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에 매달린 꽃

창 너머 돌담 틈서리에
꽃 한 송이 매달려 있네
며칠 전부터 피었을 텐데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피었을 텐데
오늘 처음 눈길 마주쳤네
여기 좀 봐 달라고
눈 좀 맞춰 달라고
손짓하고 있었으련만
이제껏 보고 싶은 것만 보아온
어리석은 두 눈이여
노란 꽃 이파리
위로 기어오르지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던 날
1000일째 돌담에 매달려 있는 꽃들이
생각났네, 공장에서 쫓겨난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
희망조차 섣부른 그 이름 앞에
위태로운 건
돌담이 아니라, 꽃이 아니라
닫힌 마음이었을레
눈길조차 건넬 줄 모르는
식어 버린 가슴이었을레

박일환 / 끊어진 현 / 삶이 보이는 창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문정현 신부님의 글에 조약골이 곡을 붙인 '평화가 무엇이냐' 란 노래의 첫 구절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의 하나다. 조약골이 직접 부른 곡도 좋지만 실버라이닝이 편곡하여 흥겹게 바꾼 곡도 맘에 든다. 실버라이닝의 곡과 조약골과 평택에서 활동하던 여러 사람들이 함께 부른 곡은 예전에 소개한 적이 있다. (2008/09/02 - [노래와 추억] - 평화는 과연 무엇일까?),(2008/09/02 - [노래와 추억] - 평화는 우리 가슴 속에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난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사무직 직장인보다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고,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당연히 이주노동자들에게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만약 노동법에 보장된 최소한의 권리를, 땀흘려 일한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요구하면 곧바로 불이익을 당하기 마련이다. 법은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알고 있었건만, 정작 불이익을 당했을 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죽어라 일만 해주고 제대로 돈도 못받고 몇 달을 지난 경우가 있었다. 밀린 돈을 받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봤지만 결국 받을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사장이란 작자에겐 얼마 되지도 않을 돈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엄청 큰 돈이었다. 결국 받지 못한 그 돈을 받기 위해 자존심이고, 인격이고 다 내팽겨치고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고 일했던 걸 생각하면 정말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휴대전화 문자메세지로 해고 통보를 받은 여성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도 해보고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단식농성도 해봤지만 끝내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지회는 이제 천 이백일 가까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와 국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어디 그들 뿐인가 작년, 재작년에 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랜드, 홈에버, 대우자동차, 기아자동차, 콜텍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당한 사례는 정말 많다.

하나 하나의 사례를 볼 때마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나라는 존재가 참으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시인은 돌담에 매달린 꽃을 보고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내용에 등장 한 것은 기륭의 여성노동자들이지만, 이 땅의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을 말하고 있다.

늘 낮은 곳을 향하고, 그늘진 곳을 향하는 시인의 시선이 잘 느껴지는 시이다. 무릇 시인이란 이런 존재여야 하지 않겠는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을 보고,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야 말고 시인의 숙명이 아닌가. 언젠가 내가 문학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면 지금의 이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감은빛
지난 15일(월) 저녁에 아이와 함께 기륭 후원주점에 다녀왔다. 몇 달전에도 후원주점을 했었는데, 요 앞전에 경찰과 용역의 침탈 과정에서 다친 부상자들의 치료비와 몇몇 사람들이 받은 벌금 등을 마련하기 위헤 다시 후원주점을 열게 된 것 같다. 경찰과 용역깡패들의 침탈 상황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에 제가 쓴 글을 참고하시길!
2008/10/21 - [우리사회바로보기] - 경찰과 용역깡패의 환상적인 작전수행!

사실 지난 주부터 아이가 감기에 걸려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에는 아내가 병원에 데려갔었다. 아내는 저녁에 할 일이 있다고 아이를 봐달라고 했다. 그래서 기륭 후원주점에 아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걱정을 좀 했다. 추운 날씨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과 주점이니까 담배 피우는 사람들도 많을테고, 감기 걸린 아이에게 좋지 않을 것 같다는 등등. 사실 나도 그런 이유들 때문에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빠질수는 없어서 어쩔수없이 아이를 데려갔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마쳐서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짐을 놓고, 간단하게 아이를 먹일 것들을 조금 준비해서 출발했다. 아마도 몸이 안좋아서 그런 것이겠지만, 아이가 평소보다 고집을 좀 부리고 말을 안들었다. 조금 늦게 주점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앉을 자리가 없었다. 지난 번에 했을때는 밖에 깔개를 깔고 앉아있었는데 지금은 날씨가 추워서 그러기도 어려웠다.(나중에는 몇몇 사람들이 깔개를 깔고 밖에서 술을 먹기도 했다!) 아이는 자꾸만 안아달라고 졸라서 안고 입구쪽에 서 있었다. 먼저 자리잡고 있는 아는 사람들 틈에 끼어볼까하고 좀 어슬렁 거려봤는데, 딱히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대부분 한참 선배들이거나 유명한 사람들이어서 거기 그냥 끼어들기가 좀 망설여졌다. 입구쪽에 모르는 사람들의 테이블에 빈자리가 하나 있길래, 양해를 구하고 거기에 일단 앉았다.

집에서 갖고 온 밥을 조금 먹였다. 한참 후에 끼어도 될만한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선배들이 아이를 예뻐하면서 부침개나 과일 샐러드 등을 먹여줬다. 아이는 내 눈치를 조금 보다가 날름 날름 잘도 받아먹었다. 사람이 무척 많아서 시끄럽고 답답했다. 아이는 자꾸만 안아달라고 조르고 짜증을 냈다.

뭔가 아이가 흥미를 가질 만한 걸 떠올려보다가 수첩과 싸인펜을 건네줬다. 아이는 요즘 어린이집에서 색칠공부를 하는 듯 한데, 집에서도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가지고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는 날이 많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역시 아이는 수첩을 펼치고 싸인펜 뚜껑을 열어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아이가 그리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며칠 전과는 달리 뭔가 모양이 제대로 그려지고 있었다. 알파벳 U 자 모양으로 얼굴 윤곽을 그린 다음 톱니 모양으로 머리를 그렸다. 그리고 점을 두개 찍어서 눈을 그리고 콧날을 살짝 그렸다. 마지막으로 웃는 모양의 입을 그렸다.

아이가 얼굴을 제대로 그리는 것을 처음 보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냥 쭉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앞에 앉은 한 선배의 얼굴을 보면서 하나씩 천천히 관찰하고 그리는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는 얼굴을 하나 그리고나면 다음 장으로 넘겨서 또 그리고 또 그렸는데, 얼굴마다 표정이 다 달랐다. 웃는 모습, 옆을 쳐다보는 모습,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 등등 다양한 모습의 얼굴들이 수첩에 자꾸만 채워졌다. 아주 간단하고 간결한 그림인데도 표정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알아보지 못할 선들과 형체밖에 그리지 못하던 녀석이 어느새 표정을 알아 볼 수 있는 얼굴을 그릴 수 있다니! 놀랍고 또 대견했다. 아이는 그렇게 수첩의 거의 삼분의 이를 그림으로 채우며 오랫동안 놀았다. 아이가 얌전하게 놀아줘서 나로서도 좋았다.

10시가 넘었을 때, 더 늦으면 곤란할 것 같아서 함께 있던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나왔다. 아내가 마침 일을 마치고 이쪽으로 이동해왔다. 지하철역에서 아내를 만나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지하철에서 수첩을 꺼내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여줬더니 아내는 한동안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내게 몇 번씩이나 나나 혹은 다른 어른들이 도와준게 아니냐고 묻고 또 물었다. 나는 아이가 혼자서 그린 거라고 계속 강조했지만 아내는 계속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냈다.

한참을 그림을 살펴본 후에야 아내는 내 말을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척 놀라고 감격스러워했다. 아이가 나를 닮아서 그림을 잘 그리는 게 아니냐고 혼자 들떠서 얘기하기도 했다. 그림을 제대로 공부하지를 않아서 지금은 잘 그린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지만 한때 나는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많이 듣고 자랐다. 어릴때는 미술대회 같은 데 나가서 상도 타보고, 아버지의 후배인 어느 화가가 키워주겠다고 자기 화실에서 공부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한동안 만화에 미쳐서 혼자 끄적끄적 만화만 그렸던 때도 있었다. 별로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닌 것 같고, 그저 그림을 좋아해서 그랬던 것 같다.

아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이 녀석은 말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몸을 움직이는 일에 발달이 늦은 편인데, 아마 다른 친구들보다 그림 그리는 것도 훨씬 늦은 편일 것이다. 가끔 아이가 친구가 색칠한 종이를 갖고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보면 다른 친구들이 우리 아이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색칠을 잘 해놓은걸 볼 수 있다. 그래도 많이 연습하니까 드디어 얼굴을 그릴 수 있었듯이 계속 하다보면 빨리 배워나갈 것이다. 

나는 어릴때 그림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는 바람(wish)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돈이 많이 든다고 그리고 그림보다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말을할때 나는 별로 실망하지도 않았다. 당연히 그렇게 되리라 예상했으니까. 지금도 내가 그림을 더 배우지 못해서 아쉽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될 수 있는 확률은 아마 거의 없었을테니 미련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나중에 우리 아이가 크면 적어도 원하는 것을 계속 해보라고 말하는 아빠가 되고 싶다. (물론 아버지가 그런 생각이 아예 없어서 그랬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나는 비록 상황이 받쳐주지 않아도 하고 싶은 일이라면 의지를 갖고 해보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아빠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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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경찰이 보는 바로 앞에서 가만히 있는 시민을 깡패가 두들겨 패도 경찰은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냥 모른체하고 시민을 두들겨 팬 그 깡패는 계속해서 다른 시민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여성들에게 성희롱으로 판단되는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욕설을 마구 내뱉는다. 그래서 주위의 시민들이 경찰에게 항의하자 경찰은 언제 어디서 폭력행위가 일어났느냐고 자신은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얘기냐구? 바로 몇 시간 전에 기륭전자 앞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기륭 전자 앞에서는 요즘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일들이 과거에도 많이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조계사 앞에서 어떤 사람이(솜씨로 보아 전문 칼잡이가 분명한) 가만히 있는 세 명의 시민에게 칼을 휘두르고 이마에 꽂고 도망쳤는데, 경찰은 그가 칼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알고도 막지 않았으며, 살인 현행범이 사람을 찌르고 도망치는 데도 잡지 않았다. 그보다 조금 더 전에는 KBS앞에서 고엽제 전우회 회원들이 부탄가스를 싣고와서 휘두르는 온갖 폭력행위들을 모두 눈감아 주었다. 그리고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평택에서 그리고 새만금 방조제 위에서 여러차례 경찰의 비호아래 용역깡패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희생당했던 기억이 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항상 용역깡패들이 폭력을 휘두를때는 주변에 늘 수많은 경찰들이 있었다. 이들은 무고한 시민들을 보호하는 대신, 바로 눈 앞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폭행현행범인 깡패들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이 깡패들이 무사히 범행을 저지르고 현장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경찰의 역할이었다.

한가지 억울한 사실은 경찰이라는 이름의 불법 폭력집단이 이처럼 폭행현행범이나 살인현행범을 보호하는 범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는데도 법적으로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피땀흘려 번 돈으로 꼬박꼬박 내고 있는 세금으로 제 뱃속을 채우고 있는 집단이 바로 이 폭력집단 경찰인 것이다.

이제 몇 시간 전 기륭전자 앞에서 벌어졌던 경찰과 용역깡패와 구사대의 완벽한 호흡으로 이루어진 멋진 범행현장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다! 최대한 표현을 정화하려고 노력하겠지만 나도 모르게 경찰과 깡패들의 무자비한 폭력장면이 묘사될 수도 있음을 미리 경고한다.

10월 20일 5시 10분쯤
4시경부터 진행하고 있는 집회가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서 기륭 전자 정문앞 골목길로 경찰 1백여명이 몰려들어왔다. 사회자의 요구에 따라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경찰을 막으러 나가고 남성들은 남아 트럭에서 철재 자제(아시바)를 옮겼다. 경찰들이 방패로 밀고 들어오고 여성들의 비명소리가 커지자 나도 모르게 내 몸은 대열 맨 앞으로가서 방패를 막고 있었다. 사실 오늘은 아내가 일주일만에 독일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라서 일찍 퇴근하여 오랫만에 아내와 저녁을 먹고 함께 지낼 생각이었는데, 기륭쪽이 심상치 않다고 꼭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서 차마 모른척할 수가 없어서 왔다. 그래도 적당히 뒤에 있다가 상황봐서 일찍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주일동안 혼자서 아이도 돌보고 집안일도 하고 또 직장일도 하면서 너무 피곤했기에 오늘은 좀 일찍 돌아가고 싶었다. 게다가 오늘은 일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이 아닌가? 월요일부터 너무 무리하면 일주일동안 너무 힘들어지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오늘은 좀 살살하자고 머리속으로 계속 되뇌이고 있었다.

그런데 몸은 어느새 맨 앞에서 방패와 맞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벌어지고 여기 저기서 여성들의 비명소리가 터졌다. 욕설과 욕설이 오가고 어깨와 방패가 부딪쳤다. 한 여성이 방패 사이에 끼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갑자기 흥분해버린 내가 방패를 밀어내고 그 여성을 방패 사이에서 꺼냈다. 이 여성은 이미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나는 큰 소리로 사람이 쓰러졌다고 소리치고 뒤쪽으로 끌고 나갔다. 머리속에는 지난 6월 1일 새벽에 바로 내 뒤에서 쓰러져서 실려나간 한 여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 같은 일이 벌어진 것 같다는 느낌에 엄청 화가 났다. 그러나 내가 뒤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경찰 방패와 뒤쪽의 사람들 사이에서 휘둘리고 있을 때, 이 여성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나는 위험하니 뒤로 일단 물러나 있으라고 했지만 이 여성은 말을 듣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서 버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할 수 없이 내가 그 여성 앞에 서서 방패를 막고 버텼다. 밀고 밀리는 사이에 뒷 열의 전경이 사진을 찍던 한 시민의 카메라를 잡아 챘고 그 사람이 끌려 가려고 하자 주위 사람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몰렸다. 나는 카메라를 낚아 챈 전경의 손을 잡아서 비틀었고, 내 손을 또 다른 전경이 잡아서 비틀려고 했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서로 엉키면서 힘싸움이 이어졌다. 갑자기 챙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손목에서 시계가 떨어져 나왔다!

골리앗 위에 올라선 이상규 민노당 서울시당 위원장과 김소연 기륭전자 노조 분회장




미리 시계를 벗어놓았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덕분에 산 지 한 달도 채 안된 시계가 망가져 버렸다! 비싼 시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어서 산 것이었는데, 부서진 것이다. 나는 계속 방패를 막고 있었기에 시계를 줍지 못했는데 내 뒤쪽에 있던 여성이 시계를 주워주었다. 그 골목에서 경찰은 수적으로 열세라고 판단했는지 일단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적당히 있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열심히 아시바를 쌓아서 구조물을 만드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었다.

장만한 지 한 달도 채 안되었는데 부서진 내 시계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철탑? 아니면 망루? 참세상에서는 골리앗이라고 불렀던데, 암튼 아시바를 5단으로 쌓아서 올린 건물 3층 높이의 철제 구조물이 완성되고 그 위에 김소연 분회장과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이상규 위원장이 올라갔다. 인부들이 부지런히 움직여서 철탑을 완전히 고정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쪽문쪽으로 경찰과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밀고 들어왔다.



5시 30분쯤
푸른 옷을 입은 구사대 80여명과 검은 옷을 입은 용역깡패 40여명이 주먹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면서 먼저 몰려 나왔다. 순식간에 여러명의 시민들이 두들겨 맞고 뒤로 물러났다. 사람들이 우루루 뒤로 물러나면서 그 틈으로 경찰 100여명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철제 구조물 아래에서 다른 사람들과 버티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구사대와 깡패들에게 쫓겨서 기륭전자 앞쪽에서 골목쪽으로 이미 물러나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전경들이 우리를 에워싸듯 덤벼들었다. 나는 그래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방패를 막았다. 여성들이 악을 썼고, 욕설이 오갔다. 밀고 밀리다가 갑자기 경찰들이 더 쏟아져 나오면서 순식간에 전세는 바뀌었다. 우리는 완전히 뒤로 밀려났다. 나는 잠시 철제 구조물과 전경 사이에 끼어서 고립될 뻔 했으나 다행히 빠져나왔다. 철제 구조물은 완전히 전경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구조물 안쪽에 몇 명의 시민들이 버티고 있었으나 전경들에게 가려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시 상황을 보니 밖으로 완전히 밀려난 사람들이 구사대와 깡패들과 대치하고 있었고 그 안쪽에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민들이 대충 50여명 정도 있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몇 명쯤 되는 지는 잘 안보여서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 전에 집회 참가 인원으로 짐작해 보건대 대략 70여명 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완전히 갇혀버린 꼴이었다. 이거 이대로 연행되는 거 아닌가 싶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골리앗을 포위한 전경병력



주위에는 르뽀작가 박수정 선배와 송경동 시인이 있었다. 이 두사람은 부부인데, 둘 다 여기 있으면 아이는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역시 두 사람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경찰이 포위망을 좁히기 전에 경동선배가 수정선배를 데리고 갔다. 아마도 어떻게든 수정선배를 밖으로 내보낸 듯하다. 돌아온 경동선배는 더 활기차게 남아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면서 자리를 지켰다. 비행기 소리와 함께 낮은 고도로 여객기가 하나 지나갔다. 그러고보니 이 동네에는 비행기가 이렇게 낮게 날아서 지나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지난 번 아이와 함께 두어번 기륭에 왔을 때, 아이가 비행기만 보면 손가락질 하며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비행기가 철제 구조물 위를 지나쳐가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왠지 우울해져서 몸에서 힘이 빠졌다.

6시 반경
구사대와 깡패들 너머 밖에 있던 사람들이 먼저 촛불을 꺼내들었다. 안쪽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열맞춰 앉아서 촛불을 들었다. 나는 문동만 시인 옆에 앉았는데, 용역 깡패들이 정말 힘이 쎄다고 말을 붙여왔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덩치가 큰 거구들이었다. 다들 100킬로그램은 가뿐히 넘을 듯 했다. 힘이 무지 쎌 수 밖에 없을 듯 했다. 그나저나 저 덩어리들은 정말 조폭인 것 같은데, 역시 경찰과 조폭은 한 통속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쪽에는 여성 용역들도 있었다. 여성 용역들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 인 듯 한데, 이 쪽도 역시 한 덩치들 하며, 조폭냄새를 살짝 풍기고 있었다. 이 중 몇 명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몇 명은 비웃는 눈빛을 우리에게 던지며 도발하고 있었다.

파란색 잠바를 입은 구사대들(약간 옅은 회색을 입은 이들도 역시 구사대)




잠시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전경들 200여명이 뛰쳐나왔다. 구사대와 깡패들이 원래 있던 쪽문 안쪽으로 돌아가고, 전경들이 그 자리를 넘겨받아서 사수했다. 이거 완전 근무교대도 아니고 사이좋게 서로 자리를 바꾼 경찰과 깡패들이 열심히 욕설을 내뱉았다.

7시
전경들은 바깥쪽에 있던 시민들을 향해 돌진하듯 덤벼들어 대오를 밀어냈다. 이 와중에서 심하게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안쪽에서도 전경병력들이 앉아있던 사람들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었다. 여경들이 투입되어 여성들의 주위에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전원 연행을 감행하려는 것 처럼 보였다. 누군가가 쓰러졌다는 소리가 들렸다. 철제 구조물 근처에서 였다. 나와 주위의 사람들 몇 명이 벌떡 일어나 상황을 보려고 했으나, 우리를 막고 있던 전경들이 비켜주지 않았다. 나는 강하게 저항하며 사람이 쓰러졌는데 어서 구급차를 부르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는 와중에도 기륭 바깥쪽에서는 전경들이 시민들을 계속 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구급차가 도착했다. 그러나 구급대원들은 전경들에게 막혀 들어오지 못하는 듯 보였다. 어찌된 상황인지 갑자기 안쪽에서 우리를 에워싸고 막고 있던 전경들 수십여명이 바깥쪽으로 일제히 달려나갔다. 우리는 갑자기 넓은 안쪽 공간에 멍하니 남겨졌다. 철제 구조물을 둘러싼 전경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 옆으로 쪽 문쪽에는 아까 빠져나갔던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7시 15분경
갑자기 쪽문쪽이 소란스러워져서 다가갔더니 경찰이 보는 바로 코 앞에서 깡패가 한 시민을 때렸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문재훈 선배님이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 경찰 지휘관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싼 시민들도 모두 흥분하여 경찰에게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철제 구조물 옆에서 가만히 있던 문재훈 선배님을 근처에 있던 용역깡패가 두들겨 팬 모양이었다. 그 바로 옆에 있던 경찰은 모른척 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강력하게 항의하자 경찰 지휘관은 계속 다른 곳을 바라보며 모른 척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삼류 코메디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지 참 어이가 없었다.

문재훈 선배님은 안경도 깨지고 신발도 잃어버린데다가 옷도 여기저기 찢겨져 있었다. 나도 피가 끓었다. 시민들은 일제히 '경찰이 무슨 깡패들과 한 통속이냐? 너희가 최동렬의 사조직이냐? 개인 소유의 경찰이냐? 그럼 시민들 세금 받아먹지 말고 최동렬이에게 월급 받아 먹어라! 경찰이 돈을 얼마나 먹었으면 바로 코 앞에서 시민을 폭행한 현행범을 잡지 않고 모른 채 할 수 있을까!' 등등 다양한 항의들이 쏟아졌다. 한 시민 욕설을 섞어가며 좀 과격하게 항의을 했는데, 지휘관은 계속 '반말하지 마세요! 욕하지 마세요!' 라고만 대꾸하고, 옆에 있던 부관인 듯한 경찰이 어딘가로 가더니 채증 경찰관을 데려왔다. 카메라와 플래시를 들이대며 계속 해보라고 협박하는 경찰! 참 이게 무슨 짓인가! 내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칼라티비의 여기자가 다가오며 상황을 전했다. 쪽문 저쪽에 모여있던 구사대들이 카메라를 의식해 종이박스를 찢은 조각들을 손에 들고 얼굴을 가린 채로 여기자를 향해 욕설을 내뱉았다. 성적 모욕이 포함된 명백한 성희롱이었다. 어느 시민이 경찰 지휘관에게 다가가서 이 소리가 들리지 않냐고? 지금 성희롱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왜 체포하지 않냐고 소리질르며 물었다. 지휘관은 여전히 꿀먹은 벙어리였다. 어깨를 보니 <서울 4 기동대>라고 적혀있었다. 구사대들은 계속 해서 얼굴을 박스를 들어 가린 채, 욕설을 퍼붓고 있었는데, 그 꼴이 또 얼마나 우습던지. 이건 정말 삼류 코메디 녹화장인 듯 한 착각이 들었다. 나와 주변의 시민들이 얼굴이나 내놓고 욕을 하려면 욕을 하려고 소리를 질렀다. 경찰 측과 용역측 채증요원들이 열심히 우리 얼굴을 담고 있었지만, 우린 개의치 않았다. 찍을테면 찍으라지!

바로 코 앞에서 폭행 현행범을 눈감아준 서울 4 기동대 현장 지휘관



바깥쪽도 안쪽도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나는 문재훈 선배님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어서 병원을 가시라고 설득했다. 선배님은 대수롭지 않은 상처라고 안가겠다고 버텼지만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그래도 병원을 가야한다고 설득하자 마침내 움직이셨다. 문재훈 선배님과 또 한 분의 노동자가 부상으로 병원을 가기 위해 전경들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7시 35분
철제 구조물을 둘러싸고 있던 전경들까지 모두 동원되어 바깥쪽으로 투입되었다. 전경 병력 약 300여명 전원이 바깥쪽 시민들을 밀어버리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경찰이 빠진 자리에 다시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들어왔다. 또다시 자리를 바꾼 것이다.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발맞춰 움직이는 것을 보니 분명히 경찰과 구사대와 깡패들이 한 명의 지휘관에게 명력을 받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지휘관이 경찰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안쪽에는 경찰 병력이 완전히 다 빠져나간 상태에서 용역깡패들의 천국이 되었다. 용역들은 거친 몸짓으로 들어오면서 카메라를 든 기자들을 위협하고 시민들을 협박했다. 완전히 제 세상이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듯 나이많은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모욕을 주었다! 그 모멸감은 참기 어려웠다. 여성 용역 한명이 한 아줌마에게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퍼부으며 비아냥 거렸다. 그 아줌마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덤벼들었지만 주위의 시민들이 말렸다.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내 옆에서는 문동만 선배가 깡패들이랑 욕설을 주고 받고 있었다. 동만 선배도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었다. 나역시 화가 났지만 일단 선배를 말렸다. 문득 '갱스터스 파라다이스'라는 노래가 머리속에서 재생되었다. 바로 이 곳이 인간같지 않은 깡패들의 천국이었다!

검은 반팔 옷을 입은 덩어리들이 바로 용역깡패들



경찰은 작정하고 시민들을 밀어붙였다. 시민들은 '보령 할인마트' 좌우의 골목길로 분산되어서 시시각각 밀려나고 있었다. 안쪽에 남은 시민들은 대략 삼십여명쯤 되어 보였는데, 오십여명의 용역깡패들과 역시 오십여명의 구사대들에게 포위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멍하니 바깥쪽 시민들이 전경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밀려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역깡패들은 심심해서 그런지 지들끼리 계속 욕설을 내뱉고 있었는데, 가까이 있는 놈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진보신당에는 분명히 싸이비 교주가 있다!','진보신당이 대체 뭐냐? 우리나라에 그런 게 있었냐?','진보신당은 모두 또라이들이다!' 등등 진보신당을 헐뜯고 있었다. 아마도 계속 카메라를 들이대는 칼라티비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싶었다. 한 무리의 덩치들이 심심했던지 앉아있던 여학생 두명에게 시비를 걸었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뭔가 협박을 했음이 틀림없다. 민노당 학생위원회 소속으로 보이는 두 여학생은 기죽지 않고 맞섰다. 갑자기 한 덩치가 여학생들에게 확 다가서더니 땅에서 피켓 하나를 주워들었는데, 위협하는 척 하면서 장난을 친 것이었다. 놀란 시민들이 일제히 욕설을 퍼부었다. 깡패들은 할말있으면 뒤에서 하지 말고 앞으로 나와서 주먹으로 해결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나라는 입과 손가락만 쎈 놈들이 너무 많아서 탈이라나. 앞에 나서서는 한마디도 못할 놈들이 뒤에서 입을 나불대는 거랑 손가락으로 자판 두드리는 짓만 졸라 잘 한다고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7시 57분
전경들이 갑자기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몇 몇 시민들이 머리를 잡힌채 혹은 사지를 들린 채 끌려나가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우리는 소리를 질러 분노를 표현했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깡패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누가 끌려갔다, 또 누가 끌려갔다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 와중에 송경동 선배가 끌려갔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았지만 욕설을 내뱉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옆에서 어느 깡패가 전경들이 시민들을 밀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신나서 소리를 질러댔다. '저렇게 밀어내도 또 꾸역꾸역 몰려 올거 아냐? 응! 그럼 우린 또 돈 버는 거지 뭐! 하하하!' 돈을 많이 벌어서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나중에 또 듣자니 용역깡패들 하루 일당이 25만원이란다. 의외로 돈을 많이 버는 직종이었구나. 꾸준히 일만 들어오면 나보다 두세배는 더 많이 버는 직업이었다! 젠장 나도 진작에 깡패짓 좀 하다가 이쪽으로 진출할 걸!

8시 30분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철제 구조물을 아래에서 흔들어댔다. 위에 있던 김소연 분회장이 노성을 지르더니 뛰어내리려는 행동을 취했다. 옆에 있던 이상규 위원장이 재빨리 분회장을 붙잡았지만 이미 두 팔로만 의지한 채 온 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주위에 있던 시민들이 깜짝 놀라 일제히 몰려들었고, 위세 등등하던 구사대와 용역깡패들도 이때만은 움찔 놀라서 물러서는 모양이었다. 이상규 위원장과 김소연 분회장이 계속해서 쉰 목소리로 '깡패 새끼들은 물러나라!'고 소릴 질러댔다!

울음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둘러보니 주위의 여성분들은 거의 대부분 울고 있었다. 기륭 투쟁의 초기부터 4년 가까운 시간동안 늘 함께 생활하며 취재했던 연정씨도 눈물을 흘리며 수첩에 필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눈에 박혀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계속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보니 이상규 위원장이 김소연 분회장을 끌어올려 간신히 위기를 넘긴 모습이었다. 때마침 민노당 홍희덕 의원이 나타나서 김소연 분회장을 달랬다.

8시 44분
경찰은 트럭으로 대형 매트를 구해와서 철제 구조물 앞 쪽에다 설치했다. 안쪽에서는 칼라티비와 참세상 등 각종 진보 언론사의 카메라 기자들이 열심히 활동중이었는데, 용역깡패들이 계속 해서 이들을 위협하고 협박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진보신당 기자 하나가 여러명의 깡패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 기자는 안경이 벗겨져서 땅에 떨어지는 등 물리적 위협을 당하고도 그닥 기죽지 않고 깡패들과 말싸움을 계속해 나갔다. 배짱이 두둑한 기자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한 깡패가 뒤쪽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던 몇 몇 기자들을 향해 돌진하여 그들이 밟고 서있던 나무 판을 발로 차고 돌아갔다. 잠시후 이쪽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던 사람 한명이 조용히 책임자로 보이는 깡패에게 다가가서 뭔가를 속삭였다. 꼴을 보아하니 용역측 채증요원이었던 모양이다. 방금 그 깡패가 자기측 채증요원까지 위협하자 이 채증요원이 거기에 대한 항의와 주의를 요청하는 듯 했다. 이 채증요원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계속 찍고 있었다.

기륭 정문에서 정면으로 난 골목쪽으로는 전경들이 시민들을 상당히 많이 밀어내서 대략 50여미터를 전진한 모습이었다. 이미 시간은 아홉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나는 배가 고팠고, 무척 지쳐있었다. 차라리 저 바깥에서 전경들과 몸싸움이라도 벌이고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이 안에서 깡패들의 모욕을 견디고 있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었다. 깡패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제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고, 시민들과 깡패들과 구사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섞여 있었다. 전경들이 밀고 나가면서 넓어진 울타리(?) 안쪽에서 우린 자연스럽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문동만 선배가 이러고 있지 말고 밥이라도 먹자고 해서 역시 전경들이 밀고 나간 덕분에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온 식당으로 가서 일단 배를 채웠다. 그러나 밥을 억지로 퍼 넣으면서도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나중에 밤에 탈이 나고 말았다. 암튼 밥을 먹고 나왔는데도, 상황은 그대로였다. 이젠 새벽까지 장기전으로 이어질 듯 했다.

10시 20분
공중파 3사의 카메라 기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의 대낮처럼 밝은 후레시가 비추자 용역깡패들과 구사대들이 쌍욕을 내뱉았다. 마침 MBC 기자를 행해 협박하는 깡패가 있었다. MBC 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그 깡패에게 다가갔다. 무언가 고성이 오고갔다. KBS나 SBS가 주로 전경병력 뒤쪽에서 시위대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댔다면 MBC는 시위대쪽에서 용역깡패들과 구사대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댔다.

어느 순간 갑자기 수십여명의 구사대들이 종이박스로 얼굴을 가린채 앞으로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대로 들이닥쳐서 방송 카메라 앞으로 쇄도했다. 수많은 카메라들이 이들을 찍는동안 갑자기 골목을 봉쇄하고 있던 일부 경찰병력들이 뛰어들어왔다. 동시에 철제 구조물 앞을 막고 있던 용역깡패들이 일제히 쪽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그 자리를 경찰 병력들이 막아서서 벽을 구축했다. 그 동안 공중파 카메라들은 구사대의 종이박스에 가려져 있었다. 경찰들이 자리를 잡자 이 구사대들드 일제히 쪽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그림같은 움직임이었다. 멋진 작전이었다. 구사대와 깡패와 경찰들의 환상적인 연계작전이 훌륭하게 공중파 카메라들을 속였다.

이후에는 다시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양쪽 골목 입구에서는 여전히 들어오려고 애쓰는 시민들과 전경들이 대치하고 있었고, 안쪽에서는 일부 시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대로 새벽까지 별 다른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듯 했다. 새벽이 되고 대부분의 시민들이 돌아간 다음에 경찰이 다시 어떤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너무 피곤했고, 도저히 여기서 새벽까지 버틸 자신이 없었다. 시간이 11시가 넘어가고 집으로 갈 막차가 끊어질 상황에 처할때쯤 일단 집에 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골목을 봉쇄하고 있는 경찰에게 다가갔다. 집으로 가겠다고 하면 과연 열어줄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우리와 함께 있던 어느 스님이 경찰 병력 틈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재빨리 스님의 뒤를 따라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이십여명의 시민들이 지친 모습으로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오늘은 나도 할만큼 했다고 자위하면서 지하철 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Posted by 감은빛

어제 이랜드 바자회에 다녀왔다. 바자회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어떤 형식으로든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 일이 너무 많고 바빠서 도저히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준비단계에서 손이 많이 필요할 텐데, 뭐하나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사무실에서 후원할 책들을 사전에 택배로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당일날 꼭 가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이틀이나 삼일씩 서로 번갈아가면서 저녁에 아이를 돌본다. 당번제인 셈인데, 당번이 아닌 날은 늦게까지 일하고 온다. 10시는 기본이고 12시를 넘기가 일쑤고 아예 밤새 일을 하기도 한다. 아이를 돌보기로 약속한 날은 늦어도 7시 반까지는 아이를 데리러 가야한다.

어제는 내가 아이를 돌보기로 했는데, 상암에도 반드시 가야하니까 아이를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퇴근하고 집에가서 아이를 데리고 월드컵 경기장 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조금 일찍 퇴근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금요일이고 이러저런 일이 많은데 제시간에 퇴근할 수 있을지 스스로 생각해도 의문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퇴근시간이 훨씬 지나서 사무실을 나서게 되었는데, 실제로 할려고 마음 먹었던 일들의 일부를 다 못하고 나왔다. 게다가 원래 4시반으로 예정되어있던 회의가 미뤄져서 5시 50분이 다되어서야 시작되었는데, 회의를 대충 끝내고 났더니 이미 퇴근시간이 훨씬 지나있었다. 서둘러 아이를 데리러가야했다.

아이를 데리러 가면서 어떻게 상암까지 갈 것인지를 고민했다. 먼 거리였다. 지하철을 타려면 세번 갈아타야하고 먼 거리를 돌아서 가는 길이었다. 버스도 갈아타야 할 텐데 버스노선을 잘 몰라서 분명히 헤매다가 시간을 낭비할 것 같았다. 그럼 방법은 차로 가는 것 뿐이다. 평소 주차장에 서있기만 하는 차를 끌고 나섰다.

아이를 데리러 가서 곧바로 출발할 생각이었는데,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쉬 실수를 했는지 어쨌는지 입고 간 긴바지가 젖어서 여름옷인 7부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벌 긴 바지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혀야 했다. 출발 시간이 늦어져버렸다. 저녁도 못 먹어서 배가 고팠지만 일단 빨리 출발해야 해서 옷만 갈아입히고 다시 집을 나섰다.

여기 수도권으로 올라온 지 아직 채 5년도 되지 않아서, 나는 서울이라는 공간이 참 낯설다! 특히 지리를 잘 몰라서 길을 헤매는 경우가 많다! 차를 많이 몰고 다니지 않아서 도로사정도 잘 모르는 편이다. 낯선 길을 가려니 영 불안해서 포털에서 제공하는 지도 서비스에서 빠른 길 찾기를 해서 가는 길을 알아놓고 나왔다.

그런데 거의 상암에 다 와서 그만 길을 잘 못 들고 말았다. 이때부터 길을 헤매기 시작해서 무려 40여분이나 길에다 아까운 시간과 돈을 쏟아부어버렸다. 지난 주에 기륭을 찾아가는 길에도 거의 한시간 가까이 길을 못 찾아서 헤매느라 무척 힘들고 짜증났었는데, 오늘 또 길을 못 찾아서 고생을 한 것이다!

나중에 이 얘기를 들은 아내는 자기가 서울에 살던 사람이 아니라서 더 길을 헤매는 것이라고 차라리 네비를 하나 사자고 제안했다. 길 헤매는 건 정말 짜증나고 싫지만 이상하게 네비를 사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암튼 한참 헤맨 후에야 겨우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해서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10시 이후에는 직원이 남아있지 않고 무료라고 10시까지의 주차료를 선불로 달라고 한다. 10분에 300원이다. 일단 돈을 내고 차를 세운 후에 행사장을 찾아갔다.

워낙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이랜드 바자회는 거의 파장분위기였다. 잠시 둘러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삼사십분만 더 하고 마무리한다고 전했다. 원래 일정에는 '페르세 폴리스'를 상영한다고 되어있었는데, 이미 끝난 것 같지는않은데, 상영은 안하고 있었다. 물어보니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상영을 안했다고 하던데, 나중에 알고보니 구해온 장비가 조금 말썽을 부려서 상영을 못한 것이라고 한다.

'페르세 폴리스' 만화를 한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늘 그렇듯 생각만 하고 실제로 읽지는 못했다. 이번 기회에 애니메이션을 보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못 봐서 아쉬웠다. 일단 책을 몇 권 샀다. 늦게 와서 그런 지 책이 많이 팔려버린 후였다. 고를만한 책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관심있는 책들을 골라봤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책들을 구하고나서 어슬렁 거려봤는데, 달리 살 만한 게 별로 없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몇몇 그룹들이 바닥에 앉아서 막거리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아는 사람을 만나서 아이와 함께 그 판에 끼어들었다.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홈에버 안에 한번 들어가봤는데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바로 앞에서는 홈에버 불매운동을 하면서 열심히 바자회를 진행하는데, 이 안에서 물건을 사려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좀 많이 씁쓸했다.

아이가 추울까봐 미리 휴대용 담요를 준비해가긴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추웠다. 아이를 담요로 둘러싸놓았는데도 추워서 감기가 걸리면 어쩌나 걱정을 좀 했다. 주위 분들도 아이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 아이는 놀만한 꺼리도 없고 또래 아이들도 아무도 없어서 무척 심심해했다.

적당한 시점에서 일어나야지 생각을 하긴 했는데, 늘 그렇듯이 어쩌다보니 파장분위기가 될 때까지 남아있었다. 11시가 훨씬 넘어서서 아이와 함께 차로 돌아왔다. 아내는 그시간까지 일하고 있었는데, 도중에 만나서 함께 가기로 했다.

아내와 서로 다른 길로 가다가 잠시 헤매고 나서 결국 성미산 마을 쪽에서 만났다. 아내가 좋아하는 유기농 아이스크림 가게 '작은 나무'가 아직 문을 열고 있었다. 겉에서 보니 원래 옆집이었던 밥집까지 합쳐서 확장 공사를 한 모습이었다. 안에 들어가보았더니 이젠 술도 팔고 있었다.

물어보니 12시까지는 영업한다고 해서 서둘러 차와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다 먹고 다시 차에 오른 시간이 대략 12시 십분쯤이었고 집에 돌아오니 1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결국 바자회 행사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아쉽고 부끄러웠다. 아직 물건이 좀 남았던데 다음에 또 한다면 그땐 꼭 함께 참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