길 하는 바람에 아이가 김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럼 아이는 김밥을 먹이고 나도 간단하게 먹자는 생각에 가장 멀리 있는 카페 겸 식당에 갔다. 2천원짜리 김밥과 5천원짜리 새우볶음밥을 시켰다. 간단한 걸 먹으려 했는데, 아이가 무척 좋아하는 새우볶음밥을 보니 먹여주고 싶어서 조금 비쌌지만 개의치 않았다. 곧이어 음식이 나오는데 그릇에 달랑 김밥만 그리고 볶음밥만 담겨 있었다. 다른 밑반찬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살펴보니 숟가락, 젓가락과 단무지와 김치를 직접 담아가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비싼 밥값을 받고도 고작 단무지와 김치 몇조각만 주고, 그것도 직접 담아가라는 행태에 조금 화가 났지만 참았다.

 

그리고 물을 떠가려고 정수기를 보았더니 주위에 컵이 없었다. 계산대에 가서 컵은 어디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매니져급으로 보이는 아줌마(옷을 차려입은)와 매장 정리 등의 일을 하는 아줌마(앞치마를 입은) 두 사람이 동시에 컵은 원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럼 물을 어떻게 마시라는 말이냐고 물었더니 정수기 위에 보면 종이 컵이 있단다. 컵모양으로 된 종이컵이 아니라 작고 납짝한 종이봉투를 손으로 벌려서 물을 겨우 한모금 담을 수 있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바로 그 종이컵(이걸 컵이라고 불러야 하나?)이 있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일단 참았다. 그냥 물을 마시려는 게 아니라 밥 먹으면서 물을 먹어야 하니 컵을 달라고 했다. 이 여자들 말을 못알아 듣는건지, 상대하기 귀찮다는 것인지 막무가내로 우린 원래 컵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다 저걸로 알아서 먹는다. 그냥 알아서 처 먹어라 이런 뉘앙스의 말만 반복한다. 그래서 나는 상식적으로 식당에 밥먹으러 왔는데, 컵을 안 주는게 말이 되느냐? 장난하지 말고 빨리 컵을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신종플루 때문에 컵을 놓을 수 없다!'는 말이다. 참 말 안통하는 사람들이다! 아니 그럼 신종플루 무서워서 다른 식당들은 어떻게 컵을 주나? 아니 아예 숟가락도, 젓가락도, 밥그릇도 아무것도 주지 말고 다 일회용으로 바꾸지 왜 컵만 안주나?

 

조금 흥분을 하기 시작한 내가 약간 언성을 높여서 따지니 묻는 말에 대답은 않고 무조건 우린 원래 컵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더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 인종들이다! 이런 인간들은 상대하면 할수록 나만 더 피곤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를 내기 보다는 그냥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컵이 없으면 물을 담아 마실 그릇이라도 달라고 했다. 아이랑 밥을 먹어야 하는데, 저 얇은 종이 컵에 겨우 물 한모금 담아소 조심스로 손에 받치고 밥을 먹으란 말이냐? 대체 밥은 어느 손으로 먹으란 말이냐고 했더니 그제서야 일하는 아줌마가 저쪽에 앉은 아이를 한번 보고는 주방으로 향한다. 그 와중에도 옷을 말끔하게 입은 아줌마는 다른 아이들도 다 저걸로 물 마셨다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내가 한번 째려보니 다시 입을 다문다. 진짜 짜증나는 인간들이다! 국그릇으로 쓰는 작은 그릇을 받아서 물을 담아왔다.

 

그런데 밥을 먹고 있자니 또 화가 난다. 김밥을 말은 밥이 냉장고에 있던 밥이었던 모양인지 차가워서 맛이 하나도 없다. 재료도 몇 개 되지도 않고 밥도 차가운 김밥 한 줄을 2천원씩이나 받아 처먹다니! 게다가 5천원씩이나 받아먹은 새우볶은밥은 또 어떤가? 새우를 눈씻고 찾아봐도 없어서 밥 다먹을 때까지 세봤다! 겨우 2조각 나왔다! 내가 2마리가 아닌 2조각이란 단어를 쓴 이유는 손톱만한 냉동새우가 온전한 2마리가 아닌 반이 잘려진 2조각이 나왔기 때문이다. 맛이 없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한번 더 따져야하나 생각하다가, 이번에 따지면 곱게 못 넘어가고 싸움이 될 것 같은데, 아이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망설여져서 참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싸웠어야 적어도 그 인간들이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기라도 했을텐데 싶어서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막상 그 순간에는 좀 귀찮았다! 말이 안통하는 상대를 붙들고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봐야 나만 미친놈 취급 받는게 아닌 가 싶기도 했다. 상식이 없는 인간들에게는 오히려 상식을 가춘 인간이 몰상식한 인간으로 비쳐지는게 당연하다.

 

그 인간들이 왜 상식을 갖추지 못했는지는 내 알바 아니다. 지들이 상식이 있던 없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상관이 없다. 그런데 그 몰상식한 인간들이 나에게 피해를 입혔기 때문에 나는 몹시 불쾌하고 짜증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냥 재수없었다고 넘겨버리기에는 그 순간의 화가 무척 컸고, 심지어 신종플루까지 들먹여주시는 센스가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렇게 자판을 두드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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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