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인 토요일엔 전날 조금 무리한 탓인지 한낮까지 잠을 잤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어나긴 했지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피곤은 전혀 가시지 않은 느낌이었다. 저녁엔 행사가 있어서 나가봐야 했다. 아내는 일이 밀려 있다고 일하러 나가고, 나는 아이랑 잠시 놀아주었다.

아이가 잠든 사이 밀린 집안일을 좀 했다. 그러나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다 하지도 못하고 아이 옆에 누워버렸다. 한참 누웠다가 일어나 대충 집안 정리를 마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아이를 장모님께 데려다주고 사무실에 들렀다가 행사장에 가야했기에 갈길이 멀었다. 서둘러 준비를 했는데 잠에서 깬 아이가 바지에 실수를 해버렸다. 평소엔 혼자 일어나서 아이 말로 '쉬통'에 가서 바지랑 팬티랑 내리고 잘 하더니, 하필 오늘같이 바쁜날에 딱 바쁠때에 실수를 해버린 것이다. 부랴부랴 옷을 벗기고 엉덩이와 다리를 씻기고 '아기로션'을 발라주고 나들이 옷을 골라 입혔다. 아이는 갈길이 먼 아빠 맘도 몰라주고 계속 투정부리고 칭얼거리고 반항했다.

암튼 서둘러 아이를 차에 태우고 나섰다. 예상보다 한 삼십여분 늦어지긴 했지만 서둘러가면 어떻게 시간에 맞출수도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로 향하는 도로가 꽉 막혀있었다. 차는 느릿느릿 움직일 수 밖에 없었고, 시간은 재빨리 흘러갔다. 행사 시작시간에는 죽어도 못 맞추겠다고 생각할 때쯤 도로가 조금씩 열렸다. 서둘러 차를 몰아 일단 처가댁에 차를 세웠다. 주차할 때도 시간을 많이 뺏겼다. 평소 우리가 차를 대놓는 곳에 다른 차가 있어서 전화하고 그 차를 뺄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차를 대놓고 아이를 장모님 품에 안겨드리고 시간을 보니 이미 행사시작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차가 밀리는 걸 알지만 어쩔수없이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도 잠시 움직이다 멈추기를 반복했고, 마음이 급했던 나는 사무실에서 버스로 두정거장 거리쯤에서 내려서 뛰었다. 숨이 넘어가도록 뛰어서 사무실에 도착하니 행사 시작 시간은 이미 지나있었다. 찬 물을 한잔 마시고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무거운 짐을 들고 다시 움직였다. 차는 막히니까 지하철을 타야했다. 평소 10분이면 걸어가는 지하철역이 왜이리 멀게 느껴지는 지 궁금했다.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지하철을 탔다. 마침내 행사장소에 도착했을때는 행사 시작시간에서 40여분이 지나있었다. 죄송한 마음에 몸둘바를 몰라 구석에 숨죽이고 있었다.

일단 행사를 마치고 나서 사람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움직였다. 나도 그 틈에 끼어 함께 시청광장으로 갔다. 집회는 거의 끝나가는 분위기였다. 촛불소녀들이 나눠주는 초를 받아 옆사람에게 불을 빌려 촛불을 밝혔다. 한참 듣고 있으려니 깜짝 손님이 왔다면서 호들갑이었다. 어느 탤런튼지 영화배운지가 나온 모양인데, 티비를 안보는 나로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주위 사람들 말로는 박철민이란 이름의 연기자라는데, 그는 계속 '뒤질랜드'라고 외쳤다. 대충 '죽을래' 뭐 이런 뜻인것 같긴한데 정확한 뉘앙스를 알수없어 조금 답답했다. 잠시 후, 거리행진이 시작되었다. 대다수의 행렬은 명동쪽으로 향했다. 명동에서 종로를 거쳐 광화문으로 돌아오는 행진코스였다. 나는 작가그룹과 동행하여 곧바로 광화문으로 향했다. 오늘도 광화문방향은 차벽으로 꽉 막혀있었다. 워낙 오랫동안 막혀있는 모습만 바라봐서 이젠 저 차벽 너머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잘 기억도 안날 지경이다.

작가들은 동아일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나는 차벽앞까지 가서 잠시 서성이다가 돌아와서 그들 사이에 앉았다. 행진 본대는 명동을 걷고 있을 테고, 소수의 사람들은 광화문 사거리를 점령하고 '이명박은 물러나라!'와 '어청수도 물러나라!'를 외쳐대고 있었다. 나는 그닥 할일이 없어 멍하니 작가들의 이런저런 잡담들을 듣고 있었다. 어느 시인이 돈을 걷어 막거리와 안주거리를 사왔다. 나도 일단 한잔을 받아놓고만 있었는데, 한 사람이 내 옆에 자릴 잡고 앉았다.

자신을 시쓰는 윤희상이라고 소개했다. 나도 간단히 내 소개를 했다. 내 밥벌이 수단이 바뀌긴 바뀌었나보다 하고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늘 집회를 주최하는 입장에 있었고, 집회장소에선 이런저런 잡다한 실무로 늘 바빴다. 여유가 생겨도 이런저런 단체쪽 활동가들과 구석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을 텐데, 요즘은 집회 주최측이 아닌 시민의 입장에서 계속 집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활동가들이 아닌 작가들과 앉아 있는 모습이다. 참 낯설다!

윤희상 시인께선 다른 작가들과 말씀을 나누지 않고 혼자 막거리를 홀짝 거리더니 옆에 앉은 내게 말을 건넨다. 막걸리가 참 달다는 말씀이셨다. 나는 술을 마실 수 없는 입장에서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후에 또 내게 말을 걸었는데 이번에는 저기 앞쪽에 노점상 연합회 분들을 가르키면서 조금 있으면 저쪽에서 순두부를 나눠주는데 진짜 맛있다고 꼭 가서 먹으라고 하신다. 이번에도 역시 웃으면서 '네' 하고 답했다. 이 분은 그 후로도 계속 내게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다. 잠시 말씀을 나누면서 이분이 꽤 오랫동안 계속 촛불집회에 함께해왔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물대포를 쏘았던 31일 밤이후로 거의 매일 밤새 거리에 남아계시다가 아침해가 뜨면 돌아가곤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중에 다른 작가들에게 들으니 작가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얘기라고 했다. 윤희상 시인이 매일같이 나와서 밤새도록 머물다가 아침에 해장국 먹고 돌아간다고.

앞쪽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갑자기 윤희상 시인이 일어서더니 주위 작가들에게 서두르라고 손짓한다. 순두부를 나눠주니 빨리 가서 받아오라는 얘기다. 나는 그닥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이 분이 워낙 권하셔서 받아왔다. 따뜻한 순두부를 한술 뜨니 맛있었다. 거리에서 이렇게 먹으니 더 맛있는 것이리라. 준비해주신 분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이렇게 맛있는 것이리라.

받아온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다시 주위 작가들의 이런저런 얘기들을 듣고 있었다. 조선일보와 함께 일해온 조경란 작가가 한겨레에 글을 한편 실었는데 괜찮은 내용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또다른 누군가가 그럼 조선일보쪽에서 안좋아하겠다고 자연스레 관계를 정리하지 않을까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어떤이는 공지영 작가에 대해서 말하기도 했다.

다시 윤희상 시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글 쓰시는 분이냐고 묻길래 아니라고 했다. 여기 나를 제외한 대부분은 작가지만 나는 아니라고 했다. 그랬더니 내게 글 쓰기를 권하는 말씀을 하신다. 아마 내가 겸손해서 그러는 것이리라 여기면서 평소에 글을 많이 써보라고 권하신다. 특히 시를 써보라고 하신다. 본인이 시인이라 그런지 계속 시를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시간이 늦어지면서 대부분의 작가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어제 금요일과 달리 오늘은 토요일임에도 별다른 큰 움직임이 없으니 사람들이 일찍 흩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주위 작가들이 다들 돌아가고 그 자리에는 윤희상 시인과 나만 남았다.

처음 만났음에도 꽤 많은 얘기를 나눴다. 시인은 겸손하고 조용한 성격인 듯 했지만 본인의 생각을 말할때는 아주 단호했다. 그도 내가 그랫듯이 많은 밤을 거리에서 보낸 사람이라 그런지 처음 만났음에도 호감이 갔다. 어느덧 자정이 다 되어가기에 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집에가서 자고 싶었다. 시인은 헤어질때도 내게 꼭 시를 써보라고 권했다. 나는 웃음으로 대답을 피하고 헤어졌다.

또 머지 않은 어느 날 거리에서 보게 되겠지만 그 밤을 그와 함께 지새우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몸은 피곤했지만 가슴이 따뜻한 거리의 시인 한 사람을 알게되어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