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개조심


봉은사 다들 아시죠
신라 때 연회스님이 견성사란 이름으로
처음 창건하였다는 봉은사
흔히들 이런 절을 천년고찰이라고 부릅니다
연회스님은 신라의 고승으로
늘 법화경을 읽고 보현관행을 수행하였는데
정원 연못에 연꽃이 피어 항상 시들지 않았다고 하지요
이렇게 유서 깊은 절이
삼성동 73번지 큰 길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뭇 중생들 곁으로 아주 가까이
다가서 있는 것이지요
그 봉은사 경비실 담벼락에
개 만지다 물리면 책임지지 않습니다
라는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고승의 화두 같기도 하고
선방 스님의 선문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대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라
쓸데없이 개를 만지려다 물린 사람과
책임지지 않겠다는 절간의 경비들이
고만고만하게 모여서
한바탕 재밌는 일이 벌어질 만도 한데
일이 커지면
도량 넓은 스님들이 발뺌이야 하겠습니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요
개한테 물리면 아프니까
봉은사에서 책임져준다고 해도 만지지 말아야지요


임희구 / 삶과 문학 / 삶이 보이는 창




 멋진백작님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강남 삼성동 봉은사에 걸린 바른말 현수막'  이란 글을 봤다. 잠깐 봉은사.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절 이름인데, 어디서 들었을까? 분명히 최근에 봉은사란 이름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근데 강남이라 그쪽 동네는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곳으로 평생 인연을 맺기 어려운 동네인데, 그렇다면 내가 알 수가 없는데, 왜 이렇게 이름이 익숙한 것일까?

 한참동안 고민을 했다. 결국 생각이 안나서 그냥 포기하고 일을 했다. 요즘 계속된 야근에 몸이 많이 망가졌다. 감기몸살기운도 있는데, 오늘 안에 정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도 못자고 오늘도 벌써 새벽 3시를 훌쩍 넘겨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다.

 서둘러 책장을 뒤졌다. [삶과 문학]을 꺼내들었다. 책장을 스르르 넘기다가 찾아냈다. 임희구 시인이 쓴 '봉은사 개조심'이란 시를 펼쳐들었다. 지난 6월에 있었던 [삶과 문학] 출판기념회에서 임희구 시인이 직접 낭독하는 이 시를 들었던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 그 장소가 좀 소란스러웠고, 시인은 마이크도 없이 그냥 육성으로 낭독했기에 잘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책을 찾아보고 시가 좀 특이하다고 느꼈다. 좀 재밌다고 생각되긴 했지만 곧 이 시를 통해 시인이 전하고 싶은 목소리는 무얼까 라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글쎄, 삼성동에 봉은사라는 천년고찰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테고, 그냥 개를 만지려다 물리면 책임지지 않는다는 팻말이 재밌어서 즉흥적으로 지은 것은 아닐까? 쉽게 추측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그러나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다.

 요즘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경찰이 강제로 검문한 이후로 불교계 전체가 대대적인 반정부투쟁에 나서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금 명박이와 어청수가 하는 짓거리를 보면 아무리 도량이 넓은 스님들이라도 도저히 참기 어려울 것 같다! 아니 정말 민중을 위해 애쓰시는 스님이라면 마땅히 이 어이없는 정권에 맞서야 하는게 당연할 듯 싶다!

 나는 종교가 없기에 특별히 불교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하진 않지만, 새만금 삼보일배를 진행하면서 많은 고생을 하셨던 수경스님과 생명평화탁발순례를 오랫동안 해오신 도법스님, 그리고 금정산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문제로 오랫동안 여러차례 단식을 하셨던 지율스님 등 많은 훌륭한 스님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알게모르게 깨달은 바가 있어 불교를 조금은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이명박이라는 천박한 인간이 옛날에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을 때, 참 황당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떻게 한 나라의 수도를 책임지는 시장이라는 작자가 그런 말을 지껄일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때 나는 서울시민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명박이가 아직도 시장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청계천을 파헤쳐서 오랫동안 그 지역에 계셨던 분들을 쫓아내고 있을 때 잠깐 서울시민이었던 적이 있다. 그때 명박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혼자 기분나빠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나는 명박이에 의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인가?

 명박이가 대통령선거에 나온다고 했을 때, 나는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 천박한 인간이 설마 대통령이 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 설마가 진짜 이루어졌고, 그래서 전 국민이 광우병 쇠고기를 먹어야 하고, 의료와 수도 등 공공부문 민영화 때문에 걱정해야 하고,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모든 학생들이 괴로워해야 했다. 선량한 시민들은 볼순세력이니 폭도니 하는 말들로 매도되어야 했고, 경찰의 방패에 맞아 피흘리고, 군홧발로 밟히고, 연행되어 48시간동안 자유를 구속당하고 100만원에서 400만원 사이의 벌금까지 내게 되었다. 도로와 인도를 모두 막아 통행권 및 이동권을 침해하고 심지어 횡단보도까지 막아놓고도 지들이 저지른 짓이 불법인지 모르는 경찰이 미성년자를 폭행하고 연행하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인도에 가만히 서있는 사람들까지도 무조건 잡아 넣고는 적립금인지 마일리지인지를 챙겨가는 등 무슨 게임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경찰이란 이름의 폭력집단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 또 얼마전에는 젖어버린 얇은 티셔츠 하나만 걸친 여성에게 강제로 브래지어를 벗긴 일이 밝혀져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하는데, 경찰이 브래지어도 흉기가 될수 있다고 짖었다고 한다. 왜 팬티도 마저 벗기지 그랬니? 이러고도 국민의 세금을 받아 처먹고 있으니 내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먹고사는 놈들이 나를 두들겨패고 잡아가둬도 찍소리 하나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참 어처구니 없는 세상이 되었다.

 아,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열만 받고 기분만 나빠진다. 일이고 뭐고 다 관두고 잠이나 자야겠다. 비가 온다. 창문으로 비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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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한 보름쯤 전부터 아이가 임을위한 행진곡과 함께 자주 부르는 노래가 흔히 '울라송'이라고 부르는 노래다. '이면바븐 물러가라 물러가라 어떵뚜도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이 노래를 온갖 버전으로 편곡하거나 개사해서 부르고 돌아다닌다. 그래서 한번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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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땀을 많이 흘리는 아이는 여름만 되면 온통 땀띠가 나서 무척 괴로워한다. 게다가 올해 초 허벅지와 등에 빨갛게 올라오는 아토피 증상이 나타나서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이번 여름 우리집에는 아이 피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비상이 걸렸다!

어린이집에 새로 온 선생님이 날적이에 '아이 목욕을 시켜보니 피부가 거친 편'이라고 하면서 '우리 아이도 피부가 거친 편이었는데, 어성초 달인 물로 목욕을 시켜보니 많이 좋아졌다'고 써서 보냈다. 그래서 아내가 생협에 가서 어성초를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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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성초 /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그 전에는 생협에서 죽염을 사서 물에 살짝 타서 씻어주었는데, 조금 효과가 있었다. 어제는 어성초 달인 물을 한번 써보았다. 아내가 부엌에서 어성초 달인 물을 준비하고 나는 욕실에서 아이를 씻기려고 준비중이었다. 아내가 아이에게 '오늘은 어성초 물로 씻어보자'라고 말했는데, 아이가 곧바로 '어성초는 물러가라!' 라고 구호를 외치며 주먹쥔 손동작까지 해보였다.

아내와 나는 순간 놀랐으나, 아이의 그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보니 너무 우스워서 배를 잡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아내가 '그 어청수가 아니라 어성초!' 라고 말했는데, 아이는 다시 '어성초는 물러가라!'를 반복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물러가는 건 어청수! 어청수는 나쁜 아저씨지요? 그리고 우리가 목욕할 물은 어성초로 만든 물!' 이라고 얘기했다. 여기에 아내는 '어청수 따위와 비교당하다니 어성초가 기분나쁘겠다!'고 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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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청수 경찰청장 / 출처 : 뉴시스



아이는 여전히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다. 결국 그냥 아이를 씻기기 시작했다. 어청수는 국가 공권력을 등에 업은 조직폭력집단 두목으로 천하에 나쁜 놈이라고 널리 알려진 인간이지만, 어성초는 먹으면 열이 날때나 소변을 못 볼때 효과가 좋다고 하고, 피부에 쓰면 살균, 항염, 해열, 해독, 여드름 진정, 세포 재생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여러모로 우리에게 좋은 식물이다! 정말이지 어청수 따위와 함께 엮이는 것 자체가 어성초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아이에게 어성초 달인 물로 목욕 시켜보니, 평소보다 피부가 조금 부드러워 진 느낌이 들었다. 땀띠도 조금 가라앉았다. 아직 한 번 밖에 안 해봤으니, 꾸준히 사용해보면서 효과를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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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14일인 토요일엔 전날 조금 무리한 탓인지 한낮까지 잠을 잤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어나긴 했지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피곤은 전혀 가시지 않은 느낌이었다. 저녁엔 행사가 있어서 나가봐야 했다. 아내는 일이 밀려 있다고 일하러 나가고, 나는 아이랑 잠시 놀아주었다.

아이가 잠든 사이 밀린 집안일을 좀 했다. 그러나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다 하지도 못하고 아이 옆에 누워버렸다. 한참 누웠다가 일어나 대충 집안 정리를 마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아이를 장모님께 데려다주고 사무실에 들렀다가 행사장에 가야했기에 갈길이 멀었다. 서둘러 준비를 했는데 잠에서 깬 아이가 바지에 실수를 해버렸다. 평소엔 혼자 일어나서 아이 말로 '쉬통'에 가서 바지랑 팬티랑 내리고 잘 하더니, 하필 오늘같이 바쁜날에 딱 바쁠때에 실수를 해버린 것이다. 부랴부랴 옷을 벗기고 엉덩이와 다리를 씻기고 '아기로션'을 발라주고 나들이 옷을 골라 입혔다. 아이는 갈길이 먼 아빠 맘도 몰라주고 계속 투정부리고 칭얼거리고 반항했다.

암튼 서둘러 아이를 차에 태우고 나섰다. 예상보다 한 삼십여분 늦어지긴 했지만 서둘러가면 어떻게 시간에 맞출수도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로 향하는 도로가 꽉 막혀있었다. 차는 느릿느릿 움직일 수 밖에 없었고, 시간은 재빨리 흘러갔다. 행사 시작시간에는 죽어도 못 맞추겠다고 생각할 때쯤 도로가 조금씩 열렸다. 서둘러 차를 몰아 일단 처가댁에 차를 세웠다. 주차할 때도 시간을 많이 뺏겼다. 평소 우리가 차를 대놓는 곳에 다른 차가 있어서 전화하고 그 차를 뺄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차를 대놓고 아이를 장모님 품에 안겨드리고 시간을 보니 이미 행사시작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차가 밀리는 걸 알지만 어쩔수없이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도 잠시 움직이다 멈추기를 반복했고, 마음이 급했던 나는 사무실에서 버스로 두정거장 거리쯤에서 내려서 뛰었다. 숨이 넘어가도록 뛰어서 사무실에 도착하니 행사 시작 시간은 이미 지나있었다. 찬 물을 한잔 마시고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무거운 짐을 들고 다시 움직였다. 차는 막히니까 지하철을 타야했다. 평소 10분이면 걸어가는 지하철역이 왜이리 멀게 느껴지는 지 궁금했다.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지하철을 탔다. 마침내 행사장소에 도착했을때는 행사 시작시간에서 40여분이 지나있었다. 죄송한 마음에 몸둘바를 몰라 구석에 숨죽이고 있었다.

일단 행사를 마치고 나서 사람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움직였다. 나도 그 틈에 끼어 함께 시청광장으로 갔다. 집회는 거의 끝나가는 분위기였다. 촛불소녀들이 나눠주는 초를 받아 옆사람에게 불을 빌려 촛불을 밝혔다. 한참 듣고 있으려니 깜짝 손님이 왔다면서 호들갑이었다. 어느 탤런튼지 영화배운지가 나온 모양인데, 티비를 안보는 나로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주위 사람들 말로는 박철민이란 이름의 연기자라는데, 그는 계속 '뒤질랜드'라고 외쳤다. 대충 '죽을래' 뭐 이런 뜻인것 같긴한데 정확한 뉘앙스를 알수없어 조금 답답했다. 잠시 후, 거리행진이 시작되었다. 대다수의 행렬은 명동쪽으로 향했다. 명동에서 종로를 거쳐 광화문으로 돌아오는 행진코스였다. 나는 작가그룹과 동행하여 곧바로 광화문으로 향했다. 오늘도 광화문방향은 차벽으로 꽉 막혀있었다. 워낙 오랫동안 막혀있는 모습만 바라봐서 이젠 저 차벽 너머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잘 기억도 안날 지경이다.

작가들은 동아일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나는 차벽앞까지 가서 잠시 서성이다가 돌아와서 그들 사이에 앉았다. 행진 본대는 명동을 걷고 있을 테고, 소수의 사람들은 광화문 사거리를 점령하고 '이명박은 물러나라!'와 '어청수도 물러나라!'를 외쳐대고 있었다. 나는 그닥 할일이 없어 멍하니 작가들의 이런저런 잡담들을 듣고 있었다. 어느 시인이 돈을 걷어 막거리와 안주거리를 사왔다. 나도 일단 한잔을 받아놓고만 있었는데, 한 사람이 내 옆에 자릴 잡고 앉았다.

자신을 시쓰는 윤희상이라고 소개했다. 나도 간단히 내 소개를 했다. 내 밥벌이 수단이 바뀌긴 바뀌었나보다 하고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늘 집회를 주최하는 입장에 있었고, 집회장소에선 이런저런 잡다한 실무로 늘 바빴다. 여유가 생겨도 이런저런 단체쪽 활동가들과 구석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을 텐데, 요즘은 집회 주최측이 아닌 시민의 입장에서 계속 집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활동가들이 아닌 작가들과 앉아 있는 모습이다. 참 낯설다!

윤희상 시인께선 다른 작가들과 말씀을 나누지 않고 혼자 막거리를 홀짝 거리더니 옆에 앉은 내게 말을 건넨다. 막걸리가 참 달다는 말씀이셨다. 나는 술을 마실 수 없는 입장에서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후에 또 내게 말을 걸었는데 이번에는 저기 앞쪽에 노점상 연합회 분들을 가르키면서 조금 있으면 저쪽에서 순두부를 나눠주는데 진짜 맛있다고 꼭 가서 먹으라고 하신다. 이번에도 역시 웃으면서 '네' 하고 답했다. 이 분은 그 후로도 계속 내게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다. 잠시 말씀을 나누면서 이분이 꽤 오랫동안 계속 촛불집회에 함께해왔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물대포를 쏘았던 31일 밤이후로 거의 매일 밤새 거리에 남아계시다가 아침해가 뜨면 돌아가곤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중에 다른 작가들에게 들으니 작가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얘기라고 했다. 윤희상 시인이 매일같이 나와서 밤새도록 머물다가 아침에 해장국 먹고 돌아간다고.

앞쪽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갑자기 윤희상 시인이 일어서더니 주위 작가들에게 서두르라고 손짓한다. 순두부를 나눠주니 빨리 가서 받아오라는 얘기다. 나는 그닥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이 분이 워낙 권하셔서 받아왔다. 따뜻한 순두부를 한술 뜨니 맛있었다. 거리에서 이렇게 먹으니 더 맛있는 것이리라. 준비해주신 분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이렇게 맛있는 것이리라.

받아온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다시 주위 작가들의 이런저런 얘기들을 듣고 있었다. 조선일보와 함께 일해온 조경란 작가가 한겨레에 글을 한편 실었는데 괜찮은 내용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또다른 누군가가 그럼 조선일보쪽에서 안좋아하겠다고 자연스레 관계를 정리하지 않을까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어떤이는 공지영 작가에 대해서 말하기도 했다.

다시 윤희상 시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글 쓰시는 분이냐고 묻길래 아니라고 했다. 여기 나를 제외한 대부분은 작가지만 나는 아니라고 했다. 그랬더니 내게 글 쓰기를 권하는 말씀을 하신다. 아마 내가 겸손해서 그러는 것이리라 여기면서 평소에 글을 많이 써보라고 권하신다. 특히 시를 써보라고 하신다. 본인이 시인이라 그런지 계속 시를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시간이 늦어지면서 대부분의 작가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어제 금요일과 달리 오늘은 토요일임에도 별다른 큰 움직임이 없으니 사람들이 일찍 흩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주위 작가들이 다들 돌아가고 그 자리에는 윤희상 시인과 나만 남았다.

처음 만났음에도 꽤 많은 얘기를 나눴다. 시인은 겸손하고 조용한 성격인 듯 했지만 본인의 생각을 말할때는 아주 단호했다. 그도 내가 그랫듯이 많은 밤을 거리에서 보낸 사람이라 그런지 처음 만났음에도 호감이 갔다. 어느덧 자정이 다 되어가기에 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집에가서 자고 싶었다. 시인은 헤어질때도 내게 꼭 시를 써보라고 권했다. 나는 웃음으로 대답을 피하고 헤어졌다.

또 머지 않은 어느 날 거리에서 보게 되겠지만 그 밤을 그와 함께 지새우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몸은 피곤했지만 가슴이 따뜻한 거리의 시인 한 사람을 알게되어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Posted by 감은빛

지난 주말 진행된 촛불 행진을 폭력진압 했던 경찰청장 어청수가 '폭력시민을 강경진압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게다가 고생한 전/의경부대에 2억6천만원을 격려금으로 지급한다고 밝혔다.

토요일 밤에서 일요일 아침까지 계속된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심하게 다친 시민은 백여명에 이르고 일요일밤에서 월요일 아침까지 다친 시민 역시 수십명에 이르고 있다. 많은 시위대들은 경찰의 불법채증에 맞서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에 카메라를 들이댔고, 덕분에 백분의 일도 안되겠지만 경찰의 폭행장면이 인터넷을 통해 온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이에 수많은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다!

나는 금요일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계속 시위현장에 있었으며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경찰과의 대치선에서 보냈기 때문에 수많은 폭력을 경험했다. 일일이 다 얘기하려면 끝도 없다. 토요일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머리위에서 쏟아지는 물대포에 넘어지고 쓰러진 시민들이 다쳐서 실려나가는 장면들부터 시작된 악몽같은 순간은 아침까지 계속 되었다. 버스 위에서 물대포에 저항하다가 실신해서 실려나간 사람도 있었고, 몸싸움도중 내 바로 뒤에서 쓰러져서 나와 주위사람들이 직접 안고 나가서 의료지원단에 넘겨준 여성분도 있었다. 내 주위에서 전경의 방패에 얻어맞은 수많은 사람들을 어찌 일일이 다 말할 수 있을까? 순식간에 끌려가서 집단 구타당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보고도 어찌 할 수 없는 그 안타까움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일요일 아침 첫차가 다닐 시간쯤 본격적으로 밀고 들어온 경찰에 밀려 대열이 완전히 무너진 순간 앞에서 몸으로 저항하던 나를 비롯한 남성들은 순간적으로 치고들어온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내 바로 옆에서 방패에 찍혀 넘어져서 밟히는 사람들을 두고 도망쳐야만 했던 내 심정을 어찌 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사동까지 밀려서 잠시 소강상태에 있다가 삼거리 중 두개 방향에서 개미떼처럼 밀고 들어온 어마어마한 경찰 병력을 보는 순간 머리가 멍해짐을 느꼈다. 이거 잘못하면 오늘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들은 악을쓰며 '때리지 말라'고 외쳤지만 경찰들은 달려들면서 무자비하게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고 군화발로 밟아댔다. 인도로 도망쳐도 소용없었다. 건물안으로 도망쳐도 소용없었다. 끝까지 뒤쫓아와서 결국은 집단 폭행을 저질러대는 경찰을 보는 순간 오늘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라는 공포감이 들었다.

일요일 밤에는 전날 폭력진압에 대해 여론이 악화된 점을 감안해서 그랬는지 살수차는 보였지만 물대포를 쏘지는 않았다. 대신 소화액을 계속 뿌려댔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전경병력이 밀고 들어오면서 나와 시민들은 전경들과 몸싸움을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앞열 방패 뒤에 있던 녀석들이 조그만 빨간 소화기를 꺼내더니 맨앞에서 대치중이던 시민들의 얼굴을 향해 뿌려댔다. 당연히 그 사람들은 얼굴을 감싸쥐고 쓰러졌고 대열은 무너졌으며 그 틈으로 경찰들은 방패를 휘두르며 들어왔다. 지휘관인듯한 놈이 왼팔에 붙어있는 작은 타원형의 방패를 마치 액션영화의 한장면처럼 휘두르며 앞에 있던 시민의 목을 쳤다. 그는 쓰러지고 뒤이어 달려온 전경들이 마구 밟고 방패로 찍어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내 바로 옆에 선 남자가 눈에 소화액을 맞고 비틀거렸다. 나는 재빨리 그의 팔을 잡고 뒤로 물러났으나 달려든 전경은 방패로 그의 어깨를 찍었고 옆에서 다른 놈이 방패로 그를 잡은 내 팔을 찍었다. 그는 끌려가서 집단구타를 당했고 나는 겁에질려 뒤로 물러났다. 어느정도 뒤에서 다시 시민들이 서로 팔짱을 끼고 대치선을 구축했다. 경찰들은 잠시 틈을 두고 있다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경찰의 방패와 내 어깨가 충돌하고 서로 밀고 밀리는 힘싸움이 잠시동안 있었다.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들이 '으쌰 으쌰'하고 박자를 맞추고 경찰이 뒤로 조금씩 밀리는 순간 또다시 두번째 열에 있던 전경놈들이 빨간 소화기를 꺼내어 사람들의 얼굴을 겨냥하고 쏘았다. 내 옆사람의 옆에 있던 남자가 욕을 내뱉으며 괴로워했다. 눈을 뜨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 사람이 팔짱을 풀고 뒤로 물러나려할 때 갑자기 전경들이 밀어붙이면서 방패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소화기에 얼굴을 맞고, 방패에 찍히고, 군홧발에 밟혔다!

어청수라는 개만도 못한 놈에게 묻고 싶다. 경찰이 이렇게 무자비한 폭력을 사용하는 동안 시민들이 도데체 어떤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대체 아무런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맞선 시민들이 물대포와 소화기와 방패와 곤봉과 헬멧과 보호장비를 갖춘 경찰에게 어떤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물대포와 소화기와 곤봉과 방패를 갖춘 경찰병력 앞에 녀석을 혼자 맨몸으로 세워놓아도 스스로 폭력시민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저 개만도 못한 놈이 뚫린 입이라고 지껄이는 헛소리를 듣고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네 놈의 머리가 순전히 목위에 얹혀 있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 시라도 빨리 그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다! 그리고 '물대포에 맞아서 부상당했다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는 명영수라는 개만도 못한 놈이 서울지방 경찰청 경비과장으로 있다던데 네 놈의 머리도 장식품이 아니라면 당장 사퇴해야 할 것이다!

명심해라! 무고한 국민 한사람이 다칠때마다 백명의 아니 천명의 아니 만명의 분노한 국민들이 거리로 나설 것이다!

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