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0.08.13 아기의 함박웃음 (2)
  2. 2009.10.14 엄마 없는 하늘 아래 (4)
  3. 2009.07.16 술이 그렇게 좋아? (2)
  4. 2009.07.16 아이의 외국어 실력 (4)
  5. 2009.06.17 아이 밥 먹이기 (6)
  6. 2009.06.09 아침부터 전쟁 (4)
  7. 2009.03.31 딱지치기 (10)
  8. 2009.03.19 이름짓기는 정말 어려워! (2)
  9. 2009.02.27 아빠가 제일 좋아! (4)
  10. 2009.02.09 내 동생이야 (8)
  11. 2009.02.03 아이가 사준 저녁식사 (12)
  12. 2008.12.30 08년 12월 아이의 말들 (18)
  13. 2008.10.05 머리 감기는 중에 잠든 아이 (8)
  14. 2008.10.05 원장 협박 사건에 대해 아내가 쓴 글 (2)

긴박한 상황.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골목길을 헤집으며 도망치는 중. 숨은 턱에 차오르고, 발은 납덩이라도 달아놓은 것마냥 무겁다. 뒤에서 쫓아오는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개똥을 피하려고 발을 넓게 벌려 펄쩍 뛰는 순간, 다리가 더이상 말을 듣지 않아,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바로 등 뒤까지 다가온 발소리. 위기의 순간!

 

눈을 떴다. 꿈이었다. 요즘 계속 쫓기는 꿈을 꾼다. 최근에 찾아볼 이름이 있어서 들춰보다가 다시 읽게 된 책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 때문일까. 이번에 새로 읽으면서 새삼 느낀 게, 당시 운동가들의 정신력이 정말 대단했다는 점이다.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비밀정보를 불지 않았던 여러 선배 운동가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내가 만약 그 시대에 사회운동을 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고문은 시작도 하기 전에 다 불어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선배 운동가들에 비하면 겨우 용역깡패들이나, 전경들에게 조금 맞았다고 억울해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아직 모닝콜이 울리기 전이라 조금 더 누워서 뒤척이고 있는데, 큰 아이가 내 쪽으로 굴러와서 내 배에 머리를 박는다. 머리는 땀에 젖었는데, 손 발은 또 차다. 제 자리에 똑바로 눕혀주고 땀을 닦은 후, 이불을 배까지만 덮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눕는데, 잠시를 못 참고 발을 굴려 이불을 차내버린다. 다시한번 이불을 덮어주고나니, 이번엔 저쪽에서 둘째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조그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기는 벌써 잠이 깨서 혼자 놀고 있던 참이었던 것 같다. 손가락을 열심히 빨고(아니 정확히 말하자만 빨아보려고 애쓰고)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보며 '에', '앙' 등 글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짧은 소리를 주기적으로 내면서, 발을 열심히 동동 굴리고 있다. 잠시 내려다보니 녀석이 나를 알아본다. 눈동자가 나를 향하더니 동공이 열리는 듯, 그 맑고 투명한 눈동자 속에 내 얼굴이 어렴풋이 비쳐보인다.

 

녀석은 나를 알아보자마자 나를 향해 열렬히 손발을 움직여 버둥거린다. 안아달라는 표현일까.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러주니 곧바로 함박웃음을 짓는다. 요즘 느끼는 건데, 아기의 함박웃음만큼 대단한 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기분 나쁜일이 있어도 요 녀석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된다. 오늘따라 무슨 기분이 그리 좋은지 녀석은 평소에 잘 보여주지 않던 함박웃음을 두세번 연속으로 보여준다.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잠시 녀석을 얼르며 놀았다. 평소보다 더 기분이 좋은 게 틀림없다. 조그만 손짓 하나에도 녀석은 계속 웃음을 보이며 반응했다. 잠시 아기와 놀았으니, 이제 화장실에 가야겠다 싶어서 마지막으로 녀석의 뺨에 뽀뽀를 하려고 고개를 숙였다. 코가 녀석의 배 근처를 스치는 순간, 냄새가 확 올라왔다. 응가를 쌌던 것이다!

 

그제서야 녀석이 왜 유난히 반가워했는지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응가를 싸놓고 빨리 치워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발을 동동 구르고,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갑자기 응가를 치워줄 사람이 나타나자, 반가움에 함박웃음을 보였던 것이다. 그것도 평소에는 한번 보여줄까 말까 한 것을 두세번 연속이나 보여주었던 걸 보면, 응가를 싸놓고 어지간히 기다렸던 모양이다.

 

기저귀를 다 갈아주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음을 싹 거둬버린 아기. 또 응가를 싸고나서 그 웃음을 다시 보여줄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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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아내는 1년에 한번씩 해외출장을 간다. 결혼 전에는 몇 번이나 갔었는지 모르겠지만(아마 서너번 정도 였던 것 같은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는 올해가 3번째다. 재작년 아내가 처음으로 떠났을때는 사실 걱정이 좀 많았다. 그때 하필이면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지독한 눈병에 걸려버려서, 하루종일 아이를 돌보며 지내야 했다. 병원에 데려가고, 하루 세번 약 먹이고, 수시로 안약을 넣어주는 등 아이랑 일주일 정도 지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는 어쩐 일인지 예상보다 아이가 엄마를 그리 많이 찾지 않았다. 엄마는 지금 외국에 있고, 몇 밤 지나면 온다고 얘기해주면 잘 알아듣고, 엄마 대신 아빠를 의지하며 잘 지냈다. 눈병 때문에 힘들었지 아이가 엄마를 찾아서 힘들지는 않았다.

 

작년에 두번째 출장때는 아이가 특별히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처음 이틀 정도만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불안해하고 조금 울기는 했지만, 그 후에는 다시 아빠랑 잘 지냈다. 대신 이번에는 엄마가 보고 싶지만 억지로 참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온 후에는 아빠를 무시하고 엄마에게 더 심하게 의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올해는 그래서 가기 전부터 좀 걱정을 했다. 작년의 경우 어떻게 지나가기는 했지만, 올해는 훨씬 더 심하게 엄마를 찾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엄마가 떠난 첫날 밤에 아이는 심하게 울어대며 엄마를 찾았다. 아빠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듯 했다. 어떻게든 아이를 재워보려고 안아주고 달래줬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 아이는 새벽 2시쯤까지 울다가 지쳐 잠들었고, 다음날 아주 늦게 일어났다. 그리고 깨자마자 또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울어댔다.

 

둘째날인 어제는 저녁에 일부러 외식을 해서 기분을 맞춰주고, 집에 돌아와서는 보고 싶다는 만화도 보여줬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는 괜찮았지만, 불을 끄고 눕자마자 또다시 엄마를 찾으며 눈물을 흘렸다. 어찌나 서럽게 울어대는지 마치 다시는 엄마를 못보게 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엄마는 일주일만 지나면 돌아오니까, 이제 여섯 밤만 자면 올거라고 아무리 얘길해도 듣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아빠를 의지하기 위해서 안아달라고 보챘을텐데, 이번에는 아빠는 아예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그저 혼자 엎드려 울어댔다.

 

역시나 그 다음날 또 늦게 일어났다. 벌써 이틀이나 오전에 일을 하지 못했기에, 셋째날인 오늘에야 말로 일찍 재워서 일찍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할텐데. 오늘도 아이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바로 집으로 오지 않고, 동네를 한바퀴 돌다가 외식을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졸려해서 안고 왔더니 그새 잠이 들었다. 아직 잠들기에 이른 시간이라 지금 잠들면 오히려 밤에 깨서 안잘수도 있는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아이를 깨웠다. 밥을 먹고 왔는데도 다시 배가 고프다기에 집에 있는 밥을 몇 숟갈 더 먹이고, 씻겨서 자리에 뉘였다. 엄마는 이제 다섯 밤만 자고 나면 온다고 말해주고, 예쁘게 잘 자고 착하게 일찍 일어나면 엄마가 선물을 사올 거라고 말해줬다. 불끄고 자리에 눕자마자 다시 엄마를 찾으며 울었지만, 오늘은 비교적 일찍 울음을 그쳤다. 그러나 이미 잠이 달아나버렸는지, 쉽게 잠이 들지 못한다. 옛날 얘기를 해주고 자장가를 불러줘봤지만 별로 소용이 없다.

 

그래도 확실히 이틀이 지나고 나니 엄마가 없는 상황에 조금 적응을 하게 된 것 같다. 해가 갈수록 더욱 힘들어지게 되니, 내년에는 출장을 가지 않도록 설득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올해만해도 조금 쉽지 않을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정도로 힘들줄은 몰랐다.

 

내가 힘든 건 뭐 아빠니까 어쩔 수 없다지만, 사실 가장 힘든 건 아이 자신을 것이다. 그렇게 서럽게 울어대면서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지 모른다. 마음 같아서는 더 엄격하게 해서 일찍 재우고 일찍 일어나게 하고 싶지만, 막상 피곤해서 코까지 골아대며 늦게까지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불쌍해서 더 심하게 깨우지를 못한다.

 

지금은 내가 옆에 있으니 계속 나에게 말을 거느라 더 못자는 것 같아서, 혼자 눈감고 누워있으라고 달래놓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벌써 1시간 가까이 지나도록 안자고 있는 기척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앞으로 남은 4일은 그래도 조금 더 수월하리라는 사실에 위안을 삼으며 다시 아이 옆에 가서 어쨌든 재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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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TAG 육아
임시 백수생활이 이주째 접어들었다. 일하는 동안은 일주일에 두번 혹은 세번 퇴근 후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고,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다시 뛰어도 보육마감시간까지 도착하지 못했다. 매번 5분 혹은 10분이상 늦어서 선생님들께 죄송스런 마음이었고, 혼자 마지막에 남아 있던 아이에게도 미안했다. 일을 쉬기 시작한 7월부터는 매일 내가 데리러 갔고, 또 일찍 데리러 가서 마지막에 혼자남아있지 않도록 했다. 집에 오면 함께 저녁을 먹고 잠시 집앞 공원이나 놀이터에 산책을 하기도 하고, 함께 만화를 보기도 했다.

지난 주에 하루는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시장에 들러서 순대와 맥주를 사왔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아이가 아직 밥을 먹고 있는 동안 나는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는 순간부터 호기심을 발동시킨 녀석. '뭐야? 술이야?', '그래.', '아빠, 이거 술이야?', '그래.', '맥주야? 맥주?', '그래.', '아빠, 나는 술 못먹지? 응? 어른들만 먹는 거지?', '그래.' 내가 홀짝 홀짝 맥주를 마시는 동안 아이는 밥도 안먹고 계속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그러다 갑자기 녀석이 '아빠, 술이 그렇게 좋아?' 라고 물었다. 이런말도 할줄 알았구나 싶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좋다고 하면 왠지 안될것 같고, 안좋다고 대답하면 곧바로 '그럼 왜 마셔?'라는 대답이 나올 것 같은데...... 일단 별로 안좋아한다고 대답했더니 역시나 '그럼 왜 맨날 맨날 마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저녁에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저녁에 약속을 쉽게 잡지 못하는 나는 가끔 집에서 아이를 앉혀놓고 맥주를 마시긴 했는데, 그렇다고 아이에게 '맨날 맨날'이란 소릴 들을 정도는 아니었던것 같은데......

그 다음 질문이 더 걸작이다! '아빠, 내가 좋아? 술이 좋아?' 헉! 이 녀석! 비교할 게 없어서 너랑 술을 비교하냐? 이 녀석아! 이 대화를 누가 들으면 알콜 중독 아빠인 줄 알겠다! 일단 술과 사람을 비교할 게 못된다는 것을 대충 알려주고 다시 술을 마셨다. 녀석은 조금 놀란 내 반응을 보고 재밌었는지, 계속 같은 질문을 하며 귀찮게 굴었는데, 밥이나 다 먹고 얘기하라고 한마디 했더니 삐졌는지 조용해졌다.

그 일로 혹시 녀석이 아빠가 술 마시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인가 싶어서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고 나는 채식라면을 끓여서 먹었는데, 아이는 라면이 맵다고 안먹는다고 했다. 한참 맛있게 라면을 먹고, 국물을 후루룩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녀석이 한마디 했다. '아빠, 이 국물이 그렇게 좋아?' 듣고나서 잠깐 생각해보니 어디서 많이 듣던 질문인 것 같은데...... 그제서야 며칠 전 맥주 마시던 날 기억이 났다. 아이는 그 다음 질문도 잊지 않았다. '아빠, 내가 좋아? 국물이 좋아?' 이 녀석. 이제보니 아빠를 데리고 장난을 치고 있네! 국물이 더 좋다고 대답했더니 '아빠~! 나만 좋아해야지~! 내가 아빠 딸이잖아!' 이 녀석 평소에 고집부리고 말 안들을 때는 아빠는 안중에도 없으면서 왠 아양이냐! 네가 무슨 츤데레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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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옛말에 자식 자랑하는 사람을 두고 팔불출이라고 했다지만,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우리 아이가 너무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건 아이 키우는 부모들 대부분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아닐까.

엄마, 아빠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아이는 언어감각이 탁월한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 부모가 둘 다 어려서부터 언어쪽에 뛰어난 소질을 갖고 있었다.(참고로 둘 다 수학쪽은 아예 포기했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둘 다 대학에서 언어 관련 학과를 전공 혹은 부전공으로 선택했다. 엄마는 외국어로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고, 아빠는 현재 밥벌이와는 관계 없지만 대학생 시절까지도 알바나 자원활동 등을 선택할 때 언어 혹은 외국어 능력을 적극 활용했다.

아이가 말이 무척 빨랐다는 건, 아빠를 닮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어린 게 꾀가 많아서 말만 쫑알쫑알 하고 일어나 걷지는 않았다고 한다. 걷는게 비정상적으로 늦었고, 말하는게 비정상적으로 빨랐다는 얘기다. 아이를 키우면서 보니, 우리 아이가 딱 그랬다. 신기했다.

요즘보니 우리말 실력도 부쩍 늘었지만, 이런저런 영향으로 외국어도 배워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린이 집에서 반드시 들어야 하는 영어수업(간단한 단어들과 노래를 배움)을 빼고는, 딱히 열심히 가르치거나 한 적도 없는데 언제 이런 것들을 배웠을까 싶다.

1. 독일어
아이가 아직 한참 어렸을때, 우리말의 'ㄹ' 발음을 독일어 'R' 발음처럼 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독일어는 잘하는 사람도 늘 어려운 발음인데, 아이는 이 발음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관련 포스트 => 완벽한 독일어 R 발음 )

우리집 책장 한쪽에 잔뜩 쌓여있는 독일 동화책을 엄마가 가끔 읽어준다. 그리고 엄마에게 간단한 독일어 단어들을 배워서 가끔 생각나면 불쑥 불쑥 말한다. '당케', 라던가 '비테' 라던가 '구텐 탁' 같은 아주 간단한 단어들 말이다. 아직 우리말 발음도 서툰 녀석이 독일어 발음만큼은 엄마의 발음을 정확하게 따라한다.

2. 영어
이 땅에 영어 조기교육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것도 벌써 옛날 일이다. 어느 몰상식한 부모들은 어린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혀를 찢는 수술을 시키기도 했고, 웬만한 부모들은 영어 유치원이나, 영어 학습지(윤선생과 같은) 등을 시키며, 영어 마을 같은데 자주 보내려고 안달을 하는 것 같다. 나는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 아이에게 억지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못 마땅해서 영어를 가르치는 어린이 집은 안보내고 있었다. 작년에 어린이집을 옮기면서 찾아보니 근처에 영어를 안 가르치는 어린이집은 아예 없었고, 그나마 지금 보내는 곳이 영어를 선택과목으로 두고 있어서, 영어수업을 안 듣는 조건으로 아이를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올해 상급반으로 올라오면서 영어가 필수과목으로 바뀐 것이다. 갑자기 바뀐 방침에 대해 항의했지만, 우리 집을 제외하고 모든 집에서 영어교육을 원한다고 하는데, 더 따질수가 업었다.

확실히 어린 아이에게 교육의 효과는 빠르게 나타나는 것 같다. 영어를 배운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왠만한 동물 이름을 다 외워버렸다.(엄마, 아빠도 잘 모르는 동물이름들도 있었다.) 그리고 인사말을 배워오더니, 숫자세기, 요일, 날씨 등을 배웠다.

아이가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요일 묻는 거랑, 날씨 맞추는 것이다. '아빠, 오늘은 수요일이니까 웬즈데이지?', '아빠 오늘은 클라우디네. 비는 안오니까 레이니는 아니지.' 그러다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오후쯤 비가 올 거라고 하면, '아빠, 나중에 비 온대. 그러니까 지금은 클라우딘데, 나중에는 레이니래!'라고 또 말을 바꾼다.

뭐 이렇게 간단한 단어들을 위주로 영어를 가볍게 익히는 것은 괜찮겠지만, 아직 우리말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주입식 교육을 시키는 건 아닌지 가끔 우려가 될 때가 있다.

3. 일본어
티비가 없는 우리집에서 아이에게 유일한 낙은 컴퓨터로 보여주는 각종 만화들이다. '뽀로로' 나 '둘리' 를 무지 좋아했는데, 최근에는 어린이집을 통해 다양한 만화들을 접하게 되어 아빠에게 이런저런 요구들을 하기 시작했다.(캐릭캐릭 체인지를 보여달라거나....) 아빠도 만화를 무척 좋아해서 아이랑 함께 보는 걸 즐기는 편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도 종종 보여주지만, 가끔은 아빠가 좋아하는 만화를 함께 볼 때도 있다. 아빠는 일본 애니를 종종 보는데, 어린 시절 재밌게 봤던 만화들을 찾아서 다시 보거나, 최근에 방영하는 만화를 보기도 한다. 이건 우리말로 된 게 아니라 일본어로 된 영상에 자막을 넣어서 보는 것이다. 아이는 그림만 보고 이해할 뿐, 말은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그런데도 아이는 전혀 지루해하지 않고 재밌게 잘 본다. 같이 보다보면 가끔 아이가 들은 몇몇 단어들을 따라하곤 하는데, 이게 신기하면서도 재밌다. 아빠가 잘 모르는 단어들을 귀신같이 집어낼 때면 덕분에 일어 공부가 되기도 한다.

며칠전 아이가 혼자 놀면서 '다다이마', '와따시와.......(어쩌고 저쩌고- 못알아들었음)'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특히 '다다이마'의 발음과 억양은 너무 정확해서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어디서 배웠냐고 물었더니 어린이 집에서 선생님이 '도라에몽'을 보여줬는데, 거기서 들었다고 한다. 당연히 무슨 뜻인지는 몰랐다. 그냥 그 특유의 억양을 살려서 따라할 뿐이었다. 어린이 집에서 종종 만화를 보여준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우리말로 된 것만 보여주는 줄 알았는데, 일본어 영상도 보여주나보다.

이외에도 엄마, 아빠랑 같이 영화를 보면 그 말을 따라하기도 하는데, 중국영화를 함께 보고 있으면 몇몇 재밌는 발음들을 따라한다. 원래 중국어 발음이 재밌는 게 많지 않은가!(특히 광동어!)

※ 지금까지 팔불출 아빠가 아이 자랑을 늘어놓는 과정에서 다소 과장이 있을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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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매일 아침마다 아이를 깨우고 밥먹여서 데리고 나오느라 무척 힘들다! 오늘도 안일어나겠다고 짜증부리고 소리지르는 녀석을 억지로 달래서 일으켰다. 나는 여유가 없어서 아침밥을 안 먹어도(급하게 먹으면 꼭 체하는 편이라서 차라리 안 먹는게 낫다!) 아이의 밥은 꼭 먹여서 보내야 하는데, 요즘들어 밥을 안 먹으려고 한다.

녀석도 막 일어나자마자 밥맛이 없는 건 당연하겠지만, 부모 입장에서 바쁜 아침에 얼른 한 숟갈이라도 떠 먹이고 나가야 할텐데, 안먹겠다고 버티면 정말 난감해진다. 최근에는 씨리얼, 과일, 치즈 등으로 간단히 먹이기도 하는데, 그마저도 안 먹겠다고 버티는 날이 더 많다!

게다가 반드시 치마를 입고 가겠다고 고집부리고, 꼭 타이즈를 신어야 겠다고 고집부리고, 분홍색 리본이 달린 예쁜 구두를 신겠다고 또 고집부리고....... '어휴 정말 이걸 그냥 확!' 하는 마음을 참고 또 참으며 달래야 한다!

저녁이 되면 아이에게 뭘 해먹여야 될지 몰라 또 골치가 아프다.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에 시장 골목을 지나게 되는데, 야채가게, 생선가게 등을 지나며 힐끔 힐끔 둘러보아도 딱히 뭘 해먹여야지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최근에는 워낙 여유가 없이 살다보니, 반찬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 국하나 끓이고 계란 하나 구워주고 김치와 김만 놓고 밥을 먹이다보니 이렇게 먹여서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아이에게 미안했다.

물론 내가 자랄 때는 김치 하나만 있어도 좋았고, 김치가 없어도 간장과 마아가린 한 숟갈이면 정말 맛있게 먹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으니 그럴수는 없지 않은가.

오늘은 또 들어가면서 뭘 해먹여야 하나 벌써 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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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어제밤 아이가 조금 늦게 잠들어서 조금 염려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소풍가는 날이라서 조금은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깨워도 깨워도 꼼짝도 안하는 녀석! 한시간을 깨워도 도저히 일어나지 않길래, 그냥 안고 가야겠다고 맘먹었다. 아내는 가방과 신발 옷 가지를 챙겨들고 나는 녀석을 번쩍 안아들었다.

그런데 현관을 나서기도 전에 잠이 깬 녀석이 누워서 자겠다며 울고, 불고, 소리지르고, 악을 쓰고, 발버둥을 치는데, 복도에 녀석의 울음소리와 고함소리가 울려서 귀가 멍했다. 나를 마구 때리고 옷을 잡아 당기고 발로 차대는 통에 아이를 놓칠 뻔 했다가 다시 안아들고 일단 계단을 내려왔다. 현관앞에 이르니, 밖에 비가 내리는데 아내가 아직 우산을 갖고 내려오지 않았다. 그 동안에도 아이는 계속 소리를 지르며 울어대고, 발버둥치고, 진정시켜보려고 눈을 맞추고 왜 우냐고 물었더니, 집에서 더 잘거라고, 누워서 잘거라고 울먹이며 말한다. 가만보니 입술이 터져서 입안 가득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소리지르고 발버둥치다가 제 손에 맞은 건지 어쩐 건지...... 일단 내려놓고 휴지를 찾아 피를 닦이는데, 발이(양말만 신은 채로) 땅에 닿으니 나를 밀쳐내고 집으로 가겠다고 또 난리를 친다.

아내가 우산과 아이 가방, 신발 등을 갖고 내려와서 신발을 신기려고 하는데, 녀석은 계속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밀쳐내고 집으로 가겠단다. 그래서 그럼 너 혼자 집에 가라고 우린 사무실가야하니까 혼자 집에 가서 자라고 하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엄마랑 같이 가겠다고 울며 매달렸다. 엄마가 끝내 외면하자 다시 나를 붙잡고 매달리면서 함께 집에가자고 한다. 나도 아이 팔을 떨치고 몸을 돌려버렸더니 다시 엄마한테 가서 매달린다.

일단 신발부터 신어야 한다고 억지로 신발을 신기고 설득해서 데려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이가 '쉬! 쉬!'하고 소리를 지른다. 얼른 아이를 안아서 옆에 있는 화단을 향하려는데, 벌써 오줌이 옷을 타고 내려와 신발을 적시고 있다. 깨자마자 울고 난리 치느라고 쉬마려운 걸 미처 느끼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내가 아이를 야단쳤다. 쉬를 바지에 싸고 나서야 아이는 좀 얌전해졌다. 자기가 한 잘못의 심각성을 깨닫고 지금은 얌전하게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내는 가방들을 지키고 나는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다. 젖은 옷과 신발 등을 벗기고 대충 닦인 다음에 새 옷을 꺼내 입혔다. 이제서야 말을 듣기 시작하는 녀석. 다시 한번 잘 타일러서 손을 붙잡고 어린이 집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전쟁을 치른 기분이다! 지겹다! 매일 아침 녀석의 잠투정, 음식투정, 옷투정을 받아주는 것이 너무 힘들다! 특히 요즘은 치마와 타이즈가 아니면 안 입겠다고 난리를 치는데, 상대하고 있으면 혈압이 올라 쓰러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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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딱지치기

아이랑 나랑 2009.03.31 00:07

며칠 전, 아이가 말을 안듣고 고집을 부리길래, 뭔가 호기심이 동할만한 게 없나 하고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빳빳한 포스터 대여섯장을 발견했다. 문득 딱지를 접어주면 좋아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순식간에 딱지 여섯개를 접어줬다. 아주 어릴때, 벌써 강산이 세번 바뀔만큼 시간이 흘렀을만큼 옛날에 딱지치기를 즐겨했지만, 그 이후로 접어본 기억이 없어서, 처음 접기 시작할 때는 조금 불안했다. 그런데 막상 접기 시작하니까 금방 딱지 여섯개를 접어버렸다. 아이는 '우와! 우리 아빠 정말 잘한다!'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딱지를 접어주자는 순간적인 판단은 대성공이었다!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시켜 말을 듣게 하는 것과 아이의 마음속에 아빠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았다!

내친김에 아이랑 딱지치기를 해보았다. 어릴땐, 동네 딱지는 다 긁어 모을 만큼 딱지치기를 잘했었는데, 지금 하려니까 잘 되지 않았다. 왕년의 딱지 접기 실력은 아직 살아있었지만, 딱지치기 실력은 다 죽었나보다. 어릴 땐, 다 쓴 공책을 찢어서 만들었던 힘없는 딱지로도 승승장구 이기기만 했건만, 지금은 빳빳한 포스터를 찢어서 만든 당시랑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질 좋은(?) 딱지로도 잘 넘겨지지 않았다.

아이는 아직 손 힘이 없어서 제대로 딱지치기를 할 수 없었다. 그냥 몇 번 해보다가 금방 질렸는지 딱지치기 놀이보다는 딱지를 갖고 숫자를 세거나 딱지에 조그만 스티커를 붙이는 것에 더 열중했다.

아이가 좀 더 크면 함께 딱지치기를 해볼 수 있겠지. 그때까지 매일 저녁마다 우리 집 대문에 붙어있는 각종 전단지와 신문에 끼어서 오는 광고 등을 활용해서 딱지를 잔뜩 만들어 놓아 볼까? 어릴 땐 정말 몇 백장씩 모아놓고 기분좋아했었는데, 지금도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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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이름

우리말 갈래사전을 사고
선생인 네 이모네 반 출석부를 몰래 훔쳐보며
특별한 이름보다는
모든 사람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는 이름
떵떵거리며 출세하는 이름보다는
메아리처럼
나즈막히 들리는 이름 어디 없을까
네가 평생 간직할 나의 첫 선물
네 얼굴만큼 선한
어디 그런 이름 없을까
벌써 며칠째
전화번호부를 뒤적이고
책방을 둘러보고


이한주 / 너희들 키만큼 내 마음도 자랐을까 / 삶이보이는창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평생 멍에처럼 달고 다녀야 하는 것만큼 부당한 것이 있을까?' 시인은 시를 소개한 바로 다음 페이지 첫 문장을 이렇게 적고 있다. 공감할 수 있는 글이다. 아이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그래서 무척 중요하고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학교 다닐 때보면 이름으로 놀림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한동안 내 이름을 싫어했던 기억이 있다. 주변에서 특히 여성분들 중에서 '숙'자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분들이 이름에 대해 하소연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부모가 어떤 마음으로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평생 그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야 할 사람에게 이름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큰 고통도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생각해둔 이름이 있었다. 아내도 좋다고 서로 합의해 놓은 상태였다. 문제는 양쪽 집안 부모님들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한 쪽 집안 어른들은 불교 냄새가 강하게 난다고 노골적으로 싫다고 하셨고, 다른 쪽에서는 발음의 문제를 들어서 싫다고 하셨다. 나는 내 나름대로 최대한 어른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온갖 좋은 뜻을 다 갖다붙여서 아주 그럴듯한 해석을 곁들여 이 이름이 아주 좋은 이름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어른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국어사전을 뒤져서 순 우리말 이름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전화번호부를 들쳐보기도 하고, 작명에 대한 여러가지 자료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몇가지 새로운 이름들을 갖고 아내와 상의해보았으나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랜 시간을 새로운 이름을 짓는데 쏟아부었지만 별로 진전이 없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고 지냈다. 어느새 출생신고 마감기한인 한달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 이었다. 도중에 양쪽 어른들이 몇 개의 이름을 제안했지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부했다. 마지막 순간 나는 어른들께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 그냥 원래 생각했던 이름으로 가겠다고 통보했다.

어른들은 마지못해 승낙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아이는 마침내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가끔 아이가 자라서 나를 원망하는 장면을 상상할 때가 있다. 왜 좀 더 예쁜 이름으로 지어주지 않았냐고, 친구들이 놀린다고, 좀 더 평범한 이름이었으면 좋겠다고 원망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아빠가 이 이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지었는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등을 차근차근 이야기해준다면 과연 이해해줄까? 어떨까?

요즘 어린 아기들을 볼 때마다 둘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그러면서 둘째 이름은 뭘로 지으면 좋을까 잠시 생각에 잠겨보기도 한다. 쓸데없는 공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Posted by 감은빛
왜 어른들은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말도 안되는 질문 계속 하는 걸까?
남들이 이런 질문을 할때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나도 아이에게 자주 이 질문을 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아이는 어릴적에는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중에 가장 힘(영향력)이 셀 것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답을 했다.
예를 들어 할머니랑 함께라면 무조건 할머니가 좋다는 대답만 하고, 할아버지랑 함께라면 무조건 대답은 할어버지가 되는 것이다.
아이는 묘하게도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서열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게 처신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조금 더 자라서 이 질문에 대한 아이의 대답은 '엄마도 좋고, 아빠도 좋아!'였다. 뭘 당연한 걸 물어보느냐는 표정도 함께! 그래도 어른들은 집요하게 계속 물어본다. 아이는 '엄마는 엄마라서 좋고, 아빠는 아빠라서 좋아!'로 다시 대답한다. 또다시 '엄마랑 아빠중에 누가 더 좋아?'라는 질문이 들어가면 그땐 기분에 따라 한 사람을 선택하게 된다. 대개 그 답은 '엄마'가 되게 마련이긴 하지만.......

예전에 아이의 남자친구에 대한 얘길 하면서 아빠가 꼴찌가 되어버린 얘길 했었다.
(2008/11/19 - [삶의 흔적속으로/안야와 함께] - 아이의 남자친구    참고하세요!)
아이를 키우면서 보면 대개 엄마와의 경쟁에서 아빠는 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가끔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낼 때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대략 세달쯤 되었을 때부터 예닐곱달이 될 때까지 육아 휴직을 하고 아이를 돌본 적이 있다.
아내는 일하러 나가고, 내가 집안일과 육아를 맡았던 것이다.
그때 아이는 아빠를 훨씬 더 잘 따랐다. 엄마와 보내는 시간보다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으니까!
그리고 일년에 한번씩 대략 십일 정도 아내가 외국으로 출장을 가는데,
이 기간이 되면 또 아빠를 잘 따르게 된다.
이때는 아예 엄마가 옆에 없기 때문에 아이는 아빠만 의지하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요즘처럼 아내가 마감 기한을 훨씬 넘긴 일을 못 끝내서 무척 바쁠 때,
아이가 아빠와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아빠가 더 좋다는 답이 나온다.

바로 어제도 저녁 반찬으로 뭘 해먹을지 고민하다가 간단하게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 한 두개 놓고 밥을 먹었다.
한참 밥을 먹다가 갑자기 아이가 애교를 부리면서 '아빠가 제일 좋아!'라고 말했다!
바로 다음 날이 되어 엄마가 조금 일찍 돌아오면 또 바뀔꺼면서 뭘 새삼스레 강조하는지.
지금 꼭 말해두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던 걸까?

아마도 생존 본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가 의지할 수 있는 단 두사람 엄마와 아빠 중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가장 잘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고 싶고, 확실하게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본능이
그런 애교라는 행위를 만든 건 아닌 가 싶다.

아이랑 단 둘만 있을 때, 조금이라도 야단을 치면 아이는 서럽게 울며 '엄마'를 찾는다.
그건 반대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한창 바빠서 자주 늦게 들어오거나 못들어오면,
아내는 아이가 '아빠'만 찾는다고 하소연 하곤 했다.

지금 당장 유일하게 기대고 의지할 존재가 자신을 배반했다고 생각되면,
자신의 의지를 실현시켜 줄 사람을 찾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발생하는 것이리라.

아이를 돌보는 동안 아이가 아빠를 완전히 따르지 않고, 엄마를 찾게 되면 무척 피곤하다.
아빠를 잘 따르게 만들면 그만큼 수월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의 빈자리가 커질 수록 아이를 돌보는 일은 쉬워진다.

아이가 아빠를 잘 따르다는 건 결코 좋은 의미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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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내 동생이야!'

아내가 작은방(꼼푸터방/아이식 표현대로) 책상 위에 예쁜 색깔의 종이 줄을 하나 걸고 색색깔의 나무 집게를 사서 아이 사진을 몇 장을 걸어뒀다. 아주 어릴 때 사진부터 비교적 최근 사진까지 골고루 보인다. 아이는 밑에서 보면 잘 안보이니까 자주 나에게 안아달라고 조른다.(요즘은 엄마한테 안아달라는 소리는 거의 안한다!) 아이를 안아주고 사진을 하나하나 가르키며 물어본다.

'누구야?'
'어디?'
'요기 아빠가 안고 있는 아기 누구야?'
'내 동생이야!'

아마 한 10개월여 되었을 무렵 사진인 것 같은데(요즘은 아이가 너무 자라버려서 아직 걷지 못할 무렵 사진은 잘 기억이 안난다.) 요즘에 비하면 얼굴이 많이 다른다! 그보다 조금 더 자라서 돐 이후 사진은 확실히 자기라고 알아본다. 누구냐고 물으면 '나!'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딱 이 사진부터 그 이전 사진을 가르키면 아직 생기지도 않은 자기 '동생'이라고 말한다.

'동생이 누구야?'
'내 동생! 내 동생이라구!'
'지금은 어딨어? 동생 어딨어?'
'어.......'

갑자기 대답할 말이 없어졌는지 한동안 두리번 거리더니,

'어, 내 동생, 저기 어디 갔는데 내일 올거야!'
'어디 갔어?'
'응, 저기 멀리 갔어. 좀 있다가 온데.'

그닥 신통한 반응이 나오지 않아서, 내가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아이가 다시 부른다.

'아빠, 아빠, 내 말 들어봐! 내 동생, 응! 내 동생, 내일 온데. 내일 동생이 오는데,'
'그래.'
'갑자기 사자가 나타나서 내 동생을 잡아먹을라고 그래!'

내 팔에 안긴 채, 과장된 표정으로 '어흥'하며 사자 흉내를 잠시 내는 녀석.

'그런데 내가 응! 사자를 혼내주고 동생 안 잡아먹으게 해줄거야.'
'그래.'
'그래서 동생 오는데, 저기 악어가 또 나타나서 잡아먹을라고 그래!'
'악어도 나타났어?'
'응! 그래서 내가 다시 악어도 혼내주고, 또 사자도 혼내줬어!'
'그래.'
'그래서 저기 풍선 있지? 아빠, 절로 가봐. 풍선한테 가봐!'

몇 발짝 걸어서 풍선 있는 쪽으로 간다.

'이 풍선, 내가 동생한테 줄거야!'
'그래 착하다!'
.
.
.
.
.
.


아이가 했던 말을 되도록 그대로 구현해보고 싶었는데, 며칠 지났다고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그러고도 한참동안 무언가 이야기를 지어냈는데, 뒷 얘기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뭔가 등장인물과 등장동물이 더 많았었는데......

내 기억에 나도 어릴 때, 뭔가 이야기를 꾸며내는 걸 즐겼는데,(그래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다!)
이 녀석도 이야기를 꾸며내는 걸 즐기는 듯 하다.

원래 쓸려고 했던 내용은 훨씬 더 길었는데, 막상 쓰려니까 더이상 기억이 나질 않네!
어쩔수없이 날림 포스팅이 되어버렸다! 이만큼 쓴게 아까우니 일단 '저장하기' 눌러놓고 도망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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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나는 평소에 다른 기념일 같은 걸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내 생일도 역시 기억못하고 지나칠뻔 한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몇 년 전에는 나도, 엄마도, 심지어 아내도 기억못하고 있었는데, 여동생이 하루 전 날 기억해서 알려준 적이 있었다.(아내가 무척 미안해했지만, 나로서는 별 느낌이 없었다! 그냥 지나쳤어도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학교 다닐때는 친하게 지냈던 과 동기가 먼저 기억하고 있다가 나에게 알려주곤 했다. 내 생일은 무척 기억하기 쉬운 숫자라서 잊어버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던 그 친구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정작 나는 왜 내 생일을 늘 잊고 지나치는 걸까? 기억못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신경쓰지 않기 때문인 것일까?

이번에는 며칠 전부터 아내가 무슨 선물을 받고 싶냐고 물어왔다. 난 별로 받고 싶은 게 없으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내도 작년 연말부터 정신없이 바쁘다! 특히 아내는 작년에 끝냈어야 할 번역을 아직 다 끝내지 못해서 매일 늦게까지 일하고 있다. 덕분에 일주일에 두번 혹은 세번씩 번갈아가며 저녁에 아이를 돌보는 일이 최근에는 계속 내 몫으로 돌아왔다. 주말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는 이미 익숙해져 있기에 별로 불평 같은 건 없다.

토요일에 나가서 일을 했던 아내가 일요일에는 하루 일찍 내 생일을 축하할 겸, 나가서 산책도 하고 외식도 하자고 했다. 나는 밀린 잠을 자다가 늦게 일어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밀린 집안 일을 좀 하고, 아이를 준비시키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아이가 와서 말한다!

"아빠 오늘 생일이지요! 아빠 생일이니깐 선물 줄게요! 아빠, 뭐 줄까요? 내가 로쟈(작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내가 준비한 인형 - 공식적으로는 산타가 선물한 것으로 되어있다! 아내가 독일어로 '로쟈'란 이름을 붙였는데, 내가 곧바로 '로쟈 룩셈부르크'라고 불러줬다.) 선물로 줄게요. 또 뭐 갖고 싶어요? 뽀(텔레토비 중 빨간 녀석의 인형을 말함!) 갖고 싶어요? 뽀 줄까요?"

난 건성으로 '그래' 하고 대답했다. 내 대답이 시원치 않아서 그랬는지 다시 아이가 묻는다.

"아빠 또 뭐 선물 갖고 싶어요? 연두(연두색 옷을 입은 곰 인형) 줄까요?"

내가 또 다시 '그래' 하고 대꾸하고는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빠, 오늘 생일이니깐, 내가 맛있는 거, 어...... 맛있는 거"

아이가 여기까지 말하고 말을 끊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웃으면서 '맛있는 거, 뭐? 아빠한테 맛있는 거 사줄거예요?' 하고 말하자, 아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빠,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요!'

아이가 한 말을 나는 건성으로 듣고 말았는데, 아내는 이번에 아이가 벌어온 '세뱃돈'(양쪽 집안에서 무려 10만원이나 벌어왔다!)으로 사주면 되겠다고 좋아한다! 사실 아이가 '내가 000 사줄게요. 혹은 000 줄게요' 라는 말을 무척 자주 한다. 그래놓고 빈 손을 내밀며 받으라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안 받으면 빈 손을 자꾸 내 눈 앞에 펼쳐 보이며 '이거 000야! 자, 받아!' 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이가 내게 뭔가를 사달라는 말도, 그리고 자신이 사주겠다는 말도 자주 했었는데, 이렇게 빨리 아이에게 뭔가를 대접 받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이와 아내는 벌써 뭘 먹으로 갈지도 합의를 봤다. 아이가 '닭'이 먹고 싶다고 한 것이다. 엄마는 아이의 세뱃돈이 담긴 복주머니에서 5만원을 꺼내서 아이의 겉옷 주머니에 넣어준다. 밖에서 뭐 먹으려면 돈을 여유있게 가져가야 한다고 아이에게 일러준다.

우린 공원을 한 바퀴 산책하고, 놀이터에서 아이가 그네랑 미끄럼틀을 잠시 타도록 해줬다. 그리고 식당이 많이 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어느 바베큐 전문 닭집을 들어가서 닭을 시켜놓고, 나는 맥주도 한잔 시켰다. 아내는 아이 덕에 술도 한잔 얻어먹는다고 한마디 했다. 정작 아내는 먹을 수 있는게 없었는데, 밖에서 뭔가를 사다먹으라고 해도 괜찮다고 그냥 있었다. 나중에 닭이 나올때 보니 구운 떡이 몇 조각 함께 나왔는데, 아내는 그것만 먹었다.(아내는 채식을 한다!)

아이와 나는 맛있게 닭고기를 뜯어먹었다. 다 먹고 나서 손가락만 빨고 있는 아내가 안쓰러워서 뭔가 다른 걸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아내는 그냥 집에 가서 밥을 먹겠다고 했다. 아내가 아이에게 계산서를 쥐어주고 계산대로 데려갔다. 아내가 시키는 대로 '얼마예요?' 물어보니, 계산대의 아주머니가 웃으며 금액을 알려줬다. 아내가 만원짜리 두 장을 꺼내서 드리라고 시키고 아이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옆에 계시던 아저씨가 대뜸 '너 세뱃돈으로 사는 거구나!'하고 웃었다. 아주머니는 아이가 귀엽다고 오백원을 깎아주기도 했다. 아이는 자신이 돈을 냈다는 사실에 들떠서 나와서 계속 자기가 어떻게 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집으로 가는 중에 아내가 피자집을 발견하고는 아이에게 피자도 사줄 거냐고 물었다. 아이는 신나서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한다. 비교적 저렴한 피자집이라 기다리는 손님이 많았다. 우린 그네처럼 흔들흔들 움직이는 의자에 앉아서 장난을 치며 한참을 기다렸다. 나중에 역시 아이가 돈을 치르고 피자를 받아왔다.

조금 걷다가 아이가 안아달라고 보챘다. 안아줬더니 금새 잠들어 버렸다. 피곤했던 모양이다. 작년과 달리 아이가 많이 자라서 몸무게도 많이 늘었다. 집까지 가깝지 않은 거리를 걸으면서 어느새 이 녀석이 이만큼이나 자랐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겨울이라 아이의 두꺼운 잠바와 내 외투가 자꾸 미끄러지거나 거추장스러워 자세를 잡기가 힘들다. 게다가 아직 집은 멀리 있는데, 팔은 떨어져 나갈 듯이 아프다.

작년 여름에 한창 촛불집회에 다닐때만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젠 이 정도 거리도 안고 걷기가 힘들다니....... 아이는 그새 엄청나게 몸무게가 늘었고, 나는 그새 엄청나게 근육이 줄어 있었다. 광화문에서 여의도 KBS앞까지 아이를 안고 걸어갔을 때를 떠올리며 왜 그동안 꾸준히 운동을 안했을까 반성을 했다. 그때 마포대교를 건너면서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자꾸만 무거워지는 팔을 버텨보던 기억을 떠올리며 집까지 걸었다.

집에 돌아와서 잠든 아이를 깨워서 피자를 함께 먹었다. 아이는 계속 자신이 아빠 닭도 사주고, 아빠 술도 사주고, 엄마 피자도 사줬다고 몇 번이나 자랑스레 말했고, 우린 계속 대견해하며 엉덩이를 두들겨 줬다.

지금까지 생일을 딱히 챙겨 본적이 없으니 당연히 기억에 남는 생일 따위도 없다. 그러나 올해 생일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이가 처음으로 외식을 시켜준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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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아니 나는 엄마야, 애기야!(엄마에게), 자기야(아빠에게)"
- 요즘 한창 엄마와 함께 재미들린 역할바꾸기 놀이. 아이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아이가 된다.
 어찌나 영리한 지, 역할을 딱 바꾸자마자 엄마의 말투와 행동을 완벽하게 흉내낸다!

"자기야, 근데, 내 말 들어봐!", "응"(아빠), "아니, 네! 해이지(해야지). 나 엄마잖아!"
- 자기가 지금 엄마 역할인데, '네' 라고 안하고, '응'이라고 했다고.

"오빠(아빠에게) 여기 아파?", "아니"(아빠), "근데 여기 빨개져떠(빨개졌어). 내가 보더니(봤더니) 피가 나올라그래. 오빠! 나 의사템테니미야(의사선생님이야). 주사 노아주까?(놓아줄까?) 그래 주사 노아주께~!(놓아줄게!)"
- 이건 또 다른 역할놀이 처음엔 오빠 동생 놀이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의사 놀이로 바뀌었다. 잠시 노는 사이에도 순식간에 의사 선생님이 되었다가 엄마가 되었다가 사자가 되었다가 토끼가 되어버리는 녀석. 주사 놓지 말라고 고개를 저었는데도 억지로 주사 놓는 시늉을 하면서 즐거워한다!

"아니, 아니 분홍색! 분홍색이 좋아!"
- 다른 색은 다 싫다고 하고 무조건 분홍색만 찾는 녀석, 모든 옷과 장남감과 이불 등 무조건 분홍색만 좋아한다! 노란색 팬티나 빨강색 웃도리 등은 싫다고 반항하는 녀석.

"아빠, 우리 식당에서 짜장면 먹자!", "아빠 돈 없어. 집에가서 밥먹자!"(아빠), "시러! 나 짜장면 머꼬시퍼!"
-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나오면 집에 들어오기를 싫어해서 무조건 식당에 가자고 조르는 녀석. 게다가 짜장면 맛을 알아버려서 툭하면 짜장면 사달라고 조르는 녀석.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아빠, 근데 나 말 잘들었지요? 나 혼자서 세수도 잘하고 치카도 잘 했지요? 엄마한테 얘기해줘요! 나 칭찬해주세요! 나 안울었지요? 나 또끔(조금) 울었는데, 응. 나 또끔바께 안울었지요? 엄마한테 얘기해줘요! "
- 한번 씻기려면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울곤 했던 녀석이 이젠 그래도 가끔 혼자 스스로 이도 닦고, 세수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는 날이 훨씬 더 많다. 가끔 말을 잘 듣고 스스로 잘 씻은 날에는 꼭 나중에 엄마에게 얘기해달라고 한다.

"저기 4 있다. 4! 아빠, 저기 봐봐요! 4 있어요. 4! 내가 보더니(봤더니) 저기에 4 있었어. 4. 봐봐요! 저기요!"
- 어린이집에서 숫자 읽고 쓰기를 익히는 중인가보다. 아이는 제일 먼저 4를 익혔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4를 만나면 아주 난리가 난다. 자기가 아는 숫자를 발견했다고 계속 얘기한다. 골목에 세워진 자동차의 번호판이나, 간판에 적힌 전화번호 중에 들어가 있는 숫자 4를 보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요즘 율동과 함께 자주 부르는 <가나다송>을 옮긴다.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마저 쉬고 하나! 둘! 셋! 넷~
가! 가쓰미(가슴이) 가쓰미(가슴이) 울렁거려~
나! 난 정말 어떠케요(어떡해요)~
다! 다줄게 내 마음, 이 사라믈('내 사랑을')~
라! 랄랄랄라 노래할꺼야~
하나둘셋
마! 마법에 빠졌어~
바! 바보같은 내 모쓰읍(모습)~
사! 사랑해 너를~
아! 아직도 너를~
자! 랄랄라('자 이제') 우리 함께~
차차차~
카! 다이마러 내 마으믈 이저써('카메라로 내 마음을 찍어봐!')~
타! 라노 라는('타는 가슴') 왜 모르니~
파! 짜무르 짜무 있잖아요('파란 하늘 저멀리 외쳐봐요')~
하! 아는 만큼('하늘만큼') 너를 사랑해~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마저 쉬고~ 하나! 둘! 셋! 넷! 야~!


앞부분은 열심히 잘 부르는데, 뒷부분으로 가면 발음을 정확하게 하지 않고 그냥 제 멋대로 불러서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대충 들은대로 적어보면 위와 같이 나온다. '카타파하'는 비교적 발음하기 어려워서 그럴 수도 있고, 뒷부분에서는 집중력이 떨어져서 대충 불러서 그런 것일수도 있다.

'타는 가슴'은 아이에게 좀 어려운 단어라서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는데,
'카메라'나 '하늘' 같은 단어는 잘 아는 단어이고 자주 쓰는 단어인데도 잘 못 부르는 걸 보면 좀 이상하긴 하다.


원곡을 듣고 싶으시면 요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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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오늘은 아주 오랫만에 근처 공원에 가서 놀았다. 몇 달전에 사준 뿡뿡이 세발 자전거(부모가 밀어줄 수 있도록 뒤에 길게 손잡이 가 달렸다!)를 계속 베란다 구석에 처박아놓기만 하는게 영 신경쓰였는데, 마침내 오늘 끌고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만에(사실은 작년인가 딱 한번 타본 것 같긴한데....) 처음으로 둘 다 인라인을 챙겨 나갔다.

몇 년 전에 그러니까 그게 여자친구(지금의 아내)와 사귀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다. 여자친구는 당시에 꾸준히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고(심지어 컵을 줄줄이 세워놓고 그 사이로 통과하는 동호회 활동도 하고 있었다!) 나는 한번도 타본 적이 없었는데, 함께 배워서 타자고 여자친구가 인라인을 사줬다.

그때는 정말 열심히 타러 다녔다. 마침 내가 다른 지역에서 활동을 그만두고 서울에 올라와서 한동안 놀고 있던 시절이라서 달리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거의 매일같이 몇 시간씩 타곤 했다. 주로 상암 월드컵 경기장 옆에 있는 공원(이름이 뭐더라?)에서 연습했다.

며칠을 연습해서 겨우 속도를 조금 낼 수 있었는데, 그 속도감은 무척 짜릿했다! 아! 사람들이 이런 기분때문에 이걸 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인라인을 타지 못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고 하면서 인라인은 점점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오늘은 아주 오랫만에 줄넘기도 좀 해봤는데 잘 안되었다. 고등학교땐가 체육시간에 이단뛰기로 시험을 본 적이 있어서 매일같이 이단뛰기 연습을 많이 했었다. 그땐 한 스무개쯤 했던 것 같은데, 지금 하려니까 두세개 밖에 안된다! 옆에서 열심히 줄넘기 하고 있는 초등학생이 나보다 훨씬 더 잘하는 것 같았다. 무안해서 줄넘기를 놔두고 인라인을 갈아신었다.

정말 몇 년만에 거의 처음으로 인라인을 타보니 참 한심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지경이었다. 균형을 잘 잡지 못했고 다리에 힘도 부족했다. 속도를 내기는 커녕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몇 시간동안 열심히 돌면서 감각을 잡아보려고 노력했다.

원래 아이에게 자전거를 좀 가르치려고 해봤으나 아이는 자신의 힘으로 자전거를 굴리는 데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예전에 사줬던 작은 축구공을 차고 던지며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렇게라도 운동을 해서 다리힘을 기르면 좋겠다 싶어서 계속 뛰어다니도록 유도했다.

아내도 오랫만에 인라인을 타니 잘 안된다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공원에서 놀았다. 상암에 가서 제대로 인라인을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거기까지 가기가 귀찮았다. 여기는 인라인을 제대로 탈만한 장소가 별로 없었다. 몇 번 연습해보고 다음에 날 잡아서 근처에서 인라인 탈만한 곳을 찾아봐야겠다.

아이가 한창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쉬'를 외쳤다. 화장실이 멀진 않았지만 아내와 나는 둘 다 인라인을 신고 있었다. 몇 년 전에 한창 많이 탔을 때는 인라인 신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왠지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내가 볼일 보는게 아니라 아이의 쉬를 시키는 것은 더 어려울텐데 걱정이 되었다. 내가 화장실쪽에 좀 더 가까이있었기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 몇 번 넘어질 뻔한 위기를 간신히 넘기고 화장실안으로 들어가서 양 쪽 칸막이에 인라인을 바짝 대고 다리를 벌린 채 힘을 주고 아이의 옷을 벗겨서 쉬를 뉘였다.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그렇게 저녁때까지 열심히 놀았다. 나는 되도록이면 감각을 다시 익혀보려고 무진장 애썼지만 결국 힘이 빠져서 더 타지 못하고 돌아왔다. 아내는 다리가 아프다고 일찌감치 포기하고 아이랑 놀고 있었다. 다섯시반쯤 되어서 아내가 배고프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통닭' 사달라고 졸라서 닭을 샀다.

우리가 열심히 닭을 먹고있는 동안 먼저 밥을 다 먹은 아내는 너무 피곤하다고 눕더니 잠들었다. 아아랑 함께 닭을 완전히 해치운 다음 아이를 씻기고 나도 함께 자려고 했다. 나역시 너무 피곤했다. 그런데 다 먹고 나니 엄청 졸리고 피곤해서 밥상을 옆으로 밀고 잠시만 누워야지 생각하고 누웠는데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아이가 나를 흔들어 깨우길래 눈을 떴다. 아이는 혼자 열심히 소꼽장난을 하다가 지쳤던지 책을 읽어달라고 난리였다. 나는 정신을 못차리고 잠시 멍하게 있다가 밥상부터 치웠다. 도저히 설겆이 할 정신이 업어서 그냥 담궈두고 아이를 씻기려고 했다.

아이는 잠시 안 씻겠다고 버텼지만 갑자기 '응가'를 외치더니 제 변기통을 찾아가서 앉았다. 한참 힘을 주더니 구수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엉덩이도 닦여야 하고 머리도 감겨야 하니 아예 목욕을 시켜야 겠다고 마음먹고 아이를 욕실에 데리고 들어갔다.

머리를 감기려고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뭐라뭐라 재잘재잘 떠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건성으로 그래 그래 하고 넘겼다. 따뜻한 물에 머리칼을 적시고 천연비누를 골고루 묻혀서 충분히 거품을 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조용해졌다. 눈도 감고 있었다. 숨소리도 규칙적으로 고르게 내고 있었다. 잠든 것이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씻다가 잠들었을까 싶었다. 따뜻한 물에 머리를 헹궈주면서 깨지않도록 조심조심 손을 놀렸다.

머리를 다 헹구고 엉덩이만 깨끗이 닦았다. 목욕은 내일 시켜야 겠다고 마음먹고 조심조심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이제 제법 무거워진 아이를 한 손으로만 안고 다른 한손으로 닦이는 게 쉽지 않았다. 머리 감기 전에 먼저 이를 닦도록 시켰던 것이 무척 다행이었다.

그대로 아이를 안고 들어가 자고 있는 아내 옆에 뉘였다. 뛰어다니다 넘어져서 살짝 상처가 난 무릎에 약을 발라주고, 옷을 입히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려줬다. 뜨거운 바람 때문에 아이가 조금 찡얼거리며 깨려고 했으나 달래주면서 머리를 마저 말렸다.

한동안 아이가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아침에는 늦잠을 자면서 일어나지 않아서 애를 많이 먹었는데, 앞으로 매일 저녁마다 운동을 조금씩 시키면 잠도 잘자고 몸도 더 튼튼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이번 달에는 아이랑 함께 열심히 운동을 해볼까나? 그러려면 일을 좀 줄여서 일찍 퇴근해야 할텐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다!
Posted by 감은빛

36개월 째에 접어드는 딸아이 엄마입니다. 요즘 고민이 생겨서 좀 길더라도 질문을 올리게 됐습니다.

귀찮으시더라도 선배 어머님들 충고 부탁드립니다!

 

얼마전 1년 넘어 다니던 가정어린이집의 같은 반 친구들이 다 이사가거나 해서 갑자기 혼자 남게 되자

원장님께서 다른 원을 알아봐야 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지금 다니던 원에 들어왔는데...

가끔 저희 부부가 똑같이 야근하는 날이 있어서 시간연장도 되고 집에서도 멀지 않고,

딱 집에서 중동역 오가는 길에 있다는 점,

그리고 TV를 틀어서 아이들 보육시간을 채우거나 과자등의 먹거리를 안 주시고

지나치게 영어나 특활 등을 강요하지 않아 아이들 부담 안 주는 것 등등

나름대로 저희 부부가 원하는 방향과 잘 맞아서 선택했답니다.

 

그런데 이제 막 두달 지나는 이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과 사건(?)이 생겼습니다.

평소 주로 저녁 7시에서 7시 30분에 데리러 가고, 지금까지 딱 두 번 정도 시간 연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집에 오면서 "뽀로로 텔레비전으로 봤어요!"하고 자랑스럽게 말했답니다. 그 얘기를 저도 한번 듣고 아이 아빠도 한번 들었는데 진짜 텔레비전을 봤는지 아니면 그냥 상상으로 하는 말인지, 혹은 책이나 그림을 봤는데 그렇게 말하는 건지 알길이 없었죠. 다만 차량 운전해주시는 남자 선생님께서 방송을 봤다고 하시는 말씀을 아이 아빠가 얼핏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또 두세번 더 그렇게 말을 하더라구요. "정리하는 시간에 본다"라고요.

저희 집은 어쩌다보니 텔레비전이 없는데 그게 차라리 좋겠다 싶어서 굳이 텔레비전 구입을 안 했거든요. 어쨌든 원장님이 처음 입학 상담 때 텔레비전을 절대 안 보여주신다고 하셨기에, 일단 여쭤봐야겠다 싶어 알림장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담임선생님이 무척 확고하게 그런 일이 절대 없다고 하시더군요. ㅇㅇ가 착각한 것 같다고요.

그래서 아이 아빠가 다시 알림장에 확실하냐고 되묻자, 더욱 강한 말투로 그런 일 없고, 무조건 착각이라고 답을 주셨더라구요.

저희도 그런가보다 했지요. 한 두번 보는 거야 문제는 없지만, 아이는 봤다고 하고 원에서 그렇게 한다 안 한다 저희 부모에게 말이 없었기 때문에 궁금했던 것 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며칠 전엔 아이가 얼굴에 손톱에 찍힌(할퀸?) 자국이 나서 왔고,

저녁에 쉬를 한다고 해서 화장실에 데려가보니 바지와 팬티가 젖었다가 오히려 마르고 있는 상태더라구요.

그날은 6시 반 쯤 어린이집에서 나왔는데 그것을 발견한 시간은 7시 20분(?)쯤이었습니다.

하필 그날 따라 이틀 째 알림장이 오지 않아서 이틀간 담임 선생님의 전갈이나 아이의 생활을 듣지 못했고

저희도 뭐라고 전갈을 남기지 못했지요.

결국 알림장도 없고, 또 귀가시 원에서 아무 말씀도 못 들었기에

아이 아빠는 원장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제가 옆에서 들었는데 남자들 흔히 그러듯 다소 딱딱한 말투긴 하지만

예의를 충분히 차리면서도 그냥 간결하게 "아이 얼굴에 상처가 났는데 누구랑 싸운 건지 궁금하다, 그리고 바지가 젖었다가 다시 마르는 상태인데 오후에 실수를 했다고 한다. 선생님에게 미처 말을 못해서 바지를 못 갈아입었다고 한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주실 수 있느냐" 이렇게 묻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저는 알림장이 없으니 할 수 없이 종이에 긴 메모를 써서 담임선생님께 어제 있었던 일을 쓰고 상황에 대해 여쭈기로 했습니다. 메모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줬는데 원장님이 나와서 저에게 말을 걸더군요.

어제 아버님이 전화를 했는데 설명하겠다고요. 그러면서

"ㅇㅇ가 남한테 절대 안 지는 성격인건 아시죠? 동생 장난감 뺏어서 그 동생이 화나서 얼굴을 할켰다고 하네요. (중간생략)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면서 이것저것 다 따지시면 너무 힘들어요. 완벽하길 바라시면 안 되죠. 아이들을 일일이 화장실에 따라들어가서 옷 벗겨주고 쉬 뉘어줄 수 없습니다. 그 연령은 스스로 해야 하는 나이고요.  지금도 지난번 텔레비전 문제로 담임선생님이 예민해져 있는데 이렇게 또 자꾸 문제제기를 하시면, 결국 답은 하나에요. ㅇㅇ한테 (이때 제 팔을 세게 확 잡고 벽으로 밀면서) 이렇게 한곳에 붙잡아두고 '넌 아무것도 하지마. 그냥 여기 있어'라는 말 밖에 못하죠. 그렇게 키우는 게 좋으세요? 그럼 계속 그렇게 하시고요."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순간 무척 기분이 나빴지만, 아이가 눈앞에 있기도 했고 아침 일찍 급하게 출근하는 터라, 또 순간 당황해서 뭐라고 답을 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해서 일단은 "아이 아빠에게 직접 답을 해주시라"고 말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기분이 너무 안 좋고 대체 제가 그런 답을 들을 만큼, 우리 부부의 질문이 지나친 것이었느냐는 의문이 계속 들었습니다. 

아이가 얼굴에 상처가 나서 왔는데 아무 얘기도 없는 선생님들, 더구나 바지가 젖은 채로 몇 시간 있었다는데 36개월도 안 된 아이가 스스로 말하지 않았다고 옷을 갈아입혀주지도 않고 그냥 귀가시킨 선생님.

이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 과연 과잉 보호이고 과민반응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는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손톱 상처에 대해 조심을 시켰고 순하지만 소독작용을 하는 약을 발라주더군요. 물론 저녁 때 아이를 데리러 가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꼭 말해주며 유감 표시를 하셨구요.

게다가 만약 겨울이었다면, 젖은 바지로 몇 시간 있다가 감기 걸릴 수도 있었을 겁니다. - 이건 제가 직접 한 생각도 아니고, 자식을 둘 키우면서 최근까지 원장으로서 어린이집을 1년 정도 운영했던 제 친구가, 제 고민을 듣고 깜짝 놀라며 한 말입니다. 이 또래 아이들은 약해서 팬티나 양말만 젖어도 감기가 걸릴 수 있다면서 펄쩍 뛰더군요.

 

더 답답한 것은,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원장님이 아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서 소위 그 전날 전화에 대한 답변을 했는데

저에게 얘기한 것보다 더 심각한 답변을 했다는 겁니다.

아이 아빠가 "이것저것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작은 일들이 생길 수는 있다. 그런데 우리가 문제를 지적한 것은,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선생님들이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감기 걸릴 수도 있었던 문제였다"라고 하자,

원장님이 "그런 작은 일들에 일일이 완벽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예요. 아버님, 선생님들도 인간이에요. 신이 아니거든요. 어머님아버님도 실수하시잖아요. 안 그래요? 그리고 그런 일로 감기걸려서 안 된다면, 그럼 이제부터 놀이터도 가면 안 되고 흙도 만지면 안 되겠네요? 흙에 세균 있잖아요, 그쵸?" 이랬다는 겁니다.

아이아빠가 선생님들이 언제나 힘들게 고생하시고 아이를 잘 봐주셔서 안심하고 일하게 해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까지 얘기를 하고, 어쨌든 재발방지를 약속해주시고 이번 일에 대해서는 일단 사과를 해주시는 게 정상 아니냐고 두번에 걸쳐 물었는데도, 원장님이 "호호호호! "하고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사과는 무슨 사과, 이런 말투였다는 아이아빠의 증언입니다...

 

아이아빠한테서 그 얘기를 듣자 너무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과도한 보호를 요구한 걸까? 아이가 바지랑 속옷이 젖어서 와도 그냥 그러려니 해야 하는 건가? 손톱이 찍혔는데 왜 싸웠는지 누구랑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 아이가 먼저 다른 아이를 괴롭힌 건 아닌지 등등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느데 그냥 묵묵히 그러려니 해야 하는 건가? 텔레비전 시청을 안 한다는 원장님 말씀과 실제가 다른 것 같아도 물어봐서는 안 되는 건가?

아이를 차별하고 한곳에 놔둔 채 아무 것도 못하게 방치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그냥 입 다물고 "남의 손"이 해주는 대로 국으로 있어야 하는 건가?

그날 밤 잠든 아이를 보는데, 저는 잠도 안 오고 눈물도 나오고 ..... 정말 원장님 말대로 제가 '신경과민'인가 싶을 정도로 한숨이 나오더군요.

 

다음날, 아침에는 아이 아빠가 그래도 밝게 웃으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저녁에는 제가 데리러 갔습니다.

저녁에 계시는 선생님은 상당히 살가운 편이시고 조언도 많이 해주셔서 늘 제가 고마워하고 있는데요. 그날은 아이 얼굴에 난 상처 이야기를 해주시더군요. (그 전날과 전전날에는 계속 저녁반 선생님을 마주치지 못했더랬습니다)

선생님왈, 할퀸 아이가 요즘 스트레스가 있는지 누구든지한테 손을 많이 대고 화와 신경질이 심하다고요. 그래서 ㅇㅇ가 크게 잘못한 게 아니지만 그 동생이 할퀸 거라고요. 이틀이 지나긴 했지만 설명을 들으니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요. 그 설명을 듣기까지 이틀이나 걸려서, 그것도 그런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서 들어야 했는지, 너무 의아했습니다.

 

일단 그 설명을 듣자 안심은 되었지만, 여전히 알림장은 찾지 못했다고 하고, 담임선생님이 임시로 보낸 알림장에는

"ㅇㅇ한테 쉬 실수를 하면 꼭 말하라고 주의주겠습니다. 부모님도 그렇게 당부를 시켜주세요"라는 말이 써있었습니다.

단지 아이가 말을 안 해서 그런 일이 있었던 거지, 교사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말로 들리는 건, 저의 비뚤어진 마음 때문일까요?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제 친구에게 물으니, 만 3세 아동은 너무 놀이에 몰두하거나 관심이 쏠리는 일이 있으면 자신이 실수를 했는지 안 했는지 잘 구분을 못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말하려가다가도 금방 잊고 새로운 일에 빠져든다는 거지요. 혹은 그것을 말하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게 여겨지는 상황에는 일부러 숨기기도 한다고 해요. 그런데 그것을 아이에게 반드시 말하라고 주의를 주겠으며, 말 안 하면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더군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원장님과 담임선생님이 너무나 당당하고 확고하게 말씀을 하시니 이젠 혼란이 옵니다.

 

어머님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이아빠는 곧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보겠다고 합니다. 원장님이 너무 확고한 태도로, 부모가 너무 과민한 것이고 오히려 아이한테 차별이 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한 것인 만큼 어떻게 여기에 아이를 더 맡길 수 있느냐고.  그 뒤로 저는 한번 더 임시 알림장에 담임선생님께 메모를 써서, 상담을 받고 싶으니 기회를 만들어주십사 썼지만 아직 답은 전혀 없네요. (소풍날이라 알림장은 나가지 않는다는 답만, 저녁반 선생님에게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제가 이 시점에서 무언가 더 노력해봐야 하는지, 아니면 정말 어린이집을 옮겨야 하는지 조언해주세요.

두서없는 긴 글 읽으시게 해서 송구스럽니다. 댓글로 많이 충고해주세요. 어떤 의견이든 소중히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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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2 - [삶의 흔적속으로/안야와 함께] - 어린이집 원장의 황당한 협박

Posted by 감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