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에 매달린 꽃

창 너머 돌담 틈서리에
꽃 한 송이 매달려 있네
며칠 전부터 피었을 텐데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피었을 텐데
오늘 처음 눈길 마주쳤네
여기 좀 봐 달라고
눈 좀 맞춰 달라고
손짓하고 있었으련만
이제껏 보고 싶은 것만 보아온
어리석은 두 눈이여
노란 꽃 이파리
위로 기어오르지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던 날
1000일째 돌담에 매달려 있는 꽃들이
생각났네, 공장에서 쫓겨난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
희망조차 섣부른 그 이름 앞에
위태로운 건
돌담이 아니라, 꽃이 아니라
닫힌 마음이었을레
눈길조차 건넬 줄 모르는
식어 버린 가슴이었을레

박일환 / 끊어진 현 / 삶이 보이는 창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문정현 신부님의 글에 조약골이 곡을 붙인 '평화가 무엇이냐' 란 노래의 첫 구절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의 하나다. 조약골이 직접 부른 곡도 좋지만 실버라이닝이 편곡하여 흥겹게 바꾼 곡도 맘에 든다. 실버라이닝의 곡과 조약골과 평택에서 활동하던 여러 사람들이 함께 부른 곡은 예전에 소개한 적이 있다. (2008/09/02 - [노래와 추억] - 평화는 과연 무엇일까?),(2008/09/02 - [노래와 추억] - 평화는 우리 가슴 속에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난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사무직 직장인보다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고,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당연히 이주노동자들에게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만약 노동법에 보장된 최소한의 권리를, 땀흘려 일한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요구하면 곧바로 불이익을 당하기 마련이다. 법은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알고 있었건만, 정작 불이익을 당했을 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

죽어라 일만 해주고 제대로 돈도 못받고 몇 달을 지난 경우가 있었다. 밀린 돈을 받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봤지만 결국 받을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사장이란 작자에겐 얼마 되지도 않을 돈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엄청 큰 돈이었다. 결국 받지 못한 그 돈을 받기 위해 자존심이고, 인격이고 다 내팽겨치고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고 일했던 걸 생각하면 정말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휴대전화 문자메세지로 해고 통보를 받은 여성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도 해보고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단식농성도 해봤지만 끝내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지회는 이제 천 이백일 가까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와 국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어디 그들 뿐인가 작년, 재작년에 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랜드, 홈에버, 대우자동차, 기아자동차, 콜텍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당한 사례는 정말 많다.

하나 하나의 사례를 볼 때마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나라는 존재가 참으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시인은 돌담에 매달린 꽃을 보고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내용에 등장 한 것은 기륭의 여성노동자들이지만, 이 땅의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을 말하고 있다.

늘 낮은 곳을 향하고, 그늘진 곳을 향하는 시인의 시선이 잘 느껴지는 시이다. 무릇 시인이란 이런 존재여야 하지 않겠는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을 보고,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야 말고 시인의 숙명이 아닌가. 언젠가 내가 문학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면 지금의 이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감은빛

[추모시]죽여서 죽었다.

죽을만해서 죽었다는 야차의 말도 나돌았다
화염병이 火因이라고 조사하기도 전에 결정되었을 얄팍한 보고서도 발표되었다
촛불을 붙여도 혹한의 바람은 거세게 그 불을 끄려 다시 진격할 것이다
살인의 동맹자들은 어서 빨리 관을 닫으라 하지만
오그라든 당신들 입술은 아직도 뜨겁다
촛불을 붙여도 금세 꺼뜨릴 혹한의 바람이 몰려 온다
살인의 동맹자들은 진실을 얼버무리고 어서 빨리 관을 닫자고 한다
진실은 그럴듯한 언론을 통해 그럴듯하게 조작될 것이다
양심이란 무겁고 외로운 것
그 위에 덮개를 씌우지 못하는 내가 당신이 우리가 남아있다
고통스럽지만 그 관위에 박힐 못을 가슴으로 받아 견뎌야 할 시간이 역사다
당신의 정의가 맞다
용산은 팔레스타인 가자다 침략당한 옥탑방이다
그러나 축복하자
대화도 타협도 없이 배척되고 타살되어야 할 주적이 된 우리들을 위하여
더욱 강건하고 담대해지길
그리고 무엇보다 한번 옮겨 붙으면 꺼지지 않는 불
진실이란 불꽃에 대하여
그 불꽃이 더욱 선연해지기를

하늘에서 내려줄 어떤 구명줄도 없었다
땅 위엔 매트리스도 홑이불도 깔려있지 않았다
비상구에는 깡패들이 탈출을 막았고
그리고 언제 발화될지 모를 신나가 불길과 물대포를 유혹하고 있었다
오직 진압의 목적과 훈령에 충실했던
일사분란 한 행동만이 그러다 터진 불길만이 그날의 진실이라는 것

그랬을 뿐 이었다
살기위해서 스스로 고립된 옥탑 망루에 갇혔을 뿐 이었다
살다보면 누구라도 한번은 결단해야 할 그저 그런 선택일 뿐
그래서 죽었다 공격해서가 아니라 방어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불러주는 대로 도장을 찍지 않아서 깡패에 시달리고
생활고에 밀려서 하늘과 가까운 옥상에 올라갔기에
죽음을 가까스로 방어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도 아닌데 그들은 먼저 공격되었다
자본증식의 욕망만, 바벨탑처럼 세워질 빌딩들의 욕망만 권장되고 보호되고
생존의 권리, 이견의 존중 이 따위,
상식 따윈 당연히 진압당하는 세상의 복판에서
불에 그슬려 죽었다
식도에 숨차게 몰려오는 화염을 내 뱉으며
온 몸을 비틀며
아 그러나 저것은 불새가 아니라 분명 사람이다
석유나 신나가 아니다 새총이 아니다
폭도가 아니다 방금 전까지 하지 마! 하지 마!
우리를 내몰지 마! 입김이 나오던 뜨거운 입들이다 사람이어서
그들은 생명이어서 죽었다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지상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어서

당신들처럼 나이론옷이 녹아 마른 살갗위에 눌러 붙는다
지옥에도 없을 그 뜨거운 고통이 그리하여 우리는 아직도 뜨겁구나
아프지만 우리는 그 순간을 그 온도를 기억하리라
정확히 말하자 당신들은 무참히 죽여서 죽었다
죽을만해서 죽은 게 아니라 무참히 죽여서 죽었다
이 엄동설한 산채로 지옥불을 뒤집어쓴 채

2009년 1월23일

문동만


 정말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정권이다. 물론 이전 정권들도 무수히 많은 무고한 생명들을 죽여왔다. 김영삼은 말할 것도 없고, 김대중도 여러 학생들과 노동자들을 죽였다! 진보진영의 폭발적인 지지와 함께 당선된 노무현은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인권을 억압했고, 농민, 노동자들을 죽였다. 그에 비하면 이명박은 아직 많은 생명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 태도가 참 지랄같다! 그리고 과거 다른 어떤 정권들보다 심각하게 멍청한 것 같다. 정말 골때리는 놈들이다! 아무리 심한 욕을 같다 붙여도 충분하지 않을 만큼 심각한 놈들이다! 아, 더 말해 뭐하겠는가. 입만 아프지.

 경찰과 용역깡패들의 기륭 침탈 현장에서 함께 싸웠던 문동만 선배가 이번 용산참사에 대한 시를 썼다. 최근에 너무 바빠서 집회에 함께하지 못했는데, 어느 집회에서 낭독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송경동 선배도 시를 썼을 텐데, 찾아보지 못했다. 이 시는 다른 일로 검색하던 중에 우연히 눈에 띄어서 오랫만에 블로그에 글을 올려본다!

 이제보니 무려 한달 동안 한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글만 안 쓴게 아니라 블로그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벌써 2월이 다 되었는데, 이제서야 새해 첫 포스팅을 하다니....... 뭐 진짜 새해는 이제부터니까 적절한 새해 첫 포스팅이었던 걸로 해두자. 새해 첫 글 치고는 암울한 주제에, 대충 때우는 느낌이 들지만 그냥 넘어가자.

 내일은 집회에 나가봐야 할텐데, 아내가 바빠서 아이를 데려가야 할 것 같다. 근데 작년과 달리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좀 걱정이 된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못 나갔더니 죄책감이 심장을 짓눌러서 더 버티지 못하겠으니 내일은 반드시 나가야 한다. 힘든 주말이 될 것 같다!

Posted by 감은빛

지구의 시간

날이 밝아 몇 신가 보려는데 시계가 죽었다.
해가 떴으니 시간이 꽤 되었으려니
배추밭에 나가본다.
며칠 전부터 칡을 먹으러 내려온 산토끼들이
어린 호박잎을 밟고 밭에 들어가
애기배추를 갉아먹는다.
드문드문 갉아먹힌 애기배추의 그루터기가
아이들 얼굴에 난 생채기 같아 속이 상한다.
올가미를 놓아버릴까?
어린 호박잎들이 밟혀 찢겨진 자리에 서서
배추밭을 건너다본다.
이곳이 칡밭에서 배추밭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모양이다.
아니, 앞발을 들고 일어서서
괜찮을까 코를 벌름거려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망을 보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마리가 그러는지 어린 호박 줄기가 온통 뭉그러져 있다.
해가 꽤 높이 솟아 가게에
토끼 퇴치법을 물어보러 가기로 한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태운 통학버스가 길가에 서 있다.
벌써 점심때가 되었나?
학교에 다녀오는 길이냐고 물었더니
가겟집 아이가 이제 학교에 가는 길이라 한다.
나는 아침밥을 먹는 가겟집 식구들 곁에 앉아
다른 별의 시간으로부터 갑자기 나타난 외계인처럼
하릴없이 아침 뉴스를 본다.
그곳에선 전쟁을 외치는 어느 나라 대통령의 연설과
어둠을 찢는 폭격이 시작되고 있다.


애기 배추를 갉는 토끼와
갉아먹힌 애기배추 그루터기에 속이 상하는 나와
통학버스와
이 아침밥의 시간들과
그 위에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폭탄을 퍼부을 수 있는 시간들과......

김진경 / 지구의 시간 / 실천문학사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어릴적 '이상한 나라의 폴'이란 만화를 보면 일상속에서 뭔가 일이 벌어지면 갑자기 시간이 멈춘다. 그리고 인형이었던 녀석이 방망이를 두들겨 '대마왕'이 '리나'를 납치해 간 다른 세계로 간다. 모험을 마치고 돌아오면 이 세계의 시간은 아직 멈춰있다. 이 만화를 즐겨봤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종종 나만 빼고 세계의 시간이 멈춰버리는 상상을 많이 했다.

중학교에 다닐 때였던 것 같은데, 하루는 어느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해가 지기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 친구네 집은 우리 집에서 좀 먼 곳이었는데, 꽤나 많이 걸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했던 것은 친구네 집에서 재밌게 놀다가 나온 순간부터 집으로 가기 위해 골목 골목을 지나며 걷는 동안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마치 나를 제외하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주위가 이상하게 조용했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 처럼. 그 길은 큰 길은 아니었지만 골목마다 따닥따닥 붙어있는 집들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었고, 내가 걸었던 시간은 해가 지기 조금 전이었다. 꽤 먼 거리를 걷는 동안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이상한 경험이었다.

무서웠다! 갑자기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느낌에 겁이나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빨라졌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골목에서 갑자기 다른 세계에 속한 무언가가 나를 덮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어릴 적 만화에서 '폴'은 인형과 개가 함께였지만, 나는 혼자였다.

큰 도로에(왕복2차로였지만 우리동네에서 유일한 포장도로였다!) 나와서도 사람을 보지 못했다. 차도 한대도 지나가지 않았다.(당시에는 도로에 차가 많지 않아서 몇 분동안 차가 한대도 지나가지 않아도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도로를 건너서 비탈길을 오르면서도 아직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이 길은 동네 사람들이 시장을 오가는 길이라서 평소 이 시간이라면 한 두 사람이라도 만나야 정상인데, 아무도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 건 집에 거의 다와서였다. 서쪽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어느 아줌마가 장바구니를 들고 내가 힘겹게 올라온 길을 사뿐히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오르막 길을 다 올라와서는 집 근처 공터에는 구슬치기를 하는 아이들도 볼 수 있었다. 이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다른 의미있는 날, 예를들면 처음으로 좋아하는 감정을 가졌던 여자아이와 함께 단둘이 놀았던 날, 혹은 중학교 입학식이나 졸업식이 있었던 날, 혹은 처음으로 기타를 갖게 된 날 등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이상하게 이 날의 기억은 아주 생생하다. 이 날이 나에게 특별히 어떤 의미 있는 날도 아니었는데, 당시 친구집에서 뭘 하고 놀았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데, 이상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그 시간만큼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단 한 번 보았을 뿐이지만, 무척 강한 인상을 남겨준 김진경 시인의 시를 한번 읽어보고 싶어서 책을 산게 벌써 몇 달전이었는데, 이제서야 시들을 주욱 살펴봤다. 한 편 한 편의 시들이 모두 고르게 일정한 수준에 올라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인이 생을 대하는 태도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알 수 있었다.

시인에게 지구의 시간이 멈춰버린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그리고 하필 그 날 내게 시간이 멈춰버린 건 또 어떤 이유 때문일까? 혹시 '폴'이 '삐삐'와 '찌찌'를 데리고 어른들은 모르는 사차원 세계에 다녀오면서 실수로 나의 시간을 멈추지 못했던 건 아닐까? 혹시 지금쯤 '폴'은 '대마왕'에게서 '리나'를 구해내었을까? 아무래도 이 만화를 끝까지 다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갑자기 마지막에 '리나'가 어떻게 되었는지가 무지 궁금해진다!



Posted by 감은빛


수화기 속의 여자


 어디서 잘라야 할지 난감합니다 두부처럼 쉽게 자를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어딘지 서툰 당신의 말, 옛 동네 어귀를 거닐던 온순한 초식동물의 냄새가 나요
 내가 우수고객이라서 당신은 전화를 건다지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수고객이었다가 수화기를 놓는 순간 아닌
 우린 서로에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선생님, 듣고 계세요?'
 '......네'
 '이번 보험 상품으로 말씀드리면요'

 나와 처음 통화하는 당신은 그날 고개 숙이던 면접생이거나 언젠가 식당에서 혼이 나던 종업원이거나 취업신문을 열심히 뒤적이던 누이
 당신은 열심히 전화를 걸고 나는 열심히 전화를 끊어야겠지요 어떡하면 가장 안전하게, 서로가 힘 빠지지 않게 전화를 끊을 수 있을까요?
 눈만 뜨면 하루에게 쉼 없이 전화를 걸어야 하는 당신 죄송합니다
 지금 저 역시 좀처럼 대답 없는 세상과 통화중입니다 뚜뚜뚜뚜


이명윤 / 수화기 속의 여자 / 삶이 보이는 창

2006년 전태일문학상 수상작


 대학을 다닐때 여러차례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에 보태고 용돈으로 쓰곤 했는데, 나는 주위 친구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일들과는 좀 다른 일들을 많이 했다. 뭐 어찌 생각해보면 내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대부분 무난하고 평범한 아르바이트만 해서 내가 유난히 특이한 일만 한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를일이지만 암튼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내가 좀 다양한 일들을 겪어봤다고 생각하고 있다.

 쌀배달도 해보고(당시에 모 코메디 프로그램 피디를 쌀집아저씨라고 불렀는데, 어느 선배가 나만 보면 웃으면서 쌀집 아저씨라고 놀리던 기억이 난다!), 식육점에서 일해보기도 하고(맛있는 고기를 직접 골라서 구워먹으면 진짜 행복했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은 당연히 해봤고, 까페 서빙도 잠깐 해봤다. 학원 강사를 좀 오래했고, 막노동도 제법 해봤다. 공장에 들어가서 일해보고 싶었는데, 그건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못 해봤다. 대기업 유통회사에서 통행량조사나 상가현황조사 매장판매량조사 등등을 해보기도 했다. 여행길에 우연히 입찰대리인으로 몇십분 해주고 몇만원을 여행경비로 보탠 기억도 있다.

 가장 스릴넘치고 긴장감을 느끼는 일은 짧은 시간안에 한번도 본적 없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파는 일이다. 주유소에서 자동차용 세제나 광택제 등을 파는 일을 했는데, 이게 운이 좋으면 돈을 좀 만질 수 있었다. 차가 들어와서 기름을 넣는 짧은 시간동안 최대한 차주의 관심을 유발시켜서 구매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운이 좋으면 하루에 몇 십개도 팔 수 있었다. 이건 바로 얼굴을 보면서 하는 일이라서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또 한가지 짧은 시간안에 고객의 흥미를 끌어서 상품을 팔아야 하는 일이 있다. 요건 얼굴을 보지 못하고 목소리만 들으면서 일을 하는데 바로 텔레마케팅이다. 주로 여성분들이 많이 하시는데, 나도 한 두어달 해봤다. 학습지를 파는 일이었다. 당시에 나는 설마 전화로 이 비싼 학습지를 팔수 있을까 의심을 갖고 일을 시작했는데, 의외로 간단하게 팔아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구체적인 전략으로 아이들을 공략하는 방법과 부모를 공략하는 방법이 있는데, 나는 주로 아이를 공략하는 방법이 재밌도 더 맞는 듯 했다. 아이를 공략하는 방법은 일이 잘 진행이 되다가도 직접 경제력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일이 많다.

 아뭏튼 그때 나는 하루종일 좁은 공간에 갖혀서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전화를 돌려야 했다. 평소 무뚝뚝한 내가 수화기를 붙들고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내가면서 온갖 비위를 다 맞추고 얼르고 달래서 학습지를 팔아야 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아이에게 온갖 친한척을 다하면서 아이들 말투를 흉내내기도 했고, 역시 낯선 아저씨에게도 사소한 몇가지를 물고 늘어지면서 흥미를 끌도록 만들었다.


이 시를 읽다보면 좁아터진 곳에 따닥따닥 붙어 앉아서 하루종일 전화기만 붙들고 있었던 날들이 생각난다. 나는 나중에 학원에서 학부모 상담을 할 때나, 단체에서 회원사업을 할 때, 그리고 지금도 두어달에 한번씩 일이백명과 전화통화를 할 일이 생기곤 했는데,  이때 텔레마케팅을 했던 것이 경험이 되어 자신있게 전화작업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한때는 내가 말을 잘 하는 편이라고 어처구니없는 믿음을 갖고 살았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그런 잘못된 기억은 이 텔레마케팅을 하면서 갖게 되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Posted by 감은빛

오월햇살


네 엄마를 분만실로 들여보내고
문밖에서
겁 많은 네 엄마의 불안을 주워 담으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네가
노래 못 부르는 것은 나를 닮지 말고
뽀얀 속살은 네 엄마를 닮았으면 하다가도
저어기
네 엄마의 신음소리가 들릴때면
여자이기보다는 남자이기보다는
예쁘다기보다는 선하다기보다는
그저 너와 네 엄마가 건강하기를
햇살처럼
들풀처럼 건강하기를
병원 복도를 동동거리는 동안
창 밖엔
오월 햇살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한주 / 너희들 키만큼 내 마음도 자랐을까 / 삶이 보이는 창


 
 할일이 있어서 컴퓨터를 켰다가 일은 안하고 인터넷만 돌아다녔다. 어느새 자정을 지나 날짜가 바뀌었다. 오늘은 아내가 열시간이 넘는 진통 후에 아이를 낳은 날이다. 즉 우리 아이의 생일이다! 아마도 예정일이 지났던 것 같다. 아내는 거짓말처럼 예정일에 진통을 느낀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그건 '가진통'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진통이 오기 전 단계였다. 가진통으로부터 대략 이틀(아마도 워낙 정신이 없을때였기에 그런지 정확한 시간이 기억이 안난다!)쯤 지나서 진짜 진통이 왔다. 아내와 나는 여러차례 병원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다가, 아내가 이젠 가야한다고 확신하자 대충 짐을 싸들고 병원을 향했다.

 마침 당시 우리 동네에 아기와 산모를 위해 작은부분까지도 신경을 많이 써주기로 유명한 병원이 있었다. 나야 그런 것 하나도 모르지만, 아내는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그 병원이 곧 태어날 우리 아이를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병원까지 보통 사람 걸음으로 걸어서 대략 20분쯤 걸리는 거리였다. 택시를 탈까 고민하다가 그냥 천천히 걸어서 갔다. 아내는 걷는 게 자연분만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걸어가면서 우리는 유명한 노래 가사를 떠올리며 '10월의 마지막 날'에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다고 얘기하며 웃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아내가 이런 저런 준비를 하는 동안 장모님과 아내의 절친한 친구가 달려왔다. 진통이 심해지자 아내는 소리를 질러대며 내 손을, 팔을 그리고 내 머리칼(딱 한번)을 쥐어뜯었다. 다른 사람들은 임신하면 미리 무슨무슨 호흡법 등등을 배운다고 하던데, 아내는 그런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진통이 오면 그냥 소리를 질러대고 이를 앙다물고 그 고통에 맞섰다. 얼마나 소리를 질렀던지 병원이 떠나갈 지경이었다. 나와 아내의 친구는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애썼지만 아내는 홀로 죽을만큼 아프다는 고통을 이겨나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아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아, 그 기분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집에서 처음 진통을 느낀 지 열시간이 넘어섰다. 아내는 점점 더 빨라지는 진통에 죽을 듯이 괴로워했다. 여전히 소리를 질러대는데, 그제서야 간호원 한 명이 들어오더니, 소리를 지르면 안된다고 말하면서 호흡법을 알려주고, 어디에 어떤 느낌으로 힘을 줘야 하는지도 알려줬다. 진통은 오래했지만 요령이 없어서 아직 자궁이 하나도 안열렸다고 했다. 간호원은 언젠가 영화에서 본 듯한 호흡법을 알려주며 '아빠'가 함께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점점 더 진통은 빨라졌고, 아내와 나와 아내의 친구는 아주 열심히 간호원이 알려준 호흡법을 따라했다. 아내는 여전히 아프긴하지만 아까보다는 한결 나아진 모습으로 호흡법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다시 간호원이 오더니 곧 분만이 시작될 것 같다고 분만실로 옮겼다. TV나 책에서 보면 분만할 때 남자는 밖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초조해하면서 기다리던데, 나는 분만실에 함께 들어갔다. 이 병원은 남편이 곁에 있도록 하는 방침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은 아내를 격려하기도 하고, 요령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정신없는 내게 무언가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아내의 손을 꼭 잡은 채 나는 아내와 아이가 별 탈이 없기만을 바라고 또 바랬다. 거의 다 되었다고 조금만 더 힘을 주라고 의사 선생님이 재촉하고 격려하기를 여러차례. 마침내 아이가 이 세상으로 나왔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원은 아이가 나오자 아빠가 탯줄을 자르라고 했다. 워낙 긴장하고 있던 터라 뭘 어찌해야할지 몰라서 허둥대는데, 간호원이 시키는대로 움직여서 간신히 탯줄을 잘랐다. 간호원은 아이를 깨끗한 천으로 감싸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는 쭈글쭈글한 모습으로 맹렬하게 울고 있었다. 잠시 아이를 간단히 씻겨서 깨끗한 배냇저고리에 감싸서 엄마에게 안겨줬다. 아내는 아이를 안고서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아냈다.

 삼일 동안 아내와 나와 아이는 병실에 있었다. 다른 아빠들은 아이가 태어난 날과 다음날 정도만 쉴 수 있었다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나는 한 달동안 육아 휴가를 받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아이는 잠을 자거나 젖을 빨거나 울거나 했다. 한 밤중에 깨서 울면 아내는 젖을 물렸고, 젖을 다 먹은 아이를 잠시 바람을 쐬주기 위해 내가 안고 나와서 병원 복도를 거닐었다.

 작고 여린 생명을 안고서 나는 어쩜 이리도 작을까 신기해하고 또 신기해했다. 아이에게 뱃속에서 목소리로만 들었던 아빠를 실제로 만난 소감을 물어보기도 하고, 어서 무럭무럭 자라서 아빠랑 함께 등산도 가고, 축구도 하고, 여행도 가자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리고 좀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말도 안되는 곳에 태어나게해서 미안하다고, 네가 크면 아빠와 함께 좋은 세상 만드는 일을 함께 하자고 얘기해주기도 했다.

 지금도 팔에 그리고 가슴에 그 조그만 아이를 안았던 감촉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다!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이자, 아이의 생일이다. 아이를 위해서도 축하해야 할 날이지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이겨낸 아내를 위해 꼭 기념해야 할 날이다! 마침 금요일이다! 일중독에서 하루쯤은 벗어나서 뭔가를 해줘야겠다!





Posted by 감은빛

먹염바다


바다에 오면 처음과 만난다

그 길은 춥다

바닷물에 씻긴 따개비와 같이 춥다

패이고 일렁이는 것들
숨죽인 것들
사라지는 것들

우주의 먼 곳에서는 지금 눈이 내리고
내 얼굴은 파리하다

손등에 내리는 눈과 같이
뜨겁게 타다
사라지는 것들을 본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 사이

여기까지 온 길이
생간처럼 뜨겁다

햇살이 머문 자리
괭이갈매기 한 마리
뜨겁게 눈을 쪼아 먹는다


이세기 / 먹염바다 / 실천문학사



이십년동안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바닷가 바로 뒷 산에 살았다. 우리집 베란다에서는 멀리 바다가 보였다. 어릴때부터 나는 베란다에 나가서 그 먼 바다를 한없이 보고 있는 것이 좋았다. 바다가 무척 가까웠지만 자주 가지는 않았다. 주로 산에서 놀았다. 가깝다곤 해도 어린 나이에 걸어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고, 버스를 타고 찾아갈줄도 몰랐던 때였다.

중학생이 되어서부터 가끔 친구들과 바닷가에 놀러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기억속에 그 바다는 늘 겨울바다였다. 정말 겨울에만 그 바다를 찾아간 건 아니었을텐데, 이상하게 여름에 그 바닷가를 갔던 기억은 없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 마음대로 술을 먹고 담배도 피워도 누가 뭐라하지 못할 때부터는 가끔 혼자서 그 바닷가를 찾아가곤 했다. 그 때도 늘 겨울이었다. 매년 여름이면 발 디딜틈도 없이 사람들로 꽉 차있던 그 넓은 모래사장에는 거짓말처럼 사람하나 없었다. 나는 '끼룩 끼룩' 울어대는 갈매기들을 눈으로 쫓으며 하릴없이 백사장을 서성이다가, 한 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고 연기를 바람에 날려보내다가, 끊임없이 밀려오고 또 밀려가는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며 젖은 모래사장에 내 발자국을 찍으며 걸었다. 등 뒤로 다시 밀려온 파도가 내 발자국을 지워나갔다.

바다는 모름지기 겨울에 와야 제 맛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여름의 바다는 눈요기를 하거나 뜨거운 몸을 식히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바다의 참 맛을 즐기기는 어렵다. 겨울 바다에 서면 사막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홀로 파도와 마주하고 있노라면 오롯이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차가운 바람이 내 뺨을 뜨겁게 태우고, 따뜻한 모래밭이 내 발을 감싸 안고, 파도 소리가 나를 끌어안으면 나는 고단하고 외롭고 덧없는 일상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만난다!

아! 겨울 바다로 달려가고 싶다!



Posted by 감은빛

아내의 브래지어


누구나 한번쯤
브래지어 호크 풀어보았겠지
그래, 사랑을 해본 놈이라면
풀었던 호크 채워도 봤겠지
하지만 그녀의 브래지어 빨아본 사람
몇이나 될까, 나 오늘 아침에
아내의 브래지어 빨면서 이런 생각해보았다
한 남자만을 위해
처지는 가슴 일으켜세우고자 애썼을
아내 생각하자니 왈칵,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남자도 때로는 눈물로 아내의 슬픔을 빠는 것이다
이처럼 아내는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동굴처럼 웅크리고 산 것을
그 시간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던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나 오늘 아침에
피죤 두 방울 떨어뜨렸다
그렇게라도 향기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박영희 / 팽이는 서고 싶다 / 창비


이 시를 일부러 찾아 읽은 것은 몇 달전에 박영희 시인과 함께 식사를 하던 중에 들은 얘기가 궁금해서였다. 그때 시인은 창비에서 나온 자신의 시집 '팽이는 서고 싶다'의 제목이 마음에 안든다고 말했다. 원래 자신이 생각했던 표제작은 바로 이 시 '아내의 브래지어'였는데, 창비쪽에서 계속 바꾸기를 요청해와서 결국 '팽이는 서고 싶다'가 제목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만약 자신의 주장대로 '아내의 브래지어'가 제목으로 정해졌다면 책도 훨씬 더 많이 팔렸을거라고 장담하셨다.

책을 만들때 제목을 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책의 판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제목이다! 그래서 제목을 정할때는 출판사와 작가 모두 무척 심사숙고하게 된다. 대개 시집이나 단편소설집 등은 수록된 여러 작품중에서 표제작의 제목을 따서 책의 제목을 정한다. 그래서 사실 시집의 경우는 크게 어려울 게 없는데,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작가들이 표제작으로 정할 작품을 하나 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작가가 명확하게 표제작을 정해놓았는데, 출판사측에서 표제작으로 다른 작품을 내세우길 원한 경우인 것 같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어떤 이유로 출판사에서 작가에게 표제작의 변경과 책 제목의 변경을 요청해서 다른 제목으로 책을 출간한 것이다.

글쎄 '팽이는 서고 싶다' 는 시도 제법 괜찮아서 표제작으로 뽑은 것이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 시 '아내의 브래지어'가 사람들 입에 더 많이 오르내리기 때문에 박영희 시인이 그런 말을 한 게 아닌가 생각이 된다.

박영희 시인은 일제시대 광부 징용사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중국을 통해 북한에 들어갔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가 7년의 옥살이 끝에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좀 별난 이력을 지닌 분이다. 최근에는 르포작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시인이 아내의 브래지어를 빨아준 경험을 바탕으로 아내에 대한 여러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아내의 생리대는 여러차례 빨아준 적은 있으나 브래지어나 팬티를 빨아준 적은 없다. 우리는 가끔 아이의 옷만 손빨래하고 우리 옷은 모두 세탁기에 돌리기 때문이다. 대신 탈수가 끝난 빨래를 널면서 아내의 속옷을 탁탁 털고 잘 펴서 햇볕에 걸어놓을 때 물끄러미 쳐다본 적은 있다.

브래지어를 쳐다보면서 저걸 하고 다니려면 참 갑갑하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아내도 가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특히 여름이면 무척 갑갑해 한다. 그리고 가슴을 받쳐주는 용도라면 좀 더 간단해도 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두껍고 무늬도 복잡할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게다가 속에 와이어가 들어있어서 조이는 느낌때문에 아프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시적감수성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내의 브래지어를 보면서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저 저 갑갑한 것을 안하고 살아도되니 남자로 태어난게 다행인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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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소리의 뼈


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
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일학기 강의를 개설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기형도 / 입 속의 검은 잎 / 문학과 지성사


 말에 뼈가 있다는 말을 종종 한다. 어떤 말에 숨은 뜻이 담겨져 있을 때 흔히 그런 말을 한다. 그렇다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시인이 어떤 상상으로 이런 단어를 사용했을 지 궁금하다. 기형도라는 유명한 시인의 이름만 들었을 뿐 시 한편 제대로 읽어 본적이 없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기형도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입에선 가끔 알아듣지 못할 묘한 표현들이 나왔다. 그땐 이해하지 못했는데, 직접 읽어보니 그가 왜 그런 묘한 표현들을 잘 썼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듯도 하다. 나는 괜히 읽기 어려운 시는 좋아하지 않는데, 기형도의 시는 어렵다기 보다는 너무 어두운 느낌이라 꺼려지는 면이 있다. 이 시는 그 중에서 그래도 비교적 덜 어두운 느낌이다. 하지만 어둡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거나 현실을 비꼬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시인이 당시에 어떤 의도로 '소리의 뼈'에 대한 시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현재 이명박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시를 꼽으라면 이 시를 꼽고 싶다. 명박이가 이 시를 듣고 무슨 생각을 하던 아예 아무런 생각도 없던 그건 나와는 상관없다. 그저 나는 이 시를 그에게 들려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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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토끼는 어디로 갔을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시신을 묻고 있다고 해서 혼자 망월동 묘지에 갔다
혹시, 계엄군이 숨어 있다가 총으로 쏠지도 모르니까,
교복을 입고 갔다
시내버스 종점에서 내려 먼길을 걸었다
이미 많은 무덤들이 만들어졌고,
더 만들기 위해 미리 땅을 파놓았다
해가 지고 있다
기억해야 된다고, 반드시 기억해야 된다고,
나무 푯말에 적힌 죽은 친구의 묘지번호를 되뇌었다
관리인이 펌프물을 받아 손을 씻고 있다
아직도 죽은 사람들이 더 실려올 곳이라고 했다
묘지 옆에 토끼장이 하나 놓여 있다
근처의 마을에서 가져왔다
토끼장 속에 토끼는 없고, 죽은 사람들의 수첩, 열쇠, 머리빗,
돈, 볼펜, 교련복, 수건, 운동화, 그런 것들이 들어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토끼는 보이지 않았다


윤희상 / 소를 웃긴 꽃 / 문학동네


 기억해야 한다.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그 죽음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누구때문에 무수히 많은 무고한 생명이 스러져갔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강풀의 <26년> 과 화려한 휴가를 많은 이들이 보는 것도 좋지만 이런 시가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시인이 스스로 말했듯 그는 항상 80년 5월의 광주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말을 할 당시 그의 몸은 비록 2008년 6월의 서울에 있었지만 그의 정신은 아직도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정신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 3학년때였던 것 같다. 봄이었다. 그렇게 원하던 국문과 수업을 듣게 되었지만 내가 기대했던 수업이 아니었다. 낯선 캠퍼스, 낯선 건물, 낯선 학생들, 낯선 교수들 모든게 다 낯선 것들 뿐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학교에 있어도 누구하나 아는 얼굴이 없었다. 내가 원했던 낯선 캠퍼스였고, 내가 원했던 낯선 건물, 낯선 학생들, 낯선 교수들이었건만 나는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 외로움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신기했다. 하루종일 입을 열 일이 없었다. 간단한 손짓 만으로도 모든 것은 해결될 수 있었다. 학교 식당에선 지폐를 넣고 버튼을 누르면 식권이 삐죽 나왔다. 목이 마르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셨다. 누구하나 말 걸어주는 사람 없었고, 누구에게도 말붙일 일이 없었다. 그렇게 입을 한번도 열어보지 못하고 돌아오면 텅빈 자취방에서 빈 소주병만이 나를 반겼다.

 무작정 짐을 싸서 자취방을 나섰다.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버스를 탔다. 순천으로 갔다. 보성으로 갔다. 화순으로 갔다. 그리고 광주로 갔다. 밤은 기차역 대합실이나 읍내 피씨방에서 대충 구겨진 채 보냈다. 낮엔 걸었고 걷다가 지치면 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탔다. 기차를 내리면 또 걸었다. 어디를 간다는 목적의식은 없었다. 그저 길이 있으니 나는 걸었다. 어두워지면 또 하루밤을 지낼 곳을 찾아다녔다. 다행히 기차역이 없는 곳에도 피씨방은 어김없이 있었다. 주인아저씨 혹은 야간알바와 적당히 흥정을 하면 싼 값에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며칠이 지나 지칠대로 지쳤을 때에야 싸구려 여인숙을 찾아다녔다. 거금 일만오천원에 두 발을 뻗고 몸을 누일 수 있었다. 차가운 물일지언정 몸을 씻을 수도 있었다.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간 곳은 망월동 묘지였다. 물어 물어 찾아가느라 조금 고생을 했다. 생각보다 훨씬 외진 곳에 있었다. 중간에 많이 헤매느라 그곳에 도착한 시각은 늦은 오후였다. 조금 돌아보고 있는데, 해가 지려하고 있었다. 뭐라 표현할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솟구쳤다. 망월동 묘지에서 빨갛게 물들어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까닭없이 눈물이 흘렀다.

 묘지가 문을 닫는 시간까지 그렇게 멍하니 서있다가 안내방송을 듣고서야 서둘러 나왔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날이 완전히 어두어졌다. 가끔 차가 지나가기도 했지만 주위에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마치 다른 차원에 존재하듯 주위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다. 걷고 싶었지만 어디까지 걸을 수 있을지 몰라서 망설여졌다. 이 외진 곳에서 길을 잃으면 큰일이었기에 그냥 버스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제법 오래 기다렸지만 버스는 오지 않았다. 아직 버스가 끊길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불안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졌다. 차라리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나는 나를 내려다 보았다. 내 머리통이 보였고, 점점 작아졌다. 나는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점점 작아지는 내 몸을 내려다보며 두려움을 느꼈지만 소리조차 지를 수가 없었다.

 빵빵! 클랙션 소리와 함께 헤드라이트 불빛이 내 눈으로 달려들었다. 눈을 뜨려했으나 눈이 부셔서 뜰 수 없었다. 간신히 실눈을 뜨고 쳐다보는데, 버스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빵빵! 다시한번 클랙션이 울리고 덩치 큰 버스기사 아저씨가 무어라 소리를 질렀다. 움직이지 못하던 몸이 그제서야 용수철 튀듯 뛰어 제멋대로 버스에 올랐다. 손님은 뒷문 근처에 가서 앉았다. 손님은 나 혼자였다. 버스는 난폭하게 달렸고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창 밖을 보았다. 간신히 현실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갔다.

 아무 생각없이 길을 떠난 날로부터 보름만에 되돌아왔다. 여전히 텅 빈 자취방이 나를 반겼고, 여전히 낯선 건물속에서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2008/07/31 - [시 한자락] - 소를 웃긴 꽃 - 윤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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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작업복 팬티


 공장 탈의실 옷걸이에 낡은 깃발처럼 걸린 누런
팬티는, 주조 공장 성철이 일할 때 갈아입는 작업복
팬티다. 새 팬티 입으나 누런 팬티 입으나 공장에
들어가자마자 쇳가루 흙먼지투성이 될 게 뻔하다
고, 자주 빨아도 아무 소용 없다고, 아무렇게나 걸
어 둔 성철이 작업복 팬티다. "성철아, 그래도 불알
과 자지는 쇳가루 흙먼지 못 들어가게 잘 닫아 둬
라. 사용자 잘 만나서 토끼 같은 새끼도 낳아야 하
고······." 아침부터 누런 팬티 하나 쳐다보며, 우린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 또 웃어도 마음이 아프다.


서정홍 / 58년 개띠 / 보리



 내게도 작업복 팬티가 있었다. 흔히 노가다 혹은 막노동이라고 말하는 건설현장에서 그날그날 일을 할 때였다. 대학 다닐때 용돈이나 좀 벌어버려고 친구 따라 한두번 갔던 이후로 혼자 살면서 생활비가 딱 떨어져서 라면 하나, 담배 한 갑 살 돈 조차 없어지면 며칠씩 막노동을 해서 밥 값을 벌어오기도 했다. 대게 막노동을 하는 아저씨들은 새벽에 집을 나올때부터 허름한 옷에 다 떨어져가는 운동화를 신고 오기도 하지만 비교적 젊은 층의 사람들은 작업복과 신발을 따로 가방에 넣어와서 현장에서 갈아입었다. 물론 여름에는 너도 나도 여벌옷을 두세벌씩 갖고 다닌다.

 혼자 살면서 세탁기도 없어서 일주일에 한번씩 몰아서 빨래를 하곤 했는데, 손빨래를 두시간씩 하고나면 기진맥진하곤 했다. 빨래를 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옛날 마을 빨래터에 아낙들이 모여서 빨래를 하면서 서방 흉보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던 심정을 확실하게 이해했다.

 암튼 빨래가 귀찮았던 나는 어떻게든 빨래를 줄이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했다. 막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옷이 정말 더러워진다. 그냥 더러워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옷이 빨리 상해서 오래입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유행이 한참 지나서 더이상 안 입는 옷, 오래 입어서 아주 낡은 옷 등이 작업복으로 선택된다. 이건 속옷의 경우도 마찬가진데, 일을 하고 오면 속옷도 평소보다 훨씬 더 더러워지고 빨리 상한다. 시인이 잘 표현했듯이 깨끗이 빨아도 별 소용이 없다. 그래서 막노동을 나갈때만 입는 팬티를 낡은 것들 위주로 서너벌 정해놓고 입었다. 이른바 작업복 팬티인 것이다. 나는 성철이처럼 아예 빨지 않은 것은 아니고 서너벌을 갖고 교대로 입었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훈련 나가서 일주일씩 속옷을 안갈아입고 버텨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본인이 그런 적이 한번도 없다면 적어도 그런 경우를 보거나 얘기를 들은 적은 있을 것이다. 군대에서 나는 유난히 팬티를 자주 잃어 버렸는데, 빨아서 널어놓으면 없어지곤 해서 처음에 7벌을 보급 받은 것으로 기억하는 데, 자대에 배치 받은 이후로 3벌 이상을 갖고 있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상병을 달고 두어달 쯤 지나서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닐만 하게 되었을 때, 무슨 훈련을 나가게 되었는데, 일주일을 야외에서 보내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때 내가 가진 팬티가 단 두벌 뿐이었다. 하나는 입고 하나는 여벌로 군장속에 챙겨넣고 훈련을 떠났다. 훈련중에는 빨래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팬티를 갈아입을 수가 없었다. 여벌이 하나 밖에 없으니 한번 갈아입고 나면 그걸로 끝이었다. 훈련 중에 입을 것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부대 복귀후에 빨래를 하고 마를 동안 입을 것도 고려해야 했다. 훈련중에야 더러운 팬티를 입고 있어도 원래 훈련 중에는 그런 것이니 참을 수 있지만, 부대로 복귀한 이후에도 더러운 팬티를 입고 있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되도록이면 비교적 덜 더러운 상태의 팬티를 입고 복귀하고 싶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처음 입었던 팬티로 최대한 버텨야 했다. 3일인가 지났을 때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지금 갈아입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뒤집어 입는 것으로 스스로와 타협을 하고 하루나 이틀만 더 버티기로 했다. 5일째 되는 날 아침부터 정말 갈아입고 싶은 욕구에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부대 복귀 행군은 죽을 만큼 힘들게 뻔했고, 그때 팬티가 굉장히 더러워질 게 분명했다. 하루만 더 버티면 복귀 행군을 시작할 것이다. 이틀만 더 버티면 부대로 돌아가서 깨끗한 팬티를 입고 잘 수 있었다. 그날 낮잠을 잘 때 팬티를 벗어서 햇빛이 잘 드는 나무가지에 걸쳐 놓았다. 한시간쯤 후에 깨어나서 쨍쨍 내리쬐는 햇살에 빠짝 말라서 살균까지 된 뽀송뽀송한 팬티를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렇게해서 복귀 할때까지 일주일 동안 팬티를 한번도 갈아입지 않고 단 한벌로 계속 버텼다. 햇빛에 말리는 방법은 도저히 팬티를 입고 잘 수 없어서 그냥 한번 벗어서 널어놓았을 뿐인데, 의외로 효과가 굉장했다. 그래서 다음번부터 훈련때마다 그 방법을 이용하게 되었다. 뒤집어입기와 햇빛에 말리기만 적절히 잘 이용하면 훈련내내 비가 오거나 눈이 오지 않는 한은 오랫동안 팬티를 갈아입지 않고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아마 여자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일일 것이다. 만약 아내가 결혼 전에 이런 얘기를 들었다면 나는 아직도 혼자 살고 있지 않았을까?

2008/08/11 - [시 한자락] - 시인이란 - 서정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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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숲에서 길을 잃다


너무 깊이 들어와버린 걸까
갈수록 숲은 어둡고
나무와 나무 사이 너무 멀다
동그랗고 야트막한 언덕배기
천지사방 후려치는 바람에
뼛속까지 마르는 은빛 억새로
함께 흔들려본 지 오래
막막한 허공 아래
오는 비 다 맞으며 젖어본 지 참 오래


깊이 들어와서가 아니다
내 아직 어두운 숲길을 헤매는 것은
헤매이다 길을 잃기도 하는 것은
아직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한 탓이다
깊은 골짝 지나 산등성이 높은 그곳에
키 낮은 꽃들 기대고 포개지며 엎드려 있으리
더 깊이 들어가야 하리
깊은 골짝 지나 솟구치는 산등성이
그 부드러운 잔등을 만날 때까지
높은 데 있어 낮은, 능선의
그 환하디환한 잔꽃들 만날 때까지


김해자 / 無花果는 없다 / 실천문학사



 사람 숲에서 길을 잃어 본 적이 있나? 글쎄 자주 있었던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떠올리려니 막상 생각나는 건 없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길을 잃는 건 내가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자주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그렇게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한순간 다른사람처럼 느껴질 때, 나는 더이상 그를 찾지 못한다. 그를 향한 길에서 갑자기 길을 잃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길은 갑자기 없어지기도 하지만 또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 길을 잃었던가 싶으면 어느새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될 수 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깊숙히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래야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 숲에서 길을 잃었는가? 두려워하지 마라! 더 깊숙히 들어가다보면 다시 길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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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외상일기


셋방 부엌창 열고
샷시문 때리는 빗소리 듣다
아욱, 아욱국이 먹고 싶어
슈퍼집 외상장부 위에
또 하루치의 일기를 쓴다
오늘은 오백원어치의 아욱과
천원어치 갱조개
매운 매운 삼백원어치의 마늘맛이었다고
쓴다. 서러운 날이면
혼자라도 한 솥 가득 밥을 짓고
외로운 날이면 꾹꾹 누른
한 양푼의 돼지고기를 볶는다고 쓴다
시다 덕기가 신라면 두 개라고 써 둔
뒷장에 쓰고, 바름이 아빠
소주 한 병에 참치캔 하나라고 쓴
앞장에 쓴다
민주주의여 만세라고는 쓰지 못하고
해방 평등이라고는 쓰지 못하고
피골이 상접한 하루살이 날파리가 말라붙어 있는
슈퍼집 외상장부 위에
쓰린 가슴 위에
쓰고 또 쓴다
눈물국에 아욱향
갱조개에 파뿌리
씀벅 나간 손 끝
배어나온 따뜻한 피 위에
꾸물꾸물
쓰고 또 쓴다


송경동 / 꿀잠 / 삶이 보이는 창




  지금은 동네 슈퍼에 가도 외상장부를 볼 수 없지만(혹 아직도 외상장부를 사용하는 가게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내가 어릴때에는 동네 슈퍼 가게에 외상장부가 있었다. 날려쓴 글씨로 날짜와 이름 금액이 잔뜩 적혀있는 외상장부는 동네에서 장사하는 작은 슈퍼집에는 필수품이었다.

 가끔 엄마가 장보다가 빠뜨린 찬거리가 있으면 내게 심부름을 시켰다. 동네 슈퍼에 가서 외상으로 좀 받아오라고 했다. 슈퍼에선 아줌마가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외상이라는 말에 한번 눈살을 찡그리고는 외상장부를 꺼내 이름과 금액을 갈겨쓴다. 그러면 나는 무슨 죄지은 사람 마냥 기가 죽어 고개를 숙인 채 가게를 나오곤 했다.

 매일 외상 심부름만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가끔은 오백원짜리 동전을 쥐어주고 2백원어치 두부를 사오라거나 백원어치 콩나물을 사오라고 하는 날도 있었다. 가끔은 말이다! 그런 날은 거스름돈으로 외상을 제하게 된다. 아줌마는 외상이 얼마 남았다고 엄마에게 말하라고 입을 크게 벌려 말하곤 했다. 그렇게 줄었던 외상은 다음에 심부름 가보면 다시 또 늘어나있었다. 나중에 이사를 가면서 그 동네를 떠날 때, 엄마가 그 슈퍼집 외상은 다 갚았을까 궁금해했던 기억이 난다.

 송경동 시인은 예전에 있던 단체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알게 되었다. 그땐 인사도 미처 나누지 못했고 그냥 지나치며 얼굴만 익혔다. 나중에 허세욱 열사 추모제에서 추모시를 낭송하는 시인을 보게 되었다. 그때 그의 시를 처음 알게 되었다. '별나라로 가신 택시운전사께’라는 제목의 추모시를 낭송하는 그의 모습은 멋있었다. 힘있고 당당한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거리에서 시를 낭송하는 시인. 언제나 투쟁하는 현장에서 함께하는 시인. 그의 부지런함과 헌신적인 모습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그를 새겨놓았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의 아름답지만 아픈 시들이 그를 기억하도록 만들었다. 이제 그는 무척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적어도 이쪽 바닥에서는) 앞으로 더 유명해질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계속 거리에서 그의 시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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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란


시인이란
쉬운 걸
어렵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걸
쉽게 쓰는 사람이다


서정홍 / 내가 가장 착해질 때 / 나라말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이치를 잊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어떤 일에 몰두하면 몰두할수록 그 일의 가장 기본적인 이치는 잊어버리고 단지 일을 하는 것 자체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시인이나 작가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글쓰기의 기본은 남에게 내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어려운 말로 쓰여진 글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요즘 출간되는 책들을 보면 어려운 말로 된 경우가 되부분이다. 아니 말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해하기 힘들게 쓰인 경우가 더 많다. 자신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다.

 항상 그렇듯이 글쓰기에 있어서도 기본을 잘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 쉽게 쓰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글쓰기가 어려운 것이리라. 돌아가신 권정생선생님은 살아계실 때, 쉬운 말로 누구나 알아듣기 좋게 글을 써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다. 배운 사람들이 쓸데없이 어려운 말을 섞어가며 알아듣기 힘들게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유행처럼 되어버린 현상에 대해 무척 안타까워 하셨다.

 서정홍 시인은 그런 점에서 대단한 시인이라고 생각된다. 책을 펼치면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읽어도 쉽게 읽힐 만한 시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쉬운 우리말로 된 아름다운 시들은 어려운 한자단어나 외래어나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난해한 시들보다 훨씬 더 가치있다고 생각된다.

 위 시를 보라! 짧은 저 시 안에 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이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우리 청소년들이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을 갖고 이러니 저러니 분석하는 방법만 배우지 말고, 이런 시들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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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진을 친 집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집에 들어서면

마음이 놓이는 이유를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전태일처럼 배수진을 치지 못해

약한 바람에도 복날의 개처럼 끌려다녔고

허수아비처럼 굽실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배수진을 쳤다고

얼굴 인상을 문신처럼 지어보기도 했지만

모기장에 들어온 모기 한 마리 잡는 것에 불과했다

 

외길에 배수진을 쳤을 때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는 사라진다

새들의 날개가 날아가는 순간을 위해 목숨을 걸듯

나를 위한 싸움만 놓여 있는 것이다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배수진을 친 집이 있기에

그림자마저 얼었어도

들어서기만 하면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맹문재 / 책이 무거운 이유 / 창비



 배수진은 학창시절 내가 즐겨쓰던 단어다. 背水之陣 [배수지진] 손자병법에 나오는 병법중의 하나로 일부러 퇴로를 포기하고 강을 뒤에 두고 진을 구축하는 것으로 이 병법을 사용하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울 수 밖에 없다. 어릴때 어디선가 읽은 이 말을 나는 중학교때부터 많이 사용했다. 주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등 시험을 앞두고 자주 쓰곤 했는데, 시험 바로 전날까지 일부러 공부를 하나도 안하고 있다가 시험 전날 밤새도록 공부하여 점수를 잘 받겠다는 말도안되는 전략을 내 나름대로 배수의 진을 친 전략이라고 친구들에게 떠들어대곤 했다.

 일부러 나와 성적이 비슷한 아이들을 꾀어서 시험기간때 더 열심히 놀았다. 아이들에게 이 배수의 진 전략은 의외로 쉽게 먹혀들어갔는데, 나의 꾐에 빠져서 함께 놀았던 아이들은 대부분 성적이 좋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놀았다면 시험전날에는 진짜 강을 등지고 적과 맞서는 기분으로, 죽기 살기로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관성의 법칙에 의해 계속 놀았기에 막상 시험 전날이 되어도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결국은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배수진이란 말은 원래 함부로 쓸 수 없는 말이다. 죽을 각오로 싸울 수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단어인 것이다. 시인은 배수진을 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치열한 삶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전태일처럼 배수진을 치고 치열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삶과 문학』출판기념회 자리에서 만난 맹문재 시인에 대한 첫 인상은 썩 좋지는 않았는데, 뭐라고 해야할까? 그날 참석했던 다른 작가들과는 좀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그 날 불편했던 내 기분탓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중에 다른 사람들과 환한 웃음 지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얼핏 봤을때는 또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배수진을 치고 삶에 임하는 시인의 태도는 본받을만한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며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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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삶은 계란


기차는 모두 완행
한 가지뿐
모두 똑같았던 것 같다
단지 2등칸, 3등칸 나누어서
2등칸으로 넘어가면 안됐다


회덕인가, 신탄진인가
찜통같은 더위에
차창이 고저이 안되고 자꾸 내려오니
열차가 정거한 틈에 아버지는 기차를 내려
철로 옆 산비탈을 차고 오르더니
싸리나문지 뭔지 막대기 하나 꺾어 와
차창을 받쳤다


기차는 다시 천천히 달리고
목이 막히니 천천히 먹으라며
사이다와 함께 사주신
홍익회 삶은 계란
회푸대종이로 양약첩처럼 접은 굵은 소금 펼쳐 놓고
의자 팔걸이에 탁탁 부딪쳐 까먹던
그 삶은 계란


아버지도 하나쯤은 드셨을까
그 삶은 계란 깨물며
아버지와 나는 무슨 얘기 했을까
아버지도 드물게 알고 있는
서울 얘기 해 주셨을까
기차 타고 처음 서울 가는 길
홍익회 그 삶은 계란


윤재철 / 녹색평론 100호




 어렸을 때, 몇 살이었는지조차 잘 기억도 안날 정도로 오래전, 엄마와 할머니와 기차를 타고 대구의 용하다는 한의원에 약을 지으러 갔었다고 한다. 다른 건 하나도 기억 안나는데, 기차 안에서 삶은 계란을 까먹었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어릴 때, 나는 몸이 약해서 잔병치례도 많았고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키도 작고 말랐었다. 아마 할머니의 성화때문이었으리라 먼 대구까지 기차를 타고 약을 지으러 가다니. 그렇다고 그 뒤로 내가 건강해졌던가? 글쎄, 중학교 이후로는 밥도 많이 먹고, 키와 체격은 보통정도는 되었는데, 몸이 특별히 튼튼해지거나 한건 아닌 것 같다. 할머니는 첫 손자(외손자 말고)였던 나를 참 많이 아끼셨다. 옛날 사람이라서 다른 손자, 손녀들 앞에서도 차별대우가 심했다.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대로 내가 사랑해드리지는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기차에서 까먹는 삶은 계란은 참 맛있다. 특히 사이다와 함께 먹어야 목도 안 메이고 잘 넘어간다. 사이다의 달콤하고 톡 쏘는 맛과 굵은 소금의 짭짤한 맛과 계란의 담백한 맛이 입 안 가득 채워지면 장거리 여행의 지루함도 잠시 잊을 수 있다. 어른이라면 여기에 사이다가 아닌 맥주 한 캔이 더 어울리리라.

 처음 들어갔던 단체에서 신입 활동가 교육이 있어서 서울에 갈 일이 있었다. 같은 사무실에 나보다 한 서너달쯤 먼저 들어온 형이 한 명 있었다. 나이는 나보다 한 너댓살쯤 많았는데, 결혼도 했고 여러가지 사회생활 경험이 있었다. 늘 웃는 얼굴에, 경우가 바르고 성실했으며,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연락이 끊어졌지만 한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 형과 나는 동기로서 서울에 함께 갔다. 그 형의 고향이 대구였는데, 집안 일 때문에 형은 대구에 들러야 한다고 했다. 우린 새마을 호 기차를 탔는데, 내가 먼저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가다가 동대구 역에서 탄 그를 만났다. 형은 미리 맥주 네 병(캔이 아니라 병! 것두 큰 병으로)이랑 삶은 계란, 그리고 과자 몇 개를 준비해왔다. 서울로 가는 먼 길을 맥주와 계란과 과자와 함께 갔다.

 며칠전 휴가를 다녀올 때, 부산에서 KTX를 타고 왔다. 기차를 타자마자 아이가 우유를 찾았고 아내가 내려서 우유를 사왔다. 그리고 삶은 계란도 한 줄(세 개 들었다!) 사왔다. 이 시의 3연에도 나와있듯이 예전에는 소금이 회색 종이에 양약첩처럼 쌓여있었는데, 지금은 투명 비닐봉투에 담겨있었다. 아이와 계란을 나눠 먹었는데, 문득 그 어린시절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탔던 기차에서 계란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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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사랑


며칠째 목에 걸려 있는 가시
가만있으면
아무렇지 않다가도
침을 삼킬 때마다 찔러대는 가시
손가락을 넣으면
닿을 듯 말 듯
더 깊이 숨어버리는


잊는다 잊는다 하면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견딜 만큼 아픈,
당신


고영서 / 기린 울음 / 삶이 보이는 창



 사람을 향한 사람이나 세상을 향한 사랑이나 모두 아픔을 참아내어야 비로소 그 참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부분의 '견딜 만큼 아픈, 당신'이란 구절이 그래서 내내 가슴 한 구석에 남는다. 나는 사랑은 그냥 행복한 것인줄 알았다. 그를 혹은 그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뭔가 막 힘이 솟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몇번의 연애를 겪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랑이 그저 기분좋은 설레임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첫 만남의 설레임과 서로를 향한 그리움과 서로를 견뎌내는 인내심이 모두 다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 후 내게 사랑은 딱 견딜만큼만 아프고, 견딜만큼만 힘든 끝없는 시련(혹은 전투)였다. 이 시를 읽고 사랑은 목에 걸린 가시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뭔가 거북하고 불편하지만 어쩔때는 그리 신경쓰이지 않아 쉽게 잊어버리고, 그러나 잊을만하면 아픔을 상기시키며 계속 내 목에 걸려있는 가시. 사랑에 대한 완벽한 정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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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등대


등대는 인간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설악을 등지고 방파제에 앉아
허겁지겁 활어회를 먹는 인간들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외롭고 쓸쓸한 저 갈매기들에게 소주 한잔 건네지 않고
저 혼자 술 취해 비틀거리는 인간들이 마냥 미웠던 것은 아니다
바다의 상처가 섬이 된 줄 모르고
해가 지도록 바닷가에 앉아 모래를 헤아리다가
결국 모래가 되어버린 인간들이 결코 안타까웠던 것은 아니다
다만 평생 감동없는 밥을 먹는 인간들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었을 뿐이다
속초항으로 돌아오자마자 집어등을 끄고 코를 골며 자는
저 지친 오징어잡이배들을 설악으로 끌고 가 잠들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오징어와 명태와 고등어와 또 넙치들이
어머니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다정히 불을 밝히다가
수평선을 바라보며 고요히 늙어가기를 바랐을 뿐이다
진정으로 살아보지도 않은 채 죽어간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등대는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인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정호승 / 포옹 / 창비



 강원도는 나와 인연이 많은 곳이다. 지리산은 아직 한번도 올라본 적이 없지만 설악산은 일반 등산 코스는 다 한번이상씩 오르내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야간산행을 해봤던 곳도 설악산이었다. 어릴때부터 코 앞에 바다를 두고 우린 강원도 해안으로 놀러다녔다. 그저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올라가다보면 끝없이 멋진 해안들이 나타나곤 했다. 그 글이 그대로 군대가는 길이 되었다. 휴가나올때와 복귀할때마다 해안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끝없이 오르내렸다.

 속초는 군대 있을 때 근처에 갈 수 있는 곳 중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좀 더 내려가면 강릉이 더 큰 도시이긴 하지만 강릉은 너무 멀었다. 외박을 나가면 할 것 도 없는 간성이나 거진에 머물기보다는 조금 멀어도 속초로 향했다. 한창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상병때였다. 혼자 외박을 나가서 속초로 갔다. 함께 가자는 고참 한 명을 단호히 뿌리치고 혼자서 여관방을 잡아놓고 맥주, 통닭, 빵, 순대, 떡볶이 등 먹고 싶은 건 죄다 사다놓고 밤새도록 먹었던 기억이 난다. TV를 켜놓고 밤새도록 먹다 지쳐 졸다가 다시 정신이 들면 또 먹었다. 아침이 되어도 남은 음식을 싸들고 나와서 만화방에 가서 다시 만화책을 읽으며 먹었다. 내게 속초는 그런 기억이 묻어 있는 곳이다.

 아내의 친구가 우리 결혼식 2주 전에 양양에서 결혼을 했다. 그 친구 부부는 우리를 초대했고 우린 낙산사 근처 모텔에 하룻밤 묵으면서 그 결혼식에 다녀왔다. 그날 밤바다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철책선에서 밤새 묵묵히 바라보곤 했던 그 동해바다를 다시 가만히 바라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바다는 쉴 새없이 지난 얘기들을 쏟아내었지만 나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내 마음의 짐들을 그 바다에 쏟아부었다. 갈매기와 밤바다에 비쳐 일렁이는 달이 가만히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내 고독은 바다에 녹아 잔잔하게 퍼져나갔고 내 뼈는 솟아 올라 등대가 되었다.
 
 그 날 밤에 나는 등대가 되어 바다와 오랜 친구처럼 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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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때문에

시와 추억 2008.08.09 12:54

우체국을 가며


다시 이력서를 써서
서울을 떠날 때보다 추레해진
사진도 붙이고, 맘에도 없는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로 끝나는 자기소개서를 덧붙여
우체국을 간다
컴퓨터로 찍힌 월급명세서를 받으며 느낀 참담함이 싫어
얼빠진 노동조합이나
제 밥줄에 목맨 회사 간부들과 싸우는 것이
마치 아귀다툼 같아서 떠나온 곳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밥 때문에
삐쩍 마른 자식놈 눈빛 때문에
이렇게 내 영혼을 팔려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왜 그럴까, 알고 싶지가 않다
나는 이렇게 늘 패배하며 산다
조금만 더 가면 여기서 한 발짝만 더 가면
금빛 들판에서
비뚤어진 허수아비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마저 내게는 욕심이었다
이력서를 부치러 우체국을 간다
한때 밤새워 쓴 편지를 부치던 곳에
생(生)의 서랍을 샅샅이 뒤져
1987년 포철공고 졸업 1991년 육군 만기제대
이따위 먼지까지 탈탈 털어서 간다


황규관 / 패배는 나의 힘 / 창비



 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살때 나는 자유로웠다. 일하고 싶지 않을 때는 그냥 놀았다. 대신 소비를 줄이면 그만이었다. 정 돈이 떨어져 밥을 굶을 지경이 되면, 노가다라도 한탕 뛰면 그만이었다. 돈이 없어도 어떻게 밥은 먹고 살 수 있었다. 돈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을. 뭔가 갖고 싶은 것이 생기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알바를 뛰든 어쩌든 일을 구해서 돈을 벌었다. 원하는 만큼 돈을 갖게 되면 또 일을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했다.

 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면 정말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기 일쑤다. 사정이 생겨 일을 쉬게되면 학원강사를 하거나 이런저런 일들을 해서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한동안은 버틸 수 있었다. 내가 가고 싶으면 전국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가서 활동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이바닥은 늘 사람이 아쉬운 곳이고, 특히 지역으로 갈수록 더 하기 때문에 마음만 맞는다면 일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점점 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들었다. 한때 다니던 단체를 그만두고 다른 곳을 알아보게 있었다. 수도권을 벗어나 지역으로 내려가면 갈 곳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아내의 직장과 집 때문에 섣불리 모험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닥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다시 서울에 있는 단체에 들어갔다. 큰 보람도 없고 활동에 대한 의욕도 없었다. 그냥 당위성 하나로 버티는 나날이었다. 내가 원하는 선택은 넓은 대한민국 땅 전국 곳곳에 있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좁디좁은 서울바닥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날, 가슴 속에서 치받아 올라오는 그 답답함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의 선한 눈매와 웃고 있는 얼굴이 기억난다. 이번 촛불 집회를 통해 여러 차례 스쳐 지나게 되었다. 작가회의 깃발을 보게되면 근처에는 반드시 황규관 시인이 있었다. 그의 시를 찾아 읽기 전에는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시집 한 권을 찬찬히 읽으면서 그에 대해 조금은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그는 어떨까? 이렇게 영혼을 팔아서 서울에 올라온 지금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앞으로 나올 또다른 시를 통해 그의 생각을 엿볼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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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밥과 점심

시와 추억 2008.08.09 06:33


낮밥


삼남매가 평상의
반상에 둘러앉아
볼이 미어져라
상추쌈을 우겨넣는 근경을
열댓 발치에서
묵묵히 바라다보며
오져해하고 있는데
난데없는 큰 손 하나가
가만히 어깨를 짚었다

어머니였다


조성국 / 슬그머니 / 실천문학사


 이등병 시절, 처음 자대배치를 받은 곳은 최전방 철책선이었다. 연대본부에서 다른 동기들은 다들 군용 포차나 육공트럭을 타고 자대로 떠났는데, 우리는 인솔장교와 함께 읍내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어딘가에서 내려서 그곳에서 비로소 포차를 타게 되는데, 인솔장교는 전방에는 한번 들어가면 전화도 할 수 없게 되니까 미리 전화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한 사람당 2통의 전화를 쓰게 해줬다. 물론 전화카드나 동전은 각자가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동기들이 각각 부모님이나 여자친구 혹은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내 차례가 되어 집에 전화를 했으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 아직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어서 연락할 방법은 없었다. 친하게 지냈던 동기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그애는 받았다. 우리 부모님께 대신 전해달라는 말을 하려다가 그냥 삼켰다. 왠 여자애가 전화해서 내 소식을 전하면 그것으로 더 놀랄 양반들이었다. 그냥 전방으로 간다고 잘 지내라는 말을 하고 끊었다.

 대대본부를 거치고, 중대 본부를 거쳐 다시 소초로 이동하는데 며칠이 걸렸다. 소초에서는 앞으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낼 진짜 고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군대에서는 전국 각지의 사람들을 다 만나는데,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물론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왠지 기억에 남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처음 소초에 들어갔을때, 가장 고참은 부산 사람이었고, 그 바로 밑에 있던 고참이 광주사람이었다. 왕고인 부산 사람은 내가 들어가고 오래지 않아 제대했다. 나는 화기분대 기관총 탄약수로 들어갔는데, 화기분대장이 바로 두번째 왕고였던 광주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무척 잘해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사람이 나와 마주치면 매일같이 했던 말이 바로 '낮밥문냐?' 였다. 난 전라도 사투리를 하나도 몰라서 '낮밥'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다. 안그래도 어리버리하던 이등병시절, 천천히 또박또박 잘 말해줘도 긴장해서 두세번은 '잘 못들었습니다!'라고 소리지른 후에야 비로소 고참이 무슨 말은 하는지 알아들었던 시기였다. 그가 내게 다가와 '낮밥문냐?'라고 말하는데, 도무지 무슨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무조건 '잘 못들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이 위기를 어떻게 넘겨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세번째였던가 네번째였던가 계속 내가 못알아듣자, 결국 그는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퍽 치고는 '낮밥 무긋냐고?'라며 언성을 높였다. 그래도 '낮밥'이 뭔지 몰랐던 나는 계속 '잘 못들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숙인 나를 내버려둔채 그냥 가버렸고, 나중에 다른 고참이 '낮밥'이 점심이라고 말해주었다. 낮밥, 이 쉬운 말을 왜 못알아들었을까? 이 시를 읽는 순간 그 고참의 얼굴과 목소리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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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 외롭고 높고 쓸쓸한 / 문학동네 



 이 짧은 시는 무척 유명하다. 너무 유명해서 이 시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이젠 식상한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좋은 시란 자주 읽고 접해야 하기에 다시 한번 찾아보았다. 어쩜 이렇게 짧고 쉬운 말로 이렇게 큰 의미를 담아낼 수 있을까!

 이 시에 얽힌 짧은 일화가 있는데, 대학 시절 습작으로 쓴 단편소설이 하나 있는데, 그 작품에서 주인공이 이 시를 읽는 장면이 나온다. 이야기의 진행상 주인공의 마음을 전해줄 수 있는 시가 하나 필요했는데, 시를 지어서 넣을만한 실력은 없었고, 찾다보니 이 유명한 시가 딱 마음에 들어서 그 장면에 넣었다. 나는 유명한 시이기 때문에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유명한 시이기에 주인공이 쉽게 찾아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읽은 후배가 말하길 너무 유명한 시를 넣어서 오히려 식상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나중에 그 장면에 다른 시를 넣어볼까 고민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 다시 손을 대지는 못했다. 그 글은 내가 지금까지 써본 몇 안되는 습작들 중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평을 받았던 글이고,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글이며, 언젠가는 다시 잘 다듬어보고 싶은 글이다. 다시 손을 본다면 이 시를 빼고 다른 시를 넣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다.

 이 시를 읽으면 먼지쌓인 좁은 단칸방 한켠에 쌓은 소주병들과 1.5리터 플라스틱병의 윗부분을 칼로 잘라서 만든 재떨이에 가득 찬 담뱃재와 꽁초들 그리고 퀴퀴한 냄새가 생각난다. 담배를 입에 물고 공책에 날려 쓴 젋은 날의 흔적들이 기억의 어느 한 구석에서 슬며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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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공장

저 맑은 하늘에 공장 하나 세워야겠다
따뜻한 밥솥처럼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곳
무럭무럭 아이들이 자라고 웃음방울 영그는 곳
그곳에서 연기나는 굴뚝도 없애고 철탑도 없애고
손과 발을 잡아먹는 기계 옆에 순한 양을 놓아 먹이고
고공농성의 눈물마저 새의 날갯짓에 실어 보내야겠다
저 펄럭이는 것들, 나뒹구는 것들, 피 흐르는 것들
하늘공장에서는 구름다리 위에 무지개로 필 것이다
삶은 고통일지라, 죽어도 추억이 되지 못하는 고통을
하늘공장의 예배당에서는 찬양하지 않을 것이다
힘없이 잘린 모가지를 껴안고 천천히 해찰하며
내일이라도 당장 하늘공장으로 출근을 해야겠다
큰 공장 작은 공장 모두 하나의 문으로 통하는
하늘공장에 가서, 저 푸르른 하늘공장에 가서
부러진 손과 발을 쓰다듬고 즐겁게 일해야겠다
땀내 나는 향기를 칠하고 하늘공장에서 퇴근하는 길
지상에 놓인 집 한채가 어찌 멀다고 이르랴


임성용 / 하늘공장 / 삶이 보이는 창


 임성용 시인의 해맑은 웃음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참 부드럽고 편안한 분이었다. 여러차례 만나뵈었지만, 늘 그 웃음을 웃고 계셨다. 촛불집회에서 그리고 어느 모임 뒷풀이 자리에서도 그와 함께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 웃음 외에 다른 표정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의 시는 솔직하고 재밌다. 그의 산문을 먼저 읽어서 보통 글솜씨가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심각한 시를 이렇게 맛깔나게 쓰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그의 시는 겉으로는 재밌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읽는 이를 괴롭힌다! 현실이 어떤지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시는 읽는 이를 불편하게 하기 마련이다.

 50일이 넘게 단식중인 기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경찰은 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나타났다가 기륭 대책위의 격한 항의에 일단 그냥 돌아갔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정권이 하는 짓거리들을 보면 언제 다시 강제로 영장을 집행하려 들지 모른다. 이미 오랫동안 투쟁해왔고 거기에 단식을 시작한지도 오래되었으니, 그 분들의 몸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 상황일지 상상이 안 될 지경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인간들은 도대체 어떤 머리와 가슴을 가진 것들일까 궁금하다!

 답답한 마음에 이 책을 펼쳐들고 읽는다. 임성용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내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듯 한 기분이 든다. 예의 그 환한 웃음을 머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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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웃긴 꽃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 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이지


윤희상 / 소를 웃긴 꽃 / 문학동네



 그를 처음 만난 날은 가장 많은 시인들을 한꺼번에 만난 날이었다. 그 날은 『삶과 문학』출판기념식이 동대문 어느 식당에서 조촐하게 치러졌던 날이다. 대부분 전태일 문학상 수상작가인 <삶과 문학> 동인들이 이십여명 모여서 식사를 하고 책의 출간을 축하했다. 그리고 다같이 촛불집회 장소인 시청광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다시 작가회의 소속의 다른 작가들과 합류했다. 행진대오가 행진을 마칠 즈음 작가들과 함께 동아일보사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인사를 나누면서 보니 대부분 다 시인이었다.

 그 날 윤희상 시인을 처음 만났다. 무척 겸손하고 점잖은 모습의 그는 몇몇 작가들과 인사를 나누고 어디론가 갔다가 나중에 다시 와서 내 옆에 자리잡고 앉았다. 처음에는 다른 작가들과는 별로 말을 나누지 않고 옆에 있는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나에게 조심스레 건네는 몇 마디 말들로 나는 그가 무척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노점상연합회에서 나눠주는 순두부가 맛있다고 꼭 먹으라고 내 손을 잡아 끌고 가기도 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는 매일 밤 촛불집회에 나와서 밤을 새고 아침 해장국을 먹고 출근하는 걸로 유명했다. 그 보다 한참 선배뻘되보이는 어느 시인이 그에게 이제 그만 밤새고 집에서 가족들도 좀 돌봐야하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그 유명한 명박산성이 쌓아지던 순간에도 그가 몇몇 신문 기자들에게 제보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를 알게 되었다. 그가 어떤 시를 썼는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냥 그렇게 같은 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윤희상이라는 이름을 내 머리속에 집어넣었다. 시간이 늦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고 나서 그와 나는 둘이서 조금 더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계속 나에게 시를 써보라고 했다. 나는 뭐라 대답을 못하고 그냥 웃기만 했다. 성명서는 좀 써봤고 이런저런 잡다한 글들을 조금 써봤지만 과연 내가 시를 쓸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글쎄 나는 시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는 시가 의외로 쉽다고 계속 나에게 시를 권했다. 왜 그랬을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그렇게 적극적으로 말하는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 그를 잊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어느 저녁 촛불집회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그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었고, 나도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었다. 우린 눈이 마주쳤고, 잠시 인사를 나눴다. 그가 나에게 뭔가 말을 건넸던 것 같은데 주위가 소란스러워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냥 인삿말이겠거니 생각하고 지나쳤다.

 그의 시를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집을 구입했다. 그의 시는 내가 그에대해 느꼈던 첫인상만큼이나 좋았다. 그의 풍부한 상상력과 세상만물을 향한 그의 따뜻한 시선이 부러워졌다! 이런 멋진 사람과 잠시나마 한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2008/06/17 - [삶의 흔적속으로/감은빛 하늘아래] - 14일 토요일 촛불집회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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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접시꽃 당신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어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도종환 / 접시꽃 당신 / 실천문학사



 도종환이란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시를 좋아하는 한 후배를 통해서였다. <접시꽃 당신>이란 이 유명한 시는 제목은 자주 들었지만 한번도 시 전문을 읽어볼 생각을 못하고 지냈다. 그때 나는 이미 시를 읽기에는 너무 타락한(혹은 시적 감수성을 잃어버린) 영혼이었다. 그 후배는 나를 통해 시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가 시에 한창 빠져서 나에게 시를 이야기 할때 정작 나는 더이상 시를 읽을 수 없는 상태였다.

 우연히 이 시집을 손에 넣자마자 이 유명한 시를 찾아 읽었다. 역시 나는 시적 감수성이 사라져버린 것일까? 별 감흥이 없었다. 나는 이내 이 시집을 기억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다가 바쁘게 지내던 어느날 작은 일로 아내와 다투고 출근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괜히 책상 정리를 하다가 이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머리도 식힐 겸해서 천천히 읽었다. 처음에 그냥 읽었을 때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저 한때 어린 열정으로 시를 읽고, 뭔가를 끄적이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시를 모른다. 시에 대한 고민 없이 오랫동안 살아왔기에 시가 무엇인지 이제 다 잊어버렸다. 아내와 싸운 후, 난 무딘 내 감성이 참 낯설게 느껴졌다. 이런 무뚜뚝한 감성으로 잘도 운동판에서 살아남았구나 싶었다. 새만금 방조제에서, 천성산과 금정산에서 그리고 평택 대추리 벌판에서 생명의 가치를 말하는 나에게 날아든 곤봉과 방패날이었고, 군화발과 주먹이었다. 나는 감수성을 잃어버리고 그저 당위로만 운동판을 버텨왔다. 그래, 나는 스스로 감수성을 버리고 여기까지 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가슴이 터져서 죽을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제 다시 깨닫는다. 예민한 감수성은 시퍼렇게 날 선 칼날이다. 감수성은 활동가가 가져야 할 가장 훌륭한 무기이다. 스스로 무기를 버린 전사라니 얼마나 허무한가. 이 시를 다시 읽으며 내가 왜 다시 시를 읽어야 하는 지 깨닫게 되었다. 그래 다시 시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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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그리운 바다


내가 돈보다 좋아하는 것은
바다
꽃도 바다고 열매도 바다다
나비도 바다고 꿀벌도 바다다
가까운 고향도 바다고
먼 원수도 바다다
내가 그리워 못 견디는 그리움이
모두 바다 되었다


끝판에는 나도 바다 되려고
마지막까지 바다에 남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다가 삼킨 바다
나도 세월이 다 가면
바다가 삼킨 바다로
태어날 거다


이생진 / 그리운 바다 성산포 / 동천사




 바다로 유명한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군대생활도 바다 근처에서 했다. 수도권으로 올라와서 정착하기 전까지 계속 바다 근처에서 살았던 터라, 바다에 대한 나의 애정과 동경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집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 중의 하나가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있었다. 집에서도 창문만 열면 멀리 바다가 보였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베란다 난간에 기대어 저 멀리 바다를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

 힘든 군대생활을 버티게 해준 것도 바다였다. 신병 교육을 받고 처음 자대배치를 받은 곳이 공교롭게도 철책선이었다. 바다에 가까운 철책선이었기에 매일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매일 밤마다 북쪽의 동태를 살피고, 침입흔적을 찾고, 철책선을 지키고, 대남방송을 들으면서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긴 밤이 지나고 해가 뜨면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내 처지를 위로했다. 우리나라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군생활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온갖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달래야 했다. 그래 내가 군대가 아니었다면 평생 이렇게 멋진 곳에 어떻게 올 수 있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며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다.

 서울에 올라와서 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면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지곤 했다. 그러나 바다를 보려면 멀리 인천까지 가야했다. 낯선 곳에서 살아가다보니 바다에 대한 그리움은 향수병이 되어 내 마음 속 한 구석에 자리잡았다.

 신혼여행을 제주로 다녀온 뒤에 아내가 제주에 다시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작년에 아이와 함께 다시 제주에 가기로 한 뒤 아내가 산 책이 바로 이 시집이었다.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읽으며 제주 여행을 기다리는 아내.

 어릴적에는 시를 자주 읽기도 하고 가끔 뭔가 끄적거려서 시 비슷한 것을 쓰기도 했었다. 그렇게 습작공책을 채워나갔던 적도 있었는데, 어느순간부터 시를 쓰기는 커녕 한달동안 시 한편 제대로 읽지 않고 지나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와 함께 동요를 듣고 부르면서부터 다시 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 가끔은 시를 읽자. 지친 마음을 달래줄 나만의 바다로 데려다 줄 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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