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3일 효순이 미선이를 기리는 촛불과 고 이병렬님을 기리는 촛불의 의미가 더해진 행사였다. 기사를 찾다보니 잊혀진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지난 88년 6월 6일 사망하신 박래전 열사의 20주기가 얼마전에 지나간 것이다. 사실 박래군 활동가는 주요 현장에서 종종 얼굴 마주치곤 했기에 알고 있었지만 박래전 열사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는데, 박기범 작가가 쓴 동화를 읽고 알게 되었다. 이번에 읽은 기사에 의하면 시인을 꿈꾸었던 박래전 열사가 쓴 시를 모은 유고시집이 얼마전에 나왔다고 한다. 한번 찾아읽어봐야겠다.

암튼 어젠 아내와 아이와 함께 참여했다. 종종 함께 밤늦게까지 남아있으면서 더욱 친해진 사무실 동료 레옹형(늘 화분을 소중히 가꾸는 분이라서 마틸다 없는 레옹이란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도 함께 갔다. 아내가 어린이 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타고 오고 있었고 중간에 나와 레옹형이 합류하여 함께 시청으로 갔다. 시청역에 내려서 미리 지하철역에서 화장실을 들렀다. 화장실은 늘 그렇듯 긴 줄을 기다려야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광장에 나와서 할머니가 파는 김밥을 두줄 샀다. 광장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사람들을 헤치고 나가 간신히 빈 공간을 발견하고 자리를 잡은 우리는 우선 김밥과 빵과 물로 배를 채웠다. 노점상 연합회에서 나온 어느 아저씨가 아이에게 바나나 하나를 주셨다. 열심히 배를 채우면서 구호도 외치고 노래도 부르고 자유발언을 들었다.

레옹형은 지금 촛불정국에 대해 르뽀를 준비하고 계시는 팀들로 부터 정보수집을 부탁받고 보수단체들에 대한 정보수집차 먼저 자리를 떴다. 우리 가족은 집회가 끝나고 자리를 깨끗이 정리하고 행진에 참여했다. 늘 그렇듯 짧은 행진은 광화문에서 금방 막혀버렸다. 오늘은 집회 막바지에 박원석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이 말했듯이 여의도로 향할 모양이다. 아내와 함께 우린 어쩔 것인지를 짧게 상의했다. 걸어본적이 없으니 얼마나 걸릴지 또 얼마나 힘들지 알수가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과연 거기까지 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래서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자고 했다.

행진 대열이 서대문 방면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옹형이 그 많은 인파(주최측 추산 3만명, 대략 1만5천에서 2만여명 사이쯤으로 생각됨)속에서도 용케 우리를 찾아내서 잠시 함께 있었지만 곧이어 전화를 받으면서 멀어졌다.

역사박물관을 지나고 서대문 고가도로를 오르는데, 촛불의 행렬이 정말 멋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감탄사를 내면서 아름다운 촛불의 행진을 즐겼다. 물론 우리로 인해 꼼짝할 수 없게 된 차에 탄 사람들에게는 그 광경이 지옥보다 더 끔찍했을 것이다.

서대문 고가를 완전히 내려왔을 때쯤 레옹형에게 전화가 왔다. 뒤에서 따라오고 있으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아내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해서 육교 앞 스타벅스 건물의 화장실에 가고 나와 아이는 도로에 서 있었다.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행진대열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한참 후에 레옹형이 나타났다. 우리 기획위원이자 리얼리스트 100에서 활동하시는 작가분들과 함께였다. 인사를 하고 다시 헤어졌다. 갑자기 아이도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아내가 들어간 화장실에 데려갔다.

우리 식구가 모두 볼일을 마치고 나와보니 이미 도로엔 차가 다니고 있었고 행진 대열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처럼 화장실 등의 볼일 때문에 뒤처졌던 사람들이 열심히 인도로 따라가고 있었다. 이때부터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계속 아이를 안고 왔기에 조금은 팔힘이 빠져있었지만 대열을 따라잡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아내는 내 걸음을 쫓아오기 힘들어서 몇 차례 천천히 가자고 요청했다. 나는 잠시 속도 조절을 이내 마음이 급해져서 다시 발걸음이 빨라졌다.

충정로 역을 지나서 신촌과 마포 방향으로 도로가 갈리는 교차로에서 간신히 대열 꽁무니에 합류 할 수 있었다. 약간 오버페이스를 한 덕분에 약간 지쳐버렸지만 대열에 합류했다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레옹형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제일 뒤에서 따라간다고 했더니 뒤쪽으로 왔다. 내가 지쳐보였는지 잠시 아이를 안고 가기도 했다. 아이는 이미 여러차례 봤고 오랜시간을 함께 있기도 했기에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안기고 나서 긴장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불안한 마음은 남아있나보다.

아이가 무겁기도 하거니와 아이 마음도 편치않은 것 같아서 잠시후에 다시 내가 안았다. 고맙게도 레옹형은 이후에도 한번 더 아이를 안아주었다. 약간 오르막길에서 대열의 속도가 느려졌을때 한동안 아이를 내려서 걸리기도 했다.

한동안 신나서 떠들고 노래도 부르고 주위들 두리번 거리던 녀석은 공덕쯤을 지날때부터 지쳤는지 내 어깨에 머리를 콕 박고서 꼼짝도 안한다. 가끔 고개를 들어서 주위를 둘러보고 다시 머리를 박는다. 졸린 눈치다. 이미 11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대열 뒤쪽에서 가다보니 뒤따라오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거나 시비를 거는 경우가 많았다. 아내에게 시비를 건 차량 하나에 경고를 주고 이후에도 여러차레 다른 차들과 시비가 있었다. 마포대교에 올라서니 시원한 강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이미 체력이 거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게다가 아이는 조금 전에 막 잠이들어버렸다. 잠든 아이는 몸이 축 쳐져서 안고 걷기가 더 불편하다.

주변에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걷는 부부와 아기띠에 아이를 안고 걷는 아빠가 눈에 띄어서 부러웠다. 촛불집회에 올때마다 유모차를 갖고 왔으면 좋았을걸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무거운걸 갖고 먼길을 오는 것 자체가 또 큰 골칫거리다.

아이가 좀 더 어렸으면 유모차나 아기띠에 의지했을테고, 좀 더 컸으면 스스로 걷게 했을텐데 좀 애매한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차를 타고 지날때는 몰랐는데 마포대교는 무척 길었다. 잠든 아이를 최대한 편안하게 하려고 애쓰면서 걷는데 집중하느라 몰랐는데, 어느새 레옹형과 또 헤어져버렸다. 여의도에 들어서서 이제 다 왔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 걸었다. 여의도 공원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빠져서 공원안으로 들어가기에 아내를 불러 우리도 그 쪽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도로를 통해 도는 길이 아닌 공원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이 있을 듯하여 들어갔는데, 내 예감이 맞았다. 우린 KBS 건물 앞에 앉아서 쉬었다.

나중에 전화를 해서 레옹형이 다시 우릴 찾아왔고, 여의도에 계셨던 다른 기획위원이자 작가분들도 몇 분 더 뵙게 되었다. 한참 쉬고 있는데, 행렬은 한나라당사를 향해 다시 출발했다. 아내와 나는 잠시 더 여기서 쉬다가 집으로 가기로 했다. 어느새 12시가 다되어가고 있었다. 오늘 기사를 찾다보니 행렬은 한나라당사앞에서 잠시 시위하다가 다시 MBC로 갔고 거기서 시위한 후에 공식 해산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다시 시청쪽으로 돌아갔다는 소식도 있었다. 요즘 촛불시위의 흐름을 보면 그랬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우리가 여의도를 향한 후에 광화문 사거리에 일부가 남아있었는데,(역시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경찰에게 밀려 거리를 내주고 인도로 쫓겨나서 집회를 계속했다고 한다.

암튼 우린 여의도 환승센터로 다시 돌아가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심야버스에는 끝없이 사람들이 올라탔다. 버스를 내려 조금 걸어야 했기에 집에 돌아온 시간은 2시가 넘어서 였다. 아이도 아내도 나도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아이와 함께 오지 않았다면 끝까지 함께 할 생각이었는데, 도중에 돌아와서 조금 아쉬웠다. 아내도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아이를 데려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난 그거랑 상관없이 오늘 재밌었다고 괜찮다고 했다. 아이에게도 아내에게도 또 내게도 많은 공부와 운동이 된 하루였다!
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