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 이권우 / 그린비


스스로를 도서평론가라고 부르는 이권우의 독서에 대한 책이다. 그린비출판사에서 꾸준히 내고 있는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흔히 '달인 시리즈'라고 부름)의 다섯번째 책이다. 표지는 마이산 '탑사'에서 본 '돌탑'들처럼 높이 쌓아올려진 '책탑'들이 여기저기서 높이 솟아 있고 그중 왼쪽 책탑 위에 어느 여성이 걸터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그림이다. 제목만 보아도 흥미로운 것 같은데, 표지그림이 시선을 확 잡아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한 아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피부가 까맣고 깡마른 아이. '깜디'라고 놀림을 당하거나, '네가 지나가면 온 동네 개들이 다 쫓아온다!'고 놀림당하기 일쑤였던 아이가 생각난다. 그 아이는 예전 학교에서는 골목을 주름잡았던 소문난 개구장이였으나. 새로 전학온 학교에서는 쉽게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마다 혼자 학급문고를 읽으며 시간을 보낸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산에서, 계곡에서, 들판에서 뛰어놀았다. 그러나 혼자 노는 일은 별로 재미가 없었고, 나중에는 학급문고를 빌려와서 집에서도 책을 읽게 되었다.

 

교실에서 혼자 학급문고를 읽는 일은 점점 이 아이의 습관처럼 되어갔고, 학년이 바뀌어 새로운 교실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된 뒤에도 이 습관은 계속 되었다. 나중에 중학교에 올라간 아이는 국어선생님에게 글솜씨가 있다고 칭찬을 받고, 백일장에서 작은 상도 받게 된다. 칭찬은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다. 아이는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책읽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저마다 하나쯤은 책에 빠지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계속 그렇게 책을 읽었다면 또 한 명의 이권우가 되었을지도 모를 저 아이는 고등학교 3년의 절반은 입시위주의 교육에 시달리면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학교와 사회에 반항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간신히 점수를 맞춰 들어간 대학에서는 데모하고 술마시느라 책을 읽지 못했다. 애초에 그 아이가 책을 접한 계기는 다른 흥미거리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 원하기만 한다면 훨씬 더 자유롭게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는 시기에 그 아이는 책에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저 술로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그 아이가 다시 책을 읽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다. 국가와 개인, 사회와 개인의 관계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자유란 무엇이며, 평등이란 무엇인가 답을 찾지 못해 좌절하던 중. 결국 답은 구호와 선언에 있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책을 들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저자만의 독특한 입담으로 주저리 주저리 풀어서 얘기해주고 있다. 2부에서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사실 1부는 좀 쓸데없이 길다고 볼 수 도 있다. 내용이 좀 독창적이긴 하지만 결론은 너무 뻔하다. 결국 책을 읽어야 한다는 걸 말하는 것인데, 이렇게까지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계속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과연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책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이 책을 찾아 읽고 열정적인 독서가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을 찾아 읽을 사람이라면 대부분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결론에는 동의하는 사람일터, 1부는 적당히 맛보기로 해서 흥미를 돋구어주고, 2부의 내용을 좀 더 알차고 재밌게 가져갔으면 훨씬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정말로 책읽기에 전혀 관심없는 사람이 우연히 이 책을 알게되어 읽고나서 책에 더 관심을 갖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고해도 2부의 내용을 위주로 하는 게 더 좋을 것이다. 앞부분을 읽고 책을 꾸준히 읽어야 겠다고 마음을 굳힌 사람이 계속 읽기에 1부의 내용이 너무 많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좀 잔소리처럼 느껴지는데, 이건 오히려 역효과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앞서 이 책에 대해 불평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웠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특유의 입담으로 줄줄 풀어놓는 이권우의 필력은 무시할 수 없다. 역시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무슨 교훈을 얻기 위해 읽을 책은 아니다. 책을 꼭 읽어야만 하는 절대적인 이유를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책읽기의 달인이 될 수 있는 어떤 특별한 비법을 전수해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이런저런 일화들을 접하고,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 하게 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올해 사상최대의 불황을 맞고 있다는 출판계, 이 책이 나와서 전체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수 없지만 적어도 이 책만은 그럭저럭 팔리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이 책이 많이 팔려서 더 많은 사람들이 책 읽기에 관심을 갖고 그래서 출판계에도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 이 사회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나갔나? 한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책'은 그냥 형태로서의 책은 아니고 '좋은책'이다. 무엇이 '좋은책'인지는 묻지마라! 그건 스스로 찾아야 할 답이지 싶다!

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