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10.16 아내의 브래지어를 들여다보며 (8)
  2. 2008.08.10 배수진을 치고
  3. 2008.08.09 설악을 등진 등대 하나
  4. 2008.08.09 밥 때문에

아내의 브래지어


누구나 한번쯤
브래지어 호크 풀어보았겠지
그래, 사랑을 해본 놈이라면
풀었던 호크 채워도 봤겠지
하지만 그녀의 브래지어 빨아본 사람
몇이나 될까, 나 오늘 아침에
아내의 브래지어 빨면서 이런 생각해보았다
한 남자만을 위해
처지는 가슴 일으켜세우고자 애썼을
아내 생각하자니 왈칵,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남자도 때로는 눈물로 아내의 슬픔을 빠는 것이다
이처럼 아내는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동굴처럼 웅크리고 산 것을
그 시간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던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나 오늘 아침에
피죤 두 방울 떨어뜨렸다
그렇게라도 향기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박영희 / 팽이는 서고 싶다 / 창비


이 시를 일부러 찾아 읽은 것은 몇 달전에 박영희 시인과 함께 식사를 하던 중에 들은 얘기가 궁금해서였다. 그때 시인은 창비에서 나온 자신의 시집 '팽이는 서고 싶다'의 제목이 마음에 안든다고 말했다. 원래 자신이 생각했던 표제작은 바로 이 시 '아내의 브래지어'였는데, 창비쪽에서 계속 바꾸기를 요청해와서 결국 '팽이는 서고 싶다'가 제목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만약 자신의 주장대로 '아내의 브래지어'가 제목으로 정해졌다면 책도 훨씬 더 많이 팔렸을거라고 장담하셨다.

책을 만들때 제목을 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책의 판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제목이다! 그래서 제목을 정할때는 출판사와 작가 모두 무척 심사숙고하게 된다. 대개 시집이나 단편소설집 등은 수록된 여러 작품중에서 표제작의 제목을 따서 책의 제목을 정한다. 그래서 사실 시집의 경우는 크게 어려울 게 없는데,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작가들이 표제작으로 정할 작품을 하나 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작가가 명확하게 표제작을 정해놓았는데, 출판사측에서 표제작으로 다른 작품을 내세우길 원한 경우인 것 같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어떤 이유로 출판사에서 작가에게 표제작의 변경과 책 제목의 변경을 요청해서 다른 제목으로 책을 출간한 것이다.

글쎄 '팽이는 서고 싶다' 는 시도 제법 괜찮아서 표제작으로 뽑은 것이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 시 '아내의 브래지어'가 사람들 입에 더 많이 오르내리기 때문에 박영희 시인이 그런 말을 한 게 아닌가 생각이 된다.

박영희 시인은 일제시대 광부 징용사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중국을 통해 북한에 들어갔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가 7년의 옥살이 끝에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좀 별난 이력을 지닌 분이다. 최근에는 르포작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시인이 아내의 브래지어를 빨아준 경험을 바탕으로 아내에 대한 여러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아내의 생리대는 여러차례 빨아준 적은 있으나 브래지어나 팬티를 빨아준 적은 없다. 우리는 가끔 아이의 옷만 손빨래하고 우리 옷은 모두 세탁기에 돌리기 때문이다. 대신 탈수가 끝난 빨래를 널면서 아내의 속옷을 탁탁 털고 잘 펴서 햇볕에 걸어놓을 때 물끄러미 쳐다본 적은 있다.

브래지어를 쳐다보면서 저걸 하고 다니려면 참 갑갑하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아내도 가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특히 여름이면 무척 갑갑해 한다. 그리고 가슴을 받쳐주는 용도라면 좀 더 간단해도 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두껍고 무늬도 복잡할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게다가 속에 와이어가 들어있어서 조이는 느낌때문에 아프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시적감수성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아내의 브래지어를 보면서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저 저 갑갑한 것을 안하고 살아도되니 남자로 태어난게 다행인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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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배수진을 친 집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집에 들어서면

마음이 놓이는 이유를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전태일처럼 배수진을 치지 못해

약한 바람에도 복날의 개처럼 끌려다녔고

허수아비처럼 굽실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배수진을 쳤다고

얼굴 인상을 문신처럼 지어보기도 했지만

모기장에 들어온 모기 한 마리 잡는 것에 불과했다

 

외길에 배수진을 쳤을 때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는 사라진다

새들의 날개가 날아가는 순간을 위해 목숨을 걸듯

나를 위한 싸움만 놓여 있는 것이다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배수진을 친 집이 있기에

그림자마저 얼었어도

들어서기만 하면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맹문재 / 책이 무거운 이유 / 창비



 배수진은 학창시절 내가 즐겨쓰던 단어다. 背水之陣 [배수지진] 손자병법에 나오는 병법중의 하나로 일부러 퇴로를 포기하고 강을 뒤에 두고 진을 구축하는 것으로 이 병법을 사용하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울 수 밖에 없다. 어릴때 어디선가 읽은 이 말을 나는 중학교때부터 많이 사용했다. 주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등 시험을 앞두고 자주 쓰곤 했는데, 시험 바로 전날까지 일부러 공부를 하나도 안하고 있다가 시험 전날 밤새도록 공부하여 점수를 잘 받겠다는 말도안되는 전략을 내 나름대로 배수의 진을 친 전략이라고 친구들에게 떠들어대곤 했다.

 일부러 나와 성적이 비슷한 아이들을 꾀어서 시험기간때 더 열심히 놀았다. 아이들에게 이 배수의 진 전략은 의외로 쉽게 먹혀들어갔는데, 나의 꾐에 빠져서 함께 놀았던 아이들은 대부분 성적이 좋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놀았다면 시험전날에는 진짜 강을 등지고 적과 맞서는 기분으로, 죽기 살기로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관성의 법칙에 의해 계속 놀았기에 막상 시험 전날이 되어도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결국은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배수진이란 말은 원래 함부로 쓸 수 없는 말이다. 죽을 각오로 싸울 수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단어인 것이다. 시인은 배수진을 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치열한 삶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전태일처럼 배수진을 치고 치열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삶과 문학』출판기념회 자리에서 만난 맹문재 시인에 대한 첫 인상은 썩 좋지는 않았는데, 뭐라고 해야할까? 그날 참석했던 다른 작가들과는 좀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그 날 불편했던 내 기분탓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중에 다른 사람들과 환한 웃음 지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얼핏 봤을때는 또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배수진을 치고 삶에 임하는 시인의 태도는 본받을만한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며 나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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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무인등대


등대는 인간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설악을 등지고 방파제에 앉아
허겁지겁 활어회를 먹는 인간들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외롭고 쓸쓸한 저 갈매기들에게 소주 한잔 건네지 않고
저 혼자 술 취해 비틀거리는 인간들이 마냥 미웠던 것은 아니다
바다의 상처가 섬이 된 줄 모르고
해가 지도록 바닷가에 앉아 모래를 헤아리다가
결국 모래가 되어버린 인간들이 결코 안타까웠던 것은 아니다
다만 평생 감동없는 밥을 먹는 인간들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었을 뿐이다
속초항으로 돌아오자마자 집어등을 끄고 코를 골며 자는
저 지친 오징어잡이배들을 설악으로 끌고 가 잠들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오징어와 명태와 고등어와 또 넙치들이
어머니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다정히 불을 밝히다가
수평선을 바라보며 고요히 늙어가기를 바랐을 뿐이다
진정으로 살아보지도 않은 채 죽어간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등대는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인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정호승 / 포옹 / 창비



 강원도는 나와 인연이 많은 곳이다. 지리산은 아직 한번도 올라본 적이 없지만 설악산은 일반 등산 코스는 다 한번이상씩 오르내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야간산행을 해봤던 곳도 설악산이었다. 어릴때부터 코 앞에 바다를 두고 우린 강원도 해안으로 놀러다녔다. 그저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올라가다보면 끝없이 멋진 해안들이 나타나곤 했다. 그 글이 그대로 군대가는 길이 되었다. 휴가나올때와 복귀할때마다 해안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끝없이 오르내렸다.

 속초는 군대 있을 때 근처에 갈 수 있는 곳 중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좀 더 내려가면 강릉이 더 큰 도시이긴 하지만 강릉은 너무 멀었다. 외박을 나가면 할 것 도 없는 간성이나 거진에 머물기보다는 조금 멀어도 속초로 향했다. 한창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상병때였다. 혼자 외박을 나가서 속초로 갔다. 함께 가자는 고참 한 명을 단호히 뿌리치고 혼자서 여관방을 잡아놓고 맥주, 통닭, 빵, 순대, 떡볶이 등 먹고 싶은 건 죄다 사다놓고 밤새도록 먹었던 기억이 난다. TV를 켜놓고 밤새도록 먹다 지쳐 졸다가 다시 정신이 들면 또 먹었다. 아침이 되어도 남은 음식을 싸들고 나와서 만화방에 가서 다시 만화책을 읽으며 먹었다. 내게 속초는 그런 기억이 묻어 있는 곳이다.

 아내의 친구가 우리 결혼식 2주 전에 양양에서 결혼을 했다. 그 친구 부부는 우리를 초대했고 우린 낙산사 근처 모텔에 하룻밤 묵으면서 그 결혼식에 다녀왔다. 그날 밤바다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철책선에서 밤새 묵묵히 바라보곤 했던 그 동해바다를 다시 가만히 바라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바다는 쉴 새없이 지난 얘기들을 쏟아내었지만 나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내 마음의 짐들을 그 바다에 쏟아부었다. 갈매기와 밤바다에 비쳐 일렁이는 달이 가만히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내 고독은 바다에 녹아 잔잔하게 퍼져나갔고 내 뼈는 솟아 올라 등대가 되었다.
 
 그 날 밤에 나는 등대가 되어 바다와 오랜 친구처럼 밤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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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감은빛

밥 때문에

시와 추억 2008.08.09 12:54

우체국을 가며


다시 이력서를 써서
서울을 떠날 때보다 추레해진
사진도 붙이고, 맘에도 없는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로 끝나는 자기소개서를 덧붙여
우체국을 간다
컴퓨터로 찍힌 월급명세서를 받으며 느낀 참담함이 싫어
얼빠진 노동조합이나
제 밥줄에 목맨 회사 간부들과 싸우는 것이
마치 아귀다툼 같아서 떠나온 곳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밥 때문에
삐쩍 마른 자식놈 눈빛 때문에
이렇게 내 영혼을 팔려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왜 그럴까, 알고 싶지가 않다
나는 이렇게 늘 패배하며 산다
조금만 더 가면 여기서 한 발짝만 더 가면
금빛 들판에서
비뚤어진 허수아비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마저 내게는 욕심이었다
이력서를 부치러 우체국을 간다
한때 밤새워 쓴 편지를 부치던 곳에
생(生)의 서랍을 샅샅이 뒤져
1987년 포철공고 졸업 1991년 육군 만기제대
이따위 먼지까지 탈탈 털어서 간다


황규관 / 패배는 나의 힘 / 창비



 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혼자 살때 나는 자유로웠다. 일하고 싶지 않을 때는 그냥 놀았다. 대신 소비를 줄이면 그만이었다. 정 돈이 떨어져 밥을 굶을 지경이 되면, 노가다라도 한탕 뛰면 그만이었다. 돈이 없어도 어떻게 밥은 먹고 살 수 있었다. 돈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을. 뭔가 갖고 싶은 것이 생기거나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알바를 뛰든 어쩌든 일을 구해서 돈을 벌었다. 원하는 만큼 돈을 갖게 되면 또 일을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했다.

 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면 정말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기 일쑤다. 사정이 생겨 일을 쉬게되면 학원강사를 하거나 이런저런 일들을 해서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한동안은 버틸 수 있었다. 내가 가고 싶으면 전국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가서 활동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이바닥은 늘 사람이 아쉬운 곳이고, 특히 지역으로 갈수록 더 하기 때문에 마음만 맞는다면 일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점점 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들었다. 한때 다니던 단체를 그만두고 다른 곳을 알아보게 있었다. 수도권을 벗어나 지역으로 내려가면 갈 곳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아내의 직장과 집 때문에 섣불리 모험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닥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다시 서울에 있는 단체에 들어갔다. 큰 보람도 없고 활동에 대한 의욕도 없었다. 그냥 당위성 하나로 버티는 나날이었다. 내가 원하는 선택은 넓은 대한민국 땅 전국 곳곳에 있지만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좁디좁은 서울바닥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날, 가슴 속에서 치받아 올라오는 그 답답함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의 선한 눈매와 웃고 있는 얼굴이 기억난다. 이번 촛불 집회를 통해 여러 차례 스쳐 지나게 되었다. 작가회의 깃발을 보게되면 근처에는 반드시 황규관 시인이 있었다. 그의 시를 찾아 읽기 전에는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의 시집 한 권을 찬찬히 읽으면서 그에 대해 조금은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그는 어떨까? 이렇게 영혼을 팔아서 서울에 올라온 지금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앞으로 나올 또다른 시를 통해 그의 생각을 엿볼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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