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에 매달린 꽃

창 너머 돌담 틈서리에
꽃 한 송이 매달려 있네
며칠 전부터 피었을 텐데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피었을 텐데
오늘 처음 눈길 마주쳤네
여기 좀 봐 달라고
눈 좀 맞춰 달라고
손짓하고 있었으련만
이제껏 보고 싶은 것만 보아온
어리석은 두 눈이여
노란 꽃 이파리
위로 기어오르지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던 날
1000일째 돌담에 매달려 있는 꽃들이
생각났네, 공장에서 쫓겨난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
희망조차 섣부른 그 이름 앞에
위태로운 건
돌담이 아니라, 꽃이 아니라
닫힌 마음이었을레
눈길조차 건넬 줄 모르는
식어 버린 가슴이었을레

박일환 / 끊어진 현 / 삶이 보이는 창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문정현 신부님의 글에 조약골이 곡을 붙인 '평화가 무엇이냐' 란 노래의 첫 구절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의 하나다. 조약골이 직접 부른 곡도 좋지만 실버라이닝이 편곡하여 흥겹게 바꾼 곡도 맘에 든다. 실버라이닝의 곡과 조약골과 평택에서 활동하던 여러 사람들이 함께 부른 곡은 예전에 소개한 적이 있다. (2008/09/02 - [노래와 추억] - 평화는 과연 무엇일까?),(2008/09/02 - [노래와 추억] - 평화는 우리 가슴 속에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난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사무직 직장인보다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고,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당연히 이주노동자들에게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만약 노동법에 보장된 최소한의 권리를, 땀흘려 일한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요구하면 곧바로 불이익을 당하기 마련이다. 법은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알고 있었건만, 정작 불이익을 당했을 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죽어라 일만 해주고 제대로 돈도 못받고 몇 달을 지난 경우가 있었다. 밀린 돈을 받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봤지만 결국 받을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사장이란 작자에겐 얼마 되지도 않을 돈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엄청 큰 돈이었다. 결국 받지 못한 그 돈을 받기 위해 자존심이고, 인격이고 다 내팽겨치고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고 일했던 걸 생각하면 정말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휴대전화 문자메세지로 해고 통보를 받은 여성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도 해보고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단식농성도 해봤지만 끝내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지회는 이제 천 이백일 가까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와 국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어디 그들 뿐인가 작년, 재작년에 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랜드, 홈에버, 대우자동차, 기아자동차, 콜텍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당한 사례는 정말 많다.

하나 하나의 사례를 볼 때마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나라는 존재가 참으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시인은 돌담에 매달린 꽃을 보고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내용에 등장 한 것은 기륭의 여성노동자들이지만, 이 땅의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을 말하고 있다.

늘 낮은 곳을 향하고, 그늘진 곳을 향하는 시인의 시선이 잘 느껴지는 시이다. 무릇 시인이란 이런 존재여야 하지 않겠는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을 보고,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야 말고 시인의 숙명이 아닌가. 언젠가 내가 문학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면 지금의 이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감은빛

[추모시]죽여서 죽었다.

죽을만해서 죽었다는 야차의 말도 나돌았다
화염병이 火因이라고 조사하기도 전에 결정되었을 얄팍한 보고서도 발표되었다
촛불을 붙여도 혹한의 바람은 거세게 그 불을 끄려 다시 진격할 것이다
살인의 동맹자들은 어서 빨리 관을 닫으라 하지만
오그라든 당신들 입술은 아직도 뜨겁다
촛불을 붙여도 금세 꺼뜨릴 혹한의 바람이 몰려 온다
살인의 동맹자들은 진실을 얼버무리고 어서 빨리 관을 닫자고 한다
진실은 그럴듯한 언론을 통해 그럴듯하게 조작될 것이다
양심이란 무겁고 외로운 것
그 위에 덮개를 씌우지 못하는 내가 당신이 우리가 남아있다
고통스럽지만 그 관위에 박힐 못을 가슴으로 받아 견뎌야 할 시간이 역사다
당신의 정의가 맞다
용산은 팔레스타인 가자다 침략당한 옥탑방이다
그러나 축복하자
대화도 타협도 없이 배척되고 타살되어야 할 주적이 된 우리들을 위하여
더욱 강건하고 담대해지길
그리고 무엇보다 한번 옮겨 붙으면 꺼지지 않는 불
진실이란 불꽃에 대하여
그 불꽃이 더욱 선연해지기를

하늘에서 내려줄 어떤 구명줄도 없었다
땅 위엔 매트리스도 홑이불도 깔려있지 않았다
비상구에는 깡패들이 탈출을 막았고
그리고 언제 발화될지 모를 신나가 불길과 물대포를 유혹하고 있었다
오직 진압의 목적과 훈령에 충실했던
일사분란 한 행동만이 그러다 터진 불길만이 그날의 진실이라는 것

그랬을 뿐 이었다
살기위해서 스스로 고립된 옥탑 망루에 갇혔을 뿐 이었다
살다보면 누구라도 한번은 결단해야 할 그저 그런 선택일 뿐
그래서 죽었다 공격해서가 아니라 방어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불러주는 대로 도장을 찍지 않아서 깡패에 시달리고
생활고에 밀려서 하늘과 가까운 옥상에 올라갔기에
죽음을 가까스로 방어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도 아닌데 그들은 먼저 공격되었다
자본증식의 욕망만, 바벨탑처럼 세워질 빌딩들의 욕망만 권장되고 보호되고
생존의 권리, 이견의 존중 이 따위,
상식 따윈 당연히 진압당하는 세상의 복판에서
불에 그슬려 죽었다
식도에 숨차게 몰려오는 화염을 내 뱉으며
온 몸을 비틀며
아 그러나 저것은 불새가 아니라 분명 사람이다
석유나 신나가 아니다 새총이 아니다
폭도가 아니다 방금 전까지 하지 마! 하지 마!
우리를 내몰지 마! 입김이 나오던 뜨거운 입들이다 사람이어서
그들은 생명이어서 죽었다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지상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어서

당신들처럼 나이론옷이 녹아 마른 살갗위에 눌러 붙는다
지옥에도 없을 그 뜨거운 고통이 그리하여 우리는 아직도 뜨겁구나
아프지만 우리는 그 순간을 그 온도를 기억하리라
정확히 말하자 당신들은 무참히 죽여서 죽었다
죽을만해서 죽은 게 아니라 무참히 죽여서 죽었다
이 엄동설한 산채로 지옥불을 뒤집어쓴 채

2009년 1월23일

문동만


 정말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정권이다. 물론 이전 정권들도 무수히 많은 무고한 생명들을 죽여왔다. 김영삼은 말할 것도 없고, 김대중도 여러 학생들과 노동자들을 죽였다! 진보진영의 폭발적인 지지와 함께 당선된 노무현은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인권을 억압했고, 농민, 노동자들을 죽였다. 그에 비하면 이명박은 아직 많은 생명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 태도가 참 지랄같다! 그리고 과거 다른 어떤 정권들보다 심각하게 멍청한 것 같다. 정말 골때리는 놈들이다! 아무리 심한 욕을 같다 붙여도 충분하지 않을 만큼 심각한 놈들이다! 아, 더 말해 뭐하겠는가. 입만 아프지.

 경찰과 용역깡패들의 기륭 침탈 현장에서 함께 싸웠던 문동만 선배가 이번 용산참사에 대한 시를 썼다. 최근에 너무 바빠서 집회에 함께하지 못했는데, 어느 집회에서 낭독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송경동 선배도 시를 썼을 텐데, 찾아보지 못했다. 이 시는 다른 일로 검색하던 중에 우연히 눈에 띄어서 오랫만에 블로그에 글을 올려본다!

 이제보니 무려 한달 동안 한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글만 안 쓴게 아니라 블로그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벌써 2월이 다 되었는데, 이제서야 새해 첫 포스팅을 하다니....... 뭐 진짜 새해는 이제부터니까 적절한 새해 첫 포스팅이었던 걸로 해두자. 새해 첫 글 치고는 암울한 주제에, 대충 때우는 느낌이 들지만 그냥 넘어가자.

 내일은 집회에 나가봐야 할텐데, 아내가 바빠서 아이를 데려가야 할 것 같다. 근데 작년과 달리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좀 걱정이 된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못 나갔더니 죄책감이 심장을 짓눌러서 더 버티지 못하겠으니 내일은 반드시 나가야 한다. 힘든 주말이 될 것 같다!

Posted by 감은빛

만화가 최규석 님께서 기륭온라인카페(http://cafe.daum.net/kirungRelay)에 올려주신 그림입니다.
아마도 제가 취재글을 쓰기도 했던 지난 10월 20일 사태를 염두에 두고 그린 그림인 듯 합니다.
아래글을 참고하시면 왜 이런 그림이 나왔는지 이해하실수 있습니다.
 2008/10/21 - [우리사회바로보기] - 경찰과 용역깡패의 환상적인 작전수행!

너무나도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최규석님께서 마음대로 쓰라고 했으니, 시간날때 여기저기 맘껏 뿌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Posted by 감은빛

어제 저녁 일을 마치고 기륭 후원 주점에 갔다. 후원주점을 한다는 소식은 진작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박수정 선배의 새책 [세계의 꿈꾸는 자들, 그대들은 하나다](이학사) 출판기념회가 함께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상황을 보아하니 송경동 선배가 인원동원을 위해 아내인 박수정 선배의 행사를 끼워넣었음이 분명하다. 일일주점을 하는 곳에서 어떻게 출판기념회가 진행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도착해보니 더더욱 출판기념회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직 6시 반밖에 안되었는데,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먼저와계셨던 오도엽 선배와 임성용 선배도 만나서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메뉴판을 받고 보니 우와!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나도 예전에 후원주점을 준비해본 적이 있는데, 그땐 그래도 되도록 합리적인 가격으로 가려고 많이 애썼던 것 같다. 어차피 후원하려고 온 참이라 가격엔 놀라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 놀라고 말았다! 그래도 이 돈이 다 기륭 노동자들을 위해 쓰이는 것이니 아무런 불만은 없다. 오히려 돈이 없어서 더 많이 못 팔아주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지.

배가 고파서 순식간에 안주 몇 접시를 비우고 술병도 빠르게 비워나갔다. 문재훈 선배도 오셔서 잠깐 앉았다 가셨고, 김성만 선배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곧 나올 앨범의 예약 판매를 하고 계셨다. 문동만 선배도 오셨다. 그리고 출판기념회의 주인공인 박수정 선배도 오셨다. 자리가 없어서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우리 일행은 앞마당에 앉아 먹으려고 술과 안주를 챙겨들고 일어섰다. 밖에는 이미 돗자리를 깔고 있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또 안주 몇 접시와 술을 시켜서 부지런히 비웠다.

어제 낮에 김현진씨로 부터 문자를 받았는데, 아마 전화기에 입력된 사람들 대부분에게 다 보낸 모양이다.(최근에 기륭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벼룩시장 진행때문에 한두번 통화한 적이 있었다.) 내용은 오늘 주점에서 자신이 바니걸로 나서니 꼭 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사무실 동료들과 함께 가기로 되어있어서 김현진씨의 바니걸 의상과 상관없이 가는 것이지만 도착해서 한동안 바니걸 의상을 찾아보기는 했다. 있었다면 못 찾았을 리가 없으니 없나보다 하고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중에 마당에도 사람들이 많이 앉아서 꽉 차버렸는데,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바니걸 의상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김현진씨는 이제 막 도착한 듯 입구에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토끼 귀와 짧은 치마 그리고 엉덩이에 앙증맞은 꼬리까지 달린 제대로 된 바니걸 의상이었다. 역시 스스로 한 말은 잘 지키는 구나! 그리고 그는 책이나 악세사리 등 여러가지를 판매하는 곳에 가서 합류했다.

박수정 선배의 책을 사러 갔다가 바로 옆에 있길래 잠시 말을 붙여봤다. 김현진씨는 자신이 약속을 지켰다고 한마디하고는 바쁜 듯 다른 분과 말씀을 나누셨다. 나는 책을 사서 자리로 돌아와서는 박수정 선배에게 싸인을 받았다. 이 책이 나온지 얼마 안된 신간인데 이학사에서 무려 100권이나 기륭대책위 쪽에 기증하셨단다. 그래서 정가 1만6천원짜리 책을 1만원에 팔고 있었다. 싸게 사는 건 좋았지만 그래도 출판사에게 너무 미안했다. 신간이라서 1만5천원에 팔아도 되는데, 판매를 담당하신 분들이 싸게 팔고자 하는 마음에 출판사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었던 듯하다.
암튼 싸인을 받아서 흐믓한 마음에 책을 들춰보고 있는데, 한참 후에 김현진씨가 '안아주세요! 프리 허그!' 가 적힌 팻말을 높이 들고 서서 시선을 끌고 있었다. 그 옆에는 기륭 촛불문화제에서 여러번 보았던 남성분이 역시 '프리허그'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이분 굉장히 예쁘장하게 생기신 분으로 잘못 보면 여성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만한 외모의 소유자다. 이 두 사람이 프리허그 팻말을 들고 서 있으니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그 모습을 보면서 '김현진이 진짜 인물은 인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 한참 전부터 강기갑 의원과 심상정 대표가 서빙을 하고 있었는데, 시작할 때부터 열심히 사람들 먹는 모습을 찍어대던 MBC 카메라가 이 두사람만 열심히 따라다녔다. 그런데 김현진씨와 잘생긴 남성분이 프리허그를 들고 서있는 모습을 보고는 다시 이쪽으로 카메라가 몰렸다. 예전에 우석훈씨가 블로그에서 촛불집회에 네티즌들과 함께 참여한 날 후기에 김현진씨의 인기를 깨달았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었는데, 나도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프리허그 팀이 앞을 막고 있어서 옆으로 돌아가려는데, 그 잘생긴 남성분이 나를 그냥 지나가게 놓아두지 않았다. 순식간에 나를 껴안아 버렸다. 좀 놀랐지만 그렇다고 밀어낼 수도 없어서 그냥 나도 같이 껴안았다. 맨날 아이와 아내만 안아보다가 아주 오랫만에 다른 사람을 안게 된 상황인데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떤 느낌이었는지 깨달을 겨를도 없었다. 자리에 돌아와 앉으면서 이런 걸 왜하는 걸까, 껴안으면 기분이 좋을까 등등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열심히 술과 안주를 팔아주는 동안 여러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꽃다지의 공연을 지난 토요일 인천 노동 문화제에서 보고 며칠이 안지나서 또 보게 되었다. 그리고 집회때 많이 보았던 노래공장도 보았다. 김성만 선배는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노래는 참 좋은데 노래실력은 여전했다. 뭐 그래도 열심히 하시는 모습 보면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삼성일반 노조 김성환 위원장님이 계속 우리와 함께 있었는데, 내가 앉은 자리 반대편에 앉아계셨다. 바로 주위 사람들이 잘 안챙겨줘서 중간에 가끔 무료해하시는 것 처럼 느껴졌는데, 옆에 있던 동료가 나보고 옆에가서 수염기른 사람끼리 얘기나누라고 했다. 안그래도 옆에 가서 말씀을 나눠볼까 생각했는데, 워낙 자리가 좁아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그냥 포기했다.

이 날은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우연히 옛 사무실 동료도 보고, 최근에 이런저런 도움을 받았던 고마운 분도 만났다. 그리고 각종 집회현장에서 자주 봐서 낯익은 얼굴들이 꽤 많았다. 이름이 알려진 이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냥 얼굴만 마주쳐도 다들 반가웠다!

술도 못 먹으면서 술자리에 늦게까지 죽치고 있었는데, 저녁부터 아내가 아이의 사진을 담아서 멀티메일을 보냈다!(아 전송료가 대체 얼마더냐!) 아이가 양 손을 머리위로 올려 하트를 만드는 모습이었다. 아직 팔이 짧아서 하트는 만들수 없었지만 아이의 웃음이 내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머금어지도록 만들었다. 일찍 오고 아이스크림도 사오라는 내용이었는데,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라서 결국 막차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택시비가 없어서 집에 못 가고 처음 만난 사람의 집으로 몇몇 일행들과 함께 갔다. 첫 차가 다닐때쯤 혼자서 빠져나와서 집으로 돌아왔다. 밥도 하고 설겆이도 하고 아이를 깨워서 밥먹이고 준비시켜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사무실에 오니 딱 출근시간이었다. 잠 한숨도 못자고 지하철에 서서 잠시 꾸벅꾸벅 졸기만 했다. 아, 피곤하다!

그래도 어제 만난 많은 사람들의 모습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한 동안 힘이 되어 줄 것 같다!
Posted by 감은빛

하늘공장

저 맑은 하늘에 공장 하나 세워야겠다
따뜻한 밥솥처럼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곳
무럭무럭 아이들이 자라고 웃음방울 영그는 곳
그곳에서 연기나는 굴뚝도 없애고 철탑도 없애고
손과 발을 잡아먹는 기계 옆에 순한 양을 놓아 먹이고
고공농성의 눈물마저 새의 날갯짓에 실어 보내야겠다
저 펄럭이는 것들, 나뒹구는 것들, 피 흐르는 것들
하늘공장에서는 구름다리 위에 무지개로 필 것이다
삶은 고통일지라, 죽어도 추억이 되지 못하는 고통을
하늘공장의 예배당에서는 찬양하지 않을 것이다
힘없이 잘린 모가지를 껴안고 천천히 해찰하며
내일이라도 당장 하늘공장으로 출근을 해야겠다
큰 공장 작은 공장 모두 하나의 문으로 통하는
하늘공장에 가서, 저 푸르른 하늘공장에 가서
부러진 손과 발을 쓰다듬고 즐겁게 일해야겠다
땀내 나는 향기를 칠하고 하늘공장에서 퇴근하는 길
지상에 놓인 집 한채가 어찌 멀다고 이르랴


임성용 / 하늘공장 / 삶이 보이는 창


 임성용 시인의 해맑은 웃음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참 부드럽고 편안한 분이었다. 여러차례 만나뵈었지만, 늘 그 웃음을 웃고 계셨다. 촛불집회에서 그리고 어느 모임 뒷풀이 자리에서도 그와 함께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 웃음 외에 다른 표정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의 시는 솔직하고 재밌다. 그의 산문을 먼저 읽어서 보통 글솜씨가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심각한 시를 이렇게 맛깔나게 쓰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그의 시는 겉으로는 재밌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읽는 이를 괴롭힌다! 현실이 어떤지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는 읽는 이를 불편하게 하기 마련이다.

 50일이 넘게 단식중인 기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경찰은 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나타났다가 기륭 대책위의 격한 항의에 일단 그냥 돌아갔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정권이 하는 짓거리들을 보면 언제 다시 강제로 영장을 집행하려 들지 모른다. 이미 오랫동안 투쟁해왔고 거기에 단식을 시작한지도 오래되었으니, 그 분들의 몸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 상황일지 상상이 안 될 지경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인간들은 도대체 어떤 머리와 가슴을 가진 것들일까 궁금하다!

 답답한 마음에 이 책을 펼쳐들고 읽는다. 임성용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내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듯 한 기분이 든다. 예의 그 환한 웃음을 머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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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