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행동하는 라디오 '언론재개발'(용산촛불방송국 레아)에서 송경동 선배가 자신의 시를 낭송했다.(하필 어제 급하게 연락할 일이 있었는데, 계속 연락이 안되더니, 이 방송때문이었을까?) 한편 '언론재개발' 블로그에 달린 댓글을 보니 지난 6월 2일(화) 저녁 용산참사현장에서 진행된 촛불문화제에서도 송경동 선배가 이 시를 낭송했었다고 한다. 시가 울려퍼지는 동안 경찰무전기에서는 계속 '마이크 잡은 시인 연행해!'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전경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울분을 토하며 이 시를 부르짖은 송경동 선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시를 낭송하고 있는 시인을 연행하라니? 이 장면이 정말 정확하게 이 나라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멋진 경동선배는 허세욱 열사를 위한 추모시를 낭독하던 모습이었다. 아직 선배를 잘 알지 못하던 때, 종종 오가면서 얼굴은 마주쳤지만 제대로 인사 한번 나눈 적도 없던 때였다. 만약 내가 6월 2일 촛불문화제에 가있었다면 가장 멋진 경동선배의 모습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어제 방송된 경동 선배의 시낭송을 들어보자.



시낭송 파일 받기

이 냉동고를 열어라 - 송경동


불에 그을린 그대로
134일째 다섯 구의 시신이
얼어붙은 순천향병원 냉동고에 갇혀 있다


까닭도 알 수 없다
죽인자도 알 수 없다
새벽나절이었다
그들은 사람이었지만 토끼처럼 몰이를 당했다
그들은 사람이었지만 쓰레기처럼 태워졌다
그들은 양민이었지만 적군처럼 살해당했다


평지에선 살 곳이 없어 망루를 짓고 올랐다
35년째 세를 얻어 식당을 하던 일흔 둘 할아버지가
25년, 30년 뒷골목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할머니가
책대여점을 하던 마흔의 어미가
24시간 편의점을 하던 아내가
반찬가게를 하던 이웃이
커피가게를 하던 고운 손이
우리의 처지가 이렇게 절박하다고
호소의 망루를 지었다


돌아온 것은 대답없는 메아리였고
너무나도 신속한 용역과 경찰의 합동작전이었다
6명이 죽고 십여 명이 다치고
또 십수 명이 구속되었다
이웃이 이웃을 죽였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이었다
단지 쓰레기를 치웠을 뿐이니
단지 말을 잘 듣지 않는 짐승 몇을 해치웠을 뿐이니
경찰과 용역깡패들과 정부와
대통령은 아무런 죄도 없었다


그렇게 6명이 죽고도
이 사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수의 시민들이 차벽과 연행에 맞서
양심의 촛불을 들고
추운 겨울부터 더운 초여름까지
어둔 거리에서 쫓기며 항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들 역시 수배되거나, 체포되거나, 소환당했다
용산참사를 말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었다
용산참사를 추모하는 것조차 금지당했다
유가족들이 다시 경찰에 밟히고 희롱당했다


하루 이틀 날짜가 쌓여 넉달이 되었다
하, 유가족들의 피눈물이 넉달이 되었다
하, 이웃들의 원통에 찬 한숨이 넉달이 되었다
하, 죽어서도 무슨 죄를 그리 지어
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한 날이 넉달이 되었다


민주주의 사회라고 한다
민주주의가 용산에서 아직도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는데
열린 사회라고 한다
억울한 죽음들이 넉달째 차가운 냉동고에 감금당해 있는데
살만한 사회라고 한다


134일째 다섯 구의 시신이
차가운 냉동고에 갇혀 있다
134일째 우리 모두의 양심이
차가운 냉동고에 억류당해 있다
134일째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차가운 냉동고에 처박혀 있다
134일째 이 사회의 역사가 전진하지 못하고
차가운 냉동고에 얼어붙어 있다
134일째 우리 모두의 분노가
차가운 냉동고에서 시퍼렇게 얼어붙어가고 있다
134일째 우리 모두의 뜨거운 눈물이
차가운 냉동고에서 꽁꽁 얼어붙어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는 우리의 용기가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의 권리가 묶여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자식들의 미래가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모두의 것인 민주주의가 볼모로 갇혀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이 냉동고에 우리 모두의 소망인
평등과 평화와 사랑의 염원이 주리 틀려 있다
이 냉동고를 열어라
거기 너와 내가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사랑이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연대가 갇혀 있다
너와 나의 정당한 분노가 갇혀 있다
제발 이 냉동고를 열자
너와 내가, 당신과 우리가
모두 한 마음으로 우리의 참담한 오늘을
우리의 꽉 막힌 내일을
얼어붙은 시대를
열어라. 이 냉동고를 


용산촛불방송국 '레아'
http://cafe.daum.net/Cmedia
행동하는 라디오 '언론재개발' 듣기 http://blog.jinbo.net/yongsanradio
용산범대위 홈페이지 http://mbout.jinbo.net

Posted by 감은빛

경찰이 보는 바로 앞에서 가만히 있는 시민을 깡패가 두들겨 패도 경찰은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냥 모른체하고 시민을 두들겨 팬 그 깡패는 계속해서 다른 시민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여성들에게 성희롱으로 판단되는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욕설을 마구 내뱉는다. 그래서 주위의 시민들이 경찰에게 항의하자 경찰은 언제 어디서 폭력행위가 일어났느냐고 자신은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얘기냐구? 바로 몇 시간 전에 기륭전자 앞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기륭 전자 앞에서는 요즘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일들이 과거에도 많이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조계사 앞에서 어떤 사람이(솜씨로 보아 전문 칼잡이가 분명한) 가만히 있는 세 명의 시민에게 칼을 휘두르고 이마에 꽂고 도망쳤는데, 경찰은 그가 칼을 들고 들어오는 것을 알고도 막지 않았으며, 살인 현행범이 사람을 찌르고 도망치는 데도 잡지 않았다. 그보다 조금 더 전에는 KBS앞에서 고엽제 전우회 회원들이 부탄가스를 싣고와서 휘두르는 온갖 폭력행위들을 모두 눈감아 주었다. 그리고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평택에서 그리고 새만금 방조제 위에서 여러차례 경찰의 비호아래 용역깡패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희생당했던 기억이 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항상 용역깡패들이 폭력을 휘두를때는 주변에 늘 수많은 경찰들이 있었다. 이들은 무고한 시민들을 보호하는 대신, 바로 눈 앞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폭행현행범인 깡패들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이 깡패들이 무사히 범행을 저지르고 현장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경찰의 역할이었다.

한가지 억울한 사실은 경찰이라는 이름의 불법 폭력집단이 이처럼 폭행현행범이나 살인현행범을 보호하는 범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는데도 법적으로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피땀흘려 번 돈으로 꼬박꼬박 내고 있는 세금으로 제 뱃속을 채우고 있는 집단이 바로 이 폭력집단 경찰인 것이다.

이제 몇 시간 전 기륭전자 앞에서 벌어졌던 경찰과 용역깡패와 구사대의 완벽한 호흡으로 이루어진 멋진 범행현장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다! 최대한 표현을 정화하려고 노력하겠지만 나도 모르게 경찰과 깡패들의 무자비한 폭력장면이 묘사될 수도 있음을 미리 경고한다.

10월 20일 5시 10분쯤
4시경부터 진행하고 있는 집회가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서 기륭 전자 정문앞 골목길로 경찰 1백여명이 몰려들어왔다. 사회자의 요구에 따라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경찰을 막으러 나가고 남성들은 남아 트럭에서 철재 자제(아시바)를 옮겼다. 경찰들이 방패로 밀고 들어오고 여성들의 비명소리가 커지자 나도 모르게 내 몸은 대열 맨 앞으로가서 방패를 막고 있었다. 사실 오늘은 아내가 일주일만에 독일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라서 일찍 퇴근하여 오랫만에 아내와 저녁을 먹고 함께 지낼 생각이었는데, 기륭쪽이 심상치 않다고 꼭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서 차마 모른척할 수가 없어서 왔다. 그래도 적당히 뒤에 있다가 상황봐서 일찍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주일동안 혼자서 아이도 돌보고 집안일도 하고 또 직장일도 하면서 너무 피곤했기에 오늘은 좀 일찍 돌아가고 싶었다. 게다가 오늘은 일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이 아닌가? 월요일부터 너무 무리하면 일주일동안 너무 힘들어지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오늘은 좀 살살하자고 머리속으로 계속 되뇌이고 있었다.

그런데 몸은 어느새 맨 앞에서 방패와 맞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벌어지고 여기 저기서 여성들의 비명소리가 터졌다. 욕설과 욕설이 오가고 어깨와 방패가 부딪쳤다. 한 여성이 방패 사이에 끼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갑자기 흥분해버린 내가 방패를 밀어내고 그 여성을 방패 사이에서 꺼냈다. 이 여성은 이미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나는 큰 소리로 사람이 쓰러졌다고 소리치고 뒤쪽으로 끌고 나갔다. 머리속에는 지난 6월 1일 새벽에 바로 내 뒤에서 쓰러져서 실려나간 한 여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 같은 일이 벌어진 것 같다는 느낌에 엄청 화가 났다. 그러나 내가 뒤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경찰 방패와 뒤쪽의 사람들 사이에서 휘둘리고 있을 때, 이 여성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나는 위험하니 뒤로 일단 물러나 있으라고 했지만 이 여성은 말을 듣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서 버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할 수 없이 내가 그 여성 앞에 서서 방패를 막고 버텼다. 밀고 밀리는 사이에 뒷 열의 전경이 사진을 찍던 한 시민의 카메라를 잡아 챘고 그 사람이 끌려 가려고 하자 주위 사람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몰렸다. 나는 카메라를 낚아 챈 전경의 손을 잡아서 비틀었고, 내 손을 또 다른 전경이 잡아서 비틀려고 했다. 손가락과 손가락이 서로 엉키면서 힘싸움이 이어졌다. 갑자기 챙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손목에서 시계가 떨어져 나왔다!

골리앗 위에 올라선 이상규 민노당 서울시당 위원장과 김소연 기륭전자 노조 분회장




미리 시계를 벗어놓았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덕분에 산 지 한 달도 채 안된 시계가 망가져 버렸다! 비싼 시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어서 산 것이었는데, 부서진 것이다. 나는 계속 방패를 막고 있었기에 시계를 줍지 못했는데 내 뒤쪽에 있던 여성이 시계를 주워주었다. 그 골목에서 경찰은 수적으로 열세라고 판단했는지 일단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적당히 있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열심히 아시바를 쌓아서 구조물을 만드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었다.

장만한 지 한 달도 채 안되었는데 부서진 내 시계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철탑? 아니면 망루? 참세상에서는 골리앗이라고 불렀던데, 암튼 아시바를 5단으로 쌓아서 올린 건물 3층 높이의 철제 구조물이 완성되고 그 위에 김소연 분회장과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이상규 위원장이 올라갔다. 인부들이 부지런히 움직여서 철탑을 완전히 고정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쪽문쪽으로 경찰과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밀고 들어왔다.



5시 30분쯤
푸른 옷을 입은 구사대 80여명과 검은 옷을 입은 용역깡패 40여명이 주먹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면서 먼저 몰려 나왔다. 순식간에 여러명의 시민들이 두들겨 맞고 뒤로 물러났다. 사람들이 우루루 뒤로 물러나면서 그 틈으로 경찰 100여명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철제 구조물 아래에서 다른 사람들과 버티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구사대와 깡패들에게 쫓겨서 기륭전자 앞쪽에서 골목쪽으로 이미 물러나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전경들이 우리를 에워싸듯 덤벼들었다. 나는 그래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방패를 막았다. 여성들이 악을 썼고, 욕설이 오갔다. 밀고 밀리다가 갑자기 경찰들이 더 쏟아져 나오면서 순식간에 전세는 바뀌었다. 우리는 완전히 뒤로 밀려났다. 나는 잠시 철제 구조물과 전경 사이에 끼어서 고립될 뻔 했으나 다행히 빠져나왔다. 철제 구조물은 완전히 전경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구조물 안쪽에 몇 명의 시민들이 버티고 있었으나 전경들에게 가려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시 상황을 보니 밖으로 완전히 밀려난 사람들이 구사대와 깡패들과 대치하고 있었고 그 안쪽에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시민들이 대충 50여명 정도 있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몇 명쯤 되는 지는 잘 안보여서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 전에 집회 참가 인원으로 짐작해 보건대 대략 70여명 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완전히 갇혀버린 꼴이었다. 이거 이대로 연행되는 거 아닌가 싶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골리앗을 포위한 전경병력



주위에는 르뽀작가 박수정 선배와 송경동 시인이 있었다. 이 두사람은 부부인데, 둘 다 여기 있으면 아이는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역시 두 사람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경찰이 포위망을 좁히기 전에 경동선배가 수정선배를 데리고 갔다. 아마도 어떻게든 수정선배를 밖으로 내보낸 듯하다. 돌아온 경동선배는 더 활기차게 남아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면서 자리를 지켰다. 비행기 소리와 함께 낮은 고도로 여객기가 하나 지나갔다. 그러고보니 이 동네에는 비행기가 이렇게 낮게 날아서 지나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지난 번 아이와 함께 두어번 기륭에 왔을 때, 아이가 비행기만 보면 손가락질 하며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비행기가 철제 구조물 위를 지나쳐가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왠지 우울해져서 몸에서 힘이 빠졌다.

6시 반경
구사대와 깡패들 너머 밖에 있던 사람들이 먼저 촛불을 꺼내들었다. 안쪽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열맞춰 앉아서 촛불을 들었다. 나는 문동만 시인 옆에 앉았는데, 용역 깡패들이 정말 힘이 쎄다고 말을 붙여왔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덩치가 큰 거구들이었다. 다들 100킬로그램은 가뿐히 넘을 듯 했다. 힘이 무지 쎌 수 밖에 없을 듯 했다. 그나저나 저 덩어리들은 정말 조폭인 것 같은데, 역시 경찰과 조폭은 한 통속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쪽에는 여성 용역들도 있었다. 여성 용역들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 인 듯 한데, 이 쪽도 역시 한 덩치들 하며, 조폭냄새를 살짝 풍기고 있었다. 이 중 몇 명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몇 명은 비웃는 눈빛을 우리에게 던지며 도발하고 있었다.

파란색 잠바를 입은 구사대들(약간 옅은 회색을 입은 이들도 역시 구사대)




잠시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전경들 200여명이 뛰쳐나왔다. 구사대와 깡패들이 원래 있던 쪽문 안쪽으로 돌아가고, 전경들이 그 자리를 넘겨받아서 사수했다. 이거 완전 근무교대도 아니고 사이좋게 서로 자리를 바꾼 경찰과 깡패들이 열심히 욕설을 내뱉았다.

7시
전경들은 바깥쪽에 있던 시민들을 향해 돌진하듯 덤벼들어 대오를 밀어냈다. 이 와중에서 심하게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안쪽에서도 전경병력들이 앉아있던 사람들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었다. 여경들이 투입되어 여성들의 주위에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전원 연행을 감행하려는 것 처럼 보였다. 누군가가 쓰러졌다는 소리가 들렸다. 철제 구조물 근처에서 였다. 나와 주위의 사람들 몇 명이 벌떡 일어나 상황을 보려고 했으나, 우리를 막고 있던 전경들이 비켜주지 않았다. 나는 강하게 저항하며 사람이 쓰러졌는데 어서 구급차를 부르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는 와중에도 기륭 바깥쪽에서는 전경들이 시민들을 계속 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구급차가 도착했다. 그러나 구급대원들은 전경들에게 막혀 들어오지 못하는 듯 보였다. 어찌된 상황인지 갑자기 안쪽에서 우리를 에워싸고 막고 있던 전경들 수십여명이 바깥쪽으로 일제히 달려나갔다. 우리는 갑자기 넓은 안쪽 공간에 멍하니 남겨졌다. 철제 구조물을 둘러싼 전경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 옆으로 쪽 문쪽에는 아까 빠져나갔던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7시 15분경
갑자기 쪽문쪽이 소란스러워져서 다가갔더니 경찰이 보는 바로 코 앞에서 깡패가 한 시민을 때렸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문재훈 선배님이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 경찰 지휘관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싼 시민들도 모두 흥분하여 경찰에게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었다.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철제 구조물 옆에서 가만히 있던 문재훈 선배님을 근처에 있던 용역깡패가 두들겨 팬 모양이었다. 그 바로 옆에 있던 경찰은 모른척 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강력하게 항의하자 경찰 지휘관은 계속 다른 곳을 바라보며 모른 척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삼류 코메디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지 참 어이가 없었다.

문재훈 선배님은 안경도 깨지고 신발도 잃어버린데다가 옷도 여기저기 찢겨져 있었다. 나도 피가 끓었다. 시민들은 일제히 '경찰이 무슨 깡패들과 한 통속이냐? 너희가 최동렬의 사조직이냐? 개인 소유의 경찰이냐? 그럼 시민들 세금 받아먹지 말고 최동렬이에게 월급 받아 먹어라! 경찰이 돈을 얼마나 먹었으면 바로 코 앞에서 시민을 폭행한 현행범을 잡지 않고 모른 채 할 수 있을까!' 등등 다양한 항의들이 쏟아졌다. 한 시민 욕설을 섞어가며 좀 과격하게 항의을 했는데, 지휘관은 계속 '반말하지 마세요! 욕하지 마세요!' 라고만 대꾸하고, 옆에 있던 부관인 듯한 경찰이 어딘가로 가더니 채증 경찰관을 데려왔다. 카메라와 플래시를 들이대며 계속 해보라고 협박하는 경찰! 참 이게 무슨 짓인가! 내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칼라티비의 여기자가 다가오며 상황을 전했다. 쪽문 저쪽에 모여있던 구사대들이 카메라를 의식해 종이박스를 찢은 조각들을 손에 들고 얼굴을 가린 채로 여기자를 향해 욕설을 내뱉았다. 성적 모욕이 포함된 명백한 성희롱이었다. 어느 시민이 경찰 지휘관에게 다가가서 이 소리가 들리지 않냐고? 지금 성희롱 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왜 체포하지 않냐고 소리질르며 물었다. 지휘관은 여전히 꿀먹은 벙어리였다. 어깨를 보니 <서울 4 기동대>라고 적혀있었다. 구사대들은 계속 해서 얼굴을 박스를 들어 가린 채, 욕설을 퍼붓고 있었는데, 그 꼴이 또 얼마나 우습던지. 이건 정말 삼류 코메디 녹화장인 듯 한 착각이 들었다. 나와 주변의 시민들이 얼굴이나 내놓고 욕을 하려면 욕을 하려고 소리를 질렀다. 경찰 측과 용역측 채증요원들이 열심히 우리 얼굴을 담고 있었지만, 우린 개의치 않았다. 찍을테면 찍으라지!

바로 코 앞에서 폭행 현행범을 눈감아준 서울 4 기동대 현장 지휘관



바깥쪽도 안쪽도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나는 문재훈 선배님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어서 병원을 가시라고 설득했다. 선배님은 대수롭지 않은 상처라고 안가겠다고 버텼지만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그래도 병원을 가야한다고 설득하자 마침내 움직이셨다. 문재훈 선배님과 또 한 분의 노동자가 부상으로 병원을 가기 위해 전경들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7시 35분
철제 구조물을 둘러싸고 있던 전경들까지 모두 동원되어 바깥쪽으로 투입되었다. 전경 병력 약 300여명 전원이 바깥쪽 시민들을 밀어버리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경찰이 빠진 자리에 다시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들어왔다. 또다시 자리를 바꾼 것이다.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발맞춰 움직이는 것을 보니 분명히 경찰과 구사대와 깡패들이 한 명의 지휘관에게 명력을 받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지휘관이 경찰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안쪽에는 경찰 병력이 완전히 다 빠져나간 상태에서 용역깡패들의 천국이 되었다. 용역들은 거친 몸짓으로 들어오면서 카메라를 든 기자들을 위협하고 시민들을 협박했다. 완전히 제 세상이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듯 나이많은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모욕을 주었다! 그 모멸감은 참기 어려웠다. 여성 용역 한명이 한 아줌마에게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퍼부으며 비아냥 거렸다. 그 아줌마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덤벼들었지만 주위의 시민들이 말렸다.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내 옆에서는 문동만 선배가 깡패들이랑 욕설을 주고 받고 있었다. 동만 선배도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었다. 나역시 화가 났지만 일단 선배를 말렸다. 문득 '갱스터스 파라다이스'라는 노래가 머리속에서 재생되었다. 바로 이 곳이 인간같지 않은 깡패들의 천국이었다!

검은 반팔 옷을 입은 덩어리들이 바로 용역깡패들



경찰은 작정하고 시민들을 밀어붙였다. 시민들은 '보령 할인마트' 좌우의 골목길로 분산되어서 시시각각 밀려나고 있었다. 안쪽에 남은 시민들은 대략 삼십여명쯤 되어 보였는데, 오십여명의 용역깡패들과 역시 오십여명의 구사대들에게 포위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멍하니 바깥쪽 시민들이 전경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밀려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역깡패들은 심심해서 그런지 지들끼리 계속 욕설을 내뱉고 있었는데, 가까이 있는 놈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진보신당에는 분명히 싸이비 교주가 있다!','진보신당이 대체 뭐냐? 우리나라에 그런 게 있었냐?','진보신당은 모두 또라이들이다!' 등등 진보신당을 헐뜯고 있었다. 아마도 계속 카메라를 들이대는 칼라티비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싶었다. 한 무리의 덩치들이 심심했던지 앉아있던 여학생 두명에게 시비를 걸었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뭔가 협박을 했음이 틀림없다. 민노당 학생위원회 소속으로 보이는 두 여학생은 기죽지 않고 맞섰다. 갑자기 한 덩치가 여학생들에게 확 다가서더니 땅에서 피켓 하나를 주워들었는데, 위협하는 척 하면서 장난을 친 것이었다. 놀란 시민들이 일제히 욕설을 퍼부었다. 깡패들은 할말있으면 뒤에서 하지 말고 앞으로 나와서 주먹으로 해결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나라는 입과 손가락만 쎈 놈들이 너무 많아서 탈이라나. 앞에 나서서는 한마디도 못할 놈들이 뒤에서 입을 나불대는 거랑 손가락으로 자판 두드리는 짓만 졸라 잘 한다고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7시 57분
전경들이 갑자기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몇 몇 시민들이 머리를 잡힌채 혹은 사지를 들린 채 끌려나가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우리는 소리를 질러 분노를 표현했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깡패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누가 끌려갔다, 또 누가 끌려갔다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 와중에 송경동 선배가 끌려갔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았지만 욕설을 내뱉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옆에서 어느 깡패가 전경들이 시민들을 밀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신나서 소리를 질러댔다. '저렇게 밀어내도 또 꾸역꾸역 몰려 올거 아냐? 응! 그럼 우린 또 돈 버는 거지 뭐! 하하하!' 돈을 많이 벌어서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나중에 또 듣자니 용역깡패들 하루 일당이 25만원이란다. 의외로 돈을 많이 버는 직종이었구나. 꾸준히 일만 들어오면 나보다 두세배는 더 많이 버는 직업이었다! 젠장 나도 진작에 깡패짓 좀 하다가 이쪽으로 진출할 걸!

8시 30분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철제 구조물을 아래에서 흔들어댔다. 위에 있던 김소연 분회장이 노성을 지르더니 뛰어내리려는 행동을 취했다. 옆에 있던 이상규 위원장이 재빨리 분회장을 붙잡았지만 이미 두 팔로만 의지한 채 온 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주위에 있던 시민들이 깜짝 놀라 일제히 몰려들었고, 위세 등등하던 구사대와 용역깡패들도 이때만은 움찔 놀라서 물러서는 모양이었다. 이상규 위원장과 김소연 분회장이 계속해서 쉰 목소리로 '깡패 새끼들은 물러나라!'고 소릴 질러댔다!

울음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둘러보니 주위의 여성분들은 거의 대부분 울고 있었다. 기륭 투쟁의 초기부터 4년 가까운 시간동안 늘 함께 생활하며 취재했던 연정씨도 눈물을 흘리며 수첩에 필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눈에 박혀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계속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보니 이상규 위원장이 김소연 분회장을 끌어올려 간신히 위기를 넘긴 모습이었다. 때마침 민노당 홍희덕 의원이 나타나서 김소연 분회장을 달랬다.

8시 44분
경찰은 트럭으로 대형 매트를 구해와서 철제 구조물 앞 쪽에다 설치했다. 안쪽에서는 칼라티비와 참세상 등 각종 진보 언론사의 카메라 기자들이 열심히 활동중이었는데, 용역깡패들이 계속 해서 이들을 위협하고 협박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진보신당 기자 하나가 여러명의 깡패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 기자는 안경이 벗겨져서 땅에 떨어지는 등 물리적 위협을 당하고도 그닥 기죽지 않고 깡패들과 말싸움을 계속해 나갔다. 배짱이 두둑한 기자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한 깡패가 뒤쪽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던 몇 몇 기자들을 향해 돌진하여 그들이 밟고 서있던 나무 판을 발로 차고 돌아갔다. 잠시후 이쪽에서 카메라로 찍고 있던 사람 한명이 조용히 책임자로 보이는 깡패에게 다가가서 뭔가를 속삭였다. 꼴을 보아하니 용역측 채증요원이었던 모양이다. 방금 그 깡패가 자기측 채증요원까지 위협하자 이 채증요원이 거기에 대한 항의와 주의를 요청하는 듯 했다. 이 채증요원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계속 찍고 있었다.

기륭 정문에서 정면으로 난 골목쪽으로는 전경들이 시민들을 상당히 많이 밀어내서 대략 50여미터를 전진한 모습이었다. 이미 시간은 아홉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나는 배가 고팠고, 무척 지쳐있었다. 차라리 저 바깥에서 전경들과 몸싸움이라도 벌이고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이 안에서 깡패들의 모욕을 견디고 있는 것은 정말 못할 짓이었다. 깡패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제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고, 시민들과 깡패들과 구사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섞여 있었다. 전경들이 밀고 나가면서 넓어진 울타리(?) 안쪽에서 우린 자연스럽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문동만 선배가 이러고 있지 말고 밥이라도 먹자고 해서 역시 전경들이 밀고 나간 덕분에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온 식당으로 가서 일단 배를 채웠다. 그러나 밥을 억지로 퍼 넣으면서도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나중에 밤에 탈이 나고 말았다. 암튼 밥을 먹고 나왔는데도, 상황은 그대로였다. 이젠 새벽까지 장기전으로 이어질 듯 했다.

10시 20분
공중파 3사의 카메라 기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의 대낮처럼 밝은 후레시가 비추자 용역깡패들과 구사대들이 쌍욕을 내뱉았다. 마침 MBC 기자를 행해 협박하는 깡패가 있었다. MBC 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그 깡패에게 다가갔다. 무언가 고성이 오고갔다. KBS나 SBS가 주로 전경병력 뒤쪽에서 시위대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댔다면 MBC는 시위대쪽에서 용역깡패들과 구사대들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댔다.

어느 순간 갑자기 수십여명의 구사대들이 종이박스로 얼굴을 가린채 앞으로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대로 들이닥쳐서 방송 카메라 앞으로 쇄도했다. 수많은 카메라들이 이들을 찍는동안 갑자기 골목을 봉쇄하고 있던 일부 경찰병력들이 뛰어들어왔다. 동시에 철제 구조물 앞을 막고 있던 용역깡패들이 일제히 쪽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그 자리를 경찰 병력들이 막아서서 벽을 구축했다. 그 동안 공중파 카메라들은 구사대의 종이박스에 가려져 있었다. 경찰들이 자리를 잡자 이 구사대들드 일제히 쪽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그림같은 움직임이었다. 멋진 작전이었다. 구사대와 깡패와 경찰들의 환상적인 연계작전이 훌륭하게 공중파 카메라들을 속였다.

이후에는 다시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양쪽 골목 입구에서는 여전히 들어오려고 애쓰는 시민들과 전경들이 대치하고 있었고, 안쪽에서는 일부 시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대로 새벽까지 별 다른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듯 했다. 새벽이 되고 대부분의 시민들이 돌아간 다음에 경찰이 다시 어떤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너무 피곤했고, 도저히 여기서 새벽까지 버틸 자신이 없었다. 시간이 11시가 넘어가고 집으로 갈 막차가 끊어질 상황에 처할때쯤 일단 집에 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골목을 봉쇄하고 있는 경찰에게 다가갔다. 집으로 가겠다고 하면 과연 열어줄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우리와 함께 있던 어느 스님이 경찰 병력 틈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재빨리 스님의 뒤를 따라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이십여명의 시민들이 지친 모습으로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오늘은 나도 할만큼 했다고 자위하면서 지하철 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Posted by 감은빛

어제 저녁 일을 마치고 기륭 후원 주점에 갔다. 후원주점을 한다는 소식은 진작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박수정 선배의 새책 [세계의 꿈꾸는 자들, 그대들은 하나다](이학사) 출판기념회가 함께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상황을 보아하니 송경동 선배가 인원동원을 위해 아내인 박수정 선배의 행사를 끼워넣었음이 분명하다. 일일주점을 하는 곳에서 어떻게 출판기념회가 진행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도착해보니 더더욱 출판기념회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직 6시 반밖에 안되었는데,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먼저와계셨던 오도엽 선배와 임성용 선배도 만나서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메뉴판을 받고 보니 우와!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나도 예전에 후원주점을 준비해본 적이 있는데, 그땐 그래도 되도록 합리적인 가격으로 가려고 많이 애썼던 것 같다. 어차피 후원하려고 온 참이라 가격엔 놀라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 놀라고 말았다! 그래도 이 돈이 다 기륭 노동자들을 위해 쓰이는 것이니 아무런 불만은 없다. 오히려 돈이 없어서 더 많이 못 팔아주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지.

배가 고파서 순식간에 안주 몇 접시를 비우고 술병도 빠르게 비워나갔다. 문재훈 선배도 오셔서 잠깐 앉았다 가셨고, 김성만 선배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곧 나올 앨범의 예약 판매를 하고 계셨다. 문동만 선배도 오셨다. 그리고 출판기념회의 주인공인 박수정 선배도 오셨다. 자리가 없어서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우리 일행은 앞마당에 앉아 먹으려고 술과 안주를 챙겨들고 일어섰다. 밖에는 이미 돗자리를 깔고 있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또 안주 몇 접시와 술을 시켜서 부지런히 비웠다.

어제 낮에 김현진씨로 부터 문자를 받았는데, 아마 전화기에 입력된 사람들 대부분에게 다 보낸 모양이다.(최근에 기륭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벼룩시장 진행때문에 한두번 통화한 적이 있었다.) 내용은 오늘 주점에서 자신이 바니걸로 나서니 꼭 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사무실 동료들과 함께 가기로 되어있어서 김현진씨의 바니걸 의상과 상관없이 가는 것이지만 도착해서 한동안 바니걸 의상을 찾아보기는 했다. 있었다면 못 찾았을 리가 없으니 없나보다 하고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중에 마당에도 사람들이 많이 앉아서 꽉 차버렸는데,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바니걸 의상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김현진씨는 이제 막 도착한 듯 입구에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토끼 귀와 짧은 치마 그리고 엉덩이에 앙증맞은 꼬리까지 달린 제대로 된 바니걸 의상이었다. 역시 스스로 한 말은 잘 지키는 구나! 그리고 그는 책이나 악세사리 등 여러가지를 판매하는 곳에 가서 합류했다.

박수정 선배의 책을 사러 갔다가 바로 옆에 있길래 잠시 말을 붙여봤다. 김현진씨는 자신이 약속을 지켰다고 한마디하고는 바쁜 듯 다른 분과 말씀을 나누셨다. 나는 책을 사서 자리로 돌아와서는 박수정 선배에게 싸인을 받았다. 이 책이 나온지 얼마 안된 신간인데 이학사에서 무려 100권이나 기륭대책위 쪽에 기증하셨단다. 그래서 정가 1만6천원짜리 책을 1만원에 팔고 있었다. 싸게 사는 건 좋았지만 그래도 출판사에게 너무 미안했다. 신간이라서 1만5천원에 팔아도 되는데, 판매를 담당하신 분들이 싸게 팔고자 하는 마음에 출판사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었던 듯하다.
암튼 싸인을 받아서 흐믓한 마음에 책을 들춰보고 있는데, 한참 후에 김현진씨가 '안아주세요! 프리 허그!' 가 적힌 팻말을 높이 들고 서서 시선을 끌고 있었다. 그 옆에는 기륭 촛불문화제에서 여러번 보았던 남성분이 역시 '프리허그'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이분 굉장히 예쁘장하게 생기신 분으로 잘못 보면 여성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만한 외모의 소유자다. 이 두 사람이 프리허그 팻말을 들고 서 있으니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그 모습을 보면서 '김현진이 진짜 인물은 인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 한참 전부터 강기갑 의원과 심상정 대표가 서빙을 하고 있었는데, 시작할 때부터 열심히 사람들 먹는 모습을 찍어대던 MBC 카메라가 이 두사람만 열심히 따라다녔다. 그런데 김현진씨와 잘생긴 남성분이 프리허그를 들고 서있는 모습을 보고는 다시 이쪽으로 카메라가 몰렸다. 예전에 우석훈씨가 블로그에서 촛불집회에 네티즌들과 함께 참여한 날 후기에 김현진씨의 인기를 깨달았다는 말을 남긴 적이 있었는데, 나도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프리허그 팀이 앞을 막고 있어서 옆으로 돌아가려는데, 그 잘생긴 남성분이 나를 그냥 지나가게 놓아두지 않았다. 순식간에 나를 껴안아 버렸다. 좀 놀랐지만 그렇다고 밀어낼 수도 없어서 그냥 나도 같이 껴안았다. 맨날 아이와 아내만 안아보다가 아주 오랫만에 다른 사람을 안게 된 상황인데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떤 느낌이었는지 깨달을 겨를도 없었다. 자리에 돌아와 앉으면서 이런 걸 왜하는 걸까, 껴안으면 기분이 좋을까 등등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열심히 술과 안주를 팔아주는 동안 여러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꽃다지의 공연을 지난 토요일 인천 노동 문화제에서 보고 며칠이 안지나서 또 보게 되었다. 그리고 집회때 많이 보았던 노래공장도 보았다. 김성만 선배는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노래는 참 좋은데 노래실력은 여전했다. 뭐 그래도 열심히 하시는 모습 보면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삼성일반 노조 김성환 위원장님이 계속 우리와 함께 있었는데, 내가 앉은 자리 반대편에 앉아계셨다. 바로 주위 사람들이 잘 안챙겨줘서 중간에 가끔 무료해하시는 것 처럼 느껴졌는데, 옆에 있던 동료가 나보고 옆에가서 수염기른 사람끼리 얘기나누라고 했다. 안그래도 옆에 가서 말씀을 나눠볼까 생각했는데, 워낙 자리가 좁아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그냥 포기했다.

이 날은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우연히 옛 사무실 동료도 보고, 최근에 이런저런 도움을 받았던 고마운 분도 만났다. 그리고 각종 집회현장에서 자주 봐서 낯익은 얼굴들이 꽤 많았다. 이름이 알려진 이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냥 얼굴만 마주쳐도 다들 반가웠다!

술도 못 먹으면서 술자리에 늦게까지 죽치고 있었는데, 저녁부터 아내가 아이의 사진을 담아서 멀티메일을 보냈다!(아 전송료가 대체 얼마더냐!) 아이가 양 손을 머리위로 올려 하트를 만드는 모습이었다. 아직 팔이 짧아서 하트는 만들수 없었지만 아이의 웃음이 내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머금어지도록 만들었다. 일찍 오고 아이스크림도 사오라는 내용이었는데,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라서 결국 막차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택시비가 없어서 집에 못 가고 처음 만난 사람의 집으로 몇몇 일행들과 함께 갔다. 첫 차가 다닐때쯤 혼자서 빠져나와서 집으로 돌아왔다. 밥도 하고 설겆이도 하고 아이를 깨워서 밥먹이고 준비시켜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사무실에 오니 딱 출근시간이었다. 잠 한숨도 못자고 지하철에 서서 잠시 꾸벅꾸벅 졸기만 했다. 아, 피곤하다!

그래도 어제 만난 많은 사람들의 모습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한 동안 힘이 되어 줄 것 같다!
Posted by 감은빛

외상일기


셋방 부엌창 열고
샷시문 때리는 빗소리 듣다
아욱, 아욱국이 먹고 싶어
슈퍼집 외상장부 위에
또 하루치의 일기를 쓴다
오늘은 오백원어치의 아욱과
천원어치 갱조개
매운 매운 삼백원어치의 마늘맛이었다고
쓴다. 서러운 날이면
혼자라도 한 솥 가득 밥을 짓고
외로운 날이면 꾹꾹 누른
한 양푼의 돼지고기를 볶는다고 쓴다
시다 덕기가 신라면 두 개라고 써 둔
뒷장에 쓰고, 바름이 아빠
소주 한 병에 참치캔 하나라고 쓴
앞장에 쓴다
민주주의여 만세라고는 쓰지 못하고
해방 평등이라고는 쓰지 못하고
피골이 상접한 하루살이 날파리가 말라붙어 있는
슈퍼집 외상장부 위에
쓰린 가슴 위에
쓰고 또 쓴다
눈물국에 아욱향
갱조개에 파뿌리
씀벅 나간 손 끝
배어나온 따뜻한 피 위에
꾸물꾸물
쓰고 또 쓴다


송경동 / 꿀잠 / 삶이 보이는 창




  지금은 동네 슈퍼에 가도 외상장부를 볼 수 없지만(혹 아직도 외상장부를 사용하는 가게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내가 어릴때에는 동네 슈퍼 가게에 외상장부가 있었다. 날려쓴 글씨로 날짜와 이름 금액이 잔뜩 적혀있는 외상장부는 동네에서 장사하는 작은 슈퍼집에는 필수품이었다.

 가끔 엄마가 장보다가 빠뜨린 찬거리가 있으면 내게 심부름을 시켰다. 동네 슈퍼에 가서 외상으로 좀 받아오라고 했다. 슈퍼에선 아줌마가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외상이라는 말에 한번 눈살을 찡그리고는 외상장부를 꺼내 이름과 금액을 갈겨쓴다. 그러면 나는 무슨 죄지은 사람 마냥 기가 죽어 고개를 숙인 채 가게를 나오곤 했다.

 매일 외상 심부름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가끔은 오백원짜리 동전을 쥐어주고 2백원어치 두부를 사오라거나 백원어치 콩나물을 사오라고 하는 날도 있었다. 가끔은 말이다! 그런 날은 거스름돈으로 외상을 제하게 된다. 아줌마는 외상이 얼마 남았다고 엄마에게 말하라고 입을 크게 벌려 말하곤 했다. 그렇게 줄었던 외상은 다음에 심부름 가보면 다시 또 늘어나있었다. 나중에 이사를 가면서 그 동네를 떠날 때, 엄마가 그 슈퍼집 외상은 다 갚았을까 궁금해했던 기억이 난다.

 송경동 시인은 예전에 있던 단체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알게 되었다. 그땐 인사도 미처 나누지 못했고 그냥 지나치며 얼굴만 익혔다. 나중에 허세욱 열사 추모제에서 추모시를 낭송하는 시인을 보게 되었다. 그때 그의 시를 처음 알게 되었다. '별나라로 가신 택시운전사께’라는 제목의 추모시를 낭송하는 그의 모습은 멋있었다. 힘있고 당당한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거리에서 시를 낭송하는 시인. 언제나 투쟁하는 현장에서 함께하는 시인. 그의 부지런함과 헌신적인 모습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그를 새겨놓았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의 아름답지만 아픈 시들이 그를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이제 그는 무척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적어도 이쪽 바닥에서는) 앞으로 더 유명해질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계속 거리에서 그의 시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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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