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26일에 오늘도 이어 경찰의 폭력이 도를 넘어 자행되고 있다. 전경들이 이렇게 폭력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는데, 전적으로 현장지휘관의 명령때문이다. 대열 맨 앞에서 전경들의 방패에 맞서 대치하고 있으면 현장지휘관들의 명령이 다 들리는데, 차마 경찰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믿을 수 없는 말들이 쏟아져나온다! 차라리 조직폭력배 두목의 입에서 나왔다면 믿을 수 있을 법한 말들.

"병력들, 수는 충분하니까 밀어붙여! 인도쪽으로 밀어! 어서 밀어붙여!"
"00(숫자)중대 더 밀어! 앞열에서 반항하는 놈들은 잡아서 끌어내! 끌어내서 패버려!"
"뭐하고 있나? 끌어내라니까! 끌어내! 끌어내!"
"찍어! 찍어버려!"
"자, 뛰어나가! 치고나가!"

이상의 말들은 25일밤부터 26일 아침까지 계속 전경들과 대치선에 있으면서 무전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현장 지휘관의 음성과 전경 대열 뒤쪽에 있는 중간간부들의 육성을 직접 들은 것들이다! 이보다 훨씬 더 다양한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들었는데, 지금은 다 기억나지 않는다.

전경들은 현장지휘관의 의도대로 미쳐서 날뛰었다. 방패를 마구 휘둘러댔고 주먹과 군화발을 서슴없이 휘둘렀다. 맨몸의 시민들은 두들겨 맞고, 쓰러지고, 밟히고, 연행되었다. 이러한 폭려을 뒤에서 사주한 현장 지휘관은 무조건 감옥에 잡아 쳐넣어야 한다. 이 놈들은 '실인교사' 죄로 쳐너어야 한다.

그리고 마이크 잡은 경찰 년놈들이 씨부리는 말들 중에 계속 시민들이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데, 지들이 하는 짓거리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

멀쩡한 도로와 인도를 다 막아놓고는 미안하다는 사과한마디 없이 차량에 손을 대는 것이 폭력이라고? 지들은 살수차를 두세대씩 동원하여 엄청난 수압의 물대포를 직격으로 쏘아대면서 시민들이 물을 뿌리면 폭력이라고? 시민들이 정말 폭력을 휘두르는 거라면 네놈들은 그 폭력보다 수백배는 더 끔찍한 폭력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지만 경찰직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는 것일까? 궁금하다!

Posted by 감은빛
똥개들이 쥐새끼 한마리에 굴복하여 제 주인을 물어뜯고 있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린가 싶지만, 현재 대한민국이란 곳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 대한민국이란 이름의 나라에는 경찰이란 이름을 가진 똥개새끼들이 잔뜩 있다. 이들은 주인이 주는 밥 잘먹고 지내면서 주인을 지켜주고 보호해주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어느날 이메가라는 이름의 쥐새끼가 나타나 이 똥개새끼들을 굴복시켜버렸다. 이메가는 똥개들에게 주인을 물어뜯으라고 명령하고, 이 똥개들은 주인이 먹여살려준 은혜도 잊어버리고 주인을 향해 달려들어 날카로운 이빨로 물어뜯고 있다.

도로와 인도를 막아 국민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죄없는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할 뿐만 아니라, 물대포를 쏘고, 소화기를 마구 분사하고, 돌, 보도블럭 조각, 모래나 물이 든 플라스틱 병, 쇠뭉치, 다쓴 소화기 등을 마구 던져서 시민들을 맞추고, 방패로 찍고, 군홧발로 밟고, 곤봉으로 치고, 이빨로 손가락을 물어서 잘라버리는 등 온갖 종류의 폭력으로 시민들을 죽이려하는 경찰.

피땀흘려 번 돈으로 내는 세금을 받아먹고 어깨에 힘이나 주고 사는 조직폭력집단 주제에 지들 월급 주는 시민들에게 이렇게 죽이려 드는 것이 과연 경찰이 해야할 인가!

똥개새끼가 미치면 약도 없다는데, 지금 경찰이 딱 그꼴이다!
Posted by 감은빛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동안 아내와 아이와 함께 촛불 집회에 다녀왔다. 좀 많이 지쳤다. 평일에 혼자 나가면 밤을 새기는 체력적으로도 부담스럽고 게다가 밤새도록 혼자 할일도 마땅찮아서 적당히 있다 돌아와야 하는데, 집이 멀어서 늘 막차시간을 걱정해야 한다. 주말엔 좀 늦게까지 있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에 편하게 나가는데, 문제는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혼자 나와있으면 집에서 혼자 아이를 돌볼 아내에게 미안하고 그렇다고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 아이때문에 적당한 시간에 집에 돌아가야 한다.

암튼 아내와 미리 약속하고 금요일과 토요일 집회에 아이와 함께 참여했다. 금요일엔 아내가 약간 몸이 안좋았는데, 감기몸살 기운이 있었다. 아이도 콧물이 조금 나왔다. 김밥집에서 사온 김밥을 먹으며 집회에 앉아 있다가 행진을 따라갔다. 행진이 시작될 즈음에 아이와 함께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이미 행렬 후미까지도 서울역방향으로 한참 가 있는 상황이라서 뒤에서 느긋하게 따라갔다. 광장에서 잠깐 리얼리스트 100소속 작가들을 만났다. 자주 만난다고 인사말을 나누고 헤어졌다. 명동방향으로 열심히 따라가서 행진에 참여했다. 아이는 신나서 구호를 따라 외치고 손동작을 따라했다. 뒤따라오는 대학생들 중에서 한 여학생이 계속 아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아이의 자연스러운 손동작이 무척 신기했던 모양이다. 우리 아이도 FTA국면때부터 여러번 거리행진과 촛불집회등에 참여했으니 여느 운동권 활동가 못지않은 경력이다.

대책회의의 방송차가 선두에서 사람들을 이끌었는데, 큰길로 쭉 가면 될것을 자꾸 작은길로 돌아가는 바람에 조금 화가 났다. 광화문에 들어서자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버린 차벽이 우리를 맞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직업경찰들이 차벽에서 너댓걸음 앞쪽에 노란 플라스틱 차량막이(이걸 뭐라 불러야할지 몰라서)를 늘어놓고 서너줄로 늘어서 있었다. 제일 앞줄에는 여경들이 늘어서 있었다.

우린 적당한 곳에 자리잡고 앉아있었다. 예전 사무실 동료도 잠깐 만났다. 한참 노래를 틀고 구호를 외치던 방송차가 갑자기 시청으로 가자며 사람들을 데리고 가버렸다. 금요일이라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순식간에 다 빠져나가버리고 소수만 그 자리에 남았다. 집회때 식코라는 영화를 시청광장에서 상영할거라고 광고하더니 거기로 사람들을 다 데려간 모양이었다. 소수가 남았으니 이제 곧 진압을 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갑자기 경찰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교보문고쪽 인도방향에서는 징그러운 검은 개미떼가 연상되는 전경들이 꿈틀꿈틀 기어나왔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면서 거리에 남은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줄었고, 경찰들은 눈에 띄게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있었기에 그리고 오랜 집회경험으로 예민해진 내 감각은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의료지원단으로 보이는 흰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한 여성이 우리에게 다가와 아이를 데리고 뒤쪽으로 가시라고 말했다. 나는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말라고 했다. 사실 남아있는 사람들의 숫자로 봐선 이 공간을 사수하긴 틀린 것 같아 보였다. 대충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일어날 생각이었다. 광장에서 영화를 볼 기분은 아니니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아내랑 아이는 몸이 좋지 않았고, 나도 일주일치 피로가 밀려들어서 제법 피곤했다.

행진하면서 잠깐 잠들었다가 깼던 아이는 뒤늦게 활발하게 돌아다니며 놀았는데, 우리가 가려고 하니 많이 아쉬워했다. 여경들이 뒤로 빠졌다. 아마 전열을 가다듬은 후에 어느 한쪽으로 배치되고, 양쪽에는 전경들이 배치되어서 곧 밀고 들어올 분위기인 듯 했다. 우린 미련없이 뒤로 돌아 나왔다. 시청역을 향해 걸었다. 이미 도로에는 차들이 다니고 있었다. 세종로 사거리 이순신 장군 동상 앞의 그 좁은 공간만이 섬처럼 남아 있었다. 경찰들이 강제해산시키고 나면 곧 없어질 공간이었다.

시청역을 향해 지하로 내려가면서 광장을 슬쩍 보고 갈까 생각하다가 기분이 더 나빠질 것 같아서 그냥 지하철을 탔다. 잠든 아이를 안고 먼 길을 돌아오면서 아내와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내부의 적이 가장 무서운 거라고 촛불의 진정한 적은 아마도 대책회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다시한번 진지하게 해보았다.

토요일엔 늦게 일어나서 뒹굴거렸는데도 피로가 쉽게 가시지 않아서 밥먹고 한동안 아이랑 놀다가 또 잠들어버렸다. 인터넷 언론들의 기사를 읽으니 우리가 돌아온 다음 경찰들이 사람들을 인도로 내쫓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교보 앞쪽에 있던 전경들이 폭력적으로 사람들을 밀어냈고, 그 소식을 들은 시청광장에서 식코를 보던 사람들이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직업경찰들이 아닌 전경들이 전면에 선 강제해산 작전이 다시 벌어졌고 사람들은 인도로 밀렸다가 경찰들이 틈을 보이면 다시 거리로 내려섰다고 한다.

게다가 황당했던 건 대책회의쪽에서 명박산성에 맞서 국민토성 혹은 민주토성이라 불리는 것을 쌓아보려고 모래를 주문했던 모양인데, 새벽에 모래 트럭을 두 대나 경찰에 뺏겼다고 한다. 전 날 집회에서 모래주머니를 갖고 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런 발상을 한 심정은 이해했으나 조금 쓸데없는 짓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비싼 돈 주고 사왔을 모래를 그렇게 허망하게 경찰에 뺏겨버린 것이다.

만약 안 뺏기고 무사히 모래가 오고 사람들이 즐겁게 모래주머니를 만들어 광화문으로 가져가서 쌓는다. 그런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우리는 차벽을 넘어 청와대로 가던가 아니면 청와대만 지키는 경찰들을 비웃으며 서울시내 곳곳에 있는 다른 곳들을 다니면서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면 되는 것이다. 경찰이 아무렇지도 않게 매일매일 만들어 놓은 저 폭력을 넘어서 우리의 올바른 목소리를 전할 의지가 없다면 거기에 밤새도록 앉아 있어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거기다가 모래주머니를 쌓아봐야 뭘 어찌 할 것인가? 그깟 모래주머니 쌓은 후에 넘어가겠다고? 국민들이 기껏 모금해준 돈으로 쓸데없는 짓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그닥 편치 않은 마음으로 토요일 집회에도 참여했다. 역시 아내와 아이와 함께였다. 이번에는 지난번 6월 10일 등장했던 크레인에 매달린 대형 스피커가 보였다. 조금 오버가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일지 몰라도 저 정도 크기의 스피커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았다. 무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언론재단 앞쪽에 앉아 있었는데도 스피커 소리가 너무 커서 불편했다. 아이도 계속 소리가 너무 크다고 불평을 했다. 실제 사람들의 대열은 한참 앞에서 끝나 있었고 그 뒤로는 띄엄띄엄 앉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집회가 끝날때쯤 박원석 상황실장이 남성분들 천명만 무대뒤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모래를 실은 차가 서울역 근처에서 경찰에 막혀 있는데 사수하러 가자는 것이었다. 집회가 끝나고 사람들은 조금 걸어서 광화문으로 갔다.

걷는 중에 작가회의와 리얼리스트 100의 깃발을 보고 얼굴을 아는 몇몇 작가들과 인사를 했다. 잠시 걷던 행렬이 멈추고 두대나 되는 방송차의 음악과 구호를 따라 노래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치며 사람들은 서 있었다. 아이가 졸려했고 나는 횡단보도쯤에 자리잡고 앉아서 아이를 재웠다. 경찰방송차는 보이지 않았는데, 차벽 뒤에서 늘 듣던 여성의 목소리로 늘 듣던 똑같은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간혹 경찰 간부는 아닌듯한 조금 젊은 남성의 목소리로도 경고방송이 나왔다. 나중에 읽어보니 인터넷 언론들에서도 일제히 이날의 기사에는 방송을 통한 설전을 주 기사로 쓰고 있었는데, 이날은 정말 경찰쪽과 우리쪽이 지겹도록 마이크를 잡고 입씨름을 벌렸다.

여경(아마도 여경이 맞겠지)이 계속 폭력을 자제하라고 방송을 해대는데, 도로를 막고 사람들의 보행권과 이동권을 박탈한 너희들의 거대한 폭력부터 거둬들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 여자는 계속 시위대를 일반시민과 폭력을 부추기는 일부 세력으로 나눠서 말하곤 했다. 그리고 경찰은 절대로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니 안심하라는 식의 방송을 했다. 그래놓고 버스에 들어가 있던 경찰들이 소화기를 뿌리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략 한시간쯤 잤을까? 안고 있는 팔이 저려올 무렵 아이가 깼다. 화장실을 데려가기 위해 코리아나 호텔에 들어갔다가 나오니 비가 왔다. 우비를 챙기려 했으나 집에서 나서는 순간 서두르느라 잊고 나오는 바람에 우린 우산외에 비를 피할 수단이 없었다. 아이가 비를 맞고 감기에 걸릴까 무서워서 집에 가야하나 생각을 했다. 한동안 코리아나 호텔 입구에서 비를 피하고 서 있었는데, 철도노조인지 확실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그쪽 노조 이름이 찍힌 트럭이 나타나면서 상자 하나를 거리에 있던 사람에게 던져주고 앞으로 갔는데, 우비가 든 것 같았다. 역시 사람들이 상자를 열고 우비를 나눠줬다. 나도 얼른 가서 우비를 2개 챙겼다. 나와 아이가 우비를 입고 아이에게는 아내가 혹시 몰라 갖고 온 방수가 되는 검은 잠바를 입혔다. 그리고 거리로 나왔는데, 허무하게도 곧 비가 그쳤다.

땅이 젖어 앉지 못하고 잠시 서 있었다. 아내와 아이가 배고프다해서 옥수수랑 핫도그를 하나씩 샀는데, 오늘도 노점상연합회에서 순두부를 나눠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난 서둘러 아내에게 말해 한 그릇 받아오게 했다. 버스 정류소에 설치된 긴 의자에 앉아서 핫도그와 순두부와 옥수수를 나눠먹었다. 나도 순두부를 한그릇 받아와서 먹었다. 역시 맛있었다. 문득 일주일 전에 만났던 윤희상 시인이 생각났다. 그 분도 지금 여기 근처에서 순두부를 드시고 계실텐데 싶었다.

배를 채우고 다시 앞쪽으로 갔더니 차벽 중간 쯤에 모래주머니를 집중적으로 쌓아올려서 차벽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고 깃발을 든 사람들이 차벽위에 올라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오늘 차벽은 세 겹이었는데, 그중 제일 뒤쪽 차벽이 차 위에 방패막이가 된 차들이었고, 그 뒤에서 전경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며 채증을 했고 소화기를 뿌려대기도 했다.

이어서 밧줄을 든 남자들이 뛰어왔다. 오늘도 차를 끌어내려나보다 싶었다. 그래 저 모래 쌓아놓고 저기 올라가봐야 넘어가지도 못할 것을, 모래 트럭만 죄 뺏기느니 차라리 그런 쓸데없는 짓 말고 밧줄이나 대량으로 가져와서 차벽을 확실하게 해체하는 작전을 짜는 게 나았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앞쪽에서는 차에 밧줄을 묶는 사람들과 이를 저지하기 위해 소화기 분사를 비롯하여 각종 방법으로 막으려는 경찰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그 그 뒤쪽에는 응원하는 시민들이 열심히 노래와 구호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거리를 두고 뒤쪽에는 오마이뉴스가 자발적 시청료를 1억넘게 모아서 사들인 대형 스크린을 갖춘 방송차가 있었다. 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무슨 스포츠 중계보듯이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불과 일이백미터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그냥 앞쪽으로 와서 보면 다 보이는 것을, 사람들은 굳이 거기에 앉아 야구 보듯, 축구 보듯 시위를 관람중이었다.

앉을 자리를 찾으면서 앞쪽으로 향해 걷고 있는데, 한 아줌마가 뒤쪽에서 후다닥 뛰어오더니 나를 향해 두서없는 말들을 뱉어냈다. 아마도 오마이뉴스 방송차의 화면을 보고 놀라서 온 모양인데, 전경들이 지금 불을 지르고(아마도 소화기 분사 모습을 보고 불이 나서 연기가 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때리고 난리가 났는데, 남자들은 다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의 말이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군대 갖다온 남자들은 다 어디있나 뭐 이런 말을 뱉으면서 앞쪽으로 사라졌다.

아이를 안고 있지 않았어도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사람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앞쪽에 자리잡고 앉았다. 비가 왔고 또 시간이 늦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돌아갔고 또 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오늘은 끝까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와 함께 있다는 현실을 잠시 잊기로 마음 먹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으쌰 으쌰' 남자들이 밧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예전과 다르게 차는 쉽게 끌려나오지 않았다. 별써 예전부터 경찰은 차들끼리 와이어로 고정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밧줄이 더 필요하고 사람들이 더 많이 한번에 달라붙어야 할 듯 했다. 암튼 나도 밧줄을 한번 당겨보고 싶었다. 아이를 아내에게 넘기고 뒤쪽아 가서 앉아 있으라고 했다. 방송을 멈춤 방송차가 서있는 곳 부근에 아내는 자리를 깔고 아이와 함께 앉았다.

나는 한쪽 장갑을 얻어끼고 열심히 밧줄을 당겼다. 줄다리기는 원래 많은 사람들이 박자를 맞춰 함께 당겨야 하는 것인데 줄이 길고 줄 주위에 사람들이 시야를 방해하는 데다가 정확한 구령등이 없어서 제대로 힘을 쓰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리가 한참 당기고 있는데, 서대문 방향에서도 또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갑자기 밧줄을 당기던 사람들이 쓰러지고 몇몇이 다친 듯 했다. 나중에 구급차가 여러대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싣고 갔다. 방송차에서 사람들이 다치니 밧줄을 그만 치우자라는 말을 했다.

밧줄을 당기는 시간보다 밧줄을 제대로 고정하는데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는 듯 했다. 나는 뒷쪽에 있어서 앞쪽 상황을 알 수 없었는데, 밧줄은 자주 앞으로 가서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밧줄이 앞으로 가버리고 나면 나는 뒤로가서 아내와 아이가 어떤지 보고 오곤 했다. 그런데 한참 밧줄을 당기는데 전화가 왔다. 멈추라는 손짓과 요청이 오고 밧줄은 다시 앞으로 갔다. 전화를 받으니 아내가 돌아오란다. 가보니 사람들이 계속 귀찮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내가 펼쳐놓고 앉아 있던 은색 자리에 빈공간이 많으니까 중년 아줌마 두 사람이 함께 앉았는데, 계속 신경거슬리는 말들을 하더니 급기야 자리를 끌고 뒤도 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청계광장쪽으로 가자고 하면서 주인인 아내의 허락도 없이 자리를 끌고 가려고 해서 아내가 그만 집에갈 생각이니 나가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또 한 남성이 와서는 술냄새를 풍기면서 아이가 있으면 위험하니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알고 있다고 괜찮다고 했는데도 이 남자가 천원짜리를 꺼내 아이에게 건네면서 자꾸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돈을 거절하고 화가나서 내게 전화한 것이다.

이미 시간은 한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아내의 얘기를 듣고 이제 어찌할 것인가를 정해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택시를 타고 영등포로 가면 아직 심야 버스를 타야했다. 아마 아직은 있을 테지만 더 늦으면 그것 마저도 끊기리라. 아니면 5월 마지막 밤, 물대포를 쏘던 그 날밤에 아내와 아이가 하룻밤 신세를 졌던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는데, 그 후로 아마 번호를 바꿨을 확률이 높고 이 늦은 시간에 또 전화하기에는 미안해서 그 방법은 제외시켰다. 다른 방법은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장모님께 가는 것인데, 아내도 나도 조금은 망설여졌다.

나는 남고 싶은 마음과 돌아가서 쉬고 샆은 마음이 반반이었는데, 상황을 보아하니 그닥 좋아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돌아가기가 아쉬웠다. 그런데 아내와 아이만 택시태워보내려니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기위해 시청방향으로 걷는데, 오마이뉴스 방송차를 지나치는 순간 사람들이 환성을 질렀다. 화면을 보니 밧줄에 당겨져서 차 한대가 조금 끌려나왔다.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던 차였다. 드디어 끌어냈구나. 하지만 광화문 앞을 막고 있는 수십대의 차 중에서 겨우 한대 끌어냈을 뿐이다. 시간이 더 늦어지고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면 또 경찰은 소화기와 방패와 곤봉을 앞세워 폭력진압을 할 것이다.

남아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 들었지만 이미 한번 가자고 말해버린 후라 그냥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아까 12시가 되기 전이었던가 예전에 내가 활동했던 단체에서 집행위원으로 계신 분을 잠깐 만났다. 반가워하시면서 시청앞에서 활동가들이 공연하고 있으니 잠시 들러보라고 했었다. 그 분은 이제 집으로 가신다고 했다.

시청광장으로 다가가면서 그 말이 떠올랐다. 아마 거의 밤새도록 공연을 할 것이다. 그 친구들은 그런 기획을 자주 했으니까. 잠시 들러보면 반가운 얼굴들을 좀 만나겠지. 하지만 몸도 피곤했고 아이를 안은 팔은 점점 더 무거워져갔다. 거기서 시간을 조금 지체하면 자칫 영등표에서 차가 끊길지도 모를일이었다. 그냥 서울역방향으로 조금 더 가서 택시를 탔다.

영등포에서 탈 버스가 여의도에서 출발한다는 얘길 택시 안에서 아내가 꺼냈다. 그러고보니 여의도 환승센터에서 타면 될 것을 굳이 영등포까지 더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얼른 기사님께 말씀드렸다. 이제 막 마포대교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여의도 환승센터에서 십분여를 기다려 버스를 탔다. 집 근처에서 버스를 내려 다시 십오분정도를 걸었다. 아이를 안은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시계는 안봤지만 아마도 두시 반은 넘었으리라. 피곤했다. 우리는 뽑지도 않은 멍청한 대통령 하나 때문에 삶이 너무 피곤하다!
Posted by 감은빛
처음 경찰이 소화기를 분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람들이 최루탄이 터졌다는 말을 하곤 했다. 최루액 사용은 노무현때 합법이 되었는데, 최루탄도 합법이었던가? 근데 최루탄은 확실히 아닌데 눈도 살짝 맵고 코도 조금 이상하다 싶었다. 알고보니 경찰이 뿌려대는 소화기였는데, 이게 이상하게 최루탄과 약간 비슷한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최루액을 섞은 소화기가 아닌가하고 의문이 들었는데, 나만 그런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런말들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소화기를 분사하면 아래로 가라앉지 위로 퍼지지는 않는데, 경찰은 차벽 아래로 소화기를 분사했고, 그 분말인지 뭔지는 위로 퍼져 올라갔다. 또한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경찰이 사용하는 소화기에는 국제적으로 사용금지된 '하론가스'인지 뭔지가 사용된다는데, 이건 가까이에서 사용하면 질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놈이라고 한다. 근데 경찰은 바로 코앞에서 시위대 얼굴을 정확하게 겨냥해서 뿌려댔다.

바로 옆에서 맞은 사람을 보았고, 나도 여러차례 얼굴 근처에서 스치듯 맞았는데, 눈과 코가 아주 매웠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말 화가 나는건 이것들이 순식간에 쏘고 나서 숨기기 때문에 어떤놈이 쏘았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당하는 쪽에선 피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이다. 물대포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경찰은 소화기를 더욱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차라리 물대포 쪽이 더 대응하기 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대한민국 경찰이란 조직은 대단하다. 어떻게 이렇게 효과적이고 대단한 진압무기를 개발할 생각을 다 했을까 싶다! 내가 꼬박꼬박 내는 세금으로 너희 경찰 놈들 월급과 함께 이런 황당한 진압무기들이 사용된다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다!
Posted by 감은빛

지난 주 토요일에서 일요일 아침까지, 오월의 마지막날에서 유월의 첫째날에 걸쳐 밤을 꼬박 세워가며 시위를 벌였다. 토요일 오후 아내와 아이와 그리고 장모님까지 모시고 참여했던 나는 적당한 시점에서 집에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장모님께선 집회가 끝날때쯤 돌아가셨고 행진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행렬은 인사동쪽에서 일단 막혔으나 사람들은 차벽을 넘어서 경복궁을 향해 나갔다. 동십자각앞에서 경찰과 대치상태에 빠졌을 때, 고민이 들었다. 오늘은 어쩌면 중요한 시점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대로 돌아가야 할 것인가?

일단 대치상황이 길어지고 있어서 앞쪽의 대치선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저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와 상의하여 조금만 더 상황을 지켜보다가 이대로 별 일이 없을 것 같으면 그냥 돌아가고 혹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 아내와 아이는 근처에 아는 분의 오피스텔에 들어가서 하루밤을 보내고 나는 현장에 계속 남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경찰이 소화기를 뿌려대고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대략 11시반경 동십자각에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경 서울광장에 오기까지 수차례 물대포를 맞았고, 수십차례 밀고 밀리는 몸싸움을 벌였으며, 서너차례 방패와 곤봉을 앞세운 폭력진압을 겪으며 간신히 살아남았다. 과정에서 온몸에 멍이 들고 두 군데 방패에 찍힌 상처가 남았다. 그러나 더 심하게 다치고 끌려간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부끄러웠다. 그들을 구하지 못하고 혼자만 도망쳐나온 자신이 죄를 지은 것 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잠한숨 못잤지만 시청광장을 떠나지 못하고 남은 이들과 함께 이후 일정에 대해 고민했다.

결국 아이에게 밥도 먹여야 하고 집으로 데려가기도 해야해서 잠시 돌아가 쉬다 오기로 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때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차벽에 막혀 있다가 사람들이 차벽을 끌어내자 경찰병력이 쏟아져 나왔다. 차벽 너머에선 살수차가 보이기는 했지만, 이날 하루종일 여론이 악화된 점을 의식해서인지 물대포를 쏘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찰의 폭력진압은 더욱 심해졌다. 한손에 쏙 들어가는 작은 휴대용 소화기를 얼굴에 대고 바로 뿌려대면서 방패와 곤봉과 군홧발로 맨손의 시민들을 마구 두들겨패는 경찰의 모습은 깡패보다 더 무서웠다. 경찰은 더이상 시민들을 보호하는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조직을 갖춘 조직폭력배일 뿐이었다. 게다가 법을 등에 업고 마음대로 시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경찰은 맨손에 각자 구호를 적은 팻말과 촛불만 든 시민들을 폭력시민이라고 매도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시내 주요도로와 인근 골목길까지 차량과 병력으로 완전히 막아서 시민들의 통행권을 침해하는 불법을 저질렀으며, 살수차와 방패와 곤봉의 사용규칙을 어기는 불법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소화기를 안면에 직접 분사하는 불법행위를 남발했다. 게다가 특수한 임무에만 투입되는 경찰특공대가 일반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하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이에 수백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이중에 수십여명은 심각한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유월은 시작되었다. 피와 함께 시작된 역사적인 유월에 어떤 일들이 더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Posted by 감은빛

지난 주말 진행된 촛불 행진을 폭력진압 했던 경찰청장 어청수가 '폭력시민을 강경진압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게다가 고생한 전/의경부대에 2억6천만원을 격려금으로 지급한다고 밝혔다.

토요일 밤에서 일요일 아침까지 계속된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심하게 다친 시민은 백여명에 이르고 일요일밤에서 월요일 아침까지 다친 시민 역시 수십명에 이르고 있다. 많은 시위대들은 경찰의 불법채증에 맞서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에 카메라를 들이댔고, 덕분에 백분의 일도 안되겠지만 경찰의 폭행장면이 인터넷을 통해 온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이에 수많은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다!

나는 금요일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계속 시위현장에 있었으며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경찰과의 대치선에서 보냈기 때문에 수많은 폭력을 경험했다. 일일이 다 얘기하려면 끝도 없다. 토요일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머리위에서 쏟아지는 물대포에 넘어지고 쓰러진 시민들이 다쳐서 실려나가는 장면들부터 시작된 악몽같은 순간은 아침까지 계속 되었다. 버스 위에서 물대포에 저항하다가 실신해서 실려나간 사람도 있었고, 몸싸움도중 내 바로 뒤에서 쓰러져서 나와 주위사람들이 직접 안고 나가서 의료지원단에 넘겨준 여성분도 있었다. 내 주위에서 전경의 방패에 얻어맞은 수많은 사람들을 어찌 일일이 다 말할 수 있을까? 순식간에 끌려가서 집단 구타당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보고도 어찌 할 수 없는 그 안타까움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일요일 아침 첫차가 다닐 시간쯤 본격적으로 밀고 들어온 경찰에 밀려 대열이 완전히 무너진 순간 앞에서 몸으로 저항하던 나를 비롯한 남성들은 순간적으로 치고들어온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내 바로 옆에서 방패에 찍혀 넘어져서 밟히는 사람들을 두고 도망쳐야만 했던 내 심정을 어찌 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사동까지 밀려서 잠시 소강상태에 있다가 삼거리 중 두개 방향에서 개미떼처럼 밀고 들어온 어마어마한 경찰 병력을 보는 순간 머리가 멍해짐을 느꼈다. 이거 잘못하면 오늘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들은 악을쓰며 '때리지 말라'고 외쳤지만 경찰들은 달려들면서 무자비하게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고 군화발로 밟아댔다. 인도로 도망쳐도 소용없었다. 건물안으로 도망쳐도 소용없었다. 끝까지 뒤쫓아와서 결국은 집단 폭행을 저질러대는 경찰을 보는 순간 오늘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라는 공포감이 들었다.

일요일 밤에는 전날 폭력진압에 대해 여론이 악화된 점을 감안해서 그랬는지 살수차는 보였지만 물대포를 쏘지는 않았다. 대신 소화액을 계속 뿌려댔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전경병력이 밀고 들어오면서 나와 시민들은 전경들과 몸싸움을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앞열 방패 뒤에 있던 녀석들이 조그만 빨간 소화기를 꺼내더니 맨앞에서 대치중이던 시민들의 얼굴을 향해 뿌려댔다. 당연히 그 사람들은 얼굴을 감싸쥐고 쓰러졌고 대열은 무너졌으며 그 틈으로 경찰들은 방패를 휘두르며 들어왔다. 지휘관인듯한 놈이 왼팔에 붙어있는 작은 타원형의 방패를 마치 액션영화의 한장면처럼 휘두르며 앞에 있던 시민의 목을 쳤다. 그는 쓰러지고 뒤이어 달려온 전경들이 마구 밟고 방패로 찍어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내 바로 옆에 선 남자가 눈에 소화액을 맞고 비틀거렸다. 나는 재빨리 그의 팔을 잡고 뒤로 물러났으나 달려든 전경은 방패로 그의 어깨를 찍었고 옆에서 다른 놈이 방패로 그를 잡은 내 팔을 찍었다. 그는 끌려가서 집단구타를 당했고 나는 겁에질려 뒤로 물러났다. 어느정도 뒤에서 다시 시민들이 서로 팔짱을 끼고 대치선을 구축했다. 경찰들은 잠시 틈을 두고 있다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경찰의 방패와 내 어깨가 충돌하고 서로 밀고 밀리는 힘싸움이 잠시동안 있었다.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들이 '으쌰 으쌰'하고 박자를 맞추고 경찰이 뒤로 조금씩 밀리는 순간 또다시 두번째 열에 있던 전경놈들이 빨간 소화기를 꺼내어 사람들의 얼굴을 겨냥하고 쏘았다. 내 옆사람의 옆에 있던 남자가 욕을 내뱉으며 괴로워했다. 눈을 뜨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 사람이 팔짱을 풀고 뒤로 물러나려할 때 갑자기 전경들이 밀어붙이면서 방패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소화기에 얼굴을 맞고, 방패에 찍히고, 군홧발에 밟혔다!

어청수라는 개만도 못한 놈에게 묻고 싶다. 경찰이 이렇게 무자비한 폭력을 사용하는 동안 시민들이 도데체 어떤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대체 아무런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맞선 시민들이 물대포와 소화기와 방패와 곤봉과 헬멧과 보호장비를 갖춘 경찰에게 어떤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물대포와 소화기와 곤봉과 방패를 갖춘 경찰병력 앞에 녀석을 혼자 맨몸으로 세워놓아도 스스로 폭력시민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저 개만도 못한 놈이 뚫린 입이라고 지껄이는 헛소리를 듣고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네 놈의 머리가 순전히 목위에 얹혀 있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 시라도 빨리 그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다! 그리고 '물대포에 맞아서 부상당했다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는 명영수라는 개만도 못한 놈이 서울지방 경찰청 경비과장으로 있다던데 네 놈의 머리도 장식품이 아니라면 당장 사퇴해야 할 것이다!

명심해라! 무고한 국민 한사람이 다칠때마다 백명의 아니 천명의 아니 만명의 분노한 국민들이 거리로 나설 것이다!

Posted by 감은빛
금요일부터 계속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금요일엔 아이를 장모님께 맡기고 아내와 함께 나섰다. 분위기에 젖어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어서 토요일 새벽 열두시 반쯤까지 있었다. 아이가 감기기운이 있고 열이 나서 장모님께 계속 전화가 왔고 이미 밤이 깊었음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서 그냥 택시타고 돌아갔다.

그리고 토요일엔 낮에 대학로로 갔다. 이번에는 아예 장모님을 모시고 아이와 아내와 함께 참여했다. 대학생들이 행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한동안 좁은 인도에 사람들에 치이면서 기다렸더니, 참여연대 안진걸팀장이 방송차에서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을 이끌고 시청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걸어가는중엔 계속 아이를 안고 갔는데, 각종 카메라들이 아이에게 집중되곤 했다. 아이는 많은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는 걸 보고 신이나서 따라했다. 장모님께선 사실 촛불집회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저 아이랑 같이 있는게 제일 큰 목적이고 촛불집회를 티비에서만 보다가 어떤것인지 실제로 한번 보고 싶은 마음에 따라나서신 것 같다. 암튼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다리가 아프시다면 점점 뒤로 쳐졌다. 연세도 많으신데 조금은 고생을 하신 듯해서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시청광장에선 촛불문화제를 보다가 아이가 배고프단 소리에 시계를 보니 어느새 저녁시간을 훌쩍 지나있었다. 부랴부랴 사람들을 헤치고 뭔가 먹을걸 조달하러 갔는데, 시청광장은 이미 발디딜틈없이 사람들이 꽉 차있어서 움직이는 것 조차 힘들었다. 주변에 식당들이 있을만한 곳을 뒤졌는데, 빨리 조달해갈 수 있는 먹거리가 별로 없었다. 분식집에 김밥 메뉴를 보고 들어갔더니, 김밥 주문이 너무 밀려있어서 더이상 주문을 받을 수 없단다. 여차저차해서 간신히 찐빵과 튀김을 구해서 돌아왔는데, 이번엔 가족이 기다리는 자리로 돌아가는 길이 무슨 정글을 헤쳐가는 것처럼 힘들었다.

장모님께선 돌아가시고 내가 아이를 안고 아내와 함께 행진을 시작했다. 우린 천천히 걸어서 인사동을 통해 경복궁 동십자각까지 갔다. 거기서 차벽과 경찰병력에 막혀 있길래 약간 뒤쪽에 물러나서 상황을 보고 있었다. 11시가 넘어서자 감기기운이 있는 아이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상황이 계속 변화가 없어서 돌아갈까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엄마랑 상의하면서 가야지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돌아서기에 약간 미련이 남아서 조금만 더 기다려봤다.

그러던 중 마침내 일이 터졌다. 경찰이 소화기를 뿌리고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상황은 끔찍했는데,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와 아이를 안전한 곳에 보내고 나는 남기로 결정을 내렸다. 마침 광화문쪽에 아내가 잘 아는 분의 오피스텔이 있는데, 그곳에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그곳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고 나는 동십자각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지만 난 언제나 그렇듯이 괜찮을거라고 걱정말라고 했다.

돌아오자마자 경복궁 담을 넘어 들어가서 차벽앞으로 나왔다. 사람들과 함께 전경병력과 대치하다가 몇번 밀고 당기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전경들을 확 밀어낼 수 있었다. 과정에서 흥분한 전경들이 방패와 곤봉을 마구 휘둘러 몇 사람이 다쳤다. 암튼 앞쪽 전경들을 밀어내고 나니 시위대 옆과 뒤쪽에 있던 병력들도 밀려서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이렇게 순순히 병력들을 들여보내주고 나서 나중에 엄청나게 얻어맞겠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계속 더 밀고 들어갔고 우리가 확보한 닭장차 한대에서 안에 연행되어있던 시민들 십여명을 구해내기도 했다. 물대포가 몇 차례 더 물을 뿌리고 여러명이 다쳤다. 많은 사람들이 물에빠진 생쥐꼴이 되어서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다. 나도 팬티까지 몽땅 젖어 버렸다. 다시 전경병력과의 대치가 계속되었다. 나중에 김밥과 빵과 물 등의 먹거리와 일회용 우비 등이 앞으로 전달되었다. 우린 우비를 걸쳐입고 다시 전경들과 방패를 사이에 두고 마주섰다.

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새벽이 오자 경찰병력이 다시 물대포를 쏘고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린 죽음힘을 다해 버텼으나 어느순간 보니 뒤가 텅 비어있고 광화문 방향에서 전경병력이 어마어마하게 몰려오고 있었다. 게다가 살수차가 여러대 밀고 들어오며 무자비하게 물대포를 퍼붓고 있었다. 삼청동길 좁은 차벽 사이를 사수하던 우리들은 더이상 아무의미가 없이 버려진 꼴이 되어버렸다. 전경들은 방패를 세워 덮쳐왔고 우린 모두 흩어지며 도망쳤다. 몇몇이 집단 구타당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죽어라고 앞을 보고 뛰었다.

잠시후 다시 대열을 가다듬고 광화문방면에서 밀려온 사람들과 함께 스크럼을 짰다. 새롭게 우리 앞으로 다가오는 전경들은 우리와 밤새 대치했던 녀석들과는 달리 힘이 펄펄 넘치는 모습으로 방패를 땅에 찍으면서 비웃음와 욕설을 날려댔다. 녀석들이 다가오고 한차례 밀고 밀리는 힘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소화액이 분사되면서 갑자기 지휘관인듯한 놈들이 뒤에서 뭐라고 소리를 질르자 녀석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뒷열에서 곤봉들이 휘둘러지고 앞열의 놈들은 방패로 밀어서 거리를 벌린다음 발로 차거나 방패로 찍었다. 순식간에 대열이 허물어지고 대부분 넘어진 후에 방패에 찍히고 밟혔다. 나도 방패에 맞아 넘어졌다가 땅바닥을 한바퀴 구른 다음 일어나서 곧장 도망쳤다.

우리는 안국동방향으로 계속 물러나야 했다. 경찰은 계속 위협적으로 달려들었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쳤다. 인사동 입구 가까이까지 밀려난 상태에서 한동안 대치상황이 계속 되었다. 그러다가 잠시후 종로방향에서 병력이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사람들은 그쪽 도로에 화단과 표지판등을 옮겨서 바리케이트를 만들었지만 어마어마한 숫자의 병력이 밀려오자 별로 소용이 없었다. 양쪽 방향에서 밀고 들어오는 병력은 정말 엄청나게 많았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머리가 멍해지면서 '전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건 비무장의 시민들을 상대로 경찰이 전쟁을 벌이는 것이었다. 나중에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5천도 안되는 시민들을 향해 5만이 넘는 경찰 병력이 투입되었다!'고 했다.

새까맣게 개미처럼 밀려오는 경찰들을 보고 공포에 질린 시민들은 정신없이 뒤로 도망쳤다. 멈춰서 막아보자는 말이 통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안국역을 지나서 낙원상가 방향으로 내려와서 종로 거리로 들어섰다. 우리는 다시 구호를 외치면서 광화문 방향으로 나갔다. 그러나 종로 2가쯤에서 밀고 내려오는 경찰 병력이 시민들의 대열을 끊어 놓았다. 이들은 갑자기 달려들면서 닥치는 대로 방패를 휘둘렀다. 인도로 도망친 시민들이 두들겨 맞는 장면이 보였다. 나는 전력질주로 그들을 피해 도망쳤다. 뒤에서 맞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눈물이 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남은 사람들은 잠시 방향을 의논했다.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이제 겨우 삼십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우린 시청광장으로 발길을 잡았다.

시청광장에서는 먼저 와있던 사람들이 박수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물을 나눠마시고 쉬고 있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삼삼오오 시청광장으로 들어왔다. 그때마다 우리는 박수로 서로를 맞아주었다. 누군가가 빵과 과자와 물을 돌렸다. 한참을 쉬고 있으니 밤새 인터넷 중계를 보다가 날이 밝자마자 나왔다는 사람들이 점점 합류했다. 그들은 물과 김밥과 마른 옷과 수건 등을 가져다 주었다. 서너번 물대포를 맞아서 젖었던 옷은 이미 거의 다 말랐다. 다만 무릎 아래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신발과 양말이 계속 젖어 있어서 발이 퉁퉁 부었다. 바지를 걷어올려보니 무릎부터 정강이에는 수십군데 멍이 들어 있었다. 어깨와 팔에도 온통 멍이 들었고, 오른 팔에는 방패에 찍혀 살짝 찢어진 상처 주위로 피멍이 들고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이렇게되자 이젠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소수지만 밤새워 함께했던 사람들이 아직 여기에 남아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자유발언을 통해 서로를 영웅이라고 불러주고 사랑한다고 외치기도 했다. 아침 9시쯤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깼는데, 먹일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어제밤 아이와 아내를 데려다주었던 오피스텔로 갔다. 근처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배는 고팠지만 입맛은 없었다. 억지로 밥을 먹고 몇시간만이라도 쉬어야 한다는 아내의 설득에 일단 돌아가기로 했다.

오후에 한 네시간쯤 자고 일어나서 저녁을 먹고 다시 집을 나섰다. 청운동 동사무소 앞쪽에서 시민들이 전경과 대치중이라는 소식을 아내가 전했다. 그쪽으로 바로 가려했으나 가는도중 그쪽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소식이 다시 왔다. 시청광장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전날 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집회 마무리즈음에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이 정리하는 발언을 하면서 한 국회의원이 꼭 발언하고 싶다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누군지 어느당인지 알아야 대답을 할수 있을텐데, 굳이 그렇게 물어보는 걸 보니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쪽 사람이 아니고 민주당측 의원이 아닐까 싶었다. 암튼 참가자들의 반응은 시원찮았고, 상황실장은 곧바로 행진 시작을 알렸다.

행진은 서울시의회 앞쪽을 통해서 곧바로 광화문을 향했다. 그러나 광화문에는 이순신장군동상 앞에서 차벽에 막혀있었고 대학생들을 선두로한 행렬은 곧바로 멈췄다. 서대문쪽으로 방향을 바꿨으나 역사박물관 앞쪽에서 차벽이 막고 있었고, 작은 골목들도 모두 차벽으로 막혀있었다. 종로쪽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광화문 앞에 있었다.

시간이 늦어지자 많은 이들이 돌아갔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시민들은 남아있었다. 사람들은 광화문 앞을 막고 있는 닭장차에 밧줄을 연결하고 줄다리기하듯이 많은 이들이 잡아당겨서 차벽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차가 끌려나오자 경찰은 차벽 아래로 소화기를 마구 분사했고 시민들은 대형천막을 펄럭여서 날려보내기도 했다. 틈이 벌어지자 전경들이 앞으로 전진했고 어느순간 덮쳐오기 시작했다. 앞쪽에서 밀고 밀리는 몸싸움에 가담했는데 전경들 중에서 앞열 방패 뒤에 숨어있던 놈들이 갑자기 소화기를 꺼내어 시민들의 얼굴에 대고 뿌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대형이 무너지고 방패를 휘두르며 들어오는 경찰을 피해 사람들은 물러났다. 두어걸음 뒤에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은 시민들과 전경들은 다시 대치했다. 이때 전경 한놈이 욕설과 함께 방패를 마구 휘두르다가 두어사람에게 방패를 잡혔다. 그 놈을 두고 쟁탈전이 벌어지고 헬멧까지 붙잡힌 그놈은 결국 시위대 사람들에게 끌려들어왔다. 앞쪽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서 그 놈이 어찌되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나중에 들은 말로는 방패와 헬멧을 뺏기고 돌려보내졌다고 한다. 어느 아저씨가 때리려고 했으나 주위사람들이 말려서 맞지는 않았다고 한다. 암튼 그런 상황에서 앞줄의 어느 전경이 '전경 한명 끌려갔어요. 보내주세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수많은 시민들이 끌려가서 이빨이 나가고 뼈가 부러지도록 두들겨 맞고 있는 상황에서 전경 한명 끌려갔다고 난리치는 녀석에게 어떤 말로 대답해야 할지 좀 난감했다. 뒷사람이 걔는 돌려보냈다고 말했지만 이 녀석은 안믿는 눈치였다.

잠시 후에 녀석들은 다시 밀고 들어왔고 소화기를 얼굴에 곧바로 뿌리는 바람에 주위 사람들이 계속 끌려가거나 뒤로 빠져나갔다. 그러면서 계속 대열에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방패를 휘두르며 전진을 계속하는 경찰들. 그러다 왼쪽이 무너졌다며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도망치기 시작했고 귀옆을 스치는 방패소리를 들으며 나도 뒤로 뛰었다. 바로 뒤에서 '찍어! 찍어! 죽여버려!'라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우린 계속 뒤로 물러났다가 잠시 대치하기를 반복하면서 서울시의회와 언론재단 사이에서 다시 장기간 대치상태에 들어갔다. 경찰 방송차에서 여경이 계속 '불법 어쩌구 저쩌구' 떠들어댔으나 사람들은 '노래해!'를 외치거나 '우~!'하고 야유를 보내어 답했다. '노래를 못하면 시집을 못가요 아 미운사람~' 이란 노래를 불러대며 계속 노래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중에 방송차가 한대 더 왔다. 이 차는 스피커를 위로 올리더니 아주 밝은 라이트를 우리들에게 비췄다. 사람들은 눈이 부셔 괴로워하며 '시력감퇴 학습저하'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3시가 넘은 즈음에 경찰들이 본격적으로 밀고 들어왔다. 나는 고향후배랑 사무실동료랑 같이 팔짱을 끼고 스크럼을 짜고 있었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오늘도 어디 한군데 다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쓰러져서 집단 구타당하고 연행되는건 아닌가 두렵기도 했다. 제일 두려운건 바로 얼굴로 뿌리는 소화기였는데, 한번 맞으면 반항이고 뭐고 하지도 못하고 그냥 죽도록 두들겨 맞고 연행될게 뻔했다. 후배에게 소화기 조심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고 나도 용기를 냈다.

전경들이 밀고 들어오고 잠시 몸싸움이 있었는데, 갑자기 또 왼쪽이 무너졌다. 전경 한 부대가 왼쪽을 뚥고 들어와서 열심히 뒤로 달려갔다. 그러면서 균형이 깨지고 왼쪽에서 부터 무자비한 폭행이 시작되었다. 대열은 깨지고 사람들은 뒤로 도망쳤다. 나도 '빠져나가야돼!'라고 소리를 지르며 뒤로 뛰었다. 왼쪽으로 뚥고 나간 전경들은 뒤에서 덮치지 않고 계속 전진했다. 뭔가 이상해서 보았더니 이미 시청방향에서 전경들이 길을 막고 전진하고 있었다. 이젠 완전히 갇혀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로 도망쳤다.

밀리고 밀려서 결국 사람들은 차도에서 인도쪽으로 완전히 밀려나고 일부는 골목을 통해 시청광장쪽으로 도망쳤다. 일부는 인도에서 경찰들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나중에 광장쪽으로 가보니 덕수궁 앞과 광장 양쪽에서 파란불이 들어오면 횡단보도를 건너며 구호를 외치는 방식으로 합법적인(경찰기준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와 후배도 몇차례 따라했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계속 하는동안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날이 밝고 6시가 넘어있었다. 사람들은 눈에띄게 줄어있었다. 월요일 아침이라 출근해야 할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갔을 것이다. 밤에 사람들 속에서 반가운 얼굴을 하나 만났는데, 학교 후배였다. 후배는 오마이뉴스 영상기자로 일하고 있는데, 몇 년전부터 한미FTA나 파병국면에서 주요 집회때마다 얼굴을 마주치곤 했다. 언제 술한잔하자고 맨날 말하면서도 한번도 따로 만나지는 못했는데, 이번에 또 만났다. 이 녀석이 아침에 해장국이나 같이 먹자고 하고 헤어졌는데, 여기 건널목 시위현장에서 사다리 위에 서서 촬영을 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서로 씩 웃었다. 한참 촬영하던 녀석은 어디론가 가버렸는데, 편집하러 간 듯했다. 아무래도 같이 해장국먹기는 힘들것 같았다.

6시반이 되자 사람들은 확 줄어들었고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그래도 우린 지치지 않고 열심히 건널목을 건너면서 구호를 외쳤다. 지나는 차량들이 가끔 클랙션으로 손짓으로 지지를 보내주면 무척 힘이 났다. 7시가 되자 나도 출근준비 때문에 나와야 했다.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꾸벅 인사를 하고 후배랑 함께 지하철역으로 갔다.

곧바로 사무실에 들어와서 커피를 마시고 자리에 앉았다. 집에서 혼자 아이를 깨워서 밥먹여 어린이집에 보낼 아내를 생각하니 미안했다. 피곤하고 온 몸이 아프고 쑤셨다. 다리와 팔을 살펴보니 역시 멍든 곳이 더 늘어나 있었다. 그래도 심하게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사무실을 간단히 정리하는데 오른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방패에 찍힌 상처 때문에 힘을 줄수가 없었다. 며칠 지나면 낫겠지만 그 동안 더 많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아무래도 오늘 촛불집회에 또 나가기는 힘들 것같다. 일끝나면 집에가서 자고 다음날 저녁 다시 거리에 나서야겠다!
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